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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31-74화 (74/269)

제74화

오월동주의 동상이몽 #6

한영건설그룹 회장, 최중선은 그룹의 우선의결권주를 전부 보유하고 있었다.

증시에 상장된 일반 주식들이나 배당우선주와 달리 그룹의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우선의결권주식…… 이것 덕분에 재벌들은 개미나 기관의 투자금을 이용해 얼마 되지 않는 자본으로 그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는 자식이 세 명.

최설아, 최형림, 최형준. 이 셋이다.

각각 전부 어머니가 다른 복잡한 배경을 가진 이 세 남매에게 상속유류분은 각각 33.3%.

그런데 그중에 최형림은 사실 최씨 일가가 아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쳐낼 수도 없는 게 한영건설그룹보다 훨씬 더 막강한 힘을 가진 SH그룹의 자식이며 본인 또한 검사가 아닌가?

‘아니, 역순이군. 최형림, 이 사람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경찰대학을 가고 검사가 되었다. 그렇게 볼 수 있겠군.’

한영건설그룹을 이끌고 있는 최씨 집안에서 보면 최형림이 도중에 그냥 깔끔하게 요절해 주는 게 최선일 것이다.

그러나 최형림은 너무 건강하다.

그렇다면?

그룹의 핵심을 장악한 최중선 회장의 권력에 자연스럽게 누수가 생길 수밖에 없다.

최중선 회장의 형제들은 최형림을 빌미로 그룹을 자식들에게 상속하지 말고 자신들에게 나누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을 것이다.

‘네 자식들 물려주겠다고 무리하면 저기 네 씨도 아닌 놈이 그룹의 의결권 33.3%를 가져가지 않느냐.’

‘그 전에 우리에게 돌려라.’

‘불륜이 의심되는, 아니, 확실시 되는 최형림에게 물려주느니 혈족인 형제들에게 물려주는 게 낫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최설아나 최형준은 정당한 최씨 집안의 일원이면서도 찬밥신세가 되는 것이다.

“동생 놈은 멍청하게 유학에서 귀국하자마자 내 밥그릇만 빼앗으려고 하는데 숙부들이 바람 넣은 게 뻔하지! 문제는 이 멍청한 동생이 내 말은 죽어라 안 들을 거라고! 젠장.”

“설명 감사합니다.”

시현은 그녀의 목에서 카드를 치웠다.

경호원들이 다시금 시현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최설아가 경호원들을 제지시켰다.

“그래, 그래서 너…… 대체 뭐야?”

“아,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시현은 카드 대신 명함을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

최설아는 당황하면서 시현의 명함을 살펴보았다.

“탐정?”

“예. 그래서 말인데 절 고용하시죠?”

“허?”

“단언컨대 실망시켜드리지 않을 겁니다.”

“뭐?!”

최설아가 눈을 크게 떴다.

이놈은 제정신인가?

* * *

삼성동 인터컨티넨탈 호텔의 아케이드에서 류하리는 휴대폰을 확인해 보았다.

“아니, 대체 무슨 일이시지?”

류하리는 저를 간만에 불러낸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 모처럼 휴가를 냈다.

그런데 곧 그녀는 카페에 기다리고 있는 이를 발견하고 당황했다.

고모와 어머니, 그리고 모르는 남자가 함께 앉