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61화 (61/269)

제61화

“안 됩니다. 제가 당신께 드릴 수 있는 돈은 어디까지나 흔적이 남지 않는 선에서, 그 정도만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경비를 부풀리면 곤란해요.”

최형림은 말도 안 되게 예산이 불어나는 것을 단호하게 거부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건 너무하지 않는가?

탐정을 고용했는데 증거가 필요하다고 대뜸 쓸모없는 사업체를 통으로 인수하겠다니 무슨 통이 이렇게 큰가?

‘자기 돈이래도 이렇게 할까? 무슨 돈을 이렇게 물 쓰듯 하지?’

하지만…… 말리기에는 이미 늦었다.

[이미 사겠다고 해서 지금 상속자들 만나는 중인데요?]

“네?! 벌써요?”

시현의 움직임은 최형림의 상상 이상으로 빨랐다.

[네. 아무래도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타입이라서.]

“그런…… 말도 안 되는?”

[뭐, 경비는 합리적인 선에서 청구하도록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검사님은 신용도 좋으니까 천천히 주셔도 됩니다.]

“아니. 저기…… 그게…….”

최형림이 당황했지만 때마침 시현은 누군가를 만나는 모양이었다.

[아, 거래 대상이 찾아왔군요. 그럼 실례.]

전화가 끊어지자 최형림은 전화기를 이마에 가져가 대었다.

“젠장. 이 인간이…… 아니, 대체 탐정일 하면서 돈이 얼마나 있기에 남의 사업체를 통째로 인수하는 거지?”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기는 일이다.

남들이 보면 최형림은 재벌가 자제에 서부지검 수사부 검사.

나는 새도 떨구는 엘리트에다가 훤칠한 키, 잘생긴 외모까지 가진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시현의 저 자유분방함이 문득 부러웠다. 돈 씀씀이도 부럽고.

‘혹시 데드맨…… 저 남자. 나를 알아보는 거 아냐? 큰일인데?’

그는 시현이 자신의 잠재적인 위협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그가 나를 사이다패스 관련자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지만 혹시 의심해서 이렇게 돈을 막 써서 내게 타격을 주려고 그러는 건가? 아니면 검사를 싫어하나? 강남경찰서장을 공격한 걸 보면 공권력의 권위를 무시하고 파괴하는 걸 즐기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고?’

최형림이 그런 고민을 할 때였다.

다시 전화가 왔다.

[아, 여보세요?]

“무슨 일입니까?”

[시원하게 거래가 성사되었습니다.]

“그래요?”

[네. 마침 부채가 좀 있어서 그 부채를 승계하는 조건으로 싸게 사들였습니다. 거래 금액을 줄여야 상대도 상속세가 덜 나올 테니까요.]

“…….”

[왜요?]

“아니, 그런 게 그렇게 빨리 매매가 됩니까?”

[가격을 시원하게 부르면 매매가 빨리 되지요.]

“…….”

[시간이 금이니까요. 안심하세요. 경비를 다 청구할 건 아니고 상식적인 선에서 청구할 테니까요.]

“할부 되나요?”

[물론이죠. 검사님이면 신용도 최고 등급 아닙니까. 얼마든지.]

“…….”

최형림은 전화가 끊어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허공에 주먹질을 날렸다.

마치 시현이 눈앞에 있으면 때리고 싶다는 것처럼.

* * *

서부지검의 사이다패스 대책반 회의실에서는 TV방송을 프로젝터로 상영하고 있었다.

[자칭 사이다패스라 하는 연쇄살인마가 또다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이번 대상은 충북 XX시 XX읍의 선경마을 번영회입니다.]

리포터의 밑에는 자막으로 ‘마을 번영회 참살. 개발이권을 둘러싼 참극?!’ 이라는 자막이 떠 있었다.

“끄으으응.”

영전 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수사 1부 부장 박주성 검사는 머리를 책상에 처박고 있었다.

부모가 살해당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복수심에 불타올라 어떻게든 결판을 내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이다패스는 이미 이전 서부지검 수사 1부장을 살해한 경력이 있는 놈이다.

그놈이 그 후임으로 온 수사부장의 노부모를 참살하다니.

복수심보다 두려움이 앞선다.

“괜찮으십니까?”

최형림이 박주성 부장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이런 젠장! 이봐 최 검사!”

