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49화 (49/269)

제49화

“아, 진짜. 끊어야 하는데.”

성취의 손이 덜덜 떨린다.

원래부터 성취가 알코올 중독자였던 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사업이 모조리 무너지고 자신이 쌓아온 명성, 인기, 그 모든 것이 산산조각 났을 때 성취는 그 고통을 직시할 수 없어서 술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취해있으면 고통을 느끼지 못하니까 술을 몸에 들이 부었고 그래서 지금 그의 몸은 만신창이였다.

더 마시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술병에 손이 가는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한 잔 드릴까요?”

비싼 와인이라 그런지 직접 따라 먹는 게 아니라 직원이 특별히 따라주는 듯했다.

“그래. 한 잔만. 비행기 타기 전에 흥분을 좀 가라앉히고 싶군.”

성취는 그리 말하고 와인을 따르는 걸 기다렸다.

‘이제 떠나면…… 고국에 못 돌아오는 건가?’

성취는 라운지의 창문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번화한 인천공항의 모습을…… 어쩌면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왠지 불안해졌다.

손이 다시 떨린다.

“어, 어서.”

성취는 느긋하게 와인을 따른 직원의 손에서 잔을 강탈하듯 빼앗아 들고 마시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그의 머리 위 숫자가 0이 되었다.

“컥?!”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진다.

성취의 손에서 와인 잔이 떨어져 바닥을 구르며 와인이 흘러내렸다.

“소, 손님?!”

직원이 당황해서 성취를 향해 다가온다. 성취는 숨을 몰아쉬면서 무릎을 꿇었다.

그때 VIP라운지의 문이 열리고 수염 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라운지에 들어오기 전부터 짐벌에 스마트 폰을 끼워둔 그는 대번에 성취를 알아보았다.

“……아.”

남자는 짐벌을 옆에 세워두고 성취를 향해 달려왔다.

“이런…… AED! 빨리!”

“네!”

직원과 남자가 AED를 준비했지만 성취의 눈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손이 축 늘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 * *

그리고 시현은 차 안에서 백미러를 통해 공항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의 시야에서 태그 하나가 점멸하더니 사라졌다.

“……부디 평안하시길.”

“네?”

류하리는 영문을 모르고 시현의 말에 의구심을 표했다.

“아니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 * *

‘아이돌 가수 공모씨(예명 성취), 인천공항 라운지에서 사망.’

‘사인은 급성 심부전, 간경화나 약물 중독의 소견도…….’

* * *

류하리는 성취가 싫었다.

아무리 아이돌 시절 마음고생을 했고, 성공을 갈망했고, 강력한 권력자들 밑에서 일하는 뚜쟁이에 불과했다 하더라도 그는 미성년자를 약취한 범인에 불과하다.

그런 주제에 자신의 고통엔 민감하면서 자신을 믿고 따르던 미성년자들의 고통에는 전혀 공감하지 않는다.

자기연민에 빠진 파렴치한 범죄자.

응당 죗값을 받아야 하는데…… 한국의 감옥에 넣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살해당할 수 있다.

그를 이용해서 미성년자들을 약취한 더 큰 거악들을 잡기 위해서 그를 해외도피 시키는 일종의 사법거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성취는 공항에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시현에게 수명 1년을 넘겨주고 나서 남은 수명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앞으로 그가 해외에서 잘 적응하겠냐 하는 질문을 던졌지…….’

류하리는 왜 시현이 애매한 태도를 취했는지 이제야 알았다.

성취의 앞으로의 인생은 염려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곧 죽을 테니까.

생각해 보면 성취는 술을 물처럼 마시고 있었다.

건강과는 거리가 먼 상황, 곧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금까지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수명을 거래한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류하리는 어느새 약속도 없이 정처 없이 걷다가 시현의 사무실 앞에 도착했다.

사무실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

류하리가 걸어 올라가 사무실의 문을 열자 그곳에는 시현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모르겠어요.”

