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57화 (57/269)

제57화

사고 현장은 읍내에서 마을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작은 샛길로 농수용 갑문 근처라서 농수로 높이가 상당하다.

여기서 떨어졌다면 확실히 생명이 위험하리라.

“외길이군.”

시현은 이곳 길목이 피해자 노부부가 읍내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들러야 하는 외길이라는 걸 눈치챘다.

만약 그가 노부부를 살해하려고 한다면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노부부의 차를 농수로로 밀어 넣을 것이다.

“트랙터 같은 걸로 말이지.”

시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길 저 쪽에서 트랙터 한 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어이. 거기 누구요!? 거기서 뭐하는 거야?”

트랙터를 몰고 있는 노인이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시현을 흘겨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지나가시지요.”

시현의 차가 길가에 서 있지만 트랙터가 지나가지 못할 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트랙터의 차주는 신경질적인 시선으로 시현을 노려보았다.

시현의 눈길이 자연스럽게 트랙터로 향했다.

트랙터 앞에 로더(불도저처럼 흙을 밀 수 있게 해 주는 커다란 보습)가 붙어 있다.

그 로더 앞의 이빨의 일정한 간격이 시현이 눈길을 끌었다.

‘대충 눈대중으로 봐도 저거로군.’

피해자 노부부의 자동차 뒷 범퍼의 파손된 간격과 저 로더 이빨 간격이 일치하고 있었다.

아마도 이게 살인사건이라면 마을 사람들은 이 외길에서 저 트랙터를 세우고 기다리고 있다가 노부부가 트랙터를 피해 좁은 길에서 서행할 때 트랙터로 뒤를 덮쳐 노부부의 차를 농수로로 추락시켰을 것이다.

‘뭐 어디까지나 편견과 선입견에 기초한 추리지만 말야.’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차가 폐차되어 버린 지금, 그것을 입증할 증거가 없다.

저들이 잡아떼기만 하면 법적으로 입증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뭐하고 있는 거야?”

트랙터를 몰던 농부가 신경질적으로 추궁했다.

길목에 차 좀 세웠다고 이러기에는 상당히 신경질적인 반응이다.

사고현장에서 알짱거리고 있기 때문일까?

시현은 일부러 속을 긁기 위해 느릿느릿 능청을 떨며 대답했다.

“아, 네. 아니, 이런 농수로 갑문을 좋아해서 말이지요.”

“뭐? 좋아한다고?”

“네. 그런 매니아가 있단 말이지요. 이런 거 좋아하는…….”

시현이 너스레를 떨면서 농수로를 사진으로 찍자 트랙터를 몰고 있던 노인의 눈썹이 찌푸려졌다.

“멀쩡한 사람이 쓸데없는 짓 하는 구만. 엄한 짓 하지 말고 얼른 가쇼.”

“아, 네. 혹시…….”

“혹시 뭐.”

“아니. 아닙니다. 아무것도.”

시현은 차에 타서 트랙터를 피해 몰았다.

트랙터의 농부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서 시현이 떠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쯧쯧. 너무 과민한 반응인데? 선입견을 가지지 않으려고 해도 이래서야 원.”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대부분은 사실 추리할 것도 없이 결판이 난다.

범인들, 주범과 종범들, 그 관계자들이 어떻게든 티를 내고 싶어서 안달이기 마련이다.

배짱이 두둑하고 연기를 잘하는 준비된 살인자는 그다지 많지 않다.

겁을 과하게 먹거나 적개심을 과하게 드러내거나 해서 이미 티는 확 나기 마련이다.

“일단 대충 가닥은 보이는 것 같은데 혹시 확인해 볼까?”

마침 시현이 가는 쪽에, 그러니까 트랙터가 왔던 쪽에 농기구 수리 및 대여점이 있다.

시현은 그 근처에 차를 세우고 주위를 둘러보고 안에 다가갔다.

묶어두고 있는 개가 요란하게 짖어대지만 사람은 없는 듯하다.

철조망 근처에서 안을 보니 농기구들, 트랙터나 이앙기 몇 대가 놓여 있고 그중 일부는 수리를 위해서 도색작업을 준비하는 게 보였다.

마스킹 테이프가 붙어 있고 찌그러진 곳에 퍼티를 발라서 평탄화 작업을 해둔 게 보였다.