“예.”

최형림이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런 일이 없게 하라고 했잖아!”

사이다패스의 선언문에는 박주성 부장검사의 부모가 마을의 개발이익을 독식하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다는 고발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검찰은 사이다패스의 선언문 전문의 공개를 금지했다.

별 증거도 없이 그저 추정만으로 검찰 가족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일을 용납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문제는 증거가 있었다.

저 탐정 놈이 증거를 찾아내 가져온 것이다.

일이 그리되자 탐정을 풀어준 최형림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죄송합니다. 변호사가 붙어서…….”

물론 변명이다.

사실 탐정 시현을 풀어준 건 최형림이 아닌가.

하지만 최형림의 연기력은 어디서 연기수업이라도 따로 받았는지 아주 절품이다.

정말 실수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으로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박주성 부장도 납득할 정도였다.

“변호사? 그놈은 경찰에게 이미 미운털이 박힌 놈이잖아?! 경찰들이 휴대폰을 압수한 후로는 잘 알아서 했을 텐데? 변호사 부를 틈도 주지 않고 조지는 거 하나 못했단 말야? 경찰 짬을 먹을 만큼 먹을 친구들이?”

법률상으로는 누구나 변호사의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건 재판과정에서의 이야기지 수사과정에서는 대부분 변호사를 대동시키지 않는다.

경찰들이 시현을 벼르고 있었을 테니 변호사를 못 부르게 하지 않았겠느냐? 그런 뜻에서 하는 말이었다.

“그 경찰들도 땅 투기에 한 다리씩 걸치고 있었습니다. 그게 약점으로 잡힌 모양이더군요. 제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변호사를 부른 뒤였습니다. 아마 본인도 경찰들이 자신을 벼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몸을 사린 거겠지요.”

“제길. 몸을 사리는 놈이 경찰도 들이받고 검찰도 들이받아? 이거 미친 놈 아냐?! 와. 진짜…….”

박주성 부장은 초조함을 견디지 못하고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일단 언론사에 연락해서 부장님이 언급되는 것은 막았습니다.”

실제로 지금 방송에서도 마을 번영회 사람들이 살인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쏙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사이다패스의 선언문이 인터넷 상으로 공유되고 있는 것을 다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사이다패스 쪽이 선언문을 인터넷상에 유출하고 있어서 지금 그쪽을 추적 조사 중입니다. 하지만 파나마와 칠레를 경유해서 분산해 있어서 현재로서는 찾기 힘든 상황입니다.”

‘물론 내가 하고 있는 거지.’

최형림은 내심 미소를 지으며 겉으로는 계속해서 난처하고 죄송스러운 표정을 연기했다.

“하. 젠장!”

박주성 부장은 이를 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껏 서울로 영전 왔다 했는데…… 망했군! 이봐. 이 사이다패스라는 놈. 아무래도 검찰 내부 관계자야!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날 저격해서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형림은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내부 관계자 맞지. 나니까.’

그때 검찰수사관들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 그럼 내부 감찰을 해 볼까요?”

“젠장! 알아서 해! 어차피 난 이제 여기서 손 뗄 거니까! 미치광이 살인마에 흥신소 나부랭이까지 꼬여서 내 커리어가 이렇게 끝장날 줄이야!”

박주성 부장이 정식으로 언론에 두들겨 맞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검찰 커리어는 여기서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박주성 검사는 자신의 일신에 위협을 겪으면서까지 사이다패스와 맞설 생각이 없다.

이미 전임 수사부장이 죽고, 후임 수사부장은 가족이 저격당해 죽었으니, 검찰 내부에서도 이제 사이다패스 사건을 담당하는 것은 다들 꺼리는 일이 되었으리라.

사이다패스를 수사하면 본인이나 가족이 사이다패스에게 노려지게 된다.

검찰 내에서 그런 인식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바라던 바로군. 사이다패스를 전담하는 일을 모두 꺼리면 꺼릴수록 내 입지는 더 좋아지지.’

박주성 검사의 요구대로 사건을 봉합하지 못한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누가 보더라도 박주성 검사의 명령이 무리수였으니까.

‘이건 잘 풀렸는데 문제는 그 탐정. 과하게 유능한데? 그리고…… 비싸.’

최형림은 자신에게 청구된 시현의 청구서를 생각하며 속 쓰려 했다.