류하리는 그렇게 말했다.

“모르겠다?”

“당신이란 사람을 모르겠어요.”

시현은 류하리의 말을 듣고 다리를 꼬았다.

“뉴스를 봤어요. 그런 의미였군요.”

“네. 그런 의미였습니다. 화나셨습니까?”

“네, 화가 났지요.”

“어째서입니까?”

“성취는 재수 없는 놈이에요. 파렴치한 범죄자고. 뭐, 홧김에 말하자면 죽어 마땅한 놈이지요. 하지만…….”

“죽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까?”

“네. 아니, 모르겠어요. 그보다는 좀 더…….”

“제가 언론인에게 성취의 죽음을 팔아서 그 행위가 그의 죽음을 구경거리로 만들고 한 인간이 받아야 할 최소한의 존중, 존엄한 죽음의 순간을 더럽혔다고 생각하십니까?”

류하리가 자신의 감정이 무엇에 기인하는지 몰라 복잡해하는 것과 달리 시현은 꽤나 정확하게 지금 류하리가 왜 혼란스러워 하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대체 왜 그래요?”

“네?”

“제가 본 것만 해도 당신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수명을 빼앗았어요. 그래서 천년만년 살기라도 할 거예요? 대체 뭘 바라고 그렇게 악착같이…….”

“뭘 바라냐고요?”

시현이 소파에서 일어나 류하리에게 다가왔다.

류하리는 깜짝 놀랐지만 물러나지 않았다.

“우선 저는 빼앗은 수명을 전부 다 제 것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1년의 수명을 받아도 제 몫으로 떨어지는 건 사분지 1에 불과합니다.”

“그럼 당신이 살기 위해서 남들의 수명을 빼앗고 있는 건가요?”

“그렇지요. 그래서, 납득이 되십니까?”

“그렇다면야…….”

류하리는 그렇게 말했지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문득 류하리는 자신이 안심했다는 걸 깨달았다.

시현이 살기 위해서 하는 짓이라면, 용납될 만하다.

하지만 용납되니까 안심한다고?

게다가 지금까지 본 시현은 항상 필요 이상으로 말하면서 정작 필요한 것은 감추는 사람이었다.

“그게 다는 아니죠? 당신은 분명히 제게 말하지 않는 것이 있어요.”

“네.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당신을 믿고 싶어요.”

“믿고 싶다?”

“네. 지금까지 저는 당신을 따라다니면서 음, 네. 그래요. 재미있었어요.”

“재미?”

“당신이 마음에 들었어요. 경찰 입장에서 이런 소리 하면 이상하겠지만 아무래도 법이나 공권력만으로는 사람들의 가려운 부위를 그렇게 긁어주진 못하니까요. 경찰이나 검찰, 인간이 만든 조직은 결국 한계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하지만…….”

“저는 정의가 아닙니다. 호의로 이런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네. 바로 그 점이 마음에 안 드네요. 물론 본인이 무슨 정의의 사도라고 까불었으면 그건 그것대로 마음에 안 들었을 테지요.”

류하리는 그렇게 말하다 문득 자신이 너무 솔직해졌다는 걸, 감정적이 되어서 자신의 속내를 가감 없이 말해버렸다는 걸 깨달았다.

“아…….”

“즉, 절 믿고 싶지만 성취에게 한 짓을 보니 믿을 수 없다. 그런 짓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런 말씀을 하고 계시는 거로군요.”

“…….”

말해놓고 보니까 상당히 무례한 참견이다.

류하리가 그러라고 한다고 시현이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대답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노력하겠습니다.”

“노력이요?”

“네.”

“풋.”

류하리는 시현의 말을 듣고 피식 웃어버렸다.

“당신의 노력이라면 그건 거의 사기 아닌가요?”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뇨.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히 고맙군요.”

“다행이군요. 류 경위님. 앞으로 바빠질 겁니다.”

“바빠진다니요?”

시현이 대답대신 노트북을 가리켰다.

