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50화 (50/269)

제50화

“누구 한 명 입을 열면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공범? 운명공동체라고 할 수 있지. 어떤 의미에서는 부부보다 더 가까운 사이 아닌가?”

“그럼 찢어먹은 옷은 배상해 주지 그래요?”

“쪼잔하게 구네. 검사라서 엄청 많이 벌잖아?”

“그래봐야 공무원입니다. 수당 다 합쳐야 겨우 연봉이 세전 7000 정도지요.”

“많잖아?”

“물론 나쁘지는 않은 금액이지만 세금 떼고 나면 실제로 쥐어지는 건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검사에게 바라는 건 훨씬 많죠.”

“바라는 게 많다고?”

“검사를 대하는 사람들은 검사가 돈 많이 버는 엘리트라고 여기고 검사들은 검사들대로 임관하자마자 팔자 고치는 줄 알았는데 실수령액은 얼마 되지 않고, 주위에서 손 벌리는 사람은 많고……. 학창시절엔 다들 내로라하는 수재였는데 공부하고 담쌓아도 부모 잘 만난 건물주 애들 돈쓰는 거 보면 자괴감마저 느껴지지요.”

“아니, 잠깐. 그런데 당신은 재벌집 자제 아니었어? 부모 잘 만나기로는 누구 못지않을 텐데 어째서 그런 소리를 해?”

사이다패스가 빈정거렸다.

“복잡한 사정이 있습니다.”

“아, 그래? 무슨 사정인데?”

“흠. 그건 설명하고 싶지 않군요.”

“그럼 입 다물고 있어. 말도 안 해 줄 그놈의 사정, 나보고 자세한 건 묻지 말고 알아서 당신 눈앞에서 기어 다니라는 거야? 그런 식이면 나도 복잡한 사정이 있으니까 내 앞에서 당신이나 기어 다니지 그래? 돈도 좀 버는 족족 내놓고 내가 옷을 찢건 뭘 찢건 쪼잔하게 굴지 말고.”

“하아. 급발진을 하시는군요. 생각해 보세요. 지금 남의 집에 무단으로 들어온 사람에게 이제 제 사적인 영역인 가족사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을 기분이 들겠는지? 저희가 운명공동체이긴 하지만 그렇게 친밀한 관계는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공통의 사업에만 집중하도록 하지요.”

“…….”

한창 열을 내던 사이다패스는 자신이 급발진했다는 걸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누가 검사새끼 아니랄까 봐 말은 청산유수네. 그래서 이번 일은 어떻게 할 거야? 성취는 죽어버렸고 성취의 파일은…….”

“곧 손에 넣을 수 있을 겁니다.”

“곧?”

“네. 제가 원하던 방식은 아니지만…… 이번 싸움에서는 그가 이겼으니까 그가 원하는 대로 해야겠지요.”

그렇게 말하던 최형림이 사이다패스를 흘겨보았다.

“그래서 말인데. 이 셔츠 값이랑 옷 수선비가…….”

“아. 일이 생겼어. 가 볼게.”

“하아.”

“그 성취의 파일은 방식이야 어쨌든 손에 넣을 수는 있는 거지?”

사이다패스는 최형림이 자신에게 돈을 달라고 할 것 같자 잽싸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결국 다시 최형림은 혼자 방 안에 남게 되었다.

그는 쇼핑백에서 와이셔츠를 꺼내 포장을 뜯고 옷장에 정리를 시작했다.

* * *

헥사곤 엔터테인먼트의 윤정식 회장은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성취 군이 죽었나.”

“사인은 급성 간부전 쇼크입니다. 최근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건강이 많이 상해 있었지요.”

윤정식 회장의 비서가 그렇게 말했다.

“사인은 뭐가 되었든 상관없어. 문제는 그 탐정 놈이 성취 군을 맡은 다음에 죽었다는 점이지. 죽었다는 점이 중요하단 말일세.”

성취가 가지고 있는 파일, 성상납 파일은 사실 윤 회장도 가지고 있었다.

성취의 사업 모두가 윤 회장의 손바닥 위에서 벌어진 일이다. 성취가 동영상을 촬영해 파일을 떠놓게 했던 보안회사는 사실 윤 회장의 입김이 닿아 있던 곳이었고 그곳에서 파일을 따로 복사해 두어 윤 회장 역시 성취의 파일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 회장은 성취를 보호했었는데 이는 투 트랙 전략이었다.

