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화
병원 중환자실에는 한 소녀가 의식을 잃은 채 누워 있었다.
장혜리. 이제 고등학교 2학년인 그녀는 의식을 잃은 채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는 학교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하다 견디지 못하고 투신자살을 시도했다.
그런데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나쁘다고 해야 할지 죽지도 못하고 중상을 입은 채 병원에 입원해 있는 것이다.
작은 칼국수 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꾸리던 그녀의 부모는 병원비를 내기 위해 가게를 내놓고 병상을 지키고 있었다.
“부모님은 따돌림에 가담한 애들의 처벌을 원해요. 그런데 문제는 유서에 상대가 누구인지 특정해 두지 않아서 다들 잡아떼고 있다는 거지요.”
여성청소년과의 오혜정 경사는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잡아뗀다고요? 학교에서 사정을 이야기해 줄 친구는 없나요?”
“그게…… 학교 측에서는 애들에게 철저하게 입단속을 시켰나 보더군요. 이번 주 월요일 아침 학교 조회에서 교장이 직접 나서서 누구든 학교에 불명예스러운 행동을 취하면 퇴학시킨다고까지 했다지 뭐예요.”
“그렇게 해도 되나요? 수사를 방해하라고 지시한 거나 다름없는데요?”
류하리는 교육자라는 교장의 행위에 경악했다.
“슬프게도 그걸로 처벌할 수는 없어요. 실제로 학교가 퇴학을 시키고 나면 그걸 가지고 민사로 길고 늘어지는 복잡한 법정 투쟁을 해야 하지요. 하지만 곧 대학 입시를 앞둔 자녀를 가지고 있는 부모가 학교랑 소송을 하면서 입시전쟁의 뒷바라지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입시전쟁에 시달리는 학생들 입장에서는 법정 투쟁이라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의 3년이 앞으로 평생을 좌우할 수 있는데 법정투쟁에 끌려 다니면 그것만으로도 사형선고나 다름없지 않은가?
“즉, 이 아이의 친구가 있어서 진실을 밝히고 싶다고 하면 그 아이는 학교에 불이익을 당하게 될 테고, 그런 불이익에 항의하기 위해 법적 투쟁을 벌이게 되면 입시를 망치게 될 거다? 그런 이야기인가요?”
“그렇지요. 수사에 협력한 애들이 입시에서 피해를 보게 되는 건 법적으로도 보호할 방법이 없어요. 게다가 학교 측에서는 그것과 별개로 모금활동을 하고 있고 이쪽 병원비도 지원해 주려고 하니까요. 학교의 의향을 막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이에요. 피해자는 경제력이 없으니까요.”
“…….”
그 말을 들은 류하리의 머릿속에 순간적으로 어떤 남자의 실루엣이 스쳐지나갔다.
법을 무시하고 고객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
‘하지만 경찰된 내가 그런 불법적, 아니, 초법적인 수단에 의지해선 안 되지.’
류하리는 고개를 가로저어 망령된 생각을 머리에서 털어냈다.
“그럼 학생 중 누구도 학교에 밉보이지 않게 몰래 조사를 해 달라, 그런 말인가요?”
“네. 그래서 류 경위님께 부탁드리는 거예요. 아무래도 여학생들이 많으니까요. 게다가 과장님은…….”
“과장님은요?”
“그, 아무래도 학교 쪽과 긴밀한 관계셔서 말이죠.”
오혜정 경사가 쓴웃음을 지었다.
여성청소년과는 그 특성상 학교와 긴밀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그 긴밀함이 때로는 도가 지나칠 때다.
‘그래서 나에게 시키는 거구나. 이거 여청과 과장에게 밉보이는 짓 하라는 거네?’
류하리는 약간 맥이 빠지는 느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불러서라도 어떻게든 저 여학생을 돕고 싶어 하는 오 경사의 마음에 공감했다.
“알겠어요. 제가 잘 해 보겠습니다.”
류하리는 오 경사에게 사건을 인계받았다.
그리고 병원을 나오던 류하리는 왠지 입구에 익숙한 사람이 기둥을 보고 서 있는 걸 발견했다.
