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55화 (55/269)

제55화

XX역전 상인연합회의 사무실, 그곳에는 아예 대놓고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김두형 교육감 후보 후원회 모집 중.’

상인연합회장이 평소 친분이 있던 김두형을 교육감으로 밀어주기 위해서 그야말로 발로 뛰어다니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으아아아아!”

상인연합회장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기 시작했다.

“이 개새끼가!”

그는 플래카드를 자신의 손으로 뜯어내다가 상인연합회 사무실 안에서 균형을 잃고 벌러덩 나뒹굴었다.

“개자식! 날 완전히 호구로 봤어!”

그때 상인연합회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강제로 동원한 교사들과 함께 김두형이 걸어 들어왔다.

“어이쿠. 형님. 많이 취하셨군요. 무슨 일이십니까?”

“뭐? 형님?! 형님이라고? 이 개새끼가! 내가 널 그렇게 밀어줬는데…….”

“네?”

“야, 이 개놈아! 이게 뭔지 해명이나 해라!”

그는 테이블 위에 있는 서류봉투를 꺼내 홱 집어던졌다.

김두형 앞에 서류봉투가 떨어지며 그 안의 사진들이 촤르륵 펼쳐졌다.

거기엔 모텔 입구로 들어가고 있는 김두형과 여성의 사진이 찍혀 있었다.

“왜 내 아내랑 네놈이 모텔에 들어가고 있냐! 이 새끼야!”

“아니, 이건…….”

김두형은 그걸 보고 혀를 찼다.

“어디서 났습니까? 이거, 그렇게 안 봤는데 날 의심하고 있었습니까?”

“…….”

보고 있던 교사들은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참느라 애써야 했다.

‘크읍. 내 이 교감 놈, 그럴 줄 알았다.’

‘큭…… 참아야 해. 웃으면 안 된다.’

‘와, 쓰레기인줄은 알았지만 왜 자기 후원회장 마누라를 건드렸대?’

‘뭐 발정난 개새끼가 그럴 줄 알았다. 그럼 이제 선거 쫑난 건가? 이제 더 이상 이 짓거리 안 해도 되는 거야?’

강제로 동원되다시피 한 교사들은 기대의 눈초리로 그 사진을 보았다.

“이 새끼야! 지금 그걸 말이라고?! 너 죽고 나 죽자!”

“아니, 썅. 왜 내 뒷조사를 해! 이런 미친 놈! 의처증 새끼!”

“시발, 바람 피운 놈이 오히려 성질이야!?”

바로 며칠 전까지 형님~아우~ 하던 둘이 멱살을 잡고 드잡이질을 시작했다.

* * *

상인연합회 사무실의 옆, XX당구장, 고찬하가 운영하는 그 당구장에서 시현이 쌍안경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흠. 재밌군요. 보시겠습니까?”

“…….”

김지헌이 말없이 그 쌍안경을 받아들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걸 했나?”

“불륜 조사는 원래 제 전공이거든요.”

“…….”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일은 프로에게. 불륜조사의 스페셜리스트가 저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어떻습니까? 만족하셨습니까?”

“이런 걸로 만족해버리면 참 인간이 저열해지는 것 같지만…….”

“만족하셨으면 정산해 주시죠. 정산이라고 말씀하시면 됩니다. 아. 저는 잠시.”

시현은 전화기를 들었다. 류하리가 전화를 걸어오고 있었다.

“예. 전화 받았습니다.”

[당신 지금 어디에 있어요?]

“일하는 중입니다.”

[혹시 그 스토커 일 하는 거 아니지요?]

“아, 아닙니다. 그냥 불륜조사죠. 불륜조사.”

[흐음? 그래요? 믿어도 되나요?]

“믿어도 됩니다. 류 경위님은 해가 동쪽에서 떠오른다는 사실과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당신만 믿으라니 당신이 믿을 데가 어디 있다고? 이따가 사무실에 오시나요? 마침 시간되는데…….]

“네?”

[맛있는 거 사가도록 할 테니까 한 번 봐요.]

“저 그렇게 싼 남자 아닌데?”

[이따 봐요! 당신은 혼자 두면 무슨 짓 할지 모르니까.]

전화가 끊어졌다.

“으음. 곤란하다니까. 진짜.”

시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전화를 품에 넣었다.

* * *

시현탐정사무소…….

류하리가 사무실에 앉아서 TV를 켜보았다.

TV에서는 김두형 교육감 후보가 인상을 쓰며 카메라를 피하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리고 밑의 자막에는 ‘교육감 후보, 후원회장 부인과의 불륜 의혹, 소송에 휘말려 사퇴?!’ 라고 뜨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시현이 사탕을 입에 넣으면서 물어보았다.

