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6화
시현탐정사무소의 입구, 골목길에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젊은 부부가 망설이면서 탐정사무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는 눈빛이었다.
“우락부락한 사람이면 어떻게 하지?”
“우락부락한 게 문제가 아니라 만약 역으로 협박당하거나 하면…….”
“하지만 그냥 갈 수도 없잖아?”
부부가 그렇게 다툼을 벌일 때였다.
“혹시 탐정사무소 찾아오셨어요?”
류하리가 그들을 발견하고 물어보았다.
“아?”
“네. 시, 실례지만?”
“아, 저, 저기 조수예요. 괜찮으니 들어오세요. 조직폭력배 같은 거 아니니까요.”
류하리가 웃으면서 말하자 두 부부는 그제야 좀 안심이 되는 모양이었다.
“다행이군요. 탐정사무소라고 해서 전직 조직폭력배나 형사 같은 사람이 하는 데인 줄 알았어요.”
“후후. 그럴 리가요? 그런 거는 영화에서나…….”
그런데 그때 사무실 입구에서 소란이 벌어지고 있었다.
“실례했습니다!”
문신을 하고 해병대 돌격머리를 한 거구의 남자들이 앞에서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저기 시현 씨. 어떻게 해야 사과를 받아주실 겁니까?”
“당신들이 이런다고 사과를…….”
시현은 거부하려 했지만 류하리가 손님들을 데려온 것을 보며 흠칫 놀랐다.
“험…… 흠흠. 여, 영업에 방해되니까 가 주세요.”
“사과 받아들이시는 겁니까?”
“나 참. 이게 협박이지 무슨 사과…… 알겠으니까 가세요.”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아, 진짜.”
류하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신이 데려온 부부를 보았다.
부부가 바짝 얼어 있었다.
‘이러면 괜찮다고 말한 내가 뭐가 되는 거야?’
류하리는 짜증을 참고 시현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저 사람들은?”
“다른 흥신소, 아, 실례. 탐정사무소 사람들인데 약간의 사소한 오해가 있어서 충돌이 있은 후에 저쪽에서 사과하겠다고 와서 이러지 뭡니까. 전 그저 피해자입니다. 피해자. 그나저나 뒤에 그분들은?”
“손님들이에요. 입구에서 그렇지 않아도 여기가 깡패소굴이 아닐까 걱정하시던 분들을 달래고 달래서 데려왔단 말이에요.”
“그렇군요. 괜찮습니다. 시현탐정사무소는 어디까지나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후우. 뭐 오늘은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렸군요.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그, 그게 실은 최근에 장인어른 내외가 돌아가셔서…….”
“이런 거 조사에 여기 탐정사무소가 매우 평판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와 봤는데.”
부부는 난감해하고 있었다.
“네. 잘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는데 굳이 사설탐정을 고용해서 사망에 전후조사를 요청하신 걸 보면 뭔가 생각이 달리 있으신 모양이로군요. 혹시 보험금 문제입니까?”
“아뇨. 보험금은 이미 문제없이 수령했습니다. 저희가 걱정하는 건…….”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사위 쪽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장인어른이 살해당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을에서 얼버무린 것 같아요.”
“흠……?”
시현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굉장한 일인 것 같군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거죠?”
“그것이…….”
부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두 부부의 장인, 그러니까 처가 쪽 집안은 본래 지방의 교육자 집안이었다.
은퇴할 연령이 된 장인어른, 김갑형은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고향 땅, 선경마을에 있던 주택을 개보수해 전원주택을 만들고 그곳에서 은퇴해 노년을 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향에 돌아갔을 때 선경마을의 이장이 지하수를 쓰고 싶으면 지역발전기금과 우물 사용료를 내라고 억지를 쓰기 시작한 것이었다.
타향사람도 아니고 본래 그 동네 사람인 그에게 이런 텃세를 부리는 게 야속했지만 김갑형은 우물 사용료와 지역발전기금 천만 원을 내고 좋게좋게 마을 사람들과 융화하기를 선택했다.
그런데도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부끄럽게도 저희 부부가 애가 생기기 전에 키우던 개가 있었습니다.”
골든리트리버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던 부부였지만 강아지가 커지고 아내가 임신하여 거동이 불편해지자 어쩔 수 없이 강아지를 시골 장인어른 댁에 보냈다.
