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7화
“가해자라고요? 제가요? 아니, 걔가 자기 혼자 뛰어내린 걸 절 보고 어쩌라는 거예요?”
“뛰어내린 사건은 별개로 치더라도 적어도 영업방해는 발뺌하지 못할 텐데요? 그리고 어차피 사이다패스에게 쫓기고 있는 지금, 언제까지고 호텔에서 경찰들 경호받아가며 피신해 있을 수는 없어요. 차라리 이 경우는 빠르게 학생을 소년원으로 송치시켜버려서 안전한 철창 안으로 들여보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소, 소년원이요?”
듣고 있던 오 경사는 기절할 것 같아서 류하리와 조상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보호자도 없는 상황에서 미성년자를 겁박하다니…… 대체 무슨 짓을…….’
모든 공무원들이 그렇지만 경찰들 또한 민원에 취약하다.
류하리 경위가 수사원칙을 어기고 미성년자를 겁박했다. 그렇게 민원을 넣으면 아무리 경찰대학 수석졸업생이라도 징계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류하리도 지금 자신의 수사방식이 경찰로서는 해서 안 될 만큼 강압적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답이 없어.’
기본적으로 조상아와 그 가족들은 진상이다.
목소리 크면 이긴다.
법적으로 처벌받지 않는 선에서는 남에게 아무리 함부로 대해도 상관없다.
갑일 때 갑질 한다.
이런 원칙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민원이 두려워서 소극적인 태도로 나가면 계속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경찰이 그런 소리를 해도 돼요? 가세요. 부모님 있을 때 이야기 하도록 하죠.”
조상아가 그렇게 말했지만 류하리는 책상의 학습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조상아 학생. 뭘 모르나본데. 민원에 벌벌 떠는 건 호구지책으로 경찰 공무원이 된 사람들이지 저는 아니에요.”
“네?”
“부끄럽지만 제 아버지가 KOSPI 상장기업의 오너랍니다. 제 입장에서 경찰 급료는 용돈 정도죠. 제 명의로 건물도 있거든요.”
류하리가 그렇게 말하자 조상아가 흠칫 놀랐다.
법에 크게 걸리지만 않으면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수록 다른 사회적 권위나 힘 앞에 약하다.
자신이 갑이 아니라 을이 되는 순간 그들은 하염없이 찌그러지니 류하리는 그들에게 자신이 부잣집 딸이라는 걸 과시했다.
“뭐 수험은 한동안 걱정 안 해도 될 거예요. 소년원에 들어가면 느긋하게 공부할 시간이 주어지겠죠.”
과연, 류하리의 돈 자랑과 협박에 조상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걔가 그냥 뛰어내린 거예요. 살짝 흔들기만 하려고 했는데 설마 뛰어내릴 줄은 몰랐다고요.”
“그래서, 살인마가 쫓아오는데도 사과를 못 할 정도로 미안함을 못 느낀다 그거지요. 학생? 뭐 화해하기 싫으면 안전한 소년원 안에 들어가는 걸 추천한다니까요. 이야. 학생 참 훌륭해요. 대단한 신념이네요. 미안함도 없는데 사과하고 화해해서 자신의 신념을 굽히느니 소년원에 들어가겠다는 그 정신! 절개라고 해야 하나요?”
“윽…….”
“얄팍하군요. 정말 똑똑한 학생이라면 계산기 두드릴 것도 없이 사죄해서 화해하는 쪽이 훨씬 이득이라는 걸 알 텐데요? 미안함을 느끼라고까지는 않을게요. 감성지능이 그 정도로 발달한 것 같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그럼 연기나 연출 정도는 할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그 정도 생각도 없나요?”
류하리는 조상아가 자신의 지적능력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점을 공략했다.
조상아를 포함해 그녀의 가족들은 자신들이 똑똑하다고 믿고 있다.
법원사무관, 교사, 그리고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고 있으니 본인들은 똑똑하다.
법에 걸리지 않는 선에서 똑똑하게 이득을 챙기고 필요하면 사람들을 조종해서 얼마든지 경쟁자를 매장시킬 수 있다.
그렇게 자부하고 있었을 텐데 그런 조상아의 자존심을 류하리가 긁어버린 것이다.
