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52화 (52/269)

제52화

길거리에 트럭 한 대가 멈춰 서서 화로구이 통닭을 팔고 있었다.

2마리 13000원이라고 적혀있는 광고판에 숫자를 고쳐 써서 14000원이 되어 있는 게 물가의 상승을 반영하고 있었다.

초췌해 보이는 남성 한 명이 차량 뒤편에 의자를 깔고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는데 장사하는 사람치고는 낯빛이 좋지 않다.

“누굽니까, 저 남자는?”

김지헌이 물어보자 시현이 답했다.

“가해자 최구성의 아버지, 최필지 씨입니다. 당신의 딸을 살해한 사람의 아버지이자 유일한 가족이지요.”

“…….”

“그럼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수액주머니 같은 것을 주사기로 찔러 주사기 안에 액을 채워 넣었다.

“그, 그건?”

“염가형 자백제입니다.”

“염가형 자백제?”

“네. 뭐 이거 쓸 일이 안 생기길 빌어야지요.”

시현이 미소 지으며 주사기에서 여분의 공기를 뺐다.

찍 하고 주사바늘에서 정체불명의 액체가 뿜어져 나왔다.

* * *

-끼익!

차량 한 대가 통닭 트럭에 돌진할 듯이 다가오다 멈춰 섰다.

깜짝 놀란 통닭 장수가 겁에 질렸을 때, 차는 정확히 앞에서 멈춰서고 선글라스를 끼고 머리를 세운 젊은 남자가 내려섰다.

차 안에는 음악을 크게 틀어놔서 문을 열자 쿵짝거리는데 문을 닫았을 때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 걸 보니 촘촘하게 방음 공사를 한 모양이었다.

“어이, 아저씨. 이거 통닭 파는 거지?”

“어, 네…….”

“흠, 그래. 좀 살까 하는데.”

그 순간 남자는 갑자기 손을 뻗어와 통닭 장수의 목을 움켜쥐었다.

마치 솔개가 병아리를 낚아채듯 다 큰 어른을 가볍게 낚아채더니 차로 끌고 들어갔다.

“컥?!”

저항하려고 했지만 순식간에 남자의 팔이 통닭 장수의 팔뚝을 잡아버리자 힘이 쭉 빠졌다.

“자자. 얌전히 있어. 다친다. 당신 아들이 최구성이지? 살인죄로 잡혀 들어간?”

남자는 차 시트에 통닭 장수를 짓누르고 질문을 던졌다.

“어윽…… 어, 그, 그렇…… 당신들 뭐야?! 사, 사람 살려!”

“당신 자식이 사람을 죽일 동안 손가락 쪽쪽 빨고 있던 놈이 자기 목숨은 누가 살려주길 바라나 보군? 그러게 왜 자식을 그따위로 키웠어?”

남자는 그리 말하며 테이프로 통닭 장수의 손을 묶기 시작했다.

“히익……!”

“이건 절대로 쓸데없는 원한이 아니야. 당신을 죽이기만 해도 감옥 가 있는 당신 자식 뒷바라지 할 사람이 없어지니까 사식 넣어줄 사람도, 겨울에 내복 한 벌 새로 사줄 사람도 사라지는 거 아냐? 무고한 딸이 죽은 사람 입장에서는 그런 작은 복수밖에 못 하는 게 아쉽지만 어쩌겠어. 할 수 있는 데서 최선을 다해야지?”

“자, 잠깐만요. 그, 그게…… 죄송합니다!”

“아니, 그런데 왜 소리를 크게 질러? 주위 사람들 보고 도와 달라고? 응?”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럼 조용히 말해. 그리고 어디 변명할 거 있으면 해 봐. 고객님이 당신 변명하면 녹음해 오라고 했거든.”

그는 보이스 레코더를 꺼내서 보란 듯이 통닭 장수 앞에 놓고 주사기를 준비했다.

“…….”

주사바늘이 반짝이는 걸 보며 통닭 장수는 눈을 크게 떴다.

미친놈이다.

진짜로 살해당할 판이다.

설마 대로 한복판에서 아무리 나이든 사람이지만 다 큰 성인을 이렇게 쉽게 납치하다니.

“으어…….”

“왜? 혀가 잘 안 돌아가? 이거 맞으면 더 혀가 안 돌아갈 텐데?”

“저, 자식 교육 잘 못해서 죄송합니다. 하, 하지만 저도 홀애비라…….”

