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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31-66화 (66/269)

제66화

“마침 류 경위가 얼굴도 팔았겠다, 그쪽이랑 안면도 있으니까 사이에서 도와줄 수 있겠어요?”

“제가 그 두 집안의 화해를 중재해 보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부탁해요. 류 경위. 박진감 경위에겐 이미 양해를 구했으니까.”

이미 거절할 분위기는 아니다.

경정이 직접 콕 찍어서 부탁을 하고 박진감 경위에게 부탁하고 있으니 이건 할 수밖에 없다.

“예. 알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오혜정 경사랑 같이 하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류하리는 송 경정에게 인사하고 물러났다.

* * *

오혜정 경사는 거의 엉엉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린이날 테마파크에서 풍선 들고 길 잃어버린 어린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마포에서 온 오혜정 어린이~하면서 방송이라도 나올 것 같은 모습이다.’

류하리는 그리 생각하면서 오혜정 경사에게 다가갔다.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어요?”

“아. 류 경위님. 경정님에게는…….”

“별 말 안 했어요. 제가 그냥 독자적으로 조사하다 만났다고 이야기 했지요.”

“아…….”

“그것 때문에 걱정하신 거예요?”

“아, 아니요. 그것만이 아니라. 그 둘이 만났어요.”

“네?”

“화해를 하겠다고 해서 둘이 만났는데 그게 아주 최악이었다지 뭐예요.”

“아니, 딱 봐도 거 가해자 쪽은 양심의 가책이라곤 1ppm도 없어 보이던데. 그냥 만나게 하면 안 되죠. 왜 그랬어요?”

“마침 그 학생이 의식이 돌아오기도 했고 당사자가 화해를 하고 싶다고 해서, 사이다패스 전담팀에서 그렇게 추진한 모양이에요. 그런데 역시나 화해가 결렬되고 지금 난리가 난 모양이에요.”

“아, 학생이 깨어났어요? 그나마 다행이네요. 그런데 난리라니?”

“화해하러 간 인간이 아주 오만방자하게 이야기를 해서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 부었지요. 그런 사람인 줄 모르고 화해시키러 데려간 강력계 형사들이 성금 모아야겠다고 할 정도로 사태가 엉망인가 봐요.”

“일단 그럼 만나러 가보죠.”

류하리는 오혜정 경사와 함께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 * *

장혜리의 부모들은 수척해져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사이에서 관리하질 못해서.”

오혜정 경사는 일단 부모님을 보자마자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부터 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원래 그런 사람들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걸요. 그러니까 그, 앱에 별점테러 같은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거지요.”

장혜리의 아버지는 머리를 조아리는 오 경사를 보며 사정을 이해한다는 듯 말해 주었다.

“이분은?”

“마포경찰서 정보과 류하리 경위입니다. 따님이 의식을 찾았다고 들었습니다만?”

“다시 잠들었습니다. 진통제를 강하게 쓰고 있어서…….”

“그들은 와서 뭐라고 했나요?”

“그게…….”

장혜리의 부모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 * *

경찰들의 보호를 받으며 온 조상아의 아버지는 병실을 휘휘 둘러보았다.

“장혜리 학생 아버님 되십니까?”

“네. 실례지만 누구신지?”

“조상아 학생 보호자입니다.”

“아!”

“우선 따님께 불행한 일이 일어났던 것에 대해서 유감입니다.”

“유감?”

장혜리의 아버지는 그 말을 듣고 당황했다.

이 사람이 말을 못하는 건가? 악의가 있는 건가?

유감이 아니라 여기선 죄송하다고, 미안하다고 해야 할 게 아닌가?

그런데 어째 거들먹거리고 있는 폼이 미안하다는 마음은 병아리 깃털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거두절미하고 말하겠습니다. 천만 원에 합의 보지요.”

“네?!”

그 순간 장혜리의 부모는 물론 같이 온 경찰들도 아연실색했다.

“병원비가 꽤 나오고 그동안 장사도 못했을 텐데 경제적으로 힘들 것 아닙니까. 여기서 합의 보지요.”