‘넌 똑똑해서 이성적인 게 아니야. 감성이 메말라서 그나마 있는 이성이 돌출된 거지. 인간이 얄팍하면 조약돌만 한 이성도 수면 위로 돌출되는 법이지.’
류하리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고. 류 경위님 성격 불같구나. 난리 났네, 난리 났어.’
오혜정 경사는 기절할 것 같았다.
진상 민원인을 정면으로 들이받아버리다니.
‘그런데 시원하긴 시원하다…….’
오혜정 경사가 내심 류하리에게 감탄할 때였다.
“당신들 지금 뭐하는 거야!”
조상아의 부모가 도착했다.
* * *
조상아의 부모들은 딸의 분위기가 침울해져있는걸 보고 당황했다.
인상이 어두워진 딸과 뭔가 초탈해버려서 재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류하리가 대조되었다.
“당신들 지금 뭐하는 거야?”
“아, 저, 그, 그게…….”
오 경사는 찔리는 게 있어서 벌벌떨었지만 류하리는 태연했다.
“사이다패스의 위협에서 따님을 안전하게 지킬 방법에 대해서 알려드리고 있었습니다.”
“뭐?”
“소년원에 넣는 거지요.”
“뭐야?!”
“따님이 영업방해를 했다는 증거는 확실히 있습니다.”
“웃기지 마! 우리 딸이 그럴 리가 없어! 그리고 설령 했다 치더라도 맛없으니까 맛없다고 하는 게 뭐 소년원까지 갈 일이야?!”
“영업방해 끝에 그 집안 딸이 투신 했다고 하면 실형을 받기엔 충분하죠. 게다가 이건 오히려 따님에게도 좋은 일입니다. 아무리 사이다패스래도 소년원 안에 있는 학생을 죽이려 들진 않겠지요.”
“이…… 지금 협박하는 거야? 우리 딸 인생을 망치려고 작정했어?! 당신 뭐야?! 경찰이 그래도 돼? 민원 넣을 거야!”
“협박이 아니라 현실이지요. 뭐 기분이 풀리신다면 민원은 얼마든지 넣으셔도 됩니다. 그런데 저, 이런 말씀 드리긴 그렇지만 두 분도 같은 공무원 아니신가요?”
“뭐?”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런데 그때였다.
갑자기 조상아의 부모, 두 사람의 휴대폰이 동시에 울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어…….”
“이런.”
그들이 전화를 보고 당황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전화인 것 같았다.
둘 다 류하리의 눈치를 살피며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네……. 예? 민원이요?”
조상아의 부모들의 동공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인슐린 쇼크 일으키는 당뇨병환자의 모습 같다.
정말 이대로 쓰러져서 죽을지도 모르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 아니, 아닙니다. 그건 오해예요. 네. 뭐, 뭔가 착오가 있을 겁니다.”
“네. 말도 안 돼요.”
그들은 전화기 너머를 향해 변명을 하다 두려움과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류하리의 눈치를 살펴보았다.
‘아, 맙소사. 이거 그 인간 짓이군.’
류하리의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시현이 떠올랐다.
아마도 시현이 뭔가 손을 써서 이들에게 민원폭탄을 안겨주었으리라.
하지만 이들은 류하리가 했다고 믿고 있었다.
류하리가 ‘너희들도 공무원 아니냐?’ 라고 말하자마자 민원폭탄이 쏟아졌으니 이들의 머릿속에서 류하리는 정말 무시무시한 괴물쯤으로 보일 것이다.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오해의 여지가 생겼군.’
류하리는 그 오해를 풀어주지 않았다.
아니, 풀어주려고 노력해도 저쪽이 믿지 않을 것이다.
과연 겁을 집어먹은 조상아의 부모는 방금 전까지 민원을 무기로 휘두르던 태도를 손바닥처럼 뒤집었다.
“저, 그, 저는 화해하려고 했지만 그쪽이…….”
“안심하세요. 우리 오 경사님이 코치해 줄 테니까 연습 많이 한 다음에 다시 한 번 사과해 보도록 하지요.”
“네? 저요?”
오혜정 경사는 갑자기 자신에게 공이 토스되자 정신을 못 차렸다.