* * *

최형림은 자신의 오피스텔 안으로 들어가기 전 주위를 살펴보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사이다패스가 들어와서 이미 그의 냉장고를 뒤지고 있었다.

“아, 왔어?”

“완전 마음대로군요. 이제 슬슬 칫솔하고 갈아입을 것도 갖다 두지 그래요?”

“어휴. 적극적이네. 그거 동거잖아. 동거. 지금 나 꼬시는 거야?”

“혹시 수능 언어영역 몇 점 받으셨습니까? 사르카즘(sarcasm:비꼼)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사르카즘? 오르가즘 같은 건가?”

“…….”

“그나저나 결국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되었네. 굉장한데? 사실 이번에는 그냥 망했다 싶었는데 역시 검사는 검사구나. 이걸 다 수습해버리다니.”

그녀는 최형림의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캔 꺼내서 마시면서 최형림의 손에 들린 것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뭐야? 편의점 도시락 사온 거야? 내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검사님. 좀 잘 먹는 게 좋지 않을까?”

“뭔가 편견을 가지고 있나보군요. 이건 충분히 탄단지의 영양 균형을 맞춘 식품입니다. 이게 영화나 드라마라면 이 타이밍에 PPL을 받아도 될 정도로 훌륭한 영양식이라고요.”

최형림이 그렇게 말하며 도시락을 들어 보였다.

“여기에 상표가 딱 뜨면 PPL이 확실히 살겠지요?”

그런데 그때 최형림의 손목이 휑한 게 보였다.

“어? 손목에 시계는 어디 갔어?”

“그러게요. 제 손목의 데이저스트는 어디로 갔을까요? 불쌍하게도 어떤 멍청한 분이 사고를 쳐서 그 경비에 대한 담보로 전당포에 간 게 아닐까요?”

“뭐?”

“당신 때문이라고요.”

최형림은 그렇게 말하며 소파에 와 앉았다.

“이게 그 탐정 형씨의 청구서입니다. 당신이 실수 한 번 해서 제가 지출해야 했던 비용이지요.”

“어디보자. 음, 변호사 수임료에, 어? 그 농기구를 사업체 째로 사버렸네?”

“그 친구가 증거 확보하겠다고 농기구 매장의 상속자들에게 연락해서 매장의 트랙터와 농기구들을 통째로 사버렸더군요. 그래서 트랙터 로더에서 시료를 채취해서 자동차 범퍼 조각을 발견한 다음에 그걸 증거로 유가족들이 기소한 겁니다.”

“와. 유능한데? 그 탐정?”

“돈을 물 쓰듯 쓴 거지요. 농기구를 샀다가 다시 되팔려고 해도 요즘처럼 이촌향도가 심한데 제값 받겠습니까? 그 손실분만큼 전부 비용으로 청구하려는 걸 깎고 깎아서 그겁니다.”

“뭐, 당신은 한영건설 회장님 자제분이잖아?”

“제 집안이 그렇게 무난한 사이면 제 데이저스트가 전당포 금고에 들어갈 이유도 없겠지요. 하아.”

“왜 그렇게 허세부리는 데 집착해?”

“필요가 있으니까요. 이번 사건에서 그냥 일반 평검사면 책임을 좀 져야 했을 겁니다. 제가 재벌가 자제라고 여겨지니까 다들 절 관대하게 봐주고 있지요.”

그렇게 말하던 최형림이 사이다패스를 흘겨보았다.

“어쨌거나 이제 검사들은 두려움에 떨겠군? 수사부장을 죽이지 않나. 수사부장의 부모를 몰살시키지 않나. 이제 당신의 가족을 죽여도 다들 그러려니 하겠어? 아, 설마 그걸 노리고 이 작업을 한 건가?”

“관둬주시길.”

“응?”

“제 가족은 제 손으로 처리하겠습니다. 관심 끊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내가 건드리면 이거 그건가? 피자에서 가장 맛있는 토핑을 쓱 빼먹는 거?”

“네, 그런 짓입니다.”

“그런 말을 들으니까 하고 싶어지잖아.”

“…….”

“생각난 김에 피자 시키자, 피자.”

“그냥 집에 가시죠. 제발.”

최형림은 사이다패스의 뻔뻔함에 몸을 비틀며 고통스러워했다.

데드맨31

민원의 세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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