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72화 (72/269)

제72화

오월동주의 동상이몽 #4

“설아 누님의 약점을 발견했다고 했지? 그리고 또 뭔가 무기가 있으니까 지금 설아누님을 제치겠다고 이러는 거겠지? 그게 뭔지 말해 줄 수 있나?”

“한강건재 알지?”

“한강건재?”

시현이 그 말을 듣는 순간 흠칫 놀랐다.

갑자기 예상치도 못한 이름이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한강건재, 그곳의 오너는 류장천, 바로 류하리의 부친이다.

즉, 최형준은 갑자기 류하리의 집안을 언급한 것이다.

“어, 왜 놀라? 탐정씨?”

“아, 아뇨. 제 관심종목이라서 하하.”

“오, 주식투자하나? 하여튼 그 한강건재의 쇼룸을 새로 공덕동에 내는데 그 디자인과 인테리어를 내 쪽에서 맡았어. 나의 재능과 예술성을 그쪽에서 알아준 거지. 설아 누님이 죄 그룹 내 밀어주기로만 큰 것과 달리 나는 외부에서 일을 받아서 스스로 내 사무실을 꾸릴 수 있다 이거지. 어때? 대단하지 않아?”

확실히 더 나은 디자인 실력, 업무추진능력으로 그룹 외 다른 곳에서 일을 받아서 독자적으로 자생할 수 있다면 최설아와 차별화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게 끝인가? 단발성 외주 한 건으로 지금 누님을 제치겠다고 자신감이 폭발한 거냐?”

최형림은 기가 차서 물어보았다.

“물론 그 정도가 아니지. 사실 앞으로도 한강건재 쪽에서 쭈욱 날 도와줄 것 같아.”

“뭐?”

“한강건재 오너에게 딸이 하나 있는데…… 뭐 아직 이야기만 도는 단계지만 선을 볼 것 같아.”

“…….”

“…….”

최형림과 시현의 표정이 동시에 구겨졌다.

* * *

서민들에게 결혼이란 관혼상제중 하나, 중요한 인륜지대사다.

그리고 재벌이나 부자들, 막대한 재산이 상속권으로 딸려있는 이들에게 결혼이란 인륜지대사 이상의 중대한 문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류하리는 상당히 경쟁력이 높은 인물이다.

우선 똑똑하다.

경찰 대학교 수석입학, 수석 졸업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집안에 재산도 상당히 있어서 재벌가의 일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게다가 그런 조건들을 갖추고도 모자라 외모마저 빼어나다.

본인의 미모와 지성이 출중한데다가 좋은 상속권까지 딸린 결혼상대, 정략결혼용으로는 최상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최형림도 류하리를 진작에 신경 쓰고 있었다.

경찰대학에서 선후배 사이로 만났을 때부터 자연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형림은 재벌가의 일원으로서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었기 때문에 류하리를 의도적으로 멀리했었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 그래서 최형림은 집안에서 지원을 못 받으면서도 외제차를 끌고 명품시계를 장만해서 허세를 부린다.

아니, 최형림 입장에서 이것은 허세가 아니라 야생동물의 보호색 같은 것이다.

재벌 아들로서 결격사유가 없다. 집안의 보호를 받고 있다.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 그 보호색과 위장이 까발려지는 게 싫어서 최형림은 류하리와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그런데 자기가 보아도 좀 철딱서니 없는 최형준이 류하리와 선을 본다고?

“어, 사진으로 보니까 꽤 예쁘더라고. 대체 사진을 얼마나 보정한 건지 원. 실물은 이거 뭐 폭탄 돼지가 나오는 거 아닌가 몰라?”

“…….”

“…….”

시현과 최형림이 최형준을 노려보았다.

“어? 왜?”

“아니, 알겠어. 한강건재 측에서 널 서포트 한다 이거지? 그래.”

“그래서 말인데 형님도 내 쪽에 붙지 그래.”

“좀 더 상황을 보고…….”

최형림은 그리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나중에 또. 상황 진척 있으면 연락 부탁하지.”

“어, 그, 그래.”

최형준은 자리를 떠나는 최형림을 차마 붙잡지 못했다.

“흐음.”

시현은 최형림이 떠나는 걸 보며 자신의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럼 저도 조사할 게 있어서 이만, 따로 움직여도 되겠습니까?”

“그, 그래요. 아, 혹시 내가 뭔가 실수한 건 아니지?”

“아닙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고 스마트폰을 두들겼다.

“아, 그리고…….”

“응?”

