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69화 (69/269)

제69화

오월동주의 동상이몽 #1

“날 사칭하는 놈들이 너무 많아!”

사이다패스는 최형림의 집 안에 들어와서 성질을 내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 피자 시키자.”

“피자 말입니까? 후우. 이거 보이십니까?”

“손목? 뭐야 그건.”

“스마트워치입니다. 원래는 명품시계가 있던 자리에 이게 있지요.”

최형림은 사이다패스가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서 탐정 시현을 고용하면서 그 경비를 대느라 허덕이고 있었다.

물론 미카엘이 도와주고 있긴 하지만…… 아무리 뒷돈이라고 해도 너무 많이 받으면 커리어 관리에 지장이 생기기 때문에 조심, 또 조심하고 있었다.

그래서 원망 삼아서 사이다패스에게 말한 것이다.

하지만 살인도 마음대로 저지르는 이가 이 정도로 미안해하거나 꺼려하는 기색이 있을 리 없다.

“좋구나. 신품이네. 명품시계보다 훨씬 기능도 다양하잖아? 심박수도 측정되고 GPS도 붙어 있고 말야.”

“지금 광고하는 겁니까?”

“그런 건 아닌데. 아, 이제 내가 이제 제품명과 스펙을 줄줄 외워야 할 타이밍인가?”

“하아.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당신 때문에 제가 경제난을 겪고 있다 이겁니다.”

“에이. 그래도 검사가 피자 한 판 못 살 정도는 아닐 텐데? 피자 사 줘, 피자. 정말 먹은 지 꽤 되거든?”

“…….”

* * *

최형림은 피자 배달부에게 피자를 받아들고 테이블에 놓았다.

사이다패스는 대뜸 피자에 달려들며 좋아했다.

“와! 피자 진짜 오래간만에 먹는데…….”

“오랜만입니까?”

“음, 뭐랄까. 어? 얼마만이지?”

사이다패스는 피자를 입에 물면서 의아해했다.

“기억이 잘 안 나.”

“…….”

“어쨌건 그래서 말야. 앞으로 계획은 뭐야? 나 사칭하는 놈들 죽여도 돼?”

“당신을 사칭하는 놈들은 대부분 잡범입니다. 그런 놈들을 죽이면 여론이 나빠집니다. 죽어 마땅하다고 공분을 사는 존재이거나 권력자를 처치해야 당신의 존재의의가 있는 겁니다.”

“그럼? 다음 타깃은 뭐야?”

“한동안은 페이스를 조정하도록 하지요. 새 수사부장이 결정될 때까지 말입니다.”

“새 수사부장을 아직도 안 뽑았어? 내가 알기로 수도권 지검의 수사부는 꽤 인기가 있는 걸로 아는데?”

“네. 법무부나 대검찰청이 더 인기 있긴 하지만 서부지검 수사부도 꽤 인기 있는 자리지요. 하지만 당신이 검사들을 죽여버리잖습니까?”

“흠. 검사들이 사명감도 없군.”

“당연히 없지요. 원래 검사라는 건 현대의 과거시험입니다. 집안도 재산도 변변치 않은 사람이 유일하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이기 때문에 자기 재주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 성공하기 위해서 오는 거지요. 물론 정의감이나 사명감이 없지는 않겠지만 성취에 대한 욕구가 없을 리 없어요.”

“그리고 성취에 대한 욕구는 목숨보다는 뒤처진다. 그거지?”

성취, 돈과 권력, 명예에 대한 욕심은 생명이 있고 나서 의미가 있다.

이탈리아 마피아들이 기승을 부릴 때 그들은 검사장의 차량을 폭파시키고 차 옆에 오토바이를 붙인 뒤 기관단총으로 사격하는 식으로 검사들을 살해했다.

사명감을 가진 사람은 죽어서 성자의 반열에 오르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다들 마피아를 피해 다녔다.

한국에서 그런 식으로 검사에게 직접 공격을 감행할 경우 과연 얼마나 남을 것인가?

“그러니까 지금 검사들이 내가 무서워서, 혹은 귀찮아서, 하여튼 이쪽 일을 맡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거지? 그럼…….”

