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58화 (58/269)

제58화

시현은 의뢰인에게 물어보았다.

“장인어른의 주택과 토지는 상속받으셨습니까?”

[아. 예, 아내가 외동이라.]

‘그렇군.’

시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침착하게 생각해 보시…… 아.”

시현은 문득 자신의 숙소 근처에 경찰차가 온 것을 발견하고 혀를 찼다.

[무슨 일입니까?]

“아무래도 손님이 찾아올 것 같군요. 그럼 고객님. 생각해 보시고 각오가 되시면 다시 연락 부탁드립니다.”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뭐, 장인의 토지와 집을 상속받았다고 해서 바로 돈방석에 앉을 수는 없을 테니까 한 번 자신들도 시달려 보면 수명을 아끼지 않고 거래할 마음이 들겠지.”

생각해 보면 의뢰인들의 반응이 너무 뜨뜻미지근했다.

하지만 이 경우 당사자들이 고생을 하기 시작하면 생각이 바뀔 것이고, 이익을 위해서 살인까지 불사하는 집단이 저들을 그냥 내버려두진 않을 것이다.

‘그럼 의뢰인은 이제 되었고 이젠 경찰들인가. 여기 경찰들도 개발계획에 한 다리씩 걸치고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얼굴에 철판 깔고 이렇게 실력행사에 나설 줄은 몰랐는걸? 주 500만원 받아서는 수지가 안 맞는 장사군. 반드시 수명을 받아내야겠어.’

시현은 괘씸한 의뢰인에게 반드시 수명을 받아내겠다고 다짐하고 여관 방 안에서 경찰을 기다렸다.

* * *

여관방문을 신경질적으로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경찰입니다.”

“네. 무슨 일이시지요?”

“체포영장이 나왔습니다. 함께 가주시지요.”

“체포영장이요? 무슨 혐의가 있길래?”

“살인입니다.”

“…….”

시현은 의외의 말에 의아해했다.

‘어정쩡한 혐의를 씌울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살인? 살인혐의를 누군가에게 씌우려면 어디 시체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놈들 경찰이긴 하지?’

그래서 시현은 방문을 열어주었다.

“살인? 누가 죽었나요? 영장을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그러자 시현에게 말하던 형사가 턱 끝으로 다른 경찰들에게 지시했다.

“저항하면 다칠 겁니다.”

“아니, 갑니다. 가요. 그런데 영장을 보여…….”

그때 경찰이 달려들어 시현을 덮쳤다.

그와 동시에 다른 한 명은 무전기를 통해서 보고를 올리기 시작했다.

“아아! 용의자 도주하려 해서 제압시도 중!”

그러나 그 다음 순간 경찰의 몸이 붕 떴다.

시현은 자신을 잡으려 했던 경찰을 오히려 제압해버린 것이다.

“어?!”

“도주는 무슨……. 지금 거 촬영해 두고 있으니까 이상한 짓 하지 맙시다.”

시현은 무전을 들고 있는 경찰에게 여관 방 안,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작은 삼각대 위에서 동영상을 찍고 있는 휴대폰이 보였다.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줄 테니까 어서 연락하시죠. 수사엔 협력할 테니까 이런 유치한 짓으로 괜히 기선제압하려 하지 말고.”

“…….”

무전기를 들고 있던 경찰이 사복형사를 바라보았다. 사복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착오가 있었던 듯하다. 용의자 협조적.”

“좋아요. 그럼 영장 봅시다.”

“…….”

형사가 한숨을 내쉬며 품에서 영장을 꺼내 보여주었다.

영장을 바라본 시현은 허, 하고 혀를 찼다.

“아니, 잠깐만. 정말 살인이라고요? 그 이장님이 바로 오늘 죽었다고?”

“그렇지. 그리고 갑자기 마을에 나타난 네놈이 수상해서 데려가서 구속수사하려는 거고…… 그런데 경찰의 체포에 그렇게 저항하다니 역시 네놈 뭔가 켕기는 게 있는 거구만?”

“…….”

“하여튼 형사의 감은 거짓말을 안 한다니까. 뭔가 켕기는 놈들은 꼭 티내고 싶어서 안달이 났어!”

“하하하.”

시현은 어이가 없어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뭐 좋아. 갑시다. 경찰서.”

“뭐?”

“아무래도 일이 재밌게 돌아가는 것 같은데. 어디 가 봅시다. 경찰서.”

시현은 경찰들에게 체포되어 경찰서로 끌려갔다.

* * *

경찰들의 조서 작성 작업은 지루하다.

