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59화 (59/269)

제59화

-끼익.

고급 세단 한 대가 경찰서에 들어왔다.

그리고 한 젊은 남성이 양복차림의, 마빡에 검찰수사관이라고 써 붙인 것 같은 사람들과 함께 차에서 내려섰다.

“서울 서부지검 수사부, 최형림 검사라고 합니다. 보아하니…… 김동찬 경위님 맞으시지요?”

“아, 네.”

“그 탐정은 잡아 두고 있습니까?”

“네…… 그, 직접 보시죠. 안내하겠습니다.”

경찰들은 갑자기 등장한 젊은 검사, 최형림에게 주눅이 들어서 말없이 그를 안내했다.

“타고 온 게 금마차가 아니라서 죄송합니다. 요즘 세상에 마차는 조금…….”

최형림은 경찰들에게 능청을 떨었다.

* * *

시현은 취조실에 들어온 검사를 보며 고개를 까딱해 보였다.

“서부지검 수사부 최형림 검사님이시군요.”

“호오? 저를 아십니까? 우리가 구면이었던가요?”

“관할 구역의 주요 인물들은 항상 체크해 두는지라. 그런데 어째서 여기에 오셨습니까? 여긴 서울이 아닌데? 역시 범인이 사이다패스라서? 아니면 피해자 중에 서부지검의 새 수사부장인 박주성 검사의 가족이 있어서? 둘 다인가요?”

“파견으로 온 겁니다. 이유는…… 말씀하신 대로. 수사부장님의 가족이 피해자이기도 하고, 사이다패스 사건은 저희 서부지검에서 전담하고 있으니까 말이지요. 그렇지만 사이다패스의 살인사건이라고 알고 계시다니? 아직 언론에 공개도 안 했는데, 경찰들이 알려 주던가요? 아니면…….”

“경찰들이 알려 주진 않았습니다. 물론 제가 공범인 것도 아닙니다. 그저 추리를 했을 뿐이지요.”

“추리 말입니까? 탐정소설의 탐정처럼?”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 저는 사실 발로 뛰는 탐정이라는 데 자부심을 가지고 있거든요. 하지만 발로 뛰는 탐정이라 할지라도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하면 간단한 문제지요.”

“흐음.”

“그래도 자세한 거는 몰라요. 정확히 어떻게 된 겁니까?”

“제가 알려 줘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지금 당신은 사이다패스의 공범으로 의심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왜 사이다패스의 공범으로 의심받는지 그 혐의부터 알고 싶습니다.”

“알 필요 없습니다.”

“네?”

시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최형림은 취조실 책상을 손으로 쓱 쓸어보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차피 당신은 사이다패스의 공범이 아니니까요.”

“…….”

“하지만 경찰은 당신에게 체면을 많이 상했으니까 구속수사 영장이 정한 기한인 열흘 꽉 채워서 검찰에 이관할 테고 검찰도 열흘, 거기에 한 번 더 연장한 뒤에야 풀어주겠지요. 일단 영장이 나오면 무고한 사람도 30일 정도는 강제로 잡아 둘 수 있다 이겁니다.”

“30일…….”

시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30일이나 그냥 구속당하면 그는 여기서 죽어버린다.

수명을 그렇게 많이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이나 검찰은 그저 공권력에 도전하는 반항적인 흥신소 탐정 한 명 괴롭히자고 하는 것이지만 시현에게는 목숨의 위협이다.

“그러니까 제가 무고하다는 걸 알면서도 분풀이로 잡아 두려고 한다?”

“네.”

최형림은 시원하게 인정했다.

그는 시현의 진술서 사본을 살펴보며 미소를 지었다.

“적어도 상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단 말이지요.”

“상부는?”

“네. 저는 좀 생각이 다릅니다. 그래서 말인데.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부탁 말입니까?”

“네. 만약 들어주신다면 제가 손을 써서 당신을 좀 일찍 빼내드리지요. 어떻습니까?”

최형림은 시현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걸어왔다.

30일 구류는 시현에게 있어서는 사형선고나 같은 것, 그걸 피할 수 있다면 무슨 조건이든 받아들여야 한다.

하지만 시현은 미소를 지었다.