“폭탄돼지는 절대 아닐 겁니다.”

“어…… 뭐가?”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 * *

“거기 서!”

대림시장 골목길을 한 남자가 달려서 도망치고 있었다.

그 뒤를 추격하는 것은 경찰 두 명, 하지만 선두에서 도망치는 이는 골목길에 쌓여있는 상품들을 엎어서 뒤를 막으며 도망쳤다.

경찰들이 차마 추격하지 못하는 걸 본 그는 코웃음 쳤다.

“헤헤. 별것도 아닌 게. 너희들이 이 사이다패스님을 잡을 수 있겠냐?!”

하지만 그때 골목 입구에 아닌 척 태연하게 서 있던 여성이 잽싸게 달리는 그의 다리를 걸었다.

“컥?!”

붕 날아간 도망자가 지면에 쓰러졌다.

“뭐, 뭐야? 이년은?”

도망자는 바닥에 떨어진 충격에 차마 일어나지 못했지만 품에서 칼을 빼들었다.

“경찰이다. 무기 버려.”

류하리였다.

“웃기지 마! 오기만 해 봐! 쉭! 쉭!”

도망자는 다리가 다쳤는지 주저앉은 채로 칼을 휘둘러댔다.

“류 경위님!”

“피하세요.”

뒤늦게 도착한 다른 경찰들이 그녀를 말렸지만 그녀는 옆의 상점의 수박을 잡았다.

“이거 얼마예요?”

“네?”

“제가 다 사죠.”

류하리는 상인에게 그리 말하고 수박을 집어 들어 칼을 휘두르고 있는 도망자에게 집어던졌다.

-퍼석!

“우엑?!”

수박을 맞고 정신을 못 차리는 도망자를 주시하며 류하리는 이번엔 옆의 가게로 향했다.

공구와 안전복, 안전모등을 파는 가게였다.

“이건, 던지면 큰일 날 것 같고.”

스패너를 집어 들었던 류하리는 스패너의 묵직한 무게감에 깜짝 놀랐다.

대신 그녀는 공사장 안전모를 집어 들었다.

“아니, 아가씨…….”

“제가 삽니다.”

류하리는 그리 말하고 안전모를 집어 들어서 또 바닥에 쓰러진 도망자에게 던졌다.

“악! 으악…….”

도망자의 손에서 칼이 떨어졌다.

그러자 남자 경찰들이 뛰어들어서 수박물 범벅이 된 도망자를 잡았다.

“후우. 한 건 해결인가. 응?”

류하리는 자신의 전화기가 몸부림을 치는 걸 느끼며 전화를 받아들었다.

“고모님? 무슨 일이세요?”

[아, 안녕, 하리야. 요새 몸은 좀 어떠니?]

아마 류하리가 임용 후 갑자기 원인불명으로 쓰러졌던 것을 신경써주는 모양이다.

‘으, 이 고모님 껄끄러운데, 몸 아픈 것도 깨어난 게 언젠데…… 그래도 걱정해 주는데 면전에다 침을 뱉을 수는 없고.’

류하리는 왠지 기분이 껄끄러웠지만 좋게 대답했다.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 다행이구나. 정말 다행이야. 아, 그래. 혹시 아직도 경찰 다니니?]

“다니죠. 네.”

[아, 그래? 그래도 내근직이지?]

“네?”

[설마 경찰이라고 밖에 돌아다니는 거 아니지? 너 귀한 몸이야. 그런 건 천한 것들이 하라고 해야지. 오호호호. 아니, 뭐 그래도 네가 경찰한다니까 아는 분들이 칭찬이 자자하긴 하더라.]

“아, 네.”

류하리는 깨진 수박을 한 조각 들어서 입에 넣어 먹으면서 말대꾸를 함께 목구멍 너머로 삼켰다.

* * *

“뭡니까?”

시현은 수박을 낑낑거리며 들고 오는 류하리를 발견했다.

자신의 사무소 입구에서 류하리와 마주친 것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하하. 약간 흠집이 났다고 해서…….”

“네?”

“아니, 일하는 중에 수박가게가 피해를 입을 것 같기에 피해 생기면 다 보상해 주겠다고 말했거든요. 그런데 뭐 꽁지가 상했다고 저에게 넘기지 뭐예요?”

“그래서 가져오신 겁니까?”

시현이 류하리의 손에서 수박을 받아들었다.

“네. 그런데 요샌 무슨 일 하세요? 바빠 보이던데?”

“제가 그걸 말해드릴 이유가 있나요?”