생판 남인 경찰들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좀 더 객관적인 자세에서 다양한 정보를 수집할 필요도 있지만 이런 조서 작성의 회화는 일상적인 회화와는 다르다.

일상적인 회화는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이쪽의 이야기의 빈 부분을 채워 넣지만 경찰의 심문은 사이를 채워 넣지 않고 일일이 물어보고 시간을 끄는 것이다.

처음 경험하는 사람들은 마치 벽을 상대로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경찰이 호의적으로 심문을 할 때도 그런데 악의적인 감정을 가질 경우, 이 심문은 그야말로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작업이 된다.

하지만 시현은 그런 경찰의 태도, 수법, 원칙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펜 주세요. 진술서 쓸 테니까.”

“펜? 직접 쓰시게?”

“여러분들이 질문하는 식이면 너무 시간이 길어지니까. 제가 기본적으로 육하원칙에 입각해 왜 여기 왔는지 쓰면서 당신들의 질문에 대답하도록 하지요.”

시현이 그렇게 말하자 경찰들이 피식 웃었다.

“아니, 저기 그렇게 의욕을 내봤자…….”

“어차피 열흘은 여기서 쉬실 텐데.”

“열흘? 그렇군요. 구속수사 영장에서 규정한 시간을 최대한 쓰겠다, 그 뜻이지요? 그런데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 치고는 경찰서가 한산하군요. 보아하니까 일찌감치 수사권은 검찰로 이관된 것 같은데? 하긴 피해자가 검사 부친인데 검사가 바로 나섰을 겁니다. 그렇죠?”

“…….”

경찰들은 당황했다.

보통 경찰서에 끌려온 사람들은 아예 난동을 부리거나 아니면 겁에 질려서 주눅 들기 마련인데 시현은 오히려 경찰 수사를 지극히 귀찮아하고 있었다.

마치 이런 수사를 이전에도 너무 많이 겪어서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당신들이 시간을 끌건 말건 진술서는 미리 써둘 겁니다. 상황이 변화무쌍하게 돌아갈 텐데 진술서를 안 써두는 것보다는 써두는 게 낫잖아요? 뭐 여러분들이 시간을 끌고 싶어 하는 심정도 이해하고 있으니까 진술서나 받아주시죠. 자, 우선 저는 시현탐정사무소 소장, 시현. 마포구 XX동 !!!에 거주하고 있고 사무실도 거기, 직업은 사립탐정이고 신분증과 탐정업 면허증은 여기, 사본 복사해 오세요.”

시현은 탐정 면허증을 경관에게 던져 주고 계속해서 입으로 자신의 진술서를 읽으면서 작성해 나갔다.

경찰들은 그런 시현의 능숙함에 당혹스러워 했다.

“내버려 둬도 되나?”

“음…… 글쎄?”

원래 진술서로 상대를 괴롭힐 때는 펜을 이쪽에서 잡고 조사대상은 구술로만, 그래서 같은 걸 여러 각도에서 물어서 그때도 일관성 있게 대답하는지 아니면 물어볼 때마다 달라지는지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경찰들도 내심 시현이 범인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시현을 열흘간 잡아 두는 것.

어차피 열흘간 잡아 둘 거니까. 집요한 심문은 사실 물어보는 측도 심력을 소비하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먼저 선수를 치고 나서다니.

“그런데…….”

한참 진술서를 작성하던 시현이 멈춰 섰다.

“제가 등기를 떼 봤는데 여기 경찰 몇몇 분들이 가족명의로 부득이하게 농지와 농가주택을 매입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걸 진술서에 작성해도 될까요?”

“어허. 이 사람이. 어허…….”

“뭐, 모, 목마르지는 않소?”

경찰들이 오히려 당황해서 시현에게 물어 보았다.

“우리가 진술서 쓸 테니까 이건 그, 저기, 참고로 할게요. 네?”

“그럼 제 궁금증을 풀어주시지요.”

“뭐가 궁금하신데?”

“제가 범인일 수 없다는 것쯤은 당신들도 알고 있을 겁니다. 저기 형사님, 당신은 이렇게 말했어요. 뭔가 켕기는 놈은 꼭 티를 낸다고. 그게 형사의 감이라고.”

“그, 그랬지요.”

처음엔 시현을 기선제압하기 위해 다소 불법적인 수단마저 강행하려고 했던 형사가 고분고분하다.

“뭔가 켕기는 놈이라고 했지 살인범이라고 하진 않았습니다. 왜 그랬지요?”

“그야…….”

“무죄추정원칙 때문이라는 농담은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무죄추정원칙과 형사의 감이라는 두 단어에는 서로서로 용납할 수 없는 간극이 있으니까.”