말이야 맞는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대한민국 병원이 의료보험이 된다 해도 천만 원은 너무 적다.

모욕하려고 하는 건가?

“이봐요. 지금 뭐 하러 온 겁니까? 당신?”

“차, 참으세요. 선생님.”

보고 있던 경찰들이 사이에 섰다. 그렇지 않으면 장혜리의 아버지가 바로 두들겨 팰 기세였기 때문이었다.

“천만 원?! 제대로 된 사과조차 없이 다짜고짜 찾아와서 감히 그런 푼돈을 들이밀어?!”

“아, 이런 참나. 이럴 줄 알았어. 돈이 부족하다 이거지?!”

“뭐?!”

“이봐요. 당신들 때문에 우리는 사이다패스인지 뭔지 하는 살인마에게 쫓기고 있어! 우리 딸애도 수험생인데 지금 공부도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그거 알아? 당신 그거 살인교사야 살인교사! 사형도 가능한 죄라니까!”

“억…….”

너무 화가 나고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그걸 또 이 남자는 자기가 말 잘해서 상대의 말문을 막았다고 생각하는지 으스대면서 말했다.

“살인교사죄로 신고해도 시원찮은데, 뭐 당사자가 직접 사이다패스에게 살인교사를 한 것 같지는 않으니까 이쪽도 좋게좋게, 병원비 좀 보태주겠다는데 화해합시다. 응? 천만 원이 적으면 그래. 천오백까지는 낼 수 있지.”

“당신! 지금 당신 자식 때문에 우리 딸이 어떻게 됐는데?! 그런 푼돈으로 우릴 모욕해?”

“아니, 대체 얼마를 원하는데 그러는 거요?”

“일 없소! 당신 같은 사람에겐 십 원 한 장 안 받을 테니까. 내 손으로 토막 내서 육수를 내버리기 전에 꺼지쇼!”

“…….”

같이 온 경찰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그들은 둘을 화해시켜서 어떻게든 사이다패스의 위협을 줄이고자 온 것이었다.

‘그런데 설마 화해는커녕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어지간하면 어떻게든 중재해서 화해를 시켜보겠는데 이건 뭐, 워낙 심한 말을 해버려서…….’

‘우린 무리다. 데리고 가자.’

경찰들은 암묵적인 합의하에 고개를 끄덕이고 조상아 가족을 물러나게 하고 연신 사죄했다.

* * *

“오, 맙소사.”

류하리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진짜 그렇게 말했단 말이에요? 세상에.”

엄밀히 따지면 그들은 지금 목숨을 위협받고 있는 상황,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그런데 오히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은 잘못한 거 아무것도 없는데 상대가 괜히 억하심정을 품어서 이상한 살인마가 우리들에게 붙었다.

이건 너희들에 의한 살인교사니 너희가 잘못한 거지만 네 자식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으니 우리가 통 크게 양보하겠다.

그런데 병원비 다 내줄 건 아니고, 어차피 뛰어내린 건 너희 딸의 선택이지 우리 딸이 떠민 것도 아니니까 병원비 보태 쓰라고 천만 원이면 되겠지?

그런 식으로 생각하고 접근한 것 같았다.

‘이미 사고를 이렇게 거하게 쳐놓고서 둘을 화해시키고 합의를 보게 하라니 어쩌란 말야?’

송 경정이 류하리를 불러다 둘을 화해시키라고 한 게 보통 난제가 아니다.

송 경정이 류하리에게 엿을 먹이고 싶어서 이걸 맡긴 게 아닐까? 의심이 갈 정도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 일이 없게 해야 했는데 사이다패스가 나타나서 그만 전담팀이 붙어서 그렇게 무작정 화해시키려고 했나보더군요.”

“이해는 합니다. 그때 같이 온 경찰 분들도 사죄하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장혜리의 아버지는 경찰에겐 화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누구와 달리 정말 인격자시네. 음…….’

류하리는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저 그런데 혹시나 해서 하는 질문이지만 탐정을 고용하셨나요?”

“네?”

“그러니까 시현탐정사무소에서 접촉하지 않았나 해서요.”

“탐정이요? 아니, 그럴 리가요.”

