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68화 (68/269)

제68화

‘하지만 방심해선 안 되겠어. 합동범, 복수정범이라 생각하다니. 사이다패스가 고른 표적과 내가 고른 표적의 차이를 알아채고 있다. 인터넷 청원을 더 많이 받아서 돌려야 하나? 아니면 성취의 상납파일에서 뽑아서?’

최형림은 그리 생각하다가 스마트폰을 보았다.

전화는 성신아에게서 온 것이었다.

너무 오래 안 받아서 끊어졌던 것 같다.

최형림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죄송합니다. 바쁜 상황이라 못 받았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선배님. 그 마포구 학생 영업방해 사건 말이지요. 합의되었대요.]

“흠…… 그래요? 잘됐군요.”

경찰 내부에서는 기왕 이렇게 된 거 미끼로 써서 잠복해서 사이다패스를 잡자는 의견도 있었다.

사이다패스가 누구인지 감도 잡을 수 없으니 결국 사이다패스를 잡기 위해서는 함정 수사가 필요했다.

그렇지만 그 의견은 곧 기각되었다.

사이다패스가 조상아와 그 가족 중 누구를 노리는 줄 모르며…… 정확히 사이다패스라는 증거도 없다.

게다가 조상아 가족 외에도 인터넷 상에서 사이다패스에게 죽여 달라고 청원이 빗발치는 사람이 하나 둘이 아니다.

처음엔 조상아 가족을 죽이려 했다가도 경찰이 경계서고 있으면 다른 표적 먼저 죽일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한쪽에 함정을 깔아두겠다고 많은 경찰을 배치해 두면 기본적인 작업이 아무것도 안 된다.

대한민국에서 경찰은 만성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사건이 벌어진 후 사후 수습에는 대한민국 경찰을 따라올 만한 이들이 별로 없다.

그러나 경호같이 계속해서 인적자원을 소모해야 하는 일은 그야말로 쥐약이다.

결국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대상을 기다리기 위해 함정수사를 펼치느니 화해시켜서 사이다패스에게 명분을 빼앗아버리는 게 낫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쉽게 화해가 될 만한 일이었나요?”

경찰들은 조상아와 그 가족의 태도에 학을 떨고 있었다.

사이다패스 전담팀의 강력계 형사들은 괜히 화해를 종용했다가 조상아 가족이 그들을 모욕하는 바람에 사죄의 의미로 박봉에서 각출해서 장혜리네 집에 성금을 전달했을 정도였다.

‘저희가 저 진상을 멋도 모르고 데려와 심려를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따님의 쾌차를 빕니다. 이건 얼마 안 되지만 병원비에 보태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 형사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그리 큰돈은 아닙니다.’

그렇게 정중한 사과와 성금전달을 해야 할 만큼 조상아 가족의 진상도가 지나쳤다.

최형림도 성금을 냈으니 당연히 조상아 가족의 진상짓거리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대체 누가 있어 그 진상들에게 인간의 법도를 가르쳤단 말인가?

[류하리예요.]

“류하리 경위 말입니까?”

[네.]

성신아는 류하리가 활약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안 드는지 목소리가 갈라지고 있었다.

“흠. 놀랍군요. 아주 인상적이에요.”

[하아. 뭔 수를 썼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일단 상시 경호는 빼고 지구대에 순찰을 매시간 돌도록 귀띔해 두도록 하기로 했어요. 괜찮겠지요?]

만약 그렇게 경비레벨을 낮췄다가 사이다패스가 조상아 가족을 몰살하기라도 하면 또 수사팀이 욕을 먹게 된다.

그러나 일선 경찰들은 인력을 어떻게든 덜 투입하고 싶어서 난리다.

그래서 최형림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이리라.

“괜찮을 듯합니다.”

최형림은 그렇게 말했다.

[괜찮으시겠어요? 상부에 물어보지도 않고?]

평검사인 최형림이 그걸 결정할 위치인가?

성신아가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네. 이 일에 관련된 상급자 분들이 자꾸 경질되는 바람에…… 어차피 지금은 제가 책임져야 합니다.”

또 새로운 부장검사가 와서 사이다패스 전담팀을 지휘하게 되겠지만 결국 그도 최형림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쭈욱 수사팀에 남아서 실무를 진행하는 최형림은 이제 사이다패스 수사의 박힌 돌이 되어서 굴러온 돌이 아무리 상급자라 해도 최형림을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내가 원하던 방향이긴 하지만, 이것 때문에 꼬리가 잡힐 수도 있으니 조심해야겠지.’