‘흠, 과연 범퍼를 야매로 때운 건 농기계 수리하는 기술자가 있어서 할 수 있었던 거군. 저렇게 농기계를 수리할 수 있다면 자동차 범퍼도 때울 수 있었겠지. 뭐 이것도 정황증거에 불과하지만.’

아마도 범인들은 트랙터를 이용해 노부부의 차를 농수로에 처박고 난 뒤, 뒷 범퍼에 남은 트랙터 로더 흔적을 때워버려 증거를 인멸했으리라.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예상이고 증거가 없다.

하지만 혹시 모르니 시현은 사진을 찍어두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시현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류하리였다.

“무슨 일이십니까?”

[아, 저기 신경 쓰여서 거기 동네 조사 좀 해 봤는데요.]

“신경 쓰여서요?”

[네. 그런데 재밌는 게 있네요.]

“재밌는 거라니요?”

[그 마을에 지난 10년간 전입신고를 넣은 사람들 전부가 텃세에 못 이겨 쫓겨났어요. 2~3년 내에 전부 이사했더군요.]

“10년간 전부?”

[네. 전부는 아니지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다들 마을 이장의 친척이나 기존에 있던 사람들의 친척들이에요. 뭔가 이상하죠?]

시골마을에 전입 온 사람들이 그렇게 빨리 전출할 리가 없다.

도시야 매번 옮겨 다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시골에선 이사가 그리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흠. 혹시 뭔가 개발계획이 잡혀있습니까?”

타인을 내쫓고 자기네 사람들로 채워 넣는다.

아마도 뭔가 개발계획이 있어서 보상을 받기 위해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살인 사건은 단순한 텃세나 증오가 아니라 훌륭한 이윤추구 행위라고 할 수 있었다.

[저야 잘 모르죠. 그런데 뭔가 조사는 잘 되고 있나요?]

“잘 되고 있습니다.”

[살인 사건 같나요?]

류하리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어왔다.

“선입견을 가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게 살인사건이라고 정말 온몸을 비틀며 주장하고 있는 것 같군요.”

[오, 살인사건이라고요?]

류하리가 흥분하는 게 전화기 너머로도 들려왔다.

[잠깐, 그럼 또 당신 이상한 짓 하려는 거 아니죠?]

“그건 고객님의 선택에 달려있지요. 일단 의뢰주에게 연락해 보고 의향을 물어봐야겠습니다.”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당신 뭐야?”

농기계 수리점에서 꾀죄죄한 러닝셔츠 차림의 노인이 담배를 입에 물고 슬리퍼를 찍찍 끌며 걸어오고 있었다.

* * *

“뭐하는데 여기 있어?”

“아, 운전 중에 전화가 와서 잠시 차를 세우고 전화를 받고 있었습니다. 혹시 괜찮으면 화장실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보는 사람도 없는데 아무데나 싸. 화장실은 무슨…….”

그는 그렇게 말하다 문득 생각이 났는지 물어보았다.

“혹시 저어기 농수로 보고 있던 친구인가?”

“네?”

“차 보니까 맞구만.”

그는 자신의 휴대폰에 있는 사진과 시현의 차를 비교해 보았다.

아마도 트랙터 운전수가 시현의 차를 찍어서 보내준 것 같았다.

즉, 이 마을 사람들 내의 연락망에서 시현의 존재가 경계당하고 있다.

그렇게 봐도 무방하리라.

하지만 그렇다는 것은…….

‘자기들이 범인이라고 아예 광고하고 있군. 이거 참. 재미없게. 추리고 뭐고 자기들이 범인이라고 얼굴에 써 붙이고 다니는 꼴이잖아?’

시현은 이들의 한심한 보안의식에 불만을 품었다.

‘형사들이 자신의 감을 믿고 괜히 범인들 윽박지르는 거 싫어하는데 이건 제대로 된 형사들에게 걸리면 바로 티 나겠는걸. 그런데도 별일 없이 넘어갔다는 건 경찰도 한패거리로 봐야 하나? 근처 토지나 주택의 등기를 떼 봐야겠군.’

그리 생각한 시현은 상황을 대충 파악하고 즉시 허둥지둥 하기 시작했다.

‘이쪽이 너무 침착하면 역효과지.’

“아, 아니, 아까 전에 웬 어르신이 너무 심하게 경계하시더라고요. 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저 뭔가 기분 나쁜 짓을 했다면 사죄드리겠습니다. 그냥 드라이브 나온 것뿐입니다. 그, 그럼 그냥 가죠 뭐.”