“이거 당신소행인가요?”

“아, 그거요? 자업자득이죠.”

“그러니까 제 말은 이걸 당신이…… 아, 맙소사. 혹시 뭐, 저 없는 동안 이상한 일 한 거 아니죠?”

류하리가 그렇게 물어보자 시현이 잠시 음, 하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명쾌하게 대답했다.

“양심에 찔릴 만한 짓은 단 하나도 하지 않았습니다.”

웃음이 해맑기까지 하다.

류하리가 어이없어하면서 시현을 바라보았다.

“법에 저촉될 만한 일은요?”

“기소당할 만한 일은 단 하나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건 안 들켜도 할 수 있는 소리잖아요? 당신 진짜…….”

류하리는 어이없어하면서도 사온 사탕과 젤리를 선물로 건네주었다.

“전화로 말한 맛있는 거라는 게 고작 이겁니까?”

“필요없어요?”

“아니요? 물론 필요하지요.”

시현은 냉큼 그 선물을 받았다.

“제가 바쁜 사이에 뭔가 일을 했나 보군요.”

“아, 뭐. 네. 그렇죠. 그런데 무슨 일로 바쁘셨습니까?”

“경찰 내부 정보를 듣고 싶다. 그런 소린가요? 지금?”

“뭐, 말 안 하셔도 알 것 같습니다. 사이다패스겠지요?”

“…….”

“후후.”

시현은 침묵으로 긍정하는 류하리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 * *

마포경찰서 입구, 출근 중인 류하리는 주위 경찰들의 표정이 어두운 걸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류 경위. 출근했나.”

류하리의 팀장인 박진감 경위가 자판기 앞에서 커피를 뽑다가 류하리에게 인사를 했다.

“일찍 나오셨네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어제 늦게 들어갔잖아. 그리고 나야 할 짓이 일밖에 없으니까 일찍 나오는 거고.”

“그런데 표정들 보아하니 또 우리 구역에서 일이 터졌나요?”

“그래. 사이다패스야.”

박진감 경위가 그리 말하고 신문을 건네주었다.

신문에는 대문짝만하게 1면 헤드라인으로 ‘또 사이다패스, 연쇄살인 앞에 무력한 수사기관!’ 이라는 헤드라인이 떠 있었다.

“이번에 죽은 놈은 폰지 사기꾼이군요. 주식 방송을 하면서 자기가 보유하고 있던 비상장 주식들을 장외매매로 팔아치워서 50억의 이득을 올린 사기꾼, 작년에 감옥에 들어갔다고 알고 있었는데 언제 소리 소문 없이 나왔죠?”

“그거야 모르지. 우리 판검사 나리들이 참 관대해. 사기꾼들 대부분이 무고한 20대 청년들 군복무보다 더 짧게 다녀온다니까.”

“50억 사기 치고 반년도 감옥에 안 있다니 역시…….”

류하리가 경찰이긴 하지만 사이다패스에 환호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좀 알 것 같았다.

50억이나 사기 쳤는데 꼴랑 반년 정도에서 집행유예나 형집행 정지로 나오다니 피해자들 입장에서는 사이다패스에게 열광할 수밖에 없으리라.

“문제는 그놈이 우리 마포구에서 죽었다는 거지. 원래 살던 곳은 청담동이었는데 왜 하필이면 마포구에 와서 죽었지?”

박진감 경위는 죽은 자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는 그가 자신들의 구역에 와서 죽어서 책임을 뒤집어쓰게 된 것에 분개했다.

“사람들은 사기꾼 죽였다고 좋아하고 있고 경찰이랑 검찰만 무능하다고 욕먹고 있군요. 하지만 증거나 목격자도 없지 않아요?”

“그래도 비판이 심해. 사람들 참 웃기지? 사이다패스 보고 잘했다고 하면서 경찰들 보고는 사이다패스 못 잡았다고 무능하다고 비판하고 그러니 말야.”

“하하.”

“아마 이번에 총장 선에서 책임을 지게 될 거야. 이거 의외의 방향으로 승진 적체가 해소되겠구만. 류 경위님도 팍팍 승진하는 거 아냐?”

“저야 처음부터 미운털 박혔는걸요.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승진이 마냥 좋은 건 아니죠. 결국 책임지러 올라가는 거잖아요?”

“하지만 일단 승진하면 급료부터 오르잖아. 만약 그렇게 승진한 다음에 사이다패스를 잡기라도 하면 그때는 아주 대박이지. 인기스타가 되는 건 물론이고 그대로 정계 진출도 가능할걸?”