최형림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최형림의 또 다른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사이다패스로군.’

최형림은 자신의 전화로 걸려오는 전화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 * *

졸지에 형사들이 각출해서 성금을 전달해야 할 정도로 진상 짓을 벌였던 조상아 가족이 마침내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

그리고 그 사과를 주선한 게 바로 류하리 경위와 오혜정 경사라는 사실이 경찰들 사이에서 퍼졌다.

“이야. 역시 대단한데?”

“무슨 재주로 그런 진상들을 설득한 거야?”

“대단하네.”

“류 경위님이 참 처음엔 아프다고 막 쉬어서 이상하다고 여겼는데 몸 사리는 것도 없이 이일저일 참 잘하신단 말야. 괜히 경찰대 학생이 아닌가?”

경찰들은 류하리의 이야기를 하다가 마침 류하리가 마포경찰서로 돌아오자 다들 입을 다물고 류하리에게 아는 체를 했다.

그중에는 근육질의 경찰, 곽정수 경장이 있었다.

과거 마약거래 사범들을 잡을 때 류하리와 함께 위장잠입을 했던 헬창 경찰이었다.

“류 경위님. 이야기 들었습니다. 이야. 대단하세요.”

“아니요. 뭘요. 오혜정 경사님이 수고하셨죠. 저는 별로…… 부끄러워요.”

실제로 류하리의 설득(?)은 설득이라기보단 협박에 가까웠다.

그 내막을 알게 된다면 다들 칭찬보다는 비난을 퍼부으리라.

그래서 류하리는 평판이 좋아져도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 그녀는 마음이 복잡했다.

시현이 조상아 가족에게 손을 썼다는 게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복잡한 그녀에게 곽정수 경장이 말을 걸어왔다.

“일단 한 건 끝난 것 같은데 혹시 시간되십니까?”

“……그거 혹시 술 마시자는 권유인가요?”

“하하하. 술은 근육합성에 방해가 되니 안 마십니다. 술 대신 건전하게 차라도 함께 어떻습니까?”

“고맙습니다만 사양하지요. 지금 당장 가야 할 곳이 있어서요.”

“그런가요? 아쉽군요. 그럼 다음 기회에…….”

“네.”

류하리는 곽정수 경장의 제안을 거절하고 업무 마감을 한 뒤 자리를 떴다.

* * *

시현탐정사무소는 텅 비어 있었다.

“아니, 원한도 많은 사람이 지금 뭐하는 거야? 음. 전화를 걸어봐야 하나?”

류하리가 전화를 걸자 계단 밑에서 벨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현이 계단을 걸어 올라왔다.

“오셨습니까? 류 경위님.”

“네네.”

“들어오시지요.”

시현이 탐정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류하리는 기꺼이 시현의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며 물어보았다.

“장혜리의 가족은 당신에게 의뢰한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들에게 직접 물어보셨습니까?”

“네. 아무래도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던데요.”

“그렇군요. 수사관의 감입니까?”

“네. 그런데 그 수사관의 감이 말이죠. 차량에 화분을 던진 놈이 사이다패스가 아니라 당신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시현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그러나 류하리는 시현의 소행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거 프로끼리 왜 그래요? 처음엔 저도 꼼짝없이 사이다패스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생각해 보니까 당신이 그들의 주위를 배회하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게 이상하더라고요. 게다가 갑자기 그 조상아 학생의 학부형들에게 민원이 빗발치기 시작하고 말이죠. 그래서 당신이 화분을 던진 범인이라고 추리했는데 어찌 생각하세요?”

“엉망이군요.”

“엉망이라고요?”

“네. 그건 마치 추리 영화에서 어, 저 사람 비싼 배우네? 그럼 뭐가 있겠지. 하고 짐작해서 때려 맞추는 것과 같은 방식이군요. 사건 내의 정보를 가지고 추리하는 게 아니라 사건 밖의 선입견을 가지고 추리하는 것이 아닙니까?”

“제 나름의 핫 리딩이라고 해 두죠. 그래서 답은?”

“네, 저였습니다.”

“아, 맙소사.”

류하리는 소파의 등받이에 쓰러지듯 몸을 기대고 천장을 바라보며 한탄했다.

“경찰들이나 관련자들에겐 사이다패스 소행이라고 했는데…….”