류하리가 민원받기 딱 좋은 위협을 계속 날려서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는데 그 상황에서 자신에게 공을 토스할 줄이야.
“마음에서 미안함이 우러나지 않더라도 겉보기도 중요한 거예요. 진심으로 미안하고 후회하고 있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게 하겠다. 그걸 매끄럽게 말하고 사과할 수 있도록 오혜정 경사님과 함께 연습하도록 하지요.”
“네? 저요?”
류하리는 여전히 당혹스러워 하고 있는 오혜정 경사에게 윙크를 했다.
* * *
서부지검 수사1부와 검사 최형림은 현재 프로파일러이자 경찰대학 교수인 김지상 교수를 만나고 있었다.
“으음. 사이다패스 말이지요. 아직 언론에 뭐라고 할 만큼 분석 자료가 나와 있진 않은데, 일단 의문을 품자면 단독범 같지는 않습니다.”
김지상 교수는 한때 자신의 제자였던 최형림에게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했다.
원래 인품이 훌륭해서일까? 그게 아니면 최형림이 검사여서일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지요?”
“우선 선언문을 내비치는 범죄자들은 대부분 자기 과시욕이 강해요. 자기 과시욕이 강하니까 선언문이라는 걸 내게 되는 거고 이런 경우 표적을 좀 유명한, 인터넷에 이슈가 되는 이들을 주로 노릴 겁니다.”
“실제로 그러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러면 또 마음에 걸리는 게 이거지요. 부장검사 살인사건. 물론 부장검사라는 게 죽이면 다들 화들짝 놀랄 만한 타깃이긴 하지만 과시욕을 충족시키기에는 좋은 타깃이 아니에요. 번거롭기만 하고. 그렇게 유명인인 건 아니죠.”
“그래도 그 사건 이후 유명해지지 않았습니까? 인기도 많이 끌게 되었고요. 부끄럽지만 검사를 좋아하지 않는 여론들이 많아서 수사부장님을 살해한 후부터 인터넷에서 사이다패스를 영웅시 하는 시선이 늘어났지요.”
“결과론적으로는 그렇지요. 하지만 타깃의 일관성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사이다패스는 단독범이 아닌 게 아닌지?”
“단독범이 아니다?”
“네. 적어도 사이다패스는 합동범, 그러니까 복수의 팀이지 않을까…… 뭐, 이미 일어난 살인사건들이 단독범의 소행일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폭력을 동반하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긴 합니다만.”
“그렇군요. 고견 감사합니다.”
“프로파일링 자료는 정리되는 대로 전담수사팀에 보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프로파일링은 어디까지나 참고자료라는 걸 염두에 두시고 자료가 계속 나오면 그만큼 업데이트 되어야 한다는 것도 잊지 마시길. 그리고 가급적이면 언론엔 공개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언론에 공개했다가 틀리면 망신은 제가 혼자 당하니까 말이지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최형림은 김지상 교수에게 작별인사를 올리고 일어났다.
그때 전화기가 울렸다.
최형림이 스마트 폰을 꺼내려다 폰이 떨어졌다.
“스마트 폰을 여러 개 가지고 있군요?”
김지상 교수가 날카로운 눈으로 최형림을 바라보았다.
“네, 업무용과 사생활용, 뭐 그 외 이것저것 말이지요.”
최형림은 그리 말하고 떨어진 스마트폰을 주워들었다.
“하긴 당신은 학생 시절에도 꽤 인기 있던 학생이었지요. 하하.”
김지상 교수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부끄럽습니다.”
최형림은 김지상 교수에게 인사하고 자리를 빠져나왔다.
* * *
“흐음…… 아직은 괜찮은가. 날 의심하는 것 같진 않고.”
최형림은 사이다패스를 조종하는 데 있어서 가장 위협이 되는 요소로 프로파일링을 꼽고 있었다.
사이다패스의 초인적인 신체능력은 수사를 혼선에 빠트리기에 충분하지만, 문제는 정신이다.
정신 분석을 통해서 진실에 도달할 수 있으니 자신이 직접 프로파일러에게 상담해서 현재 어디까지 분석이 되어 있는지 알아본 것이다.
데드맨31
민원의 세계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