‘위기에 몰린 성취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그런 위기감을 성취의 성상납 파일에 찍힌 고관대작들에게 주고 그들의 해결사로서 자신이 등장해 둘 사이를 중재하는 모양새의 그림을 그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데 성취가 죽어버렸다.

윤 회장 손에는 여전히 성취의 성상납 파일이 남아 있지만 이건 윤 회장이 직접 쓸 수는 없는 칼이다.

그가 이 칼을 직접 휘두르면 칼에 썰리는 이들과 적대관계가 되어버린다.

누군가 남이 쥐고 있어야 의미가 있는 무기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탐정 놈이 거슬리는군.”

헥사곤 엔터테인먼트, 강남 유흥가의 지배자, 밤의 대통령이라 불리는 윤 회장에게 있어서 경외감이라는 건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자신을 두려워해서 감히 말도 붙이지 못하고 그를 상대할 때는 항상 몸조심을 해야 하며 때로는 알아서 기어야 한다.

그가 직접 지시하거나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설설 기는 그런 분위기가 조성되면 그가 직접 관리하지 않더라도 그의 환심을 사고 싶어 하는 이들이 알아서 주위를 관리한다.

이런 분위기는 감히 값을 먹일 수 없는 자산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고작 탐정나부랭이 하나가 덤벼들어 그의 권위를 훼손하고 있으니…….

“어떻게 할까요?”

“마포 경찰서에서 그를 감시하고 있지 않나?”

“예.”

“경찰이 눈독을 들이고 있다면 지금 손봐주면 골치 아파지겠군. 내가 직접 신경 쓸 놈도 아닌 것 같고.”

전국, 아니, 세계적으로 사업을 펼쳐나가고 있는 윤 회장 입장에서는 이제 와서 흥신소 나부랭이와 드잡이질 할 수는 없다.

그의 체면과 권위가 중요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흠. 됐어. 일단 검찰총장부터 만나봐야겠군.”

“직접 만나실 겁니까?”

“원래는 직접 대면하는 걸 서로서로 피해왔지만 상황이 상황이니까. 약속을 잡도록 하게. 성취의 파일이 나돌기 전에 수습을 해야지.”

“알겠습니다.”

비서가 전화를 들었다.

* * *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성취가 죽은 지 72시간이 넘었다.

정치인, 고위관료, 재계의 유명인사들이 성취를 통해 성상납을 받은 증거파일들은 파나마의 프로바이더를 경유해 각지에 뿌려져 있다가…… 72시간이 지나면 예약발송이 발동해 각 언론사와 스트리밍사이트에 보내어진다.

즉, 지금쯤이면 파일이 보내어졌을 것이다.

류하리는 창밖을 적시는 비를 보며 손목시계를 살펴보았다.

72시간이 훨씬 지난 지금이다.

“음?”

아무 일도 없다.

‘아니, 뭐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며 극적인 일이 벌어지길 원한 건 아니지만.’

류하리가 그렇게 생각할 때, 기다렸다는 듯 천둥번개가 치며 창밖에서 뇌광을 뿌렸다.

-콰르르르릉…….

“이런 거 말고.”

하지만 뉴스 사이트 등에는 아무런 업데이트가 없다.

시시콜콜한 연예가 이야기, 그런 사소한 이야기들만 있을 뿐 정작 지금쯤 터져야 할 성취 사건의 뉴스는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혹시 서버에 문제가 생겼나? 예약발송에 차질이 생겼나?’

류하리는 불안해져서 전화기를 들어 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시현의 전화는 통화중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 * *

비바람이 거칠게 쏟아지고 있는 저녁…….

류하리는 경찰서를 빠져나와 우산을 들고 시현의 사무실로 향하려 했다.

그런데 그때, 그런 그녀의 앞에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차의 창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낸 남자는 최형림이었다.

“류 경위님.”

“아, 선배님. 안녕하세요. 어쩐 일이세요?”

“별건 아니고 아무래도 수사부장님 사망사건 때문에 경찰과는 긴밀한 협력관계를 구축해야 해서…… 아, 이제 전임 수사부장님이지요. 새 수사부장님이 오셔서 그분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최형림은 그렇게 말하다 미소 지었다.