그것은 ‘사이다패스에게 부탁해’라는 청원 사이트였다.

“언제 이런 게…….”

류하리는 그 사이트의 커뮤니티 게시판을 보았다.

* * *

성취가 죽자 사이다패스에게 청원하던 게시판에서는 사람들의 의견이 분열되어 있었다.

‘성취가 죽었잖아? 사이다패스가 한 거 아님?’

‘병으로 죽었다잖아. 알코올 중독. 사이다패스가 한 건 아니지.’

‘결국 뭐야, 사이다패스는? 아무것도 안 한 건가?’

‘그래도 성취가 죽었잖아. 결과적으로.’

‘우리가 원한 건 시원하게 때려죽이는 건데. 이건 사이다패스가 죽인 게 아니라 자연사 아냐? 자연사?’

‘됐고 나는 내가 청원한 놈을 죽여주면 만족인데. 여기 재미없다. 1등 해야만 죽여주는 거야? 그럼 인터넷 등에서 유명한 놈이나 죽이겠지 개개인의 억울한 사연 같은 걸 들어줄 일은 없잖아? 이 사이트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인생의 낭비로군.’

‘이미 낭비할 인생도 없는 개막장의 말.’

성취가 그냥 알코올 중독으로 죽어버리자 그동안 사이다패스에게 쏠려있던 관심이 구심점을 잃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 * *

“으음. 이 인간들 싹 다 잡아넣고 싶어지는데요. 이게 바빠지는 것과 상관이 있나요?”

“사이다패스는 선언문을 작성할 정도로 사람들 관심에 굶주려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다른 나라 같으면 지금까지 저지른 연쇄살인사건만으로도 평생 회자될 존재지만 한국은 사건회전이 너무 빨라요. 주기적으로 새 사건을 일으켜주지 않으면 바로 잊히게 되지요.”

“아니, 그 무슨…… 아이돌 같은 소리를.”

“그런데 성취가 죽었으니 성취의 파일이 공개될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관심을 잃은 사이다패스 입장에서 가만히 있을까요?”

“아.”

“다만 성취가 죽기 전 저와 접촉했다는 걸 윤 회장도 알았으니까 제 쪽에도 뭔가 압력이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어느 쪽이 되었건 일은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그럼…….”

“오늘은 들어가 푹 쉬세요.”

“서버에서 송출이 시작되면 그때부터 진짜 바빠질 테니까 말이지요?”

“글쎄요?”

시현은 복잡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 * *

타자기가 타다닥 글자를 쳐내기 시작했다.

-훌륭히 그녀를 설득했군요.

“그녀도 알고 있는 거지. 내게 정의의 사도 역할을 요구하는 건 굉장히 잘못된 일이라는 걸.”

-몇 가지는 말해 주지 그랬습니까? 그랬다면 그녀가 당신을 더 우호적으로 대하지 않았을까요? 당신이 그녀를 위해서 무얼 걸고 있는지 그녀도 안다면…….

“쓸데없는 소리로 잉크리본 낭비하지 말고.”

시현은 타자기를 노려보았다.

* * *

“하. 이런 경우가 다 있네. 사냥감을 빼앗기다니.”

시현의 예측대로 사이다패스는 성취를 자신의 손으로 마무리하지 못해서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그런 사이다패스의 앞에는 미간에 엄지손가락의 중관절을 대고 두통을 참고 있는 최형림이 있었다.

최형림의 손에는 근처 아울렛의 종이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왜냐면 최형림은 쇼핑을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잠가뒀는데…….”

“뭐 사 온 거야?”

“와이셔츠. 누가 내 옷을 찢어놔서 말이죠. 그런데 혹시 어린 시절에 유치원에서 남의 집에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고 가르쳐 주는 걸 잊어먹었나요?”

“에이, 당신과 나 사이잖아?”

“실례지만 그게 무슨 사이입니까?”

최형림은 진지하게 물어 보았다.

데드맨31

청원살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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