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3화
“주차장엔 대부분 CCTV가 있어서요. 제 차를 끌고 들어왔다면 조금만 조사해 봐도 바로 들키겠지요. 뭐, 제 경우는 CCTV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재주가 있지만 그거 사용하는 데 비용도 들고…… 경찰이 도중에 차 안에서 깨어나기라도 하면 차 모습이나 차종을 보고 추적할 수도 있으니 곤란하거든요. 경찰은 어설프게 협박한다고 해서 자기가 납치당한 사건을 조사해 보지 않을 리 없으니까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걱정 마시죠. 경찰에 손대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니까.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일은 프로에게. 아시죠?”
“…….”
김지헌은 기가 막혀서 조한성의 차로 다가갔다. 시현은 간단히 조한성 경장의 품에서 스마트 키로 차를 열고 그를 차에 태워 이동했다.
* * *
조한성 경장이 눈을 뜬 곳은 어느 비닐하우스였다.
“으억?!”
“깨어나셨습니까?”
싸구려 보이스체인저로 변성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조한성 경장이 몸을 돌리려 했지만 전신이 테이프에 감겨서 의자에 묶여있는지라 꼼짝할 수 없었다.
고개도 돌릴 수 없게 머리까지 고정되어 있어서 주위를 보려면 눈알을 굴리는 게 전부였는데 눈알을 굴려 주위를 보니 자신 주위로 비닐 필름이 펼쳐져 있는 게 보였다.
‘저, 저건.’
인간을 칼질했을 때 피가 튀어 주위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설치한 것이다.
거기에 생각이 닿은 조한성 경장은 기겁했다.
“무, 무슨 짓이야?! 내가 경찰이라는 걸 알고서…….”
“아니까 경장님이라고 부르는 거 아닙니까. 후후.”
“미, 미친! 경찰 건드리고 무사할 것 같아?! 대한민국 경찰을 뭐로 보는 거야?”
“오호. 동료들이 복수해 줄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살해당한 경찰들 상당수는 같은 경찰들 손에 살해당한 거랍니다.”
“!!!!!”
“안심하세요. 그런 일은 아니니까.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이렇게 모셨습니다. 정말 작업할 거면 전 깨우지 않고 작업하는 쪽을 선호합니다. 아무리 일이라도 의식이 있는 사람의 몸에서 피를 빼는 건 하는 쪽도 스트레스 받는 일이거든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상처로 피를 찍찍 뿜어내는 모습은 참 한 번 보면 망막에 남아서 지워지지 않는 모습이랍니다.”
조한성 경장은 자신의 피로 비닐필름이 물드는 장면을 상상하며 몸서리를 쳤다.
“왜 피를 뽑느냐면 시체를 처리할 때 그게 편하니까요. 사료용 분쇄기에 넣을 때도 피를 빼야 잘 갈려서…….”
“으아아…… 미, 미친…… 아, 아니. 잠깐. 실언했습니다. 서, 선생님. 대체 뭣 때문인지 알기나 해봅시다. 네?”
“얼마 전 한 전직 여교사가 살해당한 사건이 있습니다. 아시죠? 스토킹 살인사건? 그런데 그녀가 죽기 전에 몇 차례나 신고를 넣었는데 담당 경찰이 당신이더군요.”
“그, 그런 이유로? 버, 범인은 잡혔잖아요?”
“어허. 무고한 피가 흘렀는데 죄진 놈 피 흘려서 갚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 아닙니까? 그리고 어쨌건 누군가는 분풀이의 대상이 되어야겠는데, 당신이 그 분풀이 대상으로 꽤 합당하겠더군요.”
“아, 아니야. 마, 말도 안 돼! 나는 할 거 다 했다고!”
“다 했다면?”
“트, 특별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스토킹은 경범죄였다구요! 그 여선생이 불쌍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상대 잡아봤자 10만원 벌금 나오는 게 고작이었단 말입니다. 법이 그런데 경찰인 제가 그 이상 어떻게 합니까?!”
“접근금지 명령을 끌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요?”
“그게 안 됐어요! 요새 애들 약아서 당장 인터넷에 검색해 봐도 법에 안 걸리고 추적하는 법 같은 거 공유하는데……. 게다가 그, 그래! 저는 그놈에게 민원도 당했다고요!”
