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2화
시현탐정사무소의 앞, 동네가 떠나가라 고함을 꽥꽥 지르는 사람이 있었다.
“이 자식아! 네가 뭔데 우리 가정을 파괴해!? 너 고소할 거야! 이 자식아! 애들도 있는데 우리 애들은 어쩌라고!?”
불륜을 폭로당한 피해자(?)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힐끔힐끔 고개를 내밀고 구경하고 있지만 본인은 당당하다.
스스로 피해자라는 데 추호의 의심도 없다.
‘네가 나의 불륜을 조사했기 때문에 우리 가정이 파괴되었다!’ 라고 원망하는 것이다.
시현 입장에서는 황당할 따름이다.
‘가정을 지키고 싶었으면 불륜을 하지 말았어야지…….’
그러나 자신에게 관대하고 남에겐 엄한 그런 인간들이 많은 건 어쩔 수 없다.
“원 참. 보나마나 의뢰인이 비밀엄수조항을 깼군.”
보통 이런 조사를 할 때는 탐정이나 흥신소를 어디 썼는지, 알리지 말라고 사전에 약속을 하고 작업을 하는 건데……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그 약속을 어긴다.
불륜 증거를 확보한 의뢰인이 상대방을 다그치다가 종종 어디 탐정, 누구를 썼는지 밝히면서 상대를 윽박지르는 데 사용하면서 탐정사무소를 노출시켜버리는 것이다.
본인들이야 탐정은 자기 정체쯤 까발려져도 괜찮겠거니 하고 떠넘기는 거지만 시현 입장에서는 이미 끝난 일을 더 하게 되는 것이다.
시현의 업무책정비용은 일주일에 500만원, 그런데 일주일로 안 끝나고 조사받았던 이가 행패 부리러 와서 그 행패를 정리하면 그 시간은 대체 뭐로 보상받으란 말인가?
“돈으로 보상받아야지. 계약 위반으로 할증료를 청구해야겠군. 응?”
-타다다닥!
타자기가 스스로 쳐졌다.
-이번에도 어떻게 간신히 시간을 맞췄군요.
“당신이 일을 제대로 하라고. 내 남은 수명이 31일 이하면 어떻게든 내게 계약할 상대를 가져온다고 하지 않았나? 매번 계약자 공급이 늦어지니까…….”
-원래는, 그렇게 자기 수명을 막 쓰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말이죠.
“…….”
-왜 떨떠름한 표정을 짓습니까?
“아니, 악마에게 보통 사람은 어떻다 저렇다 그러는 소리를 들으니까 황당해서. 나는 뭐, 보통사람이 아니라 미친놈이라 이건가?”
-잘 아시는군요. 제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저와 계약하고 이런 일을 하는 시점에서 제정신은 아닙니다.
“그거 참 고맙네. 됐고. 용건만 간단히, 계약할 대상이나 찍어내.”
-기다리세요. 계속 계약자를 공급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니까.
타자기의 악마는 시현의 재촉에 난처한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면 지금 몇 번 그랬던 것처럼 당신이 영업을 뛰어서 계약자를 직접 구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늘 그렇듯 당신이 직접 꼬드긴 계약자에게서 받는 수명은 수수료를 인하해드리겠습니다.
“그러고 있긴 한데…… 지금은 영업 뛸 만한 상대도 안 보인다고. 자. 빨리 계약자 구해 봐라. 나 수명 얼마 안 남아서 죽을까 봐 겁나니까 말야.”
시현이 귀를 파면서 능청을 떨었다.
그런데 그때 타자기가 타다닥 울렸다.
-계약자를 구했습니다.
“쳇. 세상에 억울한 사람도 많군.”
방금 전까지 계약자를 구해 오라고 하던 시현은 정작 타자기가 계약자를 구해 오자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투덜거리며 타자기에서 나온 종이를 뽑아서 살펴보았다.
시현이 종이를 뽑아버리자 타자기가 종이도 없이 혼자 탁탁거린다.
시현이 다른 종이를 끼워주자 타자기가 또 글자를 쳐댔다.
-충고하겠는데 그런 식으로 자신을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시간을 줄여서 승부하다가 목숨이 끊어지면 당신은 정말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존재가 될 테니까.
“엄청나게 생각해 주는 척하시는데? 그렇게 생각해 줄 거면 그냥 나 풀어주면 안 되나?”
시현은 타자기에서 종이를 쓱 빼냈다.