“현재 제가 실무를 전부 담당하고 있지요 그래서. 실질적으론 제가 임시 수사1부 부장입니다.”

“잘은 모르지만 그거 한국 관료사회에서 치면 놀라운 거지?”

“네. 평검사가 이렇게 확실하게 자리매김하는 경우가 별로 없지요.”

어느 조직이나 그렇지만 조직이 성숙해지면 인사평가가 힘들어진다.

공무원들이 가급적 새로운 일을 만들기 싫어해 복지부동하는 것도, 군대에서 사고가 터지면 지휘관들이 은폐하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잘해서 높은 평가를 얻어내기는 쉽지 않고 실수로 낮은 평가를 얻어 문책받기는 쉽다.

평온한 시대의 관료란 그런 것.

하지만 평지풍파가 일어난다면?

난세가 찾아오면 영웅이 나타나기 마련, 최형림은 지금 난세를 맞이한 검찰 관료계에서 우뚝 솟은 영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사이다패스를 여전히 잡지 못하고 있지만 이제 사이다패스는 일개 평검사에게 책임을 물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이 밝혀졌다.

“……흐음.”

사이다패스는 피자를 먹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처음에는 왜 최형림이 자신을 조종하려고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까 최형림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서 자신의 노리는 바를 향해 차곡차곡 단계를 밟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위험한 인간이군. 아니, 그러니까 나랑 이렇게 거래하고 있는 거겠지만.’

언젠가 이 남자는 반드시 자신의 목을 친다.

그것만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사이다패스는 이 남자가 그려내는 거대한 그림에 매료되었다.

그녀가 기분 풀이로 고관대작을 아무리 죽인다 해도 이 남자가 그려내는 그림만큼 화려하게 저 높으신 놈들의 왕관에 침을 뱉고 모욕할 수는 없으리라.

모욕에는 해학과 미학이 있어야 한다.

최형림은 그녀 이상으로 이 세상의 구조를, 권력과 금력과 힘의 관계를 혐오하고 능멸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사이다패스는 최형림이 그려내는 이 거대한 미학에 매료되어가고 있었다.

“그럼 식사 정도는 자주 사라고.”

“……네.”

“다음 일 부탁할게. 잘 먹었어.”

사이다패스는 그 말을 남기고 문밖으로 나갔다.

최형림은 사이다패스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분명히 사이다패스가 먹어서 거덜이 나야 했던 피자들은 상당수 그 자리 그대로 있었다.

먹어서 없어진 건 최형림이 먹은 부분뿐이다.

분명히 맛있게 먹고 있었는데…… 피자는 줄지 않았다.

“이게 그녀의 능력의 본질이군요. 흠. 뭐 침도 안 묻은 것 같으니 먹어도 되겠지요. 왠지 꺼림칙하지만…….”

최형림은 남아 있는 피자들을 확인하고 찬장에서 밀폐용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 * *

사이다패스 수사본부는 더 이상 서부지검의 관할이 아니게 되었다.

서부지검 수사1부 부장을 살해하고 그 다음에 온 수사부장을 실각시켜버린 이상, 아무리 서부지검이 얽혀있다고 해도 지검의 레벨에서 담당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수사본부는 이제 대검찰청으로 이관되었고……

최형림 역시 대검찰청으로 새롭게 발령이 났다.

서부지검의 검찰수사관들은 이 인사이동에 난리가 났다.

“와. 소문 들었어? 최 검사님, 대검찰청으로 발령 났대.”

“음, 뭐, 최 검사님이야 워낙 인물이긴 하지.”

“검사들이 다 인물이긴 하지만…….”

그중에서도 최형림은 별격의 인재다.

검사들을 자주 보아왔던 검찰수사관들도 이구동성으로 최형림이란 인물을 평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수사1부가 거덜 났는데 기둥뿌리 뽑아가네. 우린 어쩌라고.”

“일단 수사부에 새로 다른 검사들이 오는 모양이야.”

“당연한 소리를 하고 있네. 설마 비워두겠어? 서부지검을?”

“그나저나 사이다패스는 정말 부패한 검사가 자기를 추격하면 죽이나 봐?”

“최 검사님은 청렴하다?”

“그야…… 그분은 재벌 집 자제잖아. 다른 검사들과 달리 청렴할 수밖에 없지.”