“민원?”
“스토킹하던 놈이 담당경찰인 나 엿 먹이려고 날 상대로 민원을 넣었단 말입니다! 그런 수법이 인터넷에 공유되고 있어요! 게다가 명확한 범죄를 저지르기 전까지는 시민이라 경찰이 함부로 대할 수 없단 말입니다!”
민원까지 당했다는 말이 주효했는지 보이스체인저의 남자가 누군가와 대화해서 의향을 물어보는 듯한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조한성 경장에게는 정말 천년 같은 순간이 지나간 후에 보이스체인저의 남자가 다시 물어보았다.
“이건 상관없는 질문인데. 그래서 특별법이 통과되었으면 이제는 스토킹 범죄에 잘 대응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듣고 있던 조한성 경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관련 없는 질문이라고 했지만 그런 게 아니잖아. 만약 특별법이 통과했으니까 이젠 잡을 수 있다고 하면 그전엔 제대로 안 했다는 소리가 되니까 날 죽일지도 몰라. 아니, 애초에 경찰을 납치한 미친놈이다. 말조심하지 않으면 죽어……. 나 같아도 경찰을 납치했는데 그냥 풀어줄 확률이 낮으니까.’
그렇게 생각한 조한성 경장은 필사적으로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애썼다.
“무, 무립니다. 특별법 통과되었다고 뾰족한 수가 없을 거예요!”
“왜요? 스토킹 관련 특별법에 의하면 5년 이하 징역도 먹일 수 있는데?”
“증거 입증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는데 생각해 보세요. 어떤 미친 사람이 자기 스토킹 당한다고 CCTV기록 달라고 하면 누가 기록 복사해 주나?! 아무도 안 할걸요.”
“…….”
“그리고 애초에 스토킹 당한다고 주장하는 건 피해망상의 가장 흔한 형태기도 하단 말입니다! 자기가 막 KBS 방송국에 도청당하고 있다! 국민MC가 자기를 감시하고 있다! 내 귀에 도청장치가 있다! 뭐 이러면서 오는 놈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도 생각해야지요!”
“그래서 그녀의 청원을 무시했던 모양이군요.”
“아, 아니에요! 경찰 짬이 얼만데. 진짜랑 또라이랑 분간 못 할 정도로 바보는 아닙니다. 다만…… 스토킹하는 상대도 정신병자라서 일개 경찰로서는 어떻게 최선을 다해서 뭐 할 방법이 없어요. 정신병자는 처벌에서 면책 받는 경우가 너무 많으니까요!”
“흐음.”
또다시 누군가와 수군거리며 의향을 묻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잘 들었습니다. 네. 경장님의 주장은 그러하군요. 그런데 저희 쪽이 아무런 조사 없이 경장님을 모신 건 아닙니다.”
“네?”
“그 스토킹 피해 신고를 처음엔 몇 차례나 돌려보내셨더군요. ‘중학생 애새끼가 뭘 한다고 그러느냐?’, ‘학교 교장님 연락이 와서 조용히 해결해 달라던데 이거 정말 일 키우고 싶으냐? 그러면 아가씨 학교에서 매우매우 곤란할 텐데? 학교에서 방출되면 다른 학교 가도 재취직이 잘 되냐?’ 이런 식으로 민원인의 의지를 꺾으려고 하셨던데요?”
“그, 그건…….”
조한성은 혈관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찰캉.
“뭐, 이해는 합니다. 경찰들이 일 하기 싫어서 민원인 어지간하면 설득해서 그냥 돌려보내려 하는 습성이 있다는 거야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스토커는 대부분 정신병자라 엮이면 피곤하기만 하고 결판도 잘 안 나고. 귀찮은 일이었겠지요. 그 정도까지만 하면 여기까지 모시진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학교 재단에 돈을 받으셨네요?”
“으아, 아, 아니야! 그, 그건!”
하지만 그때 조한성의 목에 주사기가 꽂혔다.
“컥?!”
차가운 액체가 조한성의 목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런데 혈관이 뜨겁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돌고 눈앞이 흔들거린다.
“뭐, 뭘 주사한 거야?!”
“저는 작업할 때 의식이 없는 쪽을 선호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아, 아니야! 그, 그런 뜻으로 받은 게 아니야! 민원인을 달래서 돌려보낸 건 맞아! 하지만 그건 경찰로서 습관 같은 거지!”
