소설리스트

데드맨31-44화 (44/269)

제44화

청원살인 #3

“계약이라. 그런 거 안 해도 윤 회장이 날 지켜줄 거야. 그런데 내가 굳이 너같이 이상한 놈이랑 계약할 필요가 있나? 계약하게 되면 뭘 내야 하는데? 돈?”

“수명입니다.”

“수명?”

“네. 수명을 1년 받도록 하지요.”

“그건 또 뭔 개소리야? 내가 너무 취했나?”

“아니요. 하아. 잠시.”

시현은 양해를 구하고 밖에 나가 정원에 쓰러져 있는 경호원들의 몸을 뒤졌다.

놀랍게도 그들 중에는 실총을 소유하고 있는 이가 있었다. 노린코에서 복제한 콜트45acp…… NP1911이라 불리는 권총이었다.

시현은 그들의 옷에서 권총을 회수하고 다시 성취의 집에 들어왔다.

“뭐하는…….”

그때 시현이 권총을 성취에게 겨누었다.

-탕탕탕!

“으악!”

성취가 몸을 사리자 그의 뒤, 홈바에 있는 술병들이 깨지며 술과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뭐하는 거야!? 미친 새끼…….”

그때 시현이 권총을 이번엔 자신의 손바닥에 댔다.

-탕!

시현의 손에 구멍이 뚫리고 피가 튀었다.

하지만…….

보는 앞에서 아물어간다.

“어?”

성취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음…….”

류하리가 한숨을 내쉬었다.

“보통 여기선 자기 머리를 쏘는 게 훨씬 허세도 있고 멋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옷이 더러워집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고 총을 손에서 빙글 돌려서 거꾸로 잡더니만 힘을 줘서 슬라이드를 밀어 분해해버렸다.

아니, 분해가 아니었다.

-콰직!

무쇠로 만들어진 총이 구겨지며 버려졌다.

“…….”

“보시다시피. 이런 이유로 저 정도는 되어야 사이다패스로부터 당신을 지켜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물론 수명도 농담이 아닙니다.”

“젠장. 이…… 이게.”

성취는 자신의 볼을 만져보았다.

술병 파편이 튀면서 좀 다쳤는지 피가 살짝 배어나왔다.

성취는 자신의 손에 묻은 피와 멀쩡해진 시현의 손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아픈 걸 보니 꿈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총질을 하다니.”

“고급 빌라니까요. 이 정도 총성으로는 별일 없을 겁니다. 대신…….”

갑자기 성취의 집 인터콤이 울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지?”

[아, 실례합니다.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고…….]

성취의 집에서 총성이 나자 경비팀에서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사운드 작업 중에 나간 소리야! 설마 이 정도도 방음이 안 되어서 난리인가?”

[아, 네. 아니, 아닙니다. 총성 같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아무 일도 없어. 작업 소리는 좀 줄이도록 하지! 됐지? 귀찮으니까 사소한 일로 연락 좀 하지 말라고!”

성취는 그렇게 투덜거리고 시현을 돌아보았다.

“됐지? 계약인지 뭔지 하자고.”

“탁월하신 선택입니다.”

시현이 류하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류 왓슨, 계약서.”

“……네?”

“계약서.”

“아, 왓슨, 조수 말이지요. 음. 차에 두고 온 것 같은데요.”

류하리가 그리 대답하자 시현이 차키를 그녀에게 던져 주었다.

‘음, 내가 명분상 그의 조수는 맞지만 이거, 날 지금 이 자리에서 치우려는 거지?’

류하리는 자신 없이 대체 시현과 성취 사이에 무슨 말이 오갈까 궁금했지만 분위기상 자리를 비워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제길. 이 남자는 대체 뭔 생각을 하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뭐, 모르는 것투성이지…….’

류하리는 분위기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주차장으로 향했다.

* * *

시현은 성취에게서 계약서를 받아냈다.

“음. 하지만 고작 1년 수명이라니 아쉽군요. 더 뽑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무엇보다 이 인간…….”

류하리는 명색이 경찰이다.

그녀로서는 자기 멋대로 사람을 심판하고 다니는 사이다패스 같은 이는 긍정할 수 없는 존재다.

시현은 좀 낫다. 적어도 시현은 자신이 정의의 사도라고, 정당한 놈이라고 여기진 않으니까.

물론 그러는 게 또 눈꼴시고 능글맞아 보이긴 하지만 최소한의 균형감각은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성취는 짜증나.’

