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64화 (64/269)

제64화

아이는 숨기고 숨기다 끝끝내 숨기지 못해서 마침내 미어터지면 높은 곳에서 몸을 날려 차라리 자신을 죽이는 걸 택한다.

그 상황에서 부모를 상대로 조서를 꾸며봤자 가해자가 누군지, 어디의 어떤 인물인지 알 도리가 없다.

“알겠습니다. 조상아라는 이 여자애 연락처를 주세요.”

[직접 만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상대는 이미 법적으로 자신을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어요.]

“염려마세요. 저도 달리 접근할 방도가 생각났으니까. 연락처나 보내주세요. 문자메시지로 부탁해요.”

류하리는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과연 오혜정 경사는 여청과장의 눈치를 피해서 류하리에게 가해자 조상아의 연락처를 알려 줄 것인가?

‘알려 주겠지. 애초에 그러지 않을 거면 나에게 일을 부탁하지도 않았을 거야.’

과연, 잠시 후 류하리의 휴대폰에 조상아의 연락처가 들어왔다.

“어디 그럼 일을 해 볼까.”

* * *

XX교회의 공부실, 그곳에는 교복차림의 여학생들이 모여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중심에 있는 여학생은 IELTS 교재를 보고 있었다. 여학생의 가슴에 붙어 있는 이름표에는 조상아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야. 들었지? 장혜리가 투신했다더라.”

“응. 들었어.”

조상아는 무심하게 말하며 볼펜을 움직여 필기를 했다.

“불똥이 우리에게 튀는 거 아냐?”

“튀긴 뭘 튀어. 우리가 뭐 걔를 때리길 했냐? 빵셔틀을 시켰어? 우린 아무것도 한 거 없어.”

“그렇지만 별점테러는 했잖아.”

“별점테러라니 무슨 소리야? 맛없으니까 한 거지. 맛없어서 맛없다고 한 걸 가지고 누가 뭐래? 그럼 맛이 없는데 맛있다고 해?”

“아니…….”

“너희들도 괜히 이상한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우리 수험생이야, 수험생. 지금 이때 빠짝 해 둬서 다른 애들이랑 거리 벌리지 않으면 큰일 난다? 지금 반 석차 1~2등 차이가 나중에 인생의 그레이드를 바꾸는 거야. 알아? 1~2년 바짝 고생해서 평생의 그레이드를 바꾸는 거니까 내가 끌어주고 달래 줄 때 잘 따라오기나 해.”

“……상아, 너는 대단하구나.”

“뭐가?”

“아니, 나는 두근거려서 말야.”

“무서워서 잠이 잘 안 와.”

그러자 듣고 있던 조상아가 한숨을 내쉬며 노트를 덮었다.

“뭐가 두려운데?”

“아니, 그치만, 그렇잖아.”

“봐봐. 우리는 한 게 없어. 장혜리는 뭐, 뛰어내려서 다쳤다고? 혹시 그거 하는 거 아냐? 그거, 파쿠르?”

“…….”

수험생 여고생이 갑자기 도시를 가로지르는 슈퍼 익스트림 스포츠가 하고 싶어져서 뛰어내리다 다치기라도 했단 말인가.

다른 여학생들은 조상아가 정말 양심에 일말의 가책도 없다는 것에 경악했다.

“아니, 하지만 그 맛없다고 별점테러한 거, 우리 계정 말고 아는 오빠 계정들, 교회 사람들 계정들, 다 빌려다 했잖아? 그게 문제 되지 않을까?”

“아, 진짜……. 좀 그만 빌빌거리고 조용히 해 줬으면 좋겠는데. 어차피 그건 경범죄에 우린 미성년자야. 끽해 봐야 영업방해로 배상이나 하라고 하겠지만 그건 민사야. 돈으로 물어주면 끝인 일이라고.”

“하지만 사람이 다쳤는데.”

“아니, 우리가 때리길 했어, 괴롭히길 했어? 애가 그냥 뛰어내린 거잖아? 그걸 우리보고 책임지라고 하면 안 되지. 아니, 됐다. 공부하는데 방해할 거면 나가주지 않을래?”

조상아는 다른 아이들이 전전긍긍하는 것을 보며 진심으로 귀찮아했다.

그때 마침 조상아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음. 뭐지, 모르는 번호인데?”

조상아는 쿨하고 시크하게 전화를 쓱 거부해버렸다.