“비가 많이 오는데 타지요. 가는 데까지는 태워다 드릴 테니까.”

“아, 아뇨. 괜찮습니다. 전철로 가면 돼요.”

“막히는 시간이긴 하지만 시현탐정사무소라면 차로 가는 게 더 나을 텐데요. 이렇게 비를 맞으면서 가는 것보다는.”

“…….”

류하리는 자신이 어디 가는지 꿰뚫어본 최형림의 말에 당황했다.

경찰이 시현을 내사하고 있는 건 그들의 치부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위법조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일을 검사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안심해요. 정보팀에서 그 정도 조사하는 건 그렇게 위법한 것도 아니고 지금 검찰, 적어도 서부지검은 경찰들이랑 긴밀하고 돈독한 관계를 맺고 싶어 하니까. 게다가 개인적으로 관심도 좀 있고.”

최형림이 그렇게 말하며 차 문을 가리켰다.

“타세요. 너무 오래 세워두면 다른 차량에도 민폐니까.”

“아. 네. 그, 그럼.”

류하리는 거절하기도 뭣해서 차에 탔다.

“그럼 최근에는 그 탐정을 내사하는 일 말고 또 뭘 하고 있습니까?”

“아, 그게…… 저, 말하기는 좀 그런데요.”

류하리는 불쾌함을 느꼈다. 어째서 검사가 경찰인 그녀의 일을 시시콜콜하게 묻는가?

아무리 검사가 영감님 영감님하고 떠받들어진다지만 이거 너무 심한 월권행위가 아닌가?

그런데 그때 최형림이 말을 꺼냈다.

“정보과의 일을 돕고 계시지요? 혹시 최근 성취와 관련된 일을 아십니까?”

“네?”

류하리는 갑자기 성취 이야기를 꺼내는 최형림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자신이 하던 일이 들통 나서 감시당한 기분이다.

이미 최형림은 류하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조사를 해둔 다음에 말을 걸어온 것이다.

“성취가 미성년자나 그런 여성들을 모집해서 불법적인 접대를 종용했다는 건 알고 있지요? 언론에서도 많이 떠들었고 인터넷에서도 화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최형림은 교묘하게 말투와 뉘앙스의 톤을 낮추었다.

“그, 그럼요.”

“그 성취의 성상납 파일이라고 주장하는 자료가 최근 얼마 전 증권가를 통해서 유출되었습니다.”

“증권가를 통해서요?”

류하리는 예상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증권가라니? 언론사의 메일이 아니라?’

“네. 그런데 그게 지금 검찰에서는 딥페이크로 만들어진 음해용 영상이라고 분석된 상태입니다.”

“…….”

류하리는 그 말을 듣고 내심 혀를 찼다.

‘딥페이크는 무슨…… 아주 좋은 핑계 나셨네. 하지만 어쩐다? 선수를 쳤잖아?’

성취가 죽자 성취의 파일을 가지고 있던 측에서 권력자들과 협상하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이미 결론을 지어놓고 수사에 나섰다.

류하리는 현기증을 느꼈다.

이렇게나 명확한 증거를, 진실을 목 졸라 죽이려 하는 저 거대한 손아귀의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 거대한 존재의 그림자만으로도 류하리 자신조차 질식할 것 같았다.

“다 왔습니다. 흠.”

최형림은 먼저 차에서 내려 우산을 펴더니 류하리가 내려오는 데 우산을 받쳐주었다.

“그러실 필요까지는.”

“천만에요. 그나저나 시현 탐정이라…… 개인적으론 좀 부럽군요.”

“네?”

“어릴 적에 탐정소설을 좀 봤거든요. 하하하.”

“아, 네. 에이, 그런 거 아니에요. 탐정이라고 해 봤자 뭐, 다 흥신소죠 흥신소.”

류하리는 그렇게 얼버무리고 자신의 우산을 펼쳤다.

“그럼…… 탐정에게 안부 전해 주시길.”

최형림은 그리 말하고 자신의 차에 올라탔다.

류하리는 별 생각 없이 돌아서다가 흠칫 놀라서 뒤돌아보았다.

최형림의 차량, 백미러에서 기이한 안광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기분 탓이겠지?’

류하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탐정사무실로 향했다.

데드맨31

슬기로운 탐정생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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