“홀애비라서 뭐? 변명 좀 찰지게 해 봐.”

남자가 윽박지르자 남자의 일행으로 보이는 다른 이가 멈칫했다.

“하루 종일 장사해서 만지는 돈이 몇 십 만원입니다. 금요일엔 좀 더 벌지만 주중엔 허탕치고 가는 날도 있구요. 주말엔 차 세워두고 장사할 곳이 별로 없어서 눈치 보면서 여기저기 장돌뱅이 비슷하게 돌아다니면서 장사해서 닭 값 빼고, 가스 값 빼고, 기름 값 빼면 남는 것도 없습니다.”

“…….”

“차라리 편의점 알바 하는 것만 못한데 생긴 게 이래서 접객도 못 하고 배운 기술도 없고 노가다 판에 가기엔 몸이 약해서, 사람들이 안 써줘서 어쩔 수 없이 이러고 살고 있습니다! 집에 들어갈 때 팔다 남은 닭 식은 거 들고 가서 자식 놈 먹이고 겨울바람 맞으면서 바로 몸 씻고 자느라 바빠서 자식 교육에 소홀했습니다.”

“…….”

“귀한 남의 자식 죽게 해서, 못난이로 키워서 죄송합니다. 흑…… 으흐흐흐흑. 하지만 어쩌라는 겁니까? 하루하루 벌어서 먹고 사는 게 힘들어서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데……!”

“흐음? 그게 변명의 전부냐?”

남자는 개의치 않고 주사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때 다른 남자가 고개를 저으며 그를 만류했다.

“아.”

남자는 주사기를 내려놓고 대신 뒤춤에서 칼을 빼들었다.

스핀들 나이프가 스릉, 하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튀어나왔다.

“힉!?”

하지만 그는 그 나이프로 통닭 장수를 묶은 테이프를 잘라주었다.

“어?”

“…….”

그는 통닭 장수의 뒷덜미를 잡고 차 밖으로 내려놓았다.

“…….”

통닭 트럭 앞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남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하하. 유튜브였습니다. 유튜브.”

“네?”

“그냥 요새 유행하는 거라고 생각하시죠. 알죠?”

남자는 그리 말하고 지폐 한 줌, 적어도 100만원은 될 돈을 내밀었다.

“통닭이나 한 마리 주시지요?”

“네?”

“한 마리면 됩니다. 많이 먹질 않아서.”

“…….”

통닭 장수는 벌벌 떨면서 어쩔 수 없이 통닭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아, 한 마리만 달라고 했는데.”

“이, 이런 돈은 필요 없습니다.”

“닥치고 받으세요. 안 받으면 다시 이 차 안에 들어오셔야 하는데? 지금 차 밖에 있으니까 분위기 파악 못 하죠?”

“…….”

“그럼 우리 갈 테니까 3분간 저쪽 쳐다보고 있어요. 설마 그럴 리 없겠지만 차 번호판 보고 그러면 아, 이 차 바꿔야 하잖아? 추가 지출은 좀 귀찮아서.”

“…….”

“아, 그리고.”

“네?”

“치킨 무 좀 더 주세요. 콜라는 빼고.”

“여, 여깄습니다.”

“네. 그럼. 자, 이제 저쪽 보시고. 저희 차 뺍니다. 많이 파세요.”

통닭 장수가 시키는 대로 길가 건물 쪽을 바라보고 있자 저 요란한 차는 처음에 등장했던 그대로 급가속을 하며 빠져나갔다.

“…….”

3분이 지나도록 통닭 장수는 그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 *

“미쳤소, 당신!”

김지헌은 격분해서 얼굴을 가리고 있던 버프를 벗어서 내팽개쳤다.

“지금 대체 뭐하는 거요?”

“시현탐정사무소의 고객만족 서비스라고 해 두지요.”

“이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세요. 불만이십니까?”

“으…….”

김지헌은 말문이 막혔다.

시현이 이렇게 직접 일을 벌이기 전에 그는 자신이 직접 그 살인범과 살인범의 가족들을 도륙하는 상상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실제로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을 보니까 도륙은커녕 그 근처만 가도 끔찍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었다.

삶에 찌든 초로의 통닭 장수를 단숨에 잡아다 무슨 도마 위에 올려둔 생선처럼 분해할 기세로 대하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그 사람의 풍진 생애가 자신의 피부에 쓰라릴 정도로 다가왔다.