“계약자 정보는 손에 넣었으니까 한동안은 종이 없이 지내라고.”
-탁! 타타타타탁!
타자기가 혼자서 맹렬하게 소리를 냈지만 종이가 없으니 뭐라 치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분개하고 있는 것이리라.
저 너머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세계의 존재가 고작해야 타자기에 넣을 복사용지를 갈망하며 분개하고 있다니,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설령 훗날 저 타자기가 말한 대로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꼴이 된다 하더라도 물러설 수 없었다.
인간의 운명조차 희롱하는 저 거대한 악에게 최소한의 저항 정도는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 * *
마포경찰서 서장실, 서장은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정보3팀, 류하리 경위입니다.”
“오, 들어오게.”
“네.”
류하리는 태연히 서장실에 들어와 경례를 했다.
“쉬게나. 흠. 이제 확실히 관록이 좀 붙었군.”
“아닙니다. 팀장님께 많은 지도편달을 받았을 뿐입니다.”
“요새 류 경위 평판이 아주 좋던데. 동료 경찰들이 다들 좋아해. 여기저기서 자기네로 류 경위 돌려 달라고 하더군.”
류하리는 그동안 정보3팀에서 여기저기 다른 팀의 업무를 도와주면서 착실히 자신의 능력을 피로(披露)했다.
경찰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가락이 어디 가는 건 아니라서 유능하다는 평가가 끊이질 않는 듯했다.
류하리 스스로도 그런 평판이 대견해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그런데 류 경위. 그 담당하는 탐정 놈 말야.”
“아, 네.”
시현의 이야기가 나오자 류하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최근에 그 충북에서 그…… 사이다패스 사건에서 또 사고 친 것 같던데.”
“죄, 죄송합니다. 다른 일들이 많아서 그만.”
“아니, 뭐 질타하려고 부른 건 아니고. 어차피 우리 관할 지역도 아닌데다가 이번에 엿 먹인 건 검찰이니까 괜찮네.”
“거, 검찰이요?”
“그 사이다패스라는 놈이 서부지검에 원수가 졌는지 서부지검에 온 새 수사1부장의 부모를 죽였지 뭐야. 그것 때문에 난리가 났어, 난리가. 그런데 그 자리에 그 탐정이 있었다지 뭔가.”
“아…… 예.”
류하리는 능글맞은 시현의 얼굴을 떠올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인간 뭐 하러 지방에 내려갔나 했더니만……. 아니, 경찰, 검찰 아주 골고루 시비를 다 거네? 아무리 이상한 초능력 같은 걸 가지고 있다고 해도 괜찮은가?’
류하리는 시현의 앞날을 걱정했다.
서장은 계속해서 류하리에게 말했다.
“그래서 뭐 자세한 이야기는 잘 모르겠지만 또 불똥이 좀 튄 것 같아. 위에서 우리보고 그놈 관리 좀 더 철저히 해 달라고 그러더라고. 말이 좀 나온 모양이야.”
서장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관리가 소홀해서.”
“아니, 뭐, 그런데 그놈이 워낙 천둥벌거숭이긴 하니까. 류 경위 혼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생각해 보면 처음부터 건드린 게 강남경찰서장이었지? 총경도 건드려, 부장검사도 건드려, 답이 없는 놈이야. 그런 또라이를 고작 형사 한 명 붙여서 해결 볼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보통 일 같았으면 류하리에게 성질을 낼 수도 있었지만 이제 경찰들도 시현이 만만치 않은 또라이 라는 걸 인정한 것이다.
“그럼 혹시…… 팀을 더 늘리나요?”
“아니. 그럴 수는 없지. 우리만 해도 만성적인 인원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 어떻게 그러겠어? 그럴 인원 있으면 사이다패스 잡는데 돌려야지.”
떳떳한 일도 아닌데 시현 쪽에 전담인원을 늘릴 수 없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류 경위가 전담해 주면서 계속 지금처럼 업무 볼 수 있지?”
“아, 네.”
류하리는 복잡한 심경이 되어서 그렇게 대답했다.
‘결국 경찰들은 상대가 형사 하나로 막기는 힘들지만 내가 그냥 지금도 잘 사니까 계속 업무를 맡기고 싶다는 거 아냐? 으음…… 순환근무가 될 때까진 계속 여기서 저 탐정을 전담해야 하나? 평판이 좋아졌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네?’
하지만 그런 마음과 또 별개로 기뻐하는 자신이 있었다.
