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45화 (45/269)

제45화

시현이 자신의 손을 총으로 쐈다가 아물 때도 놀랐지만 지금 이 사이다패스의 움직임은 인간 같지 않다.

그녀는 파라솔을 집어 들어 투창처럼 성취를 향해 던졌다.

“이쪽으로!”

류하리가 성취의 뒷덜미를 잡고 당겨서 파라솔을 피하게 했다.

“우리들은 방해만 돼요! 피하죠!”

“으윽. 자, 잠깐만. 취기가.”

“그러게 누가 술을 그렇게 처먹으라고 했어요?!”

“마, 말이 심한데?”

“심한 건 당신 행실이지!”

류하리는 그리 말하면서 성취를 끌고 자리를 피했다.

* * *

“으흠.”

사이다패스가 자신의 목을 매만지고 머리를 좌우로 빙글 돌려 몸을 풀었다.

“재밌네. 당신. 정체가 뭐지?”

“…….”

시현은 대답 대신 팔을 붙잡았다.

-뿌드득.

빠져있던 팔을 억지로 끼웠다.

‘이 여자, 나보다 육체적 능력이 더 강하군.’

시현과 사이다패스의 공격이 엇갈리는 순간 시현의 팔이 사이다패스의 공격에 휘말려 빠져버린 것이었다.

시현이 저 여자보다 체격도 크고 체중도 더 나갈 테고 근육량도 많을 텐데 이런 차이가 나는 걸 보면 육탄전에 있어서는 이 여자 쪽이 더 강력한 비호를 받고 있음에 분명했다.

“평범한 탐정.”

“탐정? 흥신소 말야?”

“진짜 탐정이다.”

“아. 미안. 놀랐어. 흥신소라면 다들 문신한 돼지나 사고 쳐서 경찰에서 잘린 전직 형사들이 게슴츠레한 눈을 뜨고 다니는 줄 알았지 뭐야.”

“……내 말을 안 듣는군.”

시현은 탐정이라는데도 계속 흥신소 취급하는 사이다패스에게 눈총을 보냈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시현의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당신처럼 말쑥하게 생긴 사람도 있군. 죽이긴 아까운데? 게다가…… 어째서 당신이 내 공격을 버틸 수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아무래도 동종으로 보인단 말야?”

그녀도 시현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 그와 비슷한 존재라는 걸 눈치챘다.

“그래서 말인데. 여기선 그냥 물러나지 않을래? 보아하니 일 때문에 하는 것 같은데 굳이 당신도 성취 때문에 목숨 걸 의리는 없잖아? 안 그래? 그놈은 인간 쓰레기라고. 어린 여자애들 팔아서 자기 이득 올리는 데 써먹는 놈이잖아. 게다가 그놈은 고작 입구야. 그놈을 비틀어 열면 고관대작 놈들의 추잡한 몰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그 모습이 보고 싶지 않아?”

“미안하지만 시현탐정사무소는 고객만족이 최우선이라. 일단 계약해버리면 중도 포기나 해약은 있을 수 없다.”

“그래. 그거 안됐네. 어떻게든 내 적이 되어야겠단 말이지?”

사이다패스가 그렇게 말할 때였다.

“무슨 일입니까!”

“괜찮습니까?”

빌라의 보안요원들이 뛰어 들어왔다.

다들 건장한 체구에 가스총으로 무장한 젊은이들이다.

그러나 그 정도로 저 사이다패스를 상대할 수 있을 리 없다.

“아. 이런 시간을 너무 끌었군.”

사이다패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설마 이 경비원들도 죽일 생각은 아니지? 이들은 그저 여기 직원이야. 선량하고 무고한 월급쟁이들이라고.”

시현이 그렇게 말하자 사이다패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 죽여버려서 여기 집값을 떨어뜨리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기는 한데…… 아직은 그렇게까지 막나갈 필요가 없지? 나는 급할 거 없으니까.”

그렇게 말한 사이다패스가 정원 쪽으로 몸을 날렸다.

“어?!”

보고 있던 보안요원들은 당황했다.

이상한 여자가 사람의 힘으로 넘기 힘든 담벼락을 간단히 넘더니 사라져버린다.

“괘, 괜찮습니까?”

“이게 대체…….”

경비들은 그제야 시현에게 다가오는데 시현이 손을 내저었다.

“괜찮습니다.”

“겨, 경찰을 부를까요?”

직원들이 그렇게 물어보자 뒤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지 마!”