“수박 드렸잖아요?”

“…….”

시현은 말문이 막혔다.

“뭐, 하긴 저도 물어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혹시 한영건설그룹 아십니까?”

“아, 알죠. 최형림 선배 집안이잖아요? 그게 왜요?”

“그쪽 관련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형림 검사는…… 뭔가 집안에 문제가 있나요?”

“……아,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최설아, 최형림, 최형준. 이렇게 셋이 형제지요? 혹시 최형준이라는 사람 아시나요?”

“아뇨, 그렇게는 잘. 사실 저희 집안 일도 별로 관심이 없는데 남의 집안 일까지는…….”

“하긴 당신은 그랬지요.”

“네?”

류하리는 자신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 시현의 태도에 깜짝 놀랐다.

“그럴 것 같다고요.”

“아, 네…… 그런데 한영건설그룹은 왜요?”

“지인의 소개로 일을 맡았습니다. 이래봬도 제가 이쪽 업계에서 불륜조사로는 명성이 드높으니까요.”

“불륜조사요?”

“불륜조사를 잘한다는 건 개인 미행과 조사를 잘한다는 뜻이니까요.”

“헤에? 그럼 또 짭짤하게 벌었겠군요?”

“재벌가랑 일한다고 딱히 경비를 더 쳐주진 않습니다. 저도 프로니까 상대 보면서 비용을 더 청구하거나 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일이 끝난 뒤 성공보수와 입막음 비를 많이 받을 수 있겠지요. 게다가…… 추가적인 보수도 생각할 수 있겠고요.”

시현이 그리 말할 때였다.

-끼익.

창 밖에서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어휴. 자기.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 줄 알아? 내 가게에 와야지 부르면 어떻게 해? 내가 아무에게나 이렇게 출장 나오는 줄 알아?”

벨트에 헤어컷용 가위를 꽂은 멋들어진 수염을 가진 남자가 들어왔다.

그의 뒤로 어시스턴트로 보이는 이들이 의상들이 걸려있는 옷걸이와 헤어컷용 장비, 가발을 가져왔다.

“……에?”

“아니, 이 아가씨는 누구야? 손님인가?”

“조수.”

“조수?”

그는 가위를 손가락에 끼고 빙빙 돌렸다.

“아, 안녕하세요.”

“아, 아가씨. 전 이런 사람이에요.”

그는 명함을 내밀었다.

코디네이터 강휘, 라고 되어 있었다.

“아, 코디네이터이시군요.”

“패션과 헤어, 메이크업 전반에 걸쳐서 다 하고 있지요. 아가씨 소재가 좋으시니까 관리 좀 하면 아주 근사할 거예요. 시간 되시면 저희 가게에 찾아오세요. 잘 해드릴게.”

“아, 네.”

“그래서. 어떤 스타일로 할까?”

강휘는 시현을 돌아보았다.

시현은 사진을 하나 보여주었다.

리프컷을 한 남자 연예인의 사진이었다.

“이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것 같던데. 이쪽으로 부탁해.”

“흠, 물론이지. 하지만 이 헤어스타일은 가발이 차라리 낫겠는데?”

“가발로 부탁하지.”

“…….”

류하리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에 놀랐다.

그것은 마치 신부화장, 아니, 항공모함에서 출격하는 전폭기에 폭탄과 미사일을 장착하는 작업 같았다.

* * *

그리고 잠시 후 그녀의 눈앞에는 한 명의 호스트가 탄생했다.

“어휴. 내가 했지만 참 때깔 좋다. 자기도 탐정 말고 이쪽으로 전향해도 되겠는걸?”

“옷이 너무 튀는 거 아닌가?”

“룸에 들어가면 그 정도는 되어야지. 그리고 도중에 갈아입어야 할 수도 있으니까 뭐, 가게에는 이미 이야기 되어 있지 않아? 거기에 미리 준비해둘게.”

“어, 잠입하시는 건가요? 호스트로?”

“네. 흠. 잘 될까 모르겠군요. 어떻습니까?”

“아니, 뭐. 너무 화려한 건 좀 좋아하지 않는데 웃기지만 잘 어울리네요. 그런데 호스트 잠입이라니…….”

“궁금하십니까?”

“궁금하지 않냐면 거짓말인데…….”

류하리는 때 빼고 광낸 시현을 보면서 당황했다.

“저도 구경 가도 되나요?”

“안 됩니다. 바쁘셨을 텐데 퇴근하시죠?”

시현은 류하리에게 엄포를 놓고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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