“학교에 돈을 받지 않았습니까?”
“그건 푼돈이라고! 아, 아니, 내 말은 그러니까 XX역전 상인연합회 회장님이 아는 지인 일이라고 부탁한 거야! 하지만 딱히 여교사를 뭐 나쁘게 하라는 게 아니라 그냥 원활하게 진행해 달라고 잘 부탁한 것뿐이야! 그 다음에 추석날에 선물로 받은 건데 그건 딱히 그 일이 아니더라도 평소에 명절 때마다 받던 거라고!”
“자랑입니까?”
“자, 잘한 건 아니지만 죽을죄를 지은 건 아니잖습니까! 살려주세요! 아직 집에 네 살짜리 애가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조한성 경장의 입에서 침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무슨 주사인지 모르지만 정신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돈을 준 사람이 누구지요?”
“상인연합회 회장…….”
“아니, 그 사람이 아는 형님이라는 인물.”
“당시 교감이었어요. 김두형…… 그, 그래. 그 사람이에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손이 튀어나와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
목을 조르자 조한성 경장은 손쉽게 의식을 잃었다.
* * *
“세상에…….”
그 장면을 보고 있던 김지헌은 손을 덜덜 떨었다.
“돈을 받은 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아, 그냥 넘겨짚은 겁니다.”
“네?”
“상식적으로 기계가 굴러가면 기름칠이 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소년과에 속하는 경찰은 교육자들과 지역교육분과위원회 등에서 안면을 터놓고 있습니다. 서로서로 모르는 사이가 아니지요. 하지만 이 친구는 소년과가 아니라 생활과입니다. 학교 입장에선 평소에 알던 소년과 경찰이 아니라 생활과 경찰이 일에 들어왔는데 만약 이 친구가 열혈경찰이라 일을 크게 벌이면 매스컴 탈 수도 있단 말이죠. 그게 싫으면 기름칠을 추가로 해 주지 않았겠습니까?”
“어?”
처음에는 막연히 넘겨짚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들으니까 그럴싸하다.
김지헌은 새삼스럽게 이 시현이라는 탐정의 수완과 예리함에 놀랐다.
“그리고 사람이 목숨을 위협당하고 있으면 사소한 것에도 큰 의미를 부여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자벡제를 주사하기 전에도 술술 잘 불 수밖에요.”
“그 주사는…… 자백제는 뭡니까?”
“희석한 알코올입니다. 긴장한 상황에서 이걸 주사하면 주사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면서 극독이 주사된 게 아닐까 하는 공포감이 들고, 심박수가 순식간에 최대심박수까지 오릅니다. 실제로 효과도 굉장하지요. 그렇지 않아도 취해있던 사람이라 효과가 더 잘 도는군요.”
“…….”
“그럼 어떻게 할까요? 이제 해체할까요?”
“해체라니…… 놔줍시다. 아주 깨끗한 사람도 아니지만 이런 사람이야 흔하잖습니까. 고작 이 정도로 죽인다니…….”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안 들키게 원위치에 돌려놓도록 하지요.”
* * *
시현은 알코올에 취해 잠들어 있는 조한성 경장을 그의 집 주차장에 데려다 놓고 나왔다.
주차장의 CCTV가 그를 보고 있지만 시현이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CCTV의 전원이 잠시 꺼졌다.
그는 그 틈을 타서 간단히 CCTV의 영역을 지나 지하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자, 그럼 이제 교감 차례군요.”
“…….”
김지헌은 시현의 뒤를 따라오면서 말문이 막혀했다.
“왜요?”
“아니. 이게 주 500만 원짜리 서비스가 아닌 것 같은데요.”
“흠, 네. 사실 특가 기간이라 서비스해드리는 겁니다. 최근에 제가 좀 번거로운 감시자가 붙어서 수단을 많이 가리다 보니까.”
“네?”
“아, 저도 욕구불만에 시달리고 있던 차라 의욕 넘치게 서비스해드리고 있다는 겁니다. 후후. 어떻습니까. 가성비 넘치지요?”
“가성비?”
가성비를 논할 문제인가? 이게?
데드맨31
슬기로운 탐정생활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