미성년자나 아이돌 지망생들, 연예계 지망생들을 갖다 바치고 뒤로 불법적인 일을 벌여 돈을 벌면서 그렇게 버는 돈을 또 TV나 매체 등에서 얼마나 자랑했던가.

눈꼴시던 놈이 몰락했는데 이놈을 지켜줘야 하다니 어이가 없다.

게다가 지금 류하리는 구급상자를 꺼내서 유리파편이 튀어 다친 성취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있는 중이었다.

성취는 눈을 감은 채 입을 열었다.

“미리 말해 두지만…… 날 죽이면 내 명의로 된 대여금고 안에 있던 자료가 언론사로 송부되게 해 뒀어. 내가 살아 있어야 검찰과 경찰, 그리고 윤 회장을 포함한 높으신 분들의 치부가 지켜진다.”

“저희를 의심하나요?”

“그래. 의심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성취가 그렇게 말할 때였다.

한동안 잠들어 있던 경호원들, 윤 회장의 부하들이 일어났다.

사실 몇 명은 이미 일어나 있었지만 한 방에 시현에게 제압당한 게 부끄러워서, 또한 두려워서 다른 동료들 깨어날 때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대기하고 있다가 슬슬 다 깨어난 것 같으니까 그제야 일어난 것이다.

“야! 이…….”

“너 뭐하는 놈이야!”

그런 그들을 앞에 두고 시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당구대에서 큐를 잡고 긴 스트로크로 공을 쳤다.

당구대 위에서 공들이 구르며 요란한 소리가 났다.

“내가 누군지는 너희들도 모를 리 없는데 왜 또 묻지? 시에스타가 너무 길었나?”

“뭐? 이 새끼가…….”

“죽고 싶냐?!”

“공사장님! 이쪽으로!”

그때 성취가 짜증을 냈다.

“본명으로 부르지 말랬지! 꺼져 너희들!”

“네?”

“나는 이 사람이랑 계약했어! 안심해! 윤 회장님께 누가 가는 일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너희들론 이놈을 못 죽여!”

성취는 시현이 권총으로 자신의 손을 쏴버리는 걸 보았다.

“하지만…….”

“하지만이고 저지만이고 여기 남고 싶으면 공사장이라고 날 부르지 마라.”

“그래도 공사장님…….”

“…….”

성취는 근처에서 술병 하나를 집어 들어서 그에게 던졌다.

“여기 남고 싶으면 이거 원샷 해라!”

“네?”

“아니면 꺼지라고. 새꺄.”

“…….”

경호원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성취가 던진 술병은 위스키, 어느 정도 비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걸 원샷 하면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어, 어쩌지?”

“그러게 왜 분위기 못 읽고 공사장님 어쩌구 해서…….”

“이, 일단 회장님께 연락해 보자.”

“그러면 우리가 혼날 텐데.”

“그럼 지금 다시 덤벼?”

그러자 시현이 그들을 돌아보았다.

“이제부터 자면 시에스타가 아닌데?”

“젠장.”

“이대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

윤 회장이 보낸 경호원들은 시현에게 으름장을 놓고 물러났다.

* * *

“아, 젠장. 저질렀군. 녀석들이 빡돌게 하긴 했지만 윤 회장 사람인데…… 저질러버렸어!”

정작 윤 회장의 경호원들이 사라지자 성취가 허탈해했다.

“이봐, 당신! 어쨌건 내가 계약을 했으니까 날 지켜줘야 한다! 수명에 돈까지 내기로 했잖아?”

“계약에 의거하면 사이다패스에게서는 지켜준다고 했지만 윤 회장에게 지켜준다는 계약은 아니었습니다.”

“뭐?”

“안심하세요. 윤 회장은 이 정도 일로 당신을 죽이려고 하진 않을 겁니다. 여전히 당신은 살려둘 가치가 있으니까요.”

검찰과 경찰을 손에 넣고 쥐락펴락 하고 싶어 하는 윤 회장 입장에서는 검경의 아킬레스건 그 자체인 성취를 고작 이 정도 일로 제거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성취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자기 목숨이 걸린 일을 그렇게 냉정하게 판단하고 안심하긴 쉽지 않았다.

“그럼 일단 자리를 옮길까요?”

“뭐? 무슨 소리야?”

“여긴 당신을 지키기에 적합한 곳이 아닙니다. 게다가 세금 절세를 위해 소유 법인 명의로 구입했지요? 그럼 등기를 떼서 쉽게 부동산 위치를 알 수 있습니다.”

