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73화 (73/269)

제73화

오월동주의 동상이몽 #5

한영건설그룹의 장녀, 최설아는 본래 어둡고 순박한 성격이었다.

학창 시절에 친구도 별로 없이 그저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학업에 전념하던 그녀는 유학 생활 중 아이돌 그룹에 빠지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성취가 속해있던 팀 GRT.

최설아는 자신의 디자인 하우스를 갖게 되면서 제일 먼저 GRT를 광고 모델로 세우는 일에 착수했다.

그 인연으로 그녀는 GRT를 직접 만나게 되었고 그 리더인 성취와는 실제로 연인관계까지 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성취에게 있어서는 광고 잘 주는 돈줄에 불과했다.

4년간의 연애는 결국 파국으로 치달았고 그날 이후 그녀는 완전히 돌아버려서 호스트바에 출입하게 되었다.

호스트 업계의 진상여왕.

그게 최설아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였다.

* * *

강남역과 역삼역의 중간에 위치한 호스트바, 번화한 거리의 지하실에 위치한 이곳에서 지금 최설아와 그 경호팀이 방문했다.

이미 최설아를 위해 전담 호스트가 준비되어 있고 그 전담 호스트는 다른 대기 호스트들 중 분위기 띄워줄 세 명을 골라서 넷이 룸에 들어갔다.

그러면 안에서는 이제 광란의 파티가 벌어지는 것이었다.

아이돌 가수에게 돈줄 취급당하고 농락당했던 것 때문인지 최설아는 들어온 호스트들에게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 가수들의 안무나 노래를 시키고 지폐를 쏘는 장난감 총으로 그들에게 돈을 쏘며 각종 괴악하고 이상한 짓들을 시켰다.

잘생기고 탤런트가 넘치는 아이돌 가수에게 농락당했던 자신의 상처를 달래기 위해서 잘생긴 남자들을 돈다발로 후려쳐가며 가지고 논다.

술을 과하게 먹이고 그들이 고통 받으면서도 돈과 권력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억지로 웃음을 팔고 그녀를 위해 종사하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그게 그녀가 호스트 클럽을 찾는 이유였다.

* * *

“의왼데.”

시현은 호스트들 사이에서 대기하면서 혀를 찼다.

“응? 뭐라고?”

최설아의 경호원들이 쌍심지에 불을 켜고 시현을 돌아보았다.

“아니, 아닙니다. 아무것도.”

시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금색으로 빛나는 자신의 눈을 가렸다.

호스트바의 룸 안, 최설아의 수명이 보인다.

그런데 그 숫자가 101시간 남짓…….

즉, 최설아의 수명은 이제 4일 정도 남았다.

‘술을 마셔도 크게 변동이 없군. 술을 마시는 행위는 별 상관이 없다는 건가? 그렇다면…….’

시현은 최설아가 몸의 병이 아니라 다른 사유로 죽게 된다는 것을 알고 당황하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저렇게 망가져 호스트바 죽순이가 된 최설아라고 해도 재벌가의 일원이니 건강검진은 꾸준히 받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녀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그녀가 호스트바를 즐기는 것은 술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잘생긴 남자들을 돈으로 굴복시키는 재미, 자신이 한때 남자의 외모와 겉치장에 홀려 끌려 다녔던 시간들에 대해 보상받기 위함이다.

‘왜 수명이 이것밖에 안 남아 있지? 이 의뢰가 생각한 것보다 복잡해지겠는데?’

그때 룸의 문이 열렸다.

“다음! 들어와! 다음!”

안에서 최설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술에 취해서 급성 알코올 중독을 일으키는 호스트들이 구토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달려가고, 더러는 바로 입으로 쏟아내면서 룸을 튀어나왔다.

‘마치 참호전으로 끌려들어가 소모당하는 병사 같군.’

시현은 호스트들의 끔찍한 몰골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너. 들어가라.”

경호원이 시현과 다른 호스트들을 지목했다.

“네.”

시현은 각오를 다지고 룸 안에 들어갔다.

룸 안에는 여기저기 돈이 뿌려져있고 지금도 최설아는 돈을 뿌리는 장난감 총을 손에 쥐고 깔깔 웃고 있었다.

‘흠. 마약은…… 없군.’

시현은 테이블이나 주위에 마약을 투약한 흔적이 있나 확인해 보았지만 없었다.