“야야. 그렇게 말하면…… 다른 검사는 다 부패했다는 것처럼 들리잖아. 이게 검찰수사관이 못 하는 말이 없네?”

“아니, 뭐…… 안 들리면 나라님도 욕할 수 있지 뭐.”

“그런데 최 검사님도 사이다패스는 못 잡았잖아?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설마 대한민국에서 검사들 다 족치나?”

“그럼…… 어떻게 될 것 같아?”

“그만두고 다들 변호사 개업하는 거 아냐?”

“에이.”

검사출신이 변호사 개업해서 이익을 올릴 수 있는 건 검사 선후배들끼리 밀어주고 당겨주고 혜택을 많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관예우는 어쨌건 검사조직에 계속해서 사람이 주기적으로 순환되어야 가능한 것인데 사이다패스가 검사들을 강제로 빠르게 물갈이 시킬 경우, 전관예우 시스템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른다.

“고작 살인마 하나에게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어.”

검찰의 생태계를 잘 알고 있는 검찰수사관들은 그렇게 단언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단언에는 한 가지, 그들 스스로도 인정하기 싫어하는 부분이 있었다.

만약 사이다패스가 단순한 살인마 하나가 아니라면 그때는 어떻게 될 것인가?

* * *

서울 시의회 옆 코리아나 호텔, 최형림은 그 호텔의 커피숍에 앉아서 자신의 시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이 어둑어둑하니 비가 올 것 같다.

“으음. 이 옛날 호텔의 향취.”

호텔 커피숍 로비로 한 청년이 경호원을 대동하고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미카엘이었다.

“안녕. 오래 기다렸나?”

“아닙니다.”

“흠…… 아, 오는 길에 저쪽 남쪽에 밀레니엄 힐튼 호텔에선 한영그룹의 리빌딩 10주년 기념행사를 한 모양이던데? 왜 여기서 보자고 했지?”

한영그룹의 리빌딩 10주년 기념행사는 본래 건설사였던 한영그룹이 다른 여러 계열사를 포함해 한영건설그룹으로 CI를 변경하고 조직을 개편한 것을 기념하는 행사로 한영건설그룹의 오너 일가족들과 그들을 보좌하는 전문 경영인들, 그들이 서로의 실력을 확인하는 각축장이다.

최형림이 제대로 된 한영건설그룹 오너 가문의 자제라면 지금쯤 그곳에서 한창 회장의 열기를 더해 주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최형림은 그 근처,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미카엘을 만나고 있었다.

미카엘도 최형림의 사정을 알면서 일부러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기념행사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을 보기로 했습니다.”

“오. 그래?”

최형림이 한영건설그룹에서 배척당하고 있긴 하지만 재벌가 자제 중에 검사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인재를 무시하진 못하리라.

“아, 맞다. 영전 축하하지. 최 검사. 이렇게 빨리 대검찰청에 입성하다니.”

“사이다패스 사건이 커져서 어쩔 수 없이 생긴 공백 때문이지, 딱히 큰 의미는 없습니다.”

“하하하. 그럴 리가? 겸손하긴.”

미카엘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최형림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데드맨에게 뜯겨서 손목시계도 전당포에 맡겼다지?”

“예. 참 재밌는 탐정이더군요. 왜 당신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알 것 같습니다.”

“재밌는 녀석이지? 어때? 그 녀석보다 날 더 재밌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미카엘의 눈이 최형림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노골적이군.’

최형림은 미카엘이 자신과 시현을 마음속에서 저울질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자존심이 좀 상하는걸.’

태어나서 지금까지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들어본 적 없는 그였다.

공부도 운동도 외모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모든 면에서 최형림은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뒤처져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미카엘의 안에서 그는 분명히 데드맨, 시현보다 약간 떨어진다.

이 쾌락주의적인 초자연적 존재의 흥미를 돋우는 데는 최형림보다 시현이 더 우수한 것이다.

하지만 최형림에겐 그 나름의 긍지가 있었다.

‘여기서 당신의 도발에 넘어가서는 곤란하지.’

최형림이 반격에 나섰다.

데드맨31

오월동주의 동상이몽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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