그러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마포경찰서 정보과 류하리 경위입니다. 조상아 학생. 매우 중요한 참고조사가 있으니 협력 부탁드립니다. 시간 날 때 연락주세요.’

“거, 거봐. 경찰이다.”

“흠. 아니, 뭐, 보이스피싱 그런 거 아냐? 우리 부모님이 경찰에게 엄포를 놓았다고. 딸애 수험생이니까 건드리지 말라고. 그러니까 이건 경찰이 아냐.”

조상아는 아예 메시지도 지우고 착신 거부를 걸었다.

* * *

“이, 이게?”

류하리는 전화를 안 받아버리는 조상아의 태도에 당황했다.

“끄응. 애가 아주 당돌하네. 부모에게 연락해 볼까?”

하지만 부모도 경계하고 있을 것이다.

경찰에 내용증명까지 보내놨다는데 수사에 협조적일 리가 없다.

“일단 자택주소는 아니까 근처에서 대기해야겠다.”

류하리는 조상아의 집으로 향했다.

* * *

조상아의 집은 상암동 인근 신축빌라단지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조상아의 집근처에서 의외의 인물을 만나게 되었다.

시현이 근처 카페의 아이스커피를 타들고 오다 류하리와 마주친 것이었다.

“뭐하는 거예요?”

“아니. 이때쯤 동선이 겹칠 것 같아서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종이를 접어 만든 아이스커피 캐리어를 건넸다. 거기엔 커피가 둘 꽂혀 있었다.

“…….”

류하리가 여기 올 걸 미리 알고 있었다는 소리다.

“그러고 보면 당신은 어째 사람을 정말 잘 찾아내곤 했었죠. 혹시 제게도 그 능력을 쓰고 있나요?”

“…….”

시현은 대답 대신 커피를 하나 고르더니만 빨대를 물었다.

대답하기 곤란하다, 그런 뜻이겠지?

물론 그 행동 자체가 그렇다고 긍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당장 관둬요.”

“네…… 관뒀습니다.”

“정말요? 설마 지금은 관뒀지만 다시 하면 되니까 그렇게 말하는 건 아니겠지요? 그렇게 안일하게 굴진 않을 거라고 믿고 싶네요.”

“네. 정말입니다. 관뒀어요.”

“……정말이죠? 아, 젠장. 뻔하게 거짓말을 해도 알 수가 있어야지.”

“믿어 달라고 말할 수밖에 없군요.”

시현은 그리 말하며 다시 커피를 내밀었다.

류하리는 그걸 받아들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당신은 여기에 온 거예요? 정확히 누구에게 의뢰를 받은 거죠?”

“장혜리 학생의 학부형입니다.”

“아. 저런…….”

류하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은 과연 딸의 복수를 원하는 것일까?

감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만 경찰된 입장에서 그런 사적 제재를 허용할 수는 없다.

“복수를 원하던가요?”

“그것까지는 비밀입니다. 사실 의뢰인을 말씀드린 것도 굉장히…… 제가 류 경위님을 그만큼 존중하기 때문에 알려드렸다고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군요.”

“존중…… 말인가요? 촌충이 아니라?”

“네. 존중.”

그런 말을 하고 있을 때 차량이 한 대 들어왔다.

아이의 학부형으로 보이는 사람과 뒷좌석에 탄 아이가 보인다.

조상아와 그 학부형의 차였다.

“좋았어. 왔군요. 그럼 이제 어떻게…….”

“저는 됐습니다.”

“네?”

“류 경위님은 류 경위님의 일을 하세요. 저는 일단 물러나지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류하리만 남겨두고 커피를 마시며 뒤로 물러났다.

혼자 남은 류하리가 당황스러워했다.

“아니, 뭐. 물러나 준다니 고맙긴 하지만.”

약간 떨떠름하다.

‘아, 내가 이 남자가 같은 자리에 있으니까 안심했었구나.’

류하리는 그 사실을 깨닫고 얼굴을 붉혔다.

부끄럽게도 경찰인 그녀가 시현을 만난 순간 묘한 안도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 자와 함께 일을 하면 황당한 일을 겪기는 해도 어쨌건 즐겁고 보람찼다.

‘그렇게 생각하는 시점에서 나도 좀, 경찰 조직에 안 맞는 것 같기도?’

류하리는 그리 생각하면서 차에 다가갔다.

“음? 뭡니까?”