하긴 최설아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돈으로 잘생긴 남자, 재주 좋은 남자들을 망가뜨려 성취가 자신에게 남긴 상처를 달래는 것이다.

본인이 약에 취해버리면 이 좋은 장면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술을 잘 마시지 않는 것과 같군. 그녀는 말짱한 정신으로 이러는 거야.’

시현은 그리 파악하고 들어와 꾸벅 인사를 했다.

“시현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휴. 뭐야. 뻣뻣하군. 자. 너. 돈 주워. 신입이라며? 호호!”

최설아가 시현을 향해 돈을 쏘았다.

시현은 그녀가 쏘는 돈들을 주워서 깔끔하게 모으고 미리 준비한 지폐다발용 끈으로 돈을 휘휘휙 묶어서 돈다발로 만들어 테이블 위에 도로 올려놓았다.

“어? 뭐야? 손이 꽤 빠르네? 설마 은행원이었어?”

“아뇨. 그저 마술을 좀 배웠거든요.”

“뭐? 마술?”

“네. 그리고 돈 다발에는 익숙하기도 하고요.”

“흐음. 너 좀 재밌다? 생긴 것도 마음에 들어. 표정은 좀 재수 없지만.”

“칭찬 감사합니다. 아가씨.”

“……재수 없네. 그럼 가볍게 원샷 해 볼까?”

그녀는 그리 말하고 손가락을 까딱였다.

얼음 버킷에 꽂힌 위스키 한 병이 테이블에 올라왔다.

그녀는 위스키 병을 쓱 들더니 얼음 버킷에 그냥 위스키를 다 부어버렸다.

“자. 이 누님이 착해서 말야. 위스키를 그냥 스트레이트로 마시라곤 안 해. 이렇게 언더 락으로 한잔 근사하게 말아 줄 테니까 쭉 들이켜.”

“…….”

위스키 한 병을 싹 부어서 아이스 버킷에 가득 찬 상태다.

이걸 원샷 하라니 보통사람이면 급성 알코올 중독으로 쓰러질 것이다.

“어때?”

“……감사합니다.”

시현은 버킷을 들어서 마시기 시작했다.

“야, 흘리면서 꼼수 쓰면…….”

최설아는 그렇게 말했지만…… 시현은 벌컥벌컥 위스키를 그대로 다 마셔버렸다.

“얼음은 안 먹어도 되지요?”

“……어?”

최설아는 깜짝 놀랐다. 아이스 버킷에 아직 위스키 색은 남아 있지만 시현은 정말 스트레이트로 위스키 한 병을 간단히 마셔버린 것이다.

“계속 가 볼까요?”

시현의 눈이 노랗게 빛나고 있었다.

* * *

호스트들은 아무런 지원 없이 기관총 진지에 돌진하는 병사들처럼 쓰러지고 또 쓰러져 소모되었다.

그것은 한 영혼이 자신의 메워지지 않는 상처를 달래기 위해 남들을 모욕하고 멸시하는 연옥 한복판이었다.

하지만 그 연옥의 주인, 최설아의 앞에 시현은 멀쩡한 채로 앉아 있었다.

“이제 좀 만족하셨습니까?”

“뭐, 뭐야? 너? 왜 이리 멀쩡해? 마시는 척하면서 다 버렸어?”

“하하하. 비싼 술을 그렇게 하면 쓰나요.”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최설아를 살펴보았다.

최설아는 시현이 자신의 행각에 별 고통을 받지 않았다는 것에 충격을 받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자신의 돈과 권력이 잘생긴 남자들을 굽히는 것으로 자신의 콤플렉스를 보상받고 있었다.

‘봐라, 그때 성취보다 더 잘생기고 더 매력적인 남자들도 내 말에 껌뻑 죽는다.’

‘잘생기고 매력적인 거 별거 아니다. 내가 부모 잘 만난 것에 비하면 이런 놈들 진짜 아무것도 아니다.’

‘성취에게 농락당하고 이용당했던 거, 그거 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식으로 자신에게 속삭이고 다짐하기 위해서 호스트바에 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행패에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는 놈이 나왔으니 기겁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녀가 호스트들을 술 말고 괴롭히는 방법은 많이 있었다.