‘뭐, 그 탐정이 재밌긴 하지. 다른 곳에 가기 싫다.’
류하리는 그리 생각하다 흠칫 놀랐다.
설마 자신이 다른 곳에 배치되기 싫어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럼 바쁠 텐데 가서 업무 보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류하리는 다시 경례를 붙이고 서장실에서 물러났다.
* * *
“이야. 역시 부잣집 딸내미는 좋겠어? 아주 따뜻한 격려를 받고 나왔네. 보통 경찰들 같았으면 조인트 까이고 난리가 났을 텐데.”
류하리가 서장실에서 나오자 성신아가 빈정거렸다.
“넌 또 왜 여기 있어? 그리고 무슨 소리야?”
“아니, 경찰 사이에 이미 파다하게 소문이 났다고. 이번에 서부지검 수사1부 부장의 부모가 사이다패스에게 살해당했는데…….”
그녀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류하리에게 작게 말했다.
“그 부모가 땅 투기에 관여하면서 거슬리는 사람들을 처리하기까지 했던 모양이야. 그런데 그 사실을 그 흥신소 남자가 밝혔다지 뭐야.”
즉, 검찰에 대놓고 엿을 먹인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은 법적으로 연좌제를 인정하지 않는다.
부모의 죄는 부모의 죄, 자식의 죄는 자식의 죄로 따로 다룬다.
게다가 검찰 입장에서는 대놓고 이걸 가지고 뭐라고 할 수 없는 입장이다.
자신들의 고위간부의 가족이 불미스러운 일을 저질렀으니까.
가능하면 언론 최대한 덜 타고 조용히 묻고 지나가고 싶은 것이다.
“검찰 쪽에선 일 키우기 싫으니까 내버려두고는 있는데 노발대발했다고 하더라고.”
“…….”
“그러니까 그런 놈 전담이 보통 경찰 같았으면 지금쯤 막 강아지, 송아지 온갖 욕설을 들으면서 난리가 났을 텐데 사지 멀쩡하게 서장실에서 나오는 걸 보니까 알 만하다. 알 만해. 역시 배경이 든든하면 직장생활도 탄탄대로인가 봐?”
“너무 지나친 억측 아냐?”
“아니, 뭐 여기 서장님이 마음씨가 비단결 같아서 널 안 혼낸 것 같아? 이야, 류하리. 혹시 그거 알아? 산타는 없어.”
“그래서 뭐 하러 여기 왔는데?”
“사이다패스가 사기꾼 죽인 사건 자료 보강 받으러 왔어. 어쨌건 내가 사이다패스 전담 수사팀이니까.”
“잘나가네?”
“잡혀야 잘나가지. 그 전까지는 그냥 죽을 맛이지.”
경찰들은 간부후보생이나 경찰대생 같은 엘리트들도 순환근무를 하게 된다. 이 순환근무 시기가 곧 인사평가 시즌인데 그 전까지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하면 앞으로의 커리어가 꼬이게 된다.
“뭐 사이다패스 건도 일이 너무 커졌잖아? 딱히 못 잡는다고 말단 경위까지 문책할 것 같지는 않은데.”
시현이 계속 사고를 쳐 줘서 만만치 않다는 걸 보여준 덕분에 상부에서도 류하리 혼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인식이 퍼졌다.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사이다패스가 신출귀몰하며 사람들을 많이 죽여대면 쫓아다니는 수사관들을 문책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당장 미국의 미해결 살인사건으로 남겨져 있는 조디악 살인사건 같은 경우도 있고.
“어휴. 난 누구랑 달리 비빌 언덕이 없어서 그렇게 마음 놓고 있을 처지가 아니야.”
“사사건건 자꾸 그러네.”
류하리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품에 손을 넣어서 사탕을 몇 개 집었다.
“당이 부족해서 그래? 이거라도 먹을래?”
“…….”
성신아는 그 순간 류하리를 무섭게 흘겨보았다.
“싫어?”
“넌 진짜…….”
“응?”
“됐어. 기억 못 하면.”
성신아는 짜증을 내다 누가 다가오는 걸 보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박진감 경위가 류하리를 찾아서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아. 류 경위! 바빠?”
“네?”
“아니, 여청과에서 지원요청이 와서. 류 경위가 도와 달라는데?”
“네, 그러죠.”
류하리는 자신을 흘겨보는 성신아가 왜 저러나 싶어서 사탕을 입에 넣고 걸어갔다.
데드맨31
민원의 세계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