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화
‘참자,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했지. 아, 젠장.’
류하리는 인내심을 끌어올려 최대한 표정관리에 힘썼다.
그러나 딸인 조상아가 당돌한 소리를 하자 그 학부형들 역시 똑같이 굴어서 류하리의 복장을 터지게 했다.
“그, 그래! 우리 딸을 음해하는 사람이 있으면 고소하겠어. 수사해 주시오!”
“뭐, 그건 정식으로 고소를 접수해 주세요. 제가 여기 온 것은 어디까지나 사이다패스에 대한 경계를 위해서 온 거니까요.”
“뭣? 지금 그게 무슨……. 말이라고 하는 겁니까? 서비스 정신이 없잖아?”
“아니, 그럼…… 생각해 보세요. 경찰이 고소장 양식이랑 관련 증거들 들고 다니면서 누구누구 고소하라고 바람 잡고 고소장을 직접 밖에서 접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는지. 그게 바로 기획수사, 기획고소 아니겠어요?”
‘내가 뭐 출장 민원센터도 아니고!’ 라는 말은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사이다패스 연쇄살인 사건은 지금 경찰과 검찰 모두가 매달려 있는 최악의 사건입니다. 살해현장은…… 정말 끔찍하지요. 어리건 여자건 상대는 가리지 않는단 말입니다.”
류하리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들의 관심사를 사이다패스로 돌리기로 했다.
“그래서. 사이다패스가 왜 우리 딸을 노린다는 건지는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청원 순위가 설마 1등입니까? 저희 딸이?”
“아니, 세상에 나쁜 놈들 얼마나 많은데 우리 착하고 이쁜 딸이 왜?”
“…….”
‘당신들 눈에나 착하고 이쁘겠지. 딱 봐도 얘는 거의 소시오패스야. 당신들 노년에 딸내미에게 생전 상속 함부로 해 주지 마라. 장담하건대 부모에게 받아 처먹을 거 없으면 부모 팔고도 남게 생겼어.’
류하리는 그렇게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그런 건 아니지만 수사관계자가 생각하기로는 아무래도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아시다시피 사람들이 흥분하기 좋은 내용이라서 말이지요.”
류하리는 진지하게 그렇게 말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수사관계자는 바로 나지만 말야. 거짓말은 안 했다. 거짓말은!’
사이다패스의 위험성을 계속 강조한 게 효과가 있었는지 조상아와 그 학부형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은 피해자와 화해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당사자 간에 화해했다고 하면 사이다패스도 이쪽을 표적으로 삼기 곤란해지겠지요.”
“네? 저희를 보호하고 사이다패스를 잡는 게 아니라요?”
“그 말씀은 함정수사에 협조하시겠다는, 협조할 용의가 있다 그런 뜻인가요?”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런데 그 국수집이 자기네가 피해자라고 합니까? 그놈들이 피해자는 무슨! 피해자는 우리가 피해자죠. 애가 수험공부에 과민해져 있는데…….”
“막말로 거기 딸이 뛰어내려서 우리 애 수험에 악영향만 미치지 뭐 좋은 게 있습니까? 거 애도 학우들 기분 뒤숭숭하게……. 수시 수능 다 보고 뛰어내리든가 하지. 면학정서에 방해만 되잖아요?”
상상을 초월한 막말에 류하리가 입이 쩍 벌어졌다.
“피해자 집 가게에 별점테러를 주도한 게 사실이 아니라 그 말씀이십니까?”
“별점테러라니요. 무슨. 맛없어서 맛없다고 한 것뿐인데.”
조상아는 그렇게 말하다 혀를 찼다.
“하지만 알겠어요. 사과하고 화해하면 사이다패스도 우리를 노리지 않을 거다. 그런 말이지요? 뭐, 사과정도야 얼마든지 할 수 있죠.”
“…….”
“경찰 언니? 그런데 사이다패스가 더 이상 살인을 못 하게 하는 게 경찰에게도 중요한 일이죠?”
“아, 네. 그래요 학생.”
“그렇다면 경찰도 그 국수집에 화해하라고 좀 종용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
“보나마나 그냥 사과만으론 만족 못 하고 돈 달라고 그럴 건데 가난한 사람들은 염치가 없어서 막 되도 않는 액수를 부를 거잖아요? 그러지 못하게 경찰이 좀 중재를 해 줘야 할 것 같은데요?”
“그래그래.”
“역시 우리 딸, 똑똑하네.”