“이봐요.”
“아, 들켰군요. 안녕하십니까. 류 경위님.”
“당신. 설마?”
“오해입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류하리는 그렇게 말하다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일은 제가 맡았으니까…….”
“같이 조사할까요?”
“아뇨. 저 혼자서 해 볼 거예요. 그러니까 당신은 물러나시죠?”
“흐음.”
시현은 품에서 종이를 꺼내서 살펴보았다.
“그건 곤란한데요.”
“왜요?”
“미안하지만 세부적인 사항을 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
류하리가 시현과 얽힌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아직도 그렇게 말하다니.
“말을 하기 싫다는 거예요? 아니면 할 수 없는 거예요?”
“후자 쪽입니다.”
“그렇다면 알겠어요. 하지만 이번 일은 제가 처리할 거니까 먼저 처리하더라도 원망하기 없기?”
“후후후. 알겠습니다.”
시현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흐음. 희생자 학생 부모에게 의뢰를 받은 건가? 경찰인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다행이긴 하네. 저 남자가 의뢰를 받았다면 어쨌건 원한은 풀어줄 테니까. 하지만 경찰인 내가 그렇게 놔둘 수는 없지.’
* * *
“좋아. 저 불륜 전문 탐정에게 경찰의 실력을 보여줘야지.”
류하리는 의욕을 내고 중학교 졸업앨범을 꺼냈다.
“고등학교에서는 입단속을 시켰단 말이지? 그렇지만 중학교 때 친구들이라면 어떨까?”
하지만 졸업앨범에 연락처가 없다.
“요새는 애들 휴대폰 번호나 연락처 같은 거 안 넣는구나.”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때라 그렇다.
“전화번호야 그렇다 치고 SNS 정도는 괜찮지 않나?”
과연 SNS를 뒤적이자 곧 어렵지 않게 학생들 몇몇의 신상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류하리는 그들을 면밀히 검토해서 좀 착실해 보이는, 불량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학생들을 골라서 메시지를 날려보았다.
‘안녕하세요. 마포경찰서 정보과 류하리 경위입니다. 장혜리 학생 친구 되는 분이지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잠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괜찮으시면 제가 직접 찾아뵙겠습니다.’
그렇게 메시지를 날리자 잠시 후 한 학생이 대답을 해 왔다.
“좋았어. SNS 만만세다. 저 탐정이 사고 치기 전에 내가 이 사건 접수해야지!”
류하리는 기뻐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 * *
보습학원들이 밀집해 있는 학원가, 그 근처의 카페에서 류하리는 한 여학생을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류하리 경위입니다. 장혜리 학생의 친구인…… 권여진 학생 맞으시죠?”
“아, 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여학생은 당황하면서 류하리를 맞이했다.
류하리는 활달한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나와 줘서 고마워요.”
하지만 여학생은 불신의 눈초리로 류하리를 훑어보았다.
“경찰들이 이미 다 조사한 줄 알았는데, 왜 또 연락하신 거죠?”
“아무래도 여성 청소년 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좀 한정적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요?”
“그래서.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나요?”
“경찰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지금?”
“학생들 간의 집단 괴롭힘으로 고통 받다 자살시도를 했다. 그렇게…… 여기고 있지요.”
“……조금 달라요.”
“다르다면?”
“우선 이걸 보세요.”
여학생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앱을 구동시켰다.
배달 앱이다.
이 여학생이 보여준 것은 음식을 시키고 음식점들을 평가하는 페이지였다.
“여기 이 가게가 혜리네 부모님이 하시는 가게거든요?”
“…….”
별점은 1점대로 폭락해 있고 온통 악플, 비추천과 모욕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누가 주도하고 있는 거죠?”
“조상아요.”
“조상아?”
“네. 공부도 잘하고 집안도 좋은 애예요. 모범생이죠.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보기에는……. 실제로 술이나 담배 같은 것도 안 하고요.”
“그럼 대체 왜?”
“교과서랑 학습지를 내는 XX학사에서 시행하는 전국 경진대회가 있어요. 수학이랑 과학인데…… 이게 수시에 영향을 엄청 주거든요? 거기에서 학교 대표로 남녀 각각 한 명씩을 뽑는데 그중 여자로 혜리가 뽑혔거든요?”