장인어른은 개를 매우 좋아해서 기뻐하며 키웠다고 한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그 개를 장인의 허락도 없이 무단으로 도축해 잡아먹은 것이었다.
그때까지 이런 저런 텃세를 받으면서도 그래도 옛날 고향사람이라고 참아 넘긴 장인, 김갑형의 분노가 폭발했다.
“장인어른께서는 노발대발하셔서 마을 사람들을 고발했지요. 절도죄와 재물 손괴죄, 그리고 주거침입죄 등을 적용해서 고소했는데…….”
“제대로 처벌되지 않았겠군요.”
“네. 개는 개 값만 치르면 그만이고 원래 노인들은 절도를 저지르건 재물손괴를 저지르건 잘 처벌하지 않는다고. 게다가 지역 경찰도 다 그곳 사람인지라 솜방망이 처벌도 그런 솜방망이 처벌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마을 이장의 아들이 충북지검 검사라지 뭐예요!”
“아.”
“결국 장인어른의 고발은 오히려 마을 사람들과 장인어른의 감정의 골을 깊게 하기만 했습니다. 그동안 장인어른이 참아왔던 게 다 헛되게 되고 말았지요.”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시현이 그렇게 말했다.
“네?”
“마을 발전기금 천만 원을 달라고 한 건 그걸 내면 받아주겠다는 뜻이 아니라 애초에 트집 잡으려고 한 것입니다. 이미 그걸 요구하는 시점에서 감정적으로 전혀 같은 마을 사람으로 안 보고 있는 건데 돈을 준다고 친애의 정이 솟아나지는 않겠지요. 그리고 부장 검사 아들을 두고 있는 아버지가 마을 발전 지원금 천만 원 정도로 과연 고마워할까요?”
“그 말대로입니다. 그 후 4주 뒤 부모님 차가 도랑에 떨어져서 두 분 다 돌아가셨어요! 인적도 드문 논두렁길에 처박힌 채로 두 분 모두 돌아가셨지요.”
“조사는 어떻게 나왔습니까?”
“운전미숙으로 도랑에 떨어졌다고 나왔습니다. 블랙박스는 메모리카드가 훼손되어서 쓸모가 없다고 하고 경찰도 그냥 단순 교통사고로 처리했어요. 하지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건 마을사람들이 장인어른을 살해한 겁니다.”
“흐음.”
시현은 그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이 부부가 말하는 건 결국 정황증거와 심증 뿐, 물증이 없다.
물증을 찾는 게 의뢰의 핵심내용.
하지만 이들의 심증은 매우 확고하다.
“알겠습니다. 조사해 보도록 하지요. 조사비용은 주당 500만원에 추가 경비를 청구합니다만 괜찮겠습니까?”
“예. 보험료가 나왔으니까요.”
적지 않은 금액일 텐데도 두 부부는 흔쾌히 의뢰했다.
정말 마을 사람들이 그들을 살해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듯했다.
“신중하셔야 합니다. 혹시 조사 결과가 원하던 것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했지만 정말 사고사일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일들이 많이 있었다.
이 문을 넘어 온 자들은 진짜 피해자일 수도 있고 피해망상에 시달리는 정신병자일 수도 있으며 후자의 경우 자신들의 피해망상을 긍정하지 않는 탐정 또한 가해자로 몰아넣는다.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손님들을 보내고 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까다로운 타입이군요.”
“그렇겠죠? 보아하니까 사고사가 아니라 살인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던데. 만약 그런데도 사고사였다고 하면 어떻게 되죠?”
“원하는 조사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비용을 안 주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물론 돈 받아내는 것도 제 일이기 때문에 그리 어렵지는 않습니다만 일을 두 번 하는 꼴이라서 귀찮군요. 돈을 받아내는 것도 일인데.”
“그래서. 사고사라고 생각해요? 살인이라고 생각해요?”
“그야 지금부터 조사해 봐야겠지요. 수사하는 사람이 선입견을 가져서야 쓰겠습니까?”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말이지만 류하리는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
“평소엔 잘도 선입견을 가지고 추리를 하더니만 이제 와서 무슨 약을 팔려고 그런 소리를? 확신도 없는 빈약한 근거로는 이럴 것이다 저럴 것이다 잘도 그러면서?”