“물론, 시현탐정사무소는 언제나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부탁이라면 당신이 제 고객이 되는 거지요. 다만 저는 프로임을 자처하고 있기에, 그에 상응하는 수임료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 제게 돈을 받겠다는 겁니까?”

“네. 정당한 수임계약이니까요. 아니면 설마, 부당한 구속을 풀어주는 대가로 공짜로 해 달라는 건 아니겠지요? 그런 짓을 하면 프로 실격이지요. 게다가 당신이 시킬 일은 검찰에게도 밉보이는 짓 아닙니까?”

“제가 시킬 일이 뭔지 알고 있습니까? 아, 그것도 그 발로 뛰는 탐정의 상상력인가요?”

“네.”

“말해 보세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우선 당신이 이곳에 파견 온 것부터 이해해야겠지요. 당신은 서울 서부지검 수사부 소속 검사. 서부지검의 전임 수사 1부장이 사이다패스에게 살해당했고, 후임으로 온 수사부장의 부친이 지금 이 사건에서 또 사이다패스에게 살해당했으니 검찰은 서부지검에게 사이다패스 사건을 전담하라고 맡길 수밖에 없겠지요. 서부지검 입장에서는 철천지원수가 된 사이다패스를 직접 잡아서 명예를 회복하고 싶을 테고 다른 지검들은 검사와 그 가족조차 죽여버리는 미치광이 범죄자와 엮이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시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 수사과정에서 작게는 땅 투기에 개입했다는 증거가, 크게는 살인에 개입했을 수도 있다는 증거가 나올 수도 있겠지요.”

“흐음? 누가 말입니까?”

“현 수사 1부장 박주성 검사지요. 이곳 선경마을은 고속철 지선이 지나는 개발계획이 있습니다만 아직 기획단계라 국토교통부 관련자 외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과 지역 경찰들은 벌써 알고 있더군요. 박주성 검사가 서울 서부지검으로 오기 전에는 충북지검에 있었지요? 개발정보를 빼내기 매우 수월한 위치 아닌가요?”

“놀랍군요.”

최형림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시현은 발로 뛰는 탐정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추리도 아주 날카롭다.

“그래서 제가 어떤 의뢰를 할 것 같습니까?”

“당신은 아마도 적당히 박주성 검사의 흔적을 지워줄 것을 넌지시, 아주 넌지시 권해 받았을 겁니다. 가뜩이나 검찰의 명예가 실추되어 있는데 거기에 또 명예를 실추시킬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그게 마음에 안 드나 보군요. 절 보고 박주성 검사의, 아, 정확히는 그 부친의 명예를 훼손시켜 달라는 거 아닙니까?”

“진실을 밝혀 달라는 것뿐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지금도 경찰에게 밉보여서 괜히 구속수사영장까지 나오게 되었는데 이젠 검찰도 절 미워할 거 아닙니까?”

일반적인 흥신소라면 앞으로의 일을 생각해서 거절할 만한 의뢰다.

서부지검 수사 1부 부장에게 엿을 먹인다는 건 검찰 전체에 엿을 먹이는 짓이니까.

“강남경찰서장에게 들이받은 탐정답지 않군요.”

“그때는 충분히 보수를 받았으니까요.”

“……하아.”

최형림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수임료는 얼마입니까?”

“주에 500만원, 추가 경비는 따로 들어갑니다.”

“…….”

“뭐, 검사님이 계좌로 쏴주시면 추적당할 수도 있으니 현금으로 주셔도 됩니다. 아니, 현금으로 주셔야겠지요? 저와 거래하는 걸 증거로 남길 수는 없을 테니 말입니다.”

“잠깐만요. 당신은 지금 여기에 그…… 다른 분들의 의뢰를 받고 온 거 아닙니까? 그분들에게도 의뢰비를 받고 저에게도 받으면…….”

“아마 사이다패스가 이곳에서 살인사건을 벌였다는 걸 알면 그들은 저와의 계약을 해지할 겁니다. 괜히 사이다패스와 연관된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즉, 누군가 절 새로 고용해 주지 않으면 의뢰주도 없어질 텐데 굳이 이곳 일을 파헤칠 이유가 없다는 거지요. 이미 경찰에게 미운털 박힌 고생을 톡톡히 하고 있는데 검찰에게까지 미운털 박히게 되지 않겠습니까?”