이제 누가 심문하는 쪽인지 모르겠다.

‘이놈 너무 나대는데.’

‘하지만 약점이 잡혔잖아.’

‘이, 이놈이 가족명의로 취득한 걸 어떻게 알았대?’

경찰들은 다들 시현에게 덜컥 약점이 잡혀버렸기 때문이었다.

본인이 말한 대로 뭔가 켕기는 놈은 싫어도 티가 나기 마련이다.

이 경우 형사는 필요이상으로 고분고분해지고 시현의 눈치를 살피면서 나 켕기는 놈이요, 하고 티를 팍팍 내고 있었다.

“수사권한이 검찰로 이관된 상태에서 지금쯤 초동수사가 빡세게 진행되어야 할 텐데 현재 경찰서 분위기상 초동수사에 바빠 보이지 않는군요. 과학 수사팀을 불렀기 때문에? 하지만 농촌 동네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당연히 같은 동네 사람들이 용의선상에 올라야 하는데 그렇다면 마을 사람이 못해도 30명, 30명의 사람들을 수사하려면 경찰서가 한창 시장판 같은 분위기가 되어야 한단 말이죠.”

그러나 경찰서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그렇다는 건 마을사람이 아닌 확고부동한 범인상이 있다. 그래서 반드시 외지인의 소행이라고 여겨질 만한 이유가 있다고 밖에는…….”

시현은 흐음, 하고 생각하다가 딱 손뼉을 쳤다.

“사이다패스?!”

“어?”

“…….”

경찰들이 당황해서 서로서로를 바라보았다.

“사이다패스로군요? 범인은?”

“…….”

“아이 씨…….”

경찰들은 앉은 자리에서 추리만으로 이 정도까지 알아낸 시현에게 불쾌감을 느꼈다.

* * *

경찰서 밖, 흡연구역.

시현을 상대하던 경찰들이 모여서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일단 좀 체포과정에서 두들겨주려고 했는데…….”

어차피 혐의가 없다는 건 경찰들도 알고 있었다.

선경마을 이장집 살인현장은 바로 그 유명한 연쇄살인마, 사이다패스의 소행임이 명확했으니까.

하지만 수사를 시작하기 전에 하다못해 공무집행 방해죄라는 누명이라도 씌워서 기선을 제압하려고 했다.

“이 새끼가 그 강남경찰서장 물 먹인 놈 아닙니까?”

“그래. 그래서 탐정나부랭이가 깝치지 않게 좀 기선 좀 제압하려고 했는데…….”

“오히려 우리가 약점을 잡히질 않나.”

“하여튼 난 놈이네. 난 놈이야. 확실히 재주가 좀 있어. 그러니까 총경님도 엿 먹였겠지?”

“어째서 여기 앉아서 잔대가리 좀 굴리고 경찰서 분위기 보는 것만으로 범인이 사이다패스라는 걸 알아 챈 거지?”

“추리는 무슨……, 난 인정 못 해. 이 새끼가 사이다패스의 공범이야. 틀림없다니깐. 외지인 놈이 갑자기 들쑤시더니만 뜬금없이 유명한 연쇄살인마가 나타나서 살인을 저질러? 둘이 무관계할 리가 없잖아?”

“그건 형사의 감입니까?”

“형사의 감? 형사의 감으로는…….”

그렇게 말하던 형사가 끄으응, 하고 신음했다.

“내 감으로는 그 새끼는 범인은 아냐. 젠장. 다만 존나 재수 없는 새끼지. 한 가지 확실한 건 저 새끼가 우릴 존나 좆으로 보고 있다는 거야!”

“…….”

시현이 범인이 아니며 범인과 관계조차 없다는 것. 그것을 지금 모인 경찰들은 ‘감’으로 다들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 ‘감’은 또 이렇게도 말하고 있었다.

이놈이 너희들을 진짜 한심하게 여기고 있다고…….

한심하게 여기는 것은 경찰들의 수사력과 지성의 부족, 그리고 지역개발 건에 올라타기 위해 차명으로 농지와 농가주택을 매입한 그들의 부도덕함이리라.

전자야 그렇다 쳐도 후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래도 기분 나쁘다.

그렇다. 지금 경찰들은 시현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었다.

“재수 없는 새끼. 어쩌지 저거?”

“어쩌긴 뭘 어쩝니까? 건드리면 우리가 좆 되는데.”

“검사님 오실 때까지 잡아 두면 됐지.”

“아니, 그런데 이놈의 검사는 뭐 금마차 타고 올 생각인가? 왜 이리 늦어?”

그들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데드맨31

선경마을 살인사건 #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