부모는 또 좋다고 자기 딸을 칭찬하고 있었다.
류하리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 * *
-챙그랑!
위층에서 창문 깨지는 소리가 났다.
“어? 무슨 소리지?”
“……고양인가?”
두 부부가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려 할 때였다.
류하리가 흠칫 놀라서 그들을 제지했다.
그리고 숨을 죽여서 귓속말에 가깝게 물어보았다.
“위에 복층…… 테라스로 되어 있지요? 잠가뒀나요?”
“네. 외출할 때는 늘 잠가두고…….”
그 순간 류하리는 현관문을 가리켰다.
“나가요! 어서!”
“네?”
“아…….”
류하리가 말하는 바를 뒤늦게 깨달은 조상아 가족은 기겁해서 밖으로 튀어나갔다.
류하리는 품에서 테이저 건을 꺼내들고 그들을 먼저 내보낸 뒤 자신도 밖으로 나와 방화문을 닫았다.
‘정말 사이다패스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대한 급박하게, 사이다패스라고 가정하고 움직여야지!’
조상아 가족이 겁을 먹고 벌벌 떨며 빌라에 있는 엘리베이터에 타는데 류하리는 그들을 보며 왠지 후련함을 느꼈다.
‘역시 이런 사람들도 죽기는 싫은가 보군. 어휴.’
류하리는 별 생각 없이 그들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이제 어쩌죠?”
“차로 가지요. 차 키 갖고 계시죠?”
“네!”
“그럼 차량으로…….”
류하리가 차량으로 피신할 것을 제안하자 조상아가 불만을 표했다.
“그런데 혹시 그냥 도둑고양이 같은 거 아닐까요? 사이다패스라고는…….”
“도둑고양인지 사이다패스인지 모르지만 일단 피신하는 게 맞아요. 후자의 경우는 죽을 테니까.”
류하리가 그렇게 말하고 차에 타자 학부형이 시동을 걸었다.
“일단 큰길로 가요! 그러면 더 추격해 오진 않겠지요!”
“네!”
좀 전까지는 류하리에게 막 이러쿵저러쿵 싫은 소리 다 하던 사람들이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다.
‘좋아. 말 잘 들으니 얼마나 좋아. 휴우.’
류하리는 차가 움직여서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것에 안도했다.
‘그 소리가 뭣 때문인지 몰라도 사이다패스는 아니었나 보군. 사이다패스였다면 5층 빌라쯤은 그냥 단번에 뛰어내려서 주차장에서 맞닥뜨렸겠지?’
류하리가 그런 생각을 했을 때였다.
문득 뒤쪽으로 창문을 보니 빌라의 테라스에 어떤 인영이 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그 인영이 작은 화분 하나를 들고 있는 게 아닌가?
“어, 엎드려요!”
류하리는 그걸 보고 비명을 지르며 자신 먼저 등받이 밑으로 최대한 몸을 숙여 머리를 보호했다.
-파악!
차량 뒤쪽 유리창에 화분이 박히며 유리파편이 실내로 쏟아져 들어왔다.
“꺄악!”
“으아아아!”
조상아 일가족이 비명을 지르며 난리가 났다.
“괜찮아요! 큰길 쪽으로 도망치면 돼요!”
류하리는 그리 말하고 창문 뒤쪽을 돌아보았다.
빌라 테라스에 있던 인영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아마 더 이상 추격하진 않을 것 같다.
‘정말 사이다패스인가? 아니면 다른 누구? 아니, 하지만 보통 사람은 이 화분을 이렇게 멀리까지 던질 수는 없어. 사이다패스겠지?!’
류하리는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했다.
겁주자고 사이다패스가 올 거라고 했는데 정말 올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 * *
경찰서에서는 난리가 났다.
이미 전국 경찰, 검찰을 뒤집어놓다시피 한 사이다패스가 나타났다니 그것만으로도 난리가 난 것이다.
“잘했어. 류 경위님. 대단한데.”
류하리의 직속 상관인 박진감 경위가 류하리를 칭찬했다.
“아뇨. 잘하긴요. 사이다패스를 잡은 것도 아니고.”
“아니, 그렇지만 류 경위님 거기 없었으면 일가족이 몰살당했을 거 아냐? 아주 큰일 한 거야. 큰일.”
“아하하하하.”