직접 때리진 않지만 다른 호스트들끼리 서로 따귀를 치게 한다거나 유사 성행위를 시킨다거나 하면서 그들을 모욕하곤 했었는데 문제는 지금 다른 호스트들이 죄다 쓰러져버렸다는 것이다.

시현이 워낙 시원하게 술을 마셔버리는 통에 오기가 생겨서 술을 계속 들이 부었더니 대부분의 호스트들이 빠르게 술로 쓰러져 버린 것이었다.

“게임에서 제가 이긴 것 같은데 하나 부탁해도 됩니까? 아가씨?”

“뭐?”

“제 부탁을 하나 들어주시죠.”

“……뭔데?”

“질문에 답해 주시면 됩니다. 최형림은 왜 그룹 승계구도에서 물러나 있지요?”

“?!”

그 순간 최설아의 표정이 굳어버렸다.

일개 호스트가 물을 내용이 아니다.

“너 뭐야? 누가 보낸 거야?”

“대답은?”

“야! 보안팀!”

최설아가 고함을 지르자 그녀의 경호원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다짜고짜 시현에게 달려들어 그를 제압하려 했지만 시현의 눈이 금색으로 번뜩이고 있었다.

“실례!”

시현은 간단하게 경호원을 발로 밀어 차 뒤로 날려버리고 최설아를 뒤에서 붙잡았다.

-슥.

최설아의 목에 트럼프 카드가 드리워졌다.

“뭐…….”

경호원들이 어이없어할 때 시현이 손을 휘둘렀다.

-텅!

탁자위에 놓여있던 아이스 버킷이 카드에 맞아 날아가 경호원들 얼굴 옆, 벽에 충돌했다 떨어졌다.

아이스 버킷에 카드가 박혀있다.

‘종이나 플라스틱 카드가 아냐!’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든 카드잖아?’

시현은 또 다른 카드를 꺼내서 다시 최설아의 목을 겨누었다.

카드에 눌린 목덜미에서 핏방울이 배어나온다.

“아가씨?”

“멈춰! 멈추라니까!”

최설아의 고함에 경호원들이 멈춰 섰다.

“흠…… 감사합니다. 그래서 최형림은 왜 그룹 승계구도에서 멀어졌습니까?”

“정확히는 그 반대지.”

“네?”

“최형림 때문에 우리가 그룹 승계구도에서 멀어진 거야!”

“최형림 때문에?”

“그는…… 우리 아버지 아들이 아냐!”

“아니라고요?”

“그래. 그는 한영건설그룹이 어려울 때 SH회장이 다른데서 임신한 자신의 딸을 안 좋은 소문 돌기 전에 우리 아버지에게 처리한 거야. 그걸 조건으로 SH그룹에서 지원해 줘서 사업은 망하지 않고 살아났지. 하지만…….”

“아하.”

그 순간 시현은 이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바로 이해했다.

* * *

SH그룹은 한국 굴지의 대기업이며 한영건설그룹의 최중선 회장도 본래는 SH그룹의 사장단 출신이었다.

하지만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감옥에 들어갔다 온 최중선은 그 사건 이후 SH그룹에 반기를 들고 독립했다.

SH그룹이 자신에게 죄를 덮어씌우고 충분한 보상을 해 주지 않았다는 데 불만을 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인맥과 기술자들을 빼내어 한영건설그룹을 세웠고 초반에는 SH그룹과 대립각을 세우면서 각종 특허권에 대한 법정공방까지 주고받았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위기를 맞아 휘청거리게 된 한영건설그룹은 결국 SH그룹에게 전면항복하고 여러 가지 이권이 얽혀있던 소송에서 전면 합의, 사실상 한 발 빼고 물러나게 되었다.

대신 SH그룹 회장은 자신의 딸과 최중선 회장을 결혼시켜 그 화해를 좋게 받아들였고 그 후 한영건설그룹은 SH그룹의 방계그룹 취급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혼관계에서 태어난 게 최형림, 그런데 사실 최형림은 최중선 회장의 씨가 아니었다니…….

‘그럼 많은 게 설명되는군.’

왜 최형림은 재벌가 자식인데도 불구하고 집에서 나와 살며, 왜 경영승계구도에서 제외되었는가?

그리고 어째서 최설아가 최형림 때문에 오히려 자신이 경영승계구도에서 밀려났다고 말하는가?

또 왜 최설아의 남은 수명은 이다지도 짧은가?

그 모든 것이 설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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