“여기만큼 보안 철저한 곳이 어딨다고? 외교관도 사는 곳이야, 여기.”

“사이다패스를 막는 데 보안 요원은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오히려 무고한 일반인들이 많은 곳이 훨씬 낫지요. 여기 사는 사람들은 사이다패스 입장에서는 ‘무고하지 않은’ 인간일 가능성이 높거든요.”

시현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갑자기 인터콤이 꺼졌다.

“……아.”

류하리는 천장을 가리켰다.

천장에 있는 방범용CCTV에서 스파크가 튀며 CCTV가 나가는 게 아닌가?

“아무래도 시작인 것 같군요.”

* * *

흉악한 기운이 정원 벽 너머로 부터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 저기 너머는 강변북로라고. 사람이 올라올 수 있는 담벽이 아닌데!”

성취가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쉭!

한 인영이 가볍게 정원의 담벼락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사뿐히 지상에 착지하는 게 아닌가?

“뭐야?”

펑키한 머리를 가진 여성이 풍선껌을 입에서 불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좀 불었네? 성취. 아이돌 때려쳤다고 몸 관리 전혀 안 했구나? 하긴 이제 카메라 타도 연예인이 아니라 범죄자로서 탈 텐데 얼굴 두 배로 불어 있어도 옛 팬들 알 바 없지?”

“옛 팬들 생각했으면 아예 범죄를 저지르지 말았어야지. 이제 와서 무슨…….”

류하리가 참지 못하고 빈정거렸다.

“그러게? 당신 마음에 드는 소릴 하는데?”

그 여성은 그리 말하고 씨익 웃으며 망치를 손에 쥐곤 무슨 안마기 마냥 자신의 등을 두들겼다.

“이 여자가 그 사이다패스야?”

성취가 시현에게 확인차 물어보았다.

“네.”

시현이 대답해 주었다.

“예상보다 일찍 왔군요. 그런 인터넷 청원사이트 순위는 한동안 무시할 줄 알았는데.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청원사이트 순위에 호응해 주면 사람들이 당신을 너무 쉽게 보지 않겠습니까?”

시현은 그렇게 말했다.

“사람들의 여론에 놀아나는 광대 신세가 되는 위험이 있다는 건 아는데……. 표적이 너무 좋더라고.”

그렇게 말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내딛던 사이다패스가 눈살을 찌푸렸다.

시현에게서 느껴지는 촉이랄까. 느낌이 심상치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뭐야. 당신도…… 정상적인 인간은 아니네?”

“지극히 정상입니다. 타의 모범이 되는 성실 납세자라고 할 수 있지요.”

“하하.”

그 순간 갑자기 사이다패스가 돌진했다.

무서운 속도로 뛰어든 그녀의 표적은 시현이 아니라 성취였다.

성취를 공격해서 성취의 호위병인 시현을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자, 보호하러 와라! 그럼 당신부터!’

과연 시현이 성취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온다.

사이다패스는 그 즉시 몸을 틀어 손에 쥐고 있던 망치로 시현의 머리통을 노렸다.

그러나…….

-부웅!

공격이 허공을 갈랐다.

놀랍게도 시현은 그녀의 공격이 페인트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성취의 가치는 그 자신도 있지만 그가 알고 있는 검찰과 경찰, 기타 여러 고위층 사람들의 치부다. 성취의 입을 열게 해야지 이대로 죽이는 걸 원할 리 없어.’

즉, 이건 시현을 끌어들이기 위한 함정, 심상치 않은 실력을 가지고 있는 시현을 쉽게 잡기 위해 대담하게 시도한 페인트였다.

시현은 그걸 대번에 간파하고 앞으로 뛰어드는 척하며 사이다패스의 공격을 유도하고 피해낸 뒤 발차기로 사이다패스를 걷어찼다.

사이다패스는 그대로 튕겨나가 정원에 설치된 파라솔에 충돌했다.

아무리 상대가 여성이라지만 한 번 걷어차서 저 정도 날려 보내다니 인간의 힘이 아니다.

하지만 그 순간 시현의 눈으로 뭔가가 날아들었다.

사이다패스가 구르면서 파라솔 옆의 의자를 집어던진 것이었다.

“워어!”

시현이 그것을 피해내자 의자가 날아들어 거실 유리창에 충돌했다 튕겨나갔다.

“뭐, 뭐야?!”

성취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투에 경악했다.

데드맨31

청원살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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