류하리는 머쓱해져서 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월권행위 가깝게 사이다패스라고 허풍 떤 건데 그게 맞아 떨어진 거라…… 이거 민망하네. 뭐 사이다패스가 여기서 잡히면 공이 되겠지만 내가 직접 본 바로 사이다패스는 한남동 고급빌라도 단번에 뛰어넘는 괴물이잖아? 여기서 잡히진 않겠지.’
한남동 고급 빌라의 담벼락을 가볍게 뛰어넘는 초인.
그런 존재를 일반적인 경찰들이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류하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박진감 경위가 말했다.
“하지만 류 경위님. 사이다패스 수사는 전담팀에 맡기라고. 공로를 빼앗기는 기분이겠지만, 여성 경찰을 강력범 상대하라고 던져줄 수는 없는 일이잖아? 아, 이게 성인지 교육에 위배되는 발언인가? 그냥 강력계랑 전담반이 눈이 시뻘개져서 사이다패스를 쫓고 있으니까 그쪽에 맡기라는 뜻이야.”
“네, 알고 있습니다. 저도 딱히 공을 탐내서 뭐 이상한 짓 하려는 게 아니에요. 그건 그냥 어쩌다보니까 동선이 겹쳐서 걸린 거죠.”
“그래그래. 류 경위님은 참 말이 잘 통해서 좋아.”
“하하하.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류 경위님? 그, 여청과 과장님이 보자고 하시는데?”
“……아.”
방금 전까지 호탕하게 웃던 류하리는 올 게 왔다 싶어서 입을 굳게 다물었다.
* * *
마포경찰서 여성청소년과장 송학선 경정은 작달막한 키에 두꺼운 안경을 쓴 여성으로 류하리에게 있어서는 경찰대학의 까마득한 선배라고 할 수 있었다.
여성청소년과는 여성문제와 청소년 계도를 주로 담당하기도 하고 경찰서의 대민지원 임무에 주로 나서기도 하는 곳이라 여성청소년과 과장 출신 여경은 퇴임 후, 지역 시 의원 등으로 정계에 입문하기 좋은 위치다.
그렇다 보니 야심 있는 사람이라면 관할권역 내의 교육재단 등과의 관계가 필요이상으로 끈끈해지기 마련.
송학선 경정은 경찰대학 출신으로 상당히 야심이 있는 인물…… 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런 평판이 있는 송 경정이 매서운 눈초리로 류하리를 노려보았다.
“그래. 류하리 경위. 어쩌다 이 일에 끼어들었지?”
“아, 그, 그게.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제 나름대로 조사를 하다 보니 그만.”
“그래?”
“네. 정보과의 업무는 첩보도 포함되니까요.”
‘월권행위를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내 업무 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다.’ 류하리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었다.
‘요새 좀 경찰서 내에서 평판이 좋아지긴 했지만 정보3팀은 여전히 애매한 조직이야. 이 안에서 제대로 자리매김하려면 오혜정 경사를 팔지 않고 자신의 선에서 해결해야 한단 말이지.’
오혜정 경사가 부탁해서 업무지원 했다고 말해버리면 오혜정 경사가 깨진다. 오혜정 경사는 바로 이 송학선 경정이 장혜리 학생 사건을 대하는 방식에 반감을 품고 류하리를 끌어들였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오혜정 경사를 팔아버리면 류하리는 ‘동료 팔아치우는 못 믿을 인물’, ‘역시 경찰대학 출신 엘리트라 현장직 개무시한다.’, ‘자기만 아는 얌체.’ 라는 평을 듣게 될 것이다.
그래서 시치미를 뚝 떼고 이렇게, 정보과 활동을 하다 보니 그랬다고 우기는 것이다.
“흐음. 아니,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사실 조상아 양과 그 학부형은 학교 재단에서도 좀 골머리를 썩고 있는 상대예요.”
“네?”
“원체 민원을 많이 넣어야지 말예요. 학원 재단이 그런 야박해 보이는 대처를 취한 것은 민원에 시달려서 민원을 원천차단하려고 그랬다고 하더군요. 오해하지 말아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사이다패스 사건 때문에 그 두 가족을 화해시켜야 하는데……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거 알지요?”
“아, 그, 그렇군요.”
당연히 보통 일이 아니지.
별점테러 등의 이지메를 당해서 딸이 투신해 다쳤는데 상대는 죄책감이 아예 없다.
‘설마 이 둘을 나보고 화해시키라는 건 아니겠지?’
류하리는 불길한 예감에 몸을 떨었다.
아니나 다를까…….
데드맨31
민원의 세계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