시현은 자신이 그저 무해한 사람임을 열심히 어필하며 차로 돌아갔다.

“흐음. 자, 그럼 이젠 어떻게 한다. 응?”

시현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 문자를 하나 받고 눈살을 찌푸렸다.

“역시 의뢰인이랑 상의를 해 봐야겠군.”

시현은 백미러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농기구점 주인의 시선을 피해 차에 시동을 걸었다.

* * *

해가 졌다.

시골의 버스터미널 앞, 싸구려 여관에 자리 잡은 시현은 샤워를 마치고 난 후,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의뢰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네.]

“일단 기초 조사는 끝냈습니다.”

[어, 어떤가요?]

“아직 법적인 증거까지는 확보하지 못했습니다만 왜 살인사건이라고 생각하시는지는 알겠군요. 마을 전체에 대규모 개발 사업이 내정되어 있더군요. 개 잡아먹고 시비 걸고 했던 건 단순한 외지인에 대한 텃세가 아니라 재개발 사업이 가시화되었을 때 조합원으로 들어올 사람을 줄이기 위해 저지른 짓이었습니다.”

[그, 그렇지요?]

“그런데 걸리는 게 있습니다만.”

시현이 싱긋 웃었다.

[…….]

“마을 이장 아들이 검사라고 했었지요? 그런데 그냥 검사도 아니라 무려 부장검사더군요. 충북지검 박주성 검사. 아, 지금은 서부지검의 수사 1부장으로 영전하셨군요. 서부지검 수사 1부면 검사들 중에서도 끗발 날리는 자리인데?”

[그래서. 그만두겠다는 겁니까?]

의뢰인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아마 다른 곳에서 포기하라는 소리를 많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상대가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사라면 손쓸 방법이 없는 게 대한민국 사법체계의 현실이니까.

“아닙니다. 저희 시현탐정사무소는 언제나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상대가 부장 검사 집안이라고 해서 꼬리를 말고 물러나지는 않지요. 다만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고객님의 각오가 어디까지 되어 있는지 그걸 들어 볼까 합니다.”

[각오…… 라니요?]

“그러니까 혹시 자신이 죽을지언정 보복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십니까?”

[네?]

“아시겠지만 지금 상황은 정상적으로는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는 검사를 상대로 정상적인 법의 테두리 안에서 싸우는 건 매우 지루하고 길고 고통스러운 길이지요. 만약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으시다면 그냥 장인어른께서 그냥 운전미숙으로 돌아가셨다고 생각하시고 이 일을 덮어버리면 됩니다.”

[…….]

“하지만 만약 ‘딱히 법과 사회질서의 안에서 처리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라고 하시면 저희 시현탐정사무소에서는 고객의 만족을 위한 최상의 솔루션이 준비되어 있다고 자신합니다.”

[하, 하지만 당신이 증거를 찾아주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래서 그걸로 재판하면…….]

아무래도 의뢰인은 초법적 수단을 쓴다는 것에 당황한 듯하다.

“지금 제가 증거를 찾아봤자 저는 경찰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찾아 둔 증거는 증거능력을 상실합니다. 정석적인 방식대로 하자면 우선 재판을 먼저 건 후에 그 다음에 제가 찾은 증거들을 수사관이 ‘발견’하게 해서 저들을 잡아넣어야 하는 겁니다.”

[그, 그렇게 하면…….]

“그런데 등기를 떼어 보니까 이 지역 경찰들도 마을 농가주택을 몇 채씩 보유하고 있더군요.”

[네?]

“여기 경찰들도 이 마을 재개발되는 거에 베팅하고 마을 이장이랑 손잡고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장인어른께서 돌아가셨을 때 수사가 그렇게 날림으로 끝난 거지요.”

[그, 그런…….]

“상대는 현지 경찰과 결탁해 있고 수사부장이라는 든든한 아들도 두고 있는 지역 유지입니다. 즉, 그냥 검찰에 고소장 제출해 봤자 반려당할 가능성이 99%입니다. 이미 보험사가 사고라고 처리까지 해버린 걸 보면…….”

시현은 그렇게 말하다 흠, 하고 혀를 찼다.

‘보험사가 사고로 처리했다? 사고를 처음에는 살인이 아니라고 생각했거나…… 일단 상속은 빠르게 진행했다는 뜻 아냐? 그렇다면…….’

데드맨31

선경마을 살인사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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