“그래서 소감은 어떠셨습니까?”

“소감이라니?”

“그는 복수의 대상입니까?”

“아니, 아니오. 모르겠소.”

김지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진실만을 말한 건 아닙니다. 그가 홀애비가 된 건 4년 전이고 그의 아들이 스토킹을 시작한 건 5년 전의 일이지요. 통닭 장사를 시작한 건 2년 전의 일이고요.”

“그, 그렇겠지. 하지만 적어도 내가 그 사람을 원망할 자격은 없는 것 같소. 나도…… 변변찮은 아버지니까. 그가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다고 그의 목숨이나 인권을, 그를 그렇게 다루어도 될 자격이 있는 건 아니지. 이 세상에 자식이 부모마음대로 자라는 것도 아닌데 자식이 살인자라고 부모를 그렇게 함부로 다루다니. 적어도 딸아이를 방치하다시피 한 내게는 그런 자격이 없어!”

그렇게 말하던 김지헌은 다시 시현에게 화가 난 듯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모질게…….”

“모질어야지요. 고객님이 저희 사무소의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 고객님이 요청한 것이 바로 그런 모진 일들을 해 달라, 그런 소리였단 말입니다. 자신의 의뢰가 무슨 뜻인지 이해 못 하십니까?”

“아…….”

“물론 모르실 수 있지요. 그래서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아, 알겠소. 확실히, 직접 보니까 너무 심란해서 그렇지……. 만약 내가 직접 보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를 원망했을 거요. 이렇게 모질게 구니까 사람 마음이 간사하게도 동정하는 쪽으로 기우는구만.”

김지헌은 시현이 직접 보여주지 않고 말로만 했다면 틀림없이 저 통닭 장수의 진의를 의심하고, 만족하지 못했을 거라는 걸 깨달았다.

눈앞에서 한 인간을 닭 모가지 비틀듯 쉽게 잡아다 위협하고 억압하는 장면을 보니까, 그 잔인함에 놀라서 그의 진술의 진실성을 의심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럼, 일은 이게 끝이오? 500만원 조사비에 그 방금 닭 값으로 100만원이 추가 경비인가?”

“음, 아니요. 이제 한 명 정리했을 뿐입니다. 아직 남았어요.”

“아직?!”

“네. 다음으로 가시죠.”

“…….”

김지헌은 자신이 상당히 경솔하게 돌이킬 수 없는 데 발을 디뎠다는 걸 깨달았지만 후회하기엔 이미 늦었다.

* * *

조한성 경장은 술에 얼큰하게 취해 자신의 차로 향했다.

XX역전 상인연합회 단합식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요새 경기가 별로 안 좋구만. 떡값이 영 시원찮은데. 대리 부르면 얼마 남지도 않겠구만.”

그는 투덜거리며 봉투의 돈을 세보고 주차 빌딩 안에 들어섰다.

그가 주차 빌딩 기둥 옆을 지날 때였다.

“조한성 경장님?”

“……응?”

그 순간 조한성 경장은 복부에 강한 충격을 느꼈다.

보디 블로다.

“컥?!”

경찰인 그는 갑자기 자신이 습격당할 줄 몰랐다.

“무슨 미친…….”

반격하려고 하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그런 그의 목에 이번엔 팔이 휘릭 감겼다.

상대는 조한성 경장의 복부에 주먹을 날리고 난 뒤, 그 다음에 목을 졸라버린 것이다.

‘말도 안 돼. 건장한 남자를, 그것도 경찰인 나를 맨손으로 납치하려고 한다고?’

지금 그림같이 잘 맞아 들어가니까 납치가 되는 거지만 납치를 계획하는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프로 격투기 선수가 왔다고 해도 단독으로 경찰 한 명을 납치해 갈수 있냐고 하면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상대와 자신이 어른과 어린이 정도의 차이가 난다고 확신하지 않고서는 시도할 수 없는 짓이다.

바꿔 말하면 지금 이렇게 속절없이 기절당하는 그는 저 남자와 어른과 아이 정도, 아니, 무슨 만화 속 슈퍼히어로와 일반인 정도의 신체능력 차이가 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컥.”

조한성 경장의 의식이 끊어졌다.

“후. 좋아요. 그럼 이 사람 차로 갑시다.”

“아니, 이게 무슨…….”

김지헌은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기겁했다.

지금 이 남자.

경찰을 손댄 건가?

데드맨31

슬기로운 탐정생활 #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