“소행 같다고 하셨겠지요. 제가 아는 류 경위님 성격을 생각해 보면 확정짓는 발언을 그렇게 쉽게 할 리가 없습니다.”

“그래도 그게 그거지요. 이 사실이 밝혀지면…… 아니, 뭐 화해시켰으니까 괜찮지만 만약 사이다패스 잡겠다고 함정수사를 시작했으면 민폐를 끼칠 뻔했잖아요?”

“설득하셨으니 된 거 아닙니까? 게다가 그 설득에 제 도움이 없진 않았을 텐데요?”

시현이 민원폭탄을 터뜨려 준 덕분에 류하리는 손쉽게 그들을 설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게 내 덕분이다~라고 말하는 태도는 너무 뻔뻔하다.

“어떻게 한 거예요? 아니, 의뢰인은 누구예요?”

“누구인지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만, 그 가족이 진상 짓을 한 대상은 하나 둘이 아니었다는 것은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그래서 진상인 사람들에게는 진상을 붙여줌으로서 역지사지의 계기를 마련해 준 거군요.”

“네. 현대사회는 모두가 얽혀있는 세상입니다. 공무원이건 자영업자건 약간의 돈과 사람들을 좀 쓰면 쉽게 고통을, 아니, 교훈을 줄 수 있지요.”

고통을 준다는 말을 돌려 말하는 태도가 참으로 얄밉다.

하지만 그들에게 교훈이 필요했었다는 건 류하리도 동감하는 바였다.

“어쨌건 당신 소행이었다 이거지요? 결론은? 세상에. 거기 복층 빌라에 만약 사람들 가서 맞닥뜨렸으면 어쩌려고 그랬어요? 주거침입이잖아요?”

“류 경위님이 있으니까 자연히 사이다패스에 신경이 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류 경위님은 사이다패스를 실제로 본 적이 있으니까. 그녀와 직접 격돌하는 짓을 하진 않겠지요.”

즉, 시현은 류하리가 저들을 대피시킬 거라는 걸 알고 잠입을 시행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럼 이제 된 건가요? 그들에게 날린 민원은 거둬주실 건가요?”

“아니요. 이제 시작이지요.”

“시작이라고요?”

“네. 많은 사람들이 법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고 기본적인 상호호의를 무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다른 사람들은 멍청해서 호의를 보내고 법에 걸리지 않게 공격하지 않는 게 아니거든요. 저들이 제 의뢰인에게 호의를 주지 않았으니 저들이 현대에서 누리는 안전과 평화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는지 알려 주어야겠지요.”

“아.”

아무래도 시현의 작업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시작인 것 같았다.

“그들의 주택을 확인해 봤습니다. 위에 복층 테라스는 불법 테라스더군요. 구조변경 민원을 넣을 겁니다. 그리고 주차장에 소화전 위치도 잘못되어서 소방법을 어기고 있어요. 그것도 민원에 넣어야겠지요? 그리고 그 빌라는 전체가 그 가족의 소유물인데 밑에 세를 주고 있더군요. 하지만 임대사업자 등록을 안 하고 월세를 탈세하면서 받고 있더군요. 공무원 치곤 참 담이 크다고 해야 할지…….”

“……와아.”

직장만이 아니라 자택까지 전방위로 민원폭탄을 쏟아 부을 셈인 것 같았다.

류하리는 시현의 꼼꼼함에 기가 질렸다.

“거기 딸이 수험생인데 그런 민원 폭탄을 받기 시작하면 수험을 망치지 않을까요?”

“미안하지만 시현탐정사무소는 고객만족이 최우선이며…… 고객께서는 아마 그런 사소한 문제는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기뻐할지도 모르겠군요.”

‘아, 틀렸군. 이 사람은 항상 고객만족이 최우선이지.’

류하리는 시현을 좀 완곡하게 말려보려고 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는 짓이었다.

“늘 바쁘게 움직이는군요. 흠. 아, 오늘 그러고 보니 직장에서 식사권유를 받았었는데 말이죠.”

“식사 권유요?”

“네. 뭐, 부담스러운 사람이긴 하지만 저보다 하급자인데 당당하게 제게 식사권유를 하는 건 꽤 멋있었어요.”

“하아.”

시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시죠.”

“네?”

“마침 저녁 먹을 시간이었거든요. 가시죠.”

“아하하. 그런 의미로 말한 건 아닌데.”

“다이어트 중이십니까?”

“아뇨. 가죠.”

류하리는 흔쾌히 소파를 박차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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