“그건 상상력이지요. 현재로서는 판단근거가 너무 적으니 선입견을 갖지 않겠다고 해 두겠습니다. 그나저나 지방이니까 아무래도 제가 혼자 가야 할 것 같군요. 류 경위님은 일이 많으시지요?”
“…….”
류하리는 의심스럽다는 듯 시현을 흘겨보았다.
“저 없는 동안 뭐 하시려고요?”
“하하하. 양심에 걸리는 짓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양심이 거울처럼 매끄러운 게 아닐까요? 그럼 뭐 걸리적거리는 거 없겠지.”
“양심이 거울 같다는 소리는 보통 칭찬인데…….”
물론 류하리는 칭찬의 의미에서 말한 건 아니었다.
* * *
현장으로 출동하기 전, 시현은 사고차량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는 의뢰주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차량 말입니까?]
“예. 부모가 사망하셨으면 차량은 상속되어 자식들에게 인수되었을 겁니다.”
[이미 보험사가 조사하긴 했습니다만 별 이상이 없다고 해서 처리되었습니다.]
“처리라면 폐차 말입니까?”
[네. 폐차하지 않으면 저 부서진 차를 보관할 곳이 필요한데 그럴 장소가 마땅치 않아서. 수리해서 타고 다니자니 잔존가치가 그리 높지 않은 오래된 차고요.]
“…….”
시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도 용케 살인사건이라고 믿으셨군요.”
[네?]
“차에 어쩌면 증거가 남아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걸 폐차해버리다니…….”
[아, 죄송합니다. 그게, 주차해 둘 곳이 마땅치 않아서요. 사진을 찍어두긴 했습니다만.]
“흠?”
시현은 사진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직접 보는 게 아니라 사진으로 보는 거라 모르겠다.
“혹시 폐차장을 알 수 있을까요?”
[네. 폐차장 말입니까?]
“바로 폐차를 진행하지 않았을 수 있으니까요.”
시현은 그렇게 의뢰주로부터 폐차장의 연락처를 얻어 직접 폐차장으로 가서 차를 살펴보았다.
이미 차는 문짝, 엔진, 헤드라이트, 기타 부품들을 다 떼어낸 상황이라 법정증거능력을 상실한 상태다.
하지만 판금을 들어낸 새시 본체 곳곳에 대량의 혈흔이 남아 있었다.
피를 흘리고 있는 이들이 오랫동안 방치된 흔적이다.
아마 농수로에 떨어져 거꾸로 처박힌 차에 찌그러진 부분에 찍힌 채로 사람이 그대로 매달려 마치 도축당한 소나 염소에서 피를 빼듯 계속해서 실혈을 일으켰으리라.
“이래서 아마추어는…… 증거를 자기 손으로 인멸해버리다니.”
시현은 눈살을 찌푸리다가 표정을 풀고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이 차 분해하면서 뭐 이상한 거 없었습니까?”
“이상한 거라면? 피가 많이 묻어 있긴 했는데요.”
“후방 추돌의 흔적이라던가? 범퍼에 말입니다.”
“아, 그거 말이지요? 전체적으로 다 망가져서 딱히 뭐라 하진 못하겠고 후방 범퍼는 깨끗하던걸요.”
“깨끗하다고요?”
“네. 다만 야매로 많이 때워서 살렸더군요. 보시겠습니까?”
“네.”
폐차장 직원은 시현을 범퍼들이 보관되어 있는 창고로 데려갔다.
“이겁니다.”
“잠시.”
시현은 범퍼에 자외선 라이트를 비춰보았다.
분명히 야매로 보수한 흔적이 있다.
하지만 차를, 특히 뒷 범퍼 부분을 야매로 보수하는 거야 흔한 일 아닌가?
“뭐가 되었건 이미 법적인 능력은 상실했겠군. 하지만…… 때운 위치가 일정한 걸?”
범퍼에 같은 간격으로 때운 흔적이 있다.
여러 번 사고가 났다기보다는…… 뭔가 간격이 일정하게 돌출된 것에 들이받은 것 같다.
“증거능력은 없겠지만 기록해 두고. 이거 일이 번거로울 것 같은데?”
시현은 차량을 충분히 살펴본 뒤 현장으로 출발했다.
데드맨31
선경마을 살인사건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