“아.”
“그 뒤로 이 괴롭힘이 시작되었어요.”
확실히 이건 단순한 괴롭힘이 아니다.
괴롭힘이라기보다는 권력암투라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왜 학교가 입막음하려는지 알 것 같군.’
명문대 진학시키는 걸 치적으로 생각하는 학교 재단 입장에선 공부 잘하는 애들끼리 서로 암투를 벌인 사건을 공론화해서…….
둘 다 제거되면 곤란하다.
암투가 끝났으면 승리한 쪽, 살아남은 쪽이라도 잡고 있어야 학교의 알량한 명예를 지킬 수 있지 않겠는가?
“학교 선생님은 말했어요.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고. 즉, 죽은 사람, 이미 낙오한 사람에게 모든 문제를 떠넘기고 살아남은 사람에겐 문제를 묻지 말라. 책임을 묻지 말아라. 그렇게 말하더군요. 실제로 다 그렇게 흘러갔고요.”
그렇게 이야기 하던 여학생이 몸을 떨었다.
“어차피 미성년자고 직접 살인한 것도 아니니까, 직접 때린 것도 아니니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하지만 그건 참 구역질나는 습성이에요. 그따위 짓을 하면서까지 명문대를 보내는 게 그렇게 중요해요?”
“으음…….”
류하리는 신음했다.
일이 생각보다 복잡하다.
도덕적으로는 조상아라는 여자애가 잘못한 게 맞지만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가 많이 미흡하다.
물론 의도적으로 인터넷 등지에 악평을 써서 영업을 방해하고 거짓정보를 올리는 건 범죄지만 영업방해죄나 정보통신법상의 사보타주, 반달리즘 같은 것에 대한 처벌은 미성년자에게는 한없이 관대해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도 고마워요. 학생. 덕분에…… 가해자가 누군지 알았으니까.”
“부탁해요. 꼭 혜리를…… 도와주세요.”
“최대한 노력해 볼게요.”
류하리는 여학생을 달래고 테이블의 계산서를 집어 들었다.
“어?”
“여긴 제가 낼게요.”
그렇게 말하고 계산대로 걸어가던 류하리는 문득 뭔가가 뇌리를 스치고 지나가서 멈춰 섰다.
“그런데…….”
“네?”
“혹시 다른 애들도 이 사실을 아나요?”
“뭐 대부분은 다 알고 있어요.”
“그럼 혹시…… 사이다패스에게 청원을 넣는다든가 그런 짓을 하는 학생들이 있나요?”
“아마 없지는 않을 거예요.”
여학생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으음.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내 착각이면 좋겠다만.”
류하리는 여학생의 반응을 보며 등골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 * *
류하리는 오혜정 경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 조상아 학생의 연락처는 알고 있으신가요?”
[아, 네.]
“처음부터 그녀가 가해자라는 걸 알면 알려 주시지 그랬어요?”
류하리는 약간 짜증을 냈다. 오혜정 경사는 류하리에게 사건의 조서를 복사해 주었는데 그 조서 어디에도 가해자의 이름, 연락처 따위는 없었다.
그런데 사실 실무자들은 이미 가해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말이죠. 사실 제가 참고인으로 조사 협조를 요청했을 때 조상아 양의 보호자분이 거절하면서 신변 및 개인정보 보호 요청을 보냈거든요.]
“네?”
[내용증명까지 해서 보냈어요. 조상아 양의 보호자분이. 아버지는 법원 서기, 어머니는 교사시더군요. 영장 없으면 자기 딸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더군요.]
“그럼 조서에 가해자의 주소랑 이름이 들어가지 않은 건?”
[아직 그쪽은 조사하지도 못했어요. 일단 피해자의 보호자 분들을 통해서 조사했는데 그분들은 당연히 가해자가 누군지는 잘 모르시더군요.]
그럴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했다면 아이는 최대한 그 사실을 부모에게 숨기려 할 것이다.
데드맨31
민원의 세계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