“네?”

류하리는 전혀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에 당황했다.

‘연기인가? 탐정 고용은 보통 비밀로 하니까. 하지만 내가 정확하게 누구인지 찍어서 말했는데 전혀 켕기는 구석 없이 그냥 순수하게 의아해하는 걸 보면 연기는 아닌 것 같은데?’

류하리는 의아해했다.

시현이 이번 사건의 주변을 배회하기에 당연히 이들이 고용한 줄 알았는데.

‘이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인가? 설마 학생들은 아니겠지?’

어린 학생들에게 그 이상한 계약을 들이밀고 수명을 빼앗아간다면 류하리는 시현에게 많이 실망하게 될 것 같았다.

* * *

“아무래도 여기서 피해자를 바로 설득하는 건 무리가 있으니까 그 조상아 가족에게 이야기 좀 해 봐야겠어요.”

류하리와 오혜정 경사는 이런 분위기에서 도저히 피해자 가족에게 합의와 화해를 종용할 수 없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뭐 일단 사이다패스에게 시달리고 나면 그다음엔 말을 잘 듣지 않을까요?”

류하리가 별 생각 없이 그렇게 말하자 오혜정 경사가 깜짝 놀랐다.

“아무리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도 저희들은 경찰인데 연쇄살인마에게 사람이 위협 당하게 방치할 수는 없지요.”

“…….”

“에, 왜요? 제가 이상한 말을 했나요?”

“아, 아뇨. 조금 감동해서요. 그리고 저 자신도 걱정이 되고.”

추호의 거짓도 없이 진실되게 경찰로서의 사명을 이야기 하는 오혜정 경사를 본 류하리는 자신이 부끄러웠다.

‘이게 다 그 남자에게 물들어서 그래. 나도 원래는 순진무구한 경찰이었는데!’

류하리는 괜히 애꿎은 시현만 원망했다.

* * *

“아이 진짜…….”

조상아는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장혜리가 뛰어내렸을 때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 없이 평화롭게 일상을 영위하던 그녀였다.

하지만 연쇄살인마가 자신들을 노리고 있다며 집 안을 경찰들이 조사하고 있고, 자택이 위험해서 졸지에 인근 호텔로 피신하고 경찰들이 자신들을 경호하겠다고 붙어 있으니 아무리 그녀라 해도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때 누군가가 호텔 문을 노크하는 게 들렸다.

“마포 경찰서 류하리 경위입니다. 조상아 학생 안에 있나요?”

“네. 무슨 일이시죠?”

“잠시 이야기 좀…….”

조상아는 냉큼 문을 열었다.

“흐음.”

류하리와 오혜정 경사가 들어왔다. 류하리는 방 안을 보다 아무렇게나 낙서가 잔뜩 되어 있는 학습지를 발견했다.

살인마에게 살해위협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공부인가?

“공부가 손에 잡히지 않나보지요? 조상아 학생?”

류하리가 물어보았다.

“당연히 손에 안 잡히죠.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는 연쇄살인마가 노리고 있다는데. 그래서 무슨 일인가요? 살인마는 잡았나요?”

“아니. 그랬다면 지금쯤 언론에서 난리가 났겠지요. 학생.”

“그럼 뭐 하러 오셨나요? 설마 화해를 강요하러 오신 건 아니겠지요? 저는 잘못한 거 없어요.”

“…….”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고 우기는 조상아를 보며 류하리는 순간 진심으로 화가 났다.

“보통 경찰이 화해를 중재한다 하면 피해자 쪽이 억울해하는 법이지요. 아무런 감정적 부채가 해결되지 않았고 피해원복도 없는데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화해하면 일방적으로 피해자가 손해를 감수해야 하니까. 하지만 가해자 쪽은 억울할 게 없을 텐데요?”

류하리가 그렇게 말하자 옆에서 듣고 있던 오 경사가 깜짝 놀랐다.

‘류 경위님! 그,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해요? 가해자라느니 범인이라느니 그런 단정적인 어조는…….’

과연 조상아의 표정이 구겨졌다.

데드맨31

민원의 세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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