“인상적이군요.”

“네?”

“아니, 주에 500만원이면 작지 않은 돈이긴 하지만 그것만으로 경찰과 검찰에 척을 질 각오를 하다니 말이지요.”

“물론 돈 말고 다른 걸로도 받습니다.”

“어떤 것 말입니까?”

“수명입니다.”

“수명? 여명(餘命), 목숨의 의미로?”

“네. 어떻습니까? 최 검사님?”

물론 최형림은 시현이 이런 존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하고 놀라야 할 때다. 시현이 보기에 최형림은 그냥 재벌가 자제이면서 검사가 된 그런 인물로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기는 딱히 필요 없었다.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놀랍군. 이런 식으로 당당하게 말해버리다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당혹스럽다.’

최형림은 당혹스러워 하면서 물어보았다.

“수명을 어떻게 걷어간다고……? 으음. 아, 아니, 됐습니다. 이상한 거 말고 돈으로 하지요. 하아. 현금이면 부가세는 빼주시나요?”

“그거 탈세 아닙니까. 검사님도 참. 한영건설그룹 자제분이신 걸로 아는데? 가정교육이 엄하신가 보군요.”

“세금을 내면 기록에 남아버리잖습니까. 지금 당장은 그런 현금이 없으니까 돈은 곧 마련하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시현탐정사무소는 고객 만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시현은 최형림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하아. 네. 잘 부탁하지요.”

최형림은 껄끄러워하면서 시현의 손을 잡았다.

* * *

대중들은 과격하다.

일단 흥분하면 법과 질서, 원칙을 모르고 마녀사냥을 원한다.

그런 반면에 또한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과격한 존재에게 거부감을 느끼곤 한다.

자신들이 흥분할 때는 하염없이 과격한 짓을 벌이다가도 누가 더 치고 나가면 그 사람에게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다.

사이다패스가 지속적으로 회자되면서 사람들 사이에서 유의미한 활동으로 남고자 한다면 그런 복잡한 대중들의 심리를 꿰뚫고 활동을 조절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해서 사이다패스의 인기가 떨어지게 되면 사이다패스를 추격하는 검찰은 단순히 사이코 살인마 하나 제대로 못 잡는 무능한 조직이 되어버린다.

최형림을 위해서도 사이다패스는 대중들에게 어떤 사상의 상징으로서 남아야 한다.

그런데 이 사이다패스가 실수를 저질렀다.

최형림이 사이다패스를 박주성 검사의 부친에게 보낸 것은 어떻게든 그들의 부정을 파헤쳐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라고 보낸 것이다.

그런데…….

[아, 미안. 증거 없이 죽여버렸네.]

사이다패스가 그렇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었다.

“죽여버렸다고요?”

[아니, 자택에서 그 사람들이랑 마을 번영회?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저번에 죽인 사람이야기를 하고 있기에 녹음을 하려고 보이스레코더를 만지다가 그만 들켰지 뭐야. 그래서 죽여버렸어.]

사이다패스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살인을 고백했다.

“지금 어딥니까? 아니, 그전에 제게 전화를 하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살인 현장에 전화기 갖고 다니면 중계기 로그를 검색하면 바로 걸려요!”

시골에는 오가는 사람 숫자가 제한되기 때문에 중계기 접속로그를 뒤져보면 쉽게 누가 왔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최형림도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대포폰, 프리페이드 유심으로 작동하는 휴대폰을 따로 가지고 있지만 사이다패스는 자신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안심해. 살인현장에 전화기를 가져가지 않았으니까. 여긴 서울이야. 애초에 전화기를 들고 갔으면 전화기로 녹음했지 굳이 보이스레코더를 따로 들고 갔겠어?]

“서울?!”

최형림은 그녀의 말을 듣고 놀랐다.

‘충북에서 살인을 하고 바로 서울? 차로 2시간 정도 거리니까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촉박할 텐데? 아니, 이 여자의 능력 중 하나인가?’

최형림도 사실 사이다패스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존재인지,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있는 건 아니다.

사이다패스와 그의 관계는 협력자이긴 하지만 위협이 될 수 있는 관계, 언제 뒤통수를 칠지 모르는 관계인 것이다.

데드맨31

선경마을 살인사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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