빌라 필로티 사이에 위치한 주차장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린 조상아와 그 학부형이 류하리를 발견하고 놀랐다.

“마포경찰서 정보과 류하리 경위입니다.”

류하리가 신분증을 꺼내 보이자 학부형의 얼굴이 순식간에 괴물의 그것으로 돌변해버렸다.

“이봐요! 당신 지금 수험생한테 무슨 짓이야?! 민원을 넣어봐야 속이 시원하겠어?!”

“……걱정하시는 건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일 때문에 온 겁니다.”

류하리는 민원으로 협박하는 것에 놀랐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관심없으니까 가세요! 가!”

“따님 목숨이 위험합니다!”

류하리가 그렇게 말하자 학부형이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사이다패스가 따님을 노리고 있습니다!”

“?!”

“네?!”

조상아가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사이다패스라면 요새 유명한 연쇄살인마가 아닌가?

“그게 무슨 말이에요?!”

“따님을 상대로 청원이 진행 중입니다. 아마 조만간 사이다패스가 공격해 오지 않을까 합니다만.”

“…….”

“어…….”

과연 방금 전까지 경찰보고 저리 가라고 하던 그들의 안색이 싹 바뀌었다.

‘이야, 먹히는구나. 역시.’

물론 류하리는 어디까지나 허풍을 떨었을 뿐이다.

현재 사이다패스에게 청원하는 사람들은 밤하늘의 별처럼 많다.

사이다패스 살인사건 초반에 만들어진 청원 사이트는 정부의 통제로 막고 있지만 각종 포털, 뉴스 댓글란, 일반 커뮤니티, 어디든 할 거 없이 청원들이 계속 올라오고 있다.

즉, 류하리가 이렇게 허풍을 떨어도 그들이 이게 허풍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단은 전무하다.

경찰이라는 신분을 감안하면 류하리의 말을 신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그럼 어쩌라는 겁니까?”

“일단 괜찮으시면 좀 이야기를 해 볼까요? 어디 조용히 이야기할 곳이…….”

“그럼 자택으로 들어오시겠습니까?”

“예.”

류하리는 조상아의 학부형의 허락을 받아 그들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조상아의 자택은 빌라 최상층, 다락방형 복층과 테라스가 붙어 있는 곳이었다.

손님이 왔는데 뭐 마실 것도 내주지 않아서 류하리는 시현에게 받은 아이스커피를 놓고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 딸을 살인마가 노리고 있다고요? 확실한 겁니까?”

“확실하다고 하면 벌써 잡을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가능성은 높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류하리는 그렇게 말하면서 스스로도 어이없어했다.

‘내가 시현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니네. 책임지지 않을 선에서 상대방에게 불안감을 부추기는 발언을 하다니.’

하지만 류하리의 발언은 효과적이었다.

“사이다패스라면, 그 부장검사도 죽인다는 미치광이 아닙니까?”

학부형의 동공이 지진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만큼 사이다패스의 악명이 높은 것이다.

“잠깐만요. 그런 살인자가 왜 저를 목표로 하는 거지요?”

“그건 아마도…….”

류하리는 당돌하게 말하는 조상아를 보며 표정관리를 해야 했다.

‘왜 그런지 몰라서 물어? 네가 애를 괴롭혀서 애가 뛰어내렸잖아.’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사이다패스의 위협을 경고하러 온 경찰이라면 그런 사적인 감정을 보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류하리는 철저히 사무적인 태도로 말했다.

“현재 청원글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어느 사이트에, 누가 올리고 있는 거지요? 그 사람을 처벌해 주세요.”

“…….”

류하리도 순간 말문이 막혔다.

‘와, 때려버리고 싶다.’

류하리는 그런 충동에 사로잡혔다.

‘경찰들 보고 접근하지 말라고 내용증명까지 보낸 주제에 경찰을 뭐 자기 하인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가? 우린 시스템이야 시스템. 물론 아무리 밉고 짜증나는 놈이래도 공정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긴 하지만 너무 뻔뻔한 거 아냐?’

경찰도 사람이고 월급쟁이일 뿐이다.

공공행정력이고 공권력이니까 최대한 공정하게 해야겠지만 자기들 편할 때는 뭐, 민원을 넣겠네, 어쩌겠네, 하고 협박하더니 이제는 맡겨둔 것처럼 서비스하라고 발 쭉 뻗고 행패부리는 꼴이 아닌가?

데드맨31

민원의 세계 #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