“설마 그런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겠어요?”

류하리는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 *

“아무래도 불안해.”

사이다패스는 패스트푸드점의 감자튀김을 입으로 가져가며 투덜거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요?”

최형림이 그의 맞은편에서 태블릿을 만지작거리며 물어보았다.

“당신 이러다가 나 잡아넣으려고 그러는 거지? 나 때문에 검찰이 요새 고생이 장난이 아니라면서?”

“우선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게 있군요. 당신과 내가 공모하는 시점에서 저는 당신을 산 채로 검찰이나 경찰에 잡히게 둘 수는 없습니다. 죽이면 모를까.”

“아, 솔직한 반응 좋군.”

“그리고 둘째로는 지금 이 상황은 제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있는 겁니다. 지금 저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어요.”

“어째서?”

“원래부터 대한민국의 검찰과 경찰에는 업무가 과중합니다. 평검사는 매일매일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죽을 맛이지요.”

그렇게 말하는 최형림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검사도 인간입니다. 비난을 받고 심지어 자기 목숨도 위험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일이 손에 안 잡히기 마련이지요. 서부지검의 수사 1부장조차 살해한 살인마를 수사하는 일은 그것만으로도 꽤 스트레스가 심하단 말입니다.”

“아, 그래? 나는 별 생각 없이 죽였는데.”

“수사 1부장이 살해당했으니 사이다패스 문제는 서부지검의 사활을 건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스트레스가 심하고 사이다패스는 정상적인 수사방법으로는 꼬리가 잡히지 않으니까 서부 지검의 업무가 말도 못 하게 정체되어 있고 그렇잖아도 격무에 시달리던 검사들이 쓰러질 지경이지요. 그런데 그 안에서 제가 업무들을 굉장히 잘 처리해내고 있습니다.”

“당신은 왜 다르지?”

“다른 이들과 달리 저는 끝이 어딘지 알고 있으니까요. 오리무중을 언제 끝인지도 모르는 마라톤으로 달리는 것과 자신이 알던 동네를 계속 뱅글뱅글 도는 자의 차이라고 할까요?”

최형림은 그리 말하고 태블릿을 돌려서 사이다패스에게 내밀었다.

“이건?”

“이번엔 이걸 처리해 주시지요. 사이다패스의 평판에도 도움이 될 거고…… 제게도 이득입니다. 다만 상대가 노약자들이 많으니까 확실한 증거가 좀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은 동방예의지국이라 나이 많은 사람을 그냥 격살하면 여론이 나빠집니다. 확실히 죽을만한 놈이라는 증거를 잡고 처리하도록 하세요.”

“흐음. 정말 이용당하는 기분인데.”

“제가 당신을 이용하는 건 사실입니다.”

“흐음?!”

사이다패스가 분개하려 했지만 최형림이 먼저 그녀에게 상반신을 내밀어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

“당신같이 법망을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일단 사람을 죽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인간성을 잃습니다.”

“잃는다고?”

“네. 편리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고문하고 죽이기 시작하면 곧 편리함을 위해서 자신을 정당화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순식간에 인간성을 잃고 그냥 흔하디흔한 사이코살인마가 되겠지요. 뭐 지금도 사이코긴 하지만.”

“…….”

“흔하디흔한 사이코살인마가 되면 당신에게도 파멸입니다. 당신에겐 대중들이 열광하는 캐릭터를 만들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그걸 코디네이팅 해 주고 관련 정보를 모아 줄 수 있는 사람은 저밖에 없지요.”

“…….”

“안심하세요. 제가 당신을 범죄계의 슈퍼스타로 만들어주죠.”

“당신이야말로 사이코인거 알고 있지? 으휴.”

사이다패스는 태블릿을 받아들고 그 안의 자료를 보았다.

그런데 그때 최형림의 전화기가 울렸다.

“음…….”

최형림은 전화를 살펴보고 미소를 지었다.

“뭐야? 그 여자 경찰이야?”

“네. 경찰대학시절의 후배지요. 재밌는 후배입니다.”

“흥? 나한테는 이런 더러운 일 시키고 후배에게는 잘생긴 재벌 아들 검사 흉내 내고 있어? 그 여자, 당신이 집안에서 내놓은 자식이라는 거 모르지?”

“흠, 잘생긴 재벌 아들 검사 흉내라면? 적어도 제가 잘생겼다고 생각하고 있나 보군요?”

“…….”

“뭐 객관적인 사실이니까 어쩔 수 없지요. 그건.”

“재수 없네.”

사이다패스는 최형림을 보며 기막혀했다.

데드맨31

선경마을 살인사건 #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