성취였다.

“지금 이런 걸로 경찰 부르면 언론이 날 뭐라고 하겠어? 그런 거 입방아 찧고 까부는 게 싫어서 이 비싼 집에 비싼 관리비 내는 거라고! 무슨 뜻인지 알겠지? 가봐!”

그는 보안요원들을 돌려보냈다.

아무리 봐도 경찰을 불러야 할 사안이지만 이런 고급빌라에서는 입주자의 의지가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보안요원들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인사하고 물러났다.

“잘했습니다.”

“아예 도망치는 게 낫지 않았어?”

성취가 물어보자 류하리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시간이면 차가 막히니까 따라잡힐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다시 올 수도 있으니까 차가 좀 뚫릴 때까지 여기 있다가 장소를 옮기도록 하지요.”

“그, 그래.”

성취는 엉망이 된 집 안을 보며 혀를 찼다.

“정말 날 죽이려고 온 건가? 그 미치광이는?”

“이렇게 난리를 피웠는데 교회 나오라고 전도하러 온 건 아니겠죠.”

“…….”

류하리의 빈정거림에 성취가 침묵했다.

* * *

류하리와 시현은 성취를 차에 태우고 고급 빌라를 빠져나왔다.

선글라스를 쓴 성취가 뒷좌석에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자나…… 그런 사람들은 없나.”

“네. 왜요?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니. 사람들이 있을까 봐 집 안에 갇혀서 두문불출 했었는데 헛짓했다 싶어서…….”

성취는 그리 말하고 혀를 찼다.

그때 성취의 전화기가 울렸다.

“받아보세요. 소리 키워서.”

“중요한 분 전화야. 함부로 받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윤 회장 전화죠? 괜찮습니다. 절 찾을 거니까요.”

시현이 그렇게 말하자 성취는 시현의 눈치를 살피다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받았다.

“네. 윤 회장님. 전화 받았습니다.”

[성취 군…… 옆에 탐정 있나?]

시현이 말한 대로 윤 회장은 시현을 찾았다.

“네. 있습니다.”

[바꿔주게.]

“…….”

성취가 시현의 눈치를 살폈다.

“네. 탐정 시현입니다. 언제나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지요.”

[윤 회장이라고 하면 알겠지? 재밌는 친구로군.]

“감사합니다. 명성은 귀가 따갑게 듣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신지요?”

[우리 애들이 자네에게 아주 신세를 많이 진 것 같네만? 저번의 일도 그렇고 이번에도 이렇게 신세를 지다니 아무래도 꼭 사례를 해야 할 것 같아.]

“이번엔 오히려 제가 회장님 애들 도와준 겁니다. 제가 안 왔으면 그 사람들 죽었을 겁니다.”

[흐음?]

“서부지검 수사부장을 살해한 살인마 아시죠? 그 살인마가 성취 씨를 죽이려고 찾아왔습니다. 회장님 애들로는 못 막습니다.”

[그래서? 내 얼굴에 먹칠해놓고 너희 애들 살려준 거니까 고마워하고 넘어가라?]

“하하하. 그 친구들이랑 좀 부딪힌 걸로 어디 회장님 명성에 누가 가겠습니까?”

[…….]

“지금 저는 성취 씨를 사이다패스로부터 지키도록 계약했습니다. 회장님과의 문제는 이 일을 끝내고 나서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 싶은데요? 지금 매듭짓고 싶으시면 무조건 절 용서해 주셔야 합니다.”

[왜지?]

“제가 없으면 성취 씨가 죽으니까요.”

[자신감이 대단한 친구군.]

“절 용서하기 싫으시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고 지금 매듭을 짓고 싶으시면 시원하게 넘어가 주시지요. 어차피 그 친구들 크게 다치지도 않았는데.”

[하하하. 알겠네. 그럼…… 나중에 이야기 하도록 하지.]

널 용서하지는 않겠다.

윤 회장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성취 군을 바꿔주게.]

“저, 전화 바꿨습니다.”

[그 탐정을 고용했나?]

“아, 네. 계, 계약했습니다.”

[우리 애들보다 그 녀석이 더 쓸 만하단 말이지?]

“…….”

사실 그렇긴 하지만 성취는 겁을 너무 먹어서 술까지 깬 상황이었다.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자가 은근한 노기를 드러내면서 물어본다.

그렇다고 하면 체면을 구겨서 싫어할 테고 그렇지 않다고 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성취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이, 이 탐정은 이상한 힘이 있습니다. 그 살인마도 그렇고요. 보통 사람은 못 막습니다.”

성취는 최대한 머리를 굴려서 그렇게 말했다.

[알겠네. 그래도 어디 가는지 항상 위치나 상황은 보고하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러자 전화가 끊어졌다.

성취는 그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뭐랄까. 고양이 앞의 쥐네요?”

류하리가 빈정거렸다.

“그래, 성공한 사업가가 되겠다. 그렇게 돈 있는 척, 권력 있는 척 자랑을 하더니만 고작 깡패 두목 앞에 굽신거리는 건가요?”

“그냥 깡패 두목 따위가 아니야! 이 사람은…… 경찰이나 검찰사람들도 깍듯하게 대하는 거물이라고!”

“…….”

하긴 류하리 입장에서는 누워서 침 뱉기다.

애초에 그녀가 시현을 집중 마크하는 것도 윤 회장에게 돈을 받아 처먹은 강남경찰서장이 시현에게 수모를 겪고 잘렸기 때문이 아닌가?

즉, 경찰 전체가 윤 회장에게 농락당하고 있는 셈인데 고작해야 전직 아이돌 가수 남자 한 명에게 윤 회장에게 굽신대냐고 비웃을 처지가 못 되는 것이다.

* * *

성취는 윤 회장의 전화를 긴장해서 받더니만 전화가 끝나자 긴장이 풀렸는지 그대로 잠들고 말았다.

술로 찌들어 있던 몸인지라 사실 눈뜨고 있는 게 용한 것이긴 했다.

시현은 그런 성취를 데리고 서울 시내 한복판의 고급호텔로 향했다.

“이곳이라면 안전할까요?”

“글쎄요.”

시현은 회의적이었다.

“일단 이 사이다패스 상대로는 제 능력이 제대로 먹히질 않는군요.”

“그럼…….”

“언제 올지 모르겠어요. 누굴 죽일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사이다패스는 성취를 바로 죽이기보다는 그가 가지고 있는 검찰과 경찰들의 약점, 그걸 원할 겁니다.”

“그건 성취의 목숨 줄이기도 하니 절대 내주지 않을 걸요. 그걸 세상에 공개하면 검찰이나 경찰이 성취를 더 이상 봐줄 필요가 없으니까요.”

성취는 이제 와서 연예계에 복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업을 재개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가 만든 연예기획사에 누가 지원하겠으며…… 그가 하는 요식업 프랜차이즈에 누가 가입하겠는가?

연예인으로서도 사업가로서도 끝장난 성취를 그래도 검찰과 경찰, 판사들이 봐주고 있는 건 그가 그들의 약점을 쥐고 있기 때문이며, 윤 회장이 성취를 비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성취라는 인간에게 남아 있는 가치는 바로 검찰과 경찰, 판사들의 약점이 될 자료와 증거능력. 그것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성취가 지니고 있는 파일을 세상에 공개해서 이 파렴치한 짓에 가담한 놈들의 죄상을 낱낱이 밝히고 싶은 심정이에요. 그러기 위해서 경찰이 된 거니까. 하지만…….”

류하리는 말꼬리를 흐렸다.

“제가 당신을 감시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윤 회장인지 뭔지 하는 사람의 입김이로군요. 회의가 느껴지네요.”

“뭐 나비가 날갯짓하면 지구 반대에 태풍이 분다지 않습니까. 뭐든 얽혀있기 마련이니 너무 크게 의미부여해서 자책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시현은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말하고 류하리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류 경위님, 혹시…… 은행 조사해 주실 수 있나요?”

“네? 무슨 소리예요?”

“K은행 여기 지점에 성취의 대여금고가 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네?”

“성취가 자신의 파일을 은행 대여금고에 넣어놨다고 했지요?”

“아, 네.”

“보통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데, 아무래도 그는 이런 데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 입이 가볍군요.”

“네?”

“은행 대여금고는 어떤 사람이 주로 빌릴까요?”

“…….”

“은행의 VVIP 고객이지요. 즉 성취가 대여금고를 쓴다면 그곳은 성취의 주거래 은행 중 하나, 적어도 VVIP로 성취를 관리할 만큼 계좌에 돈이 들어 있는 곳이겠지요. 그 지점에서 대여금고를 빌려 쓰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

류하리는 감탄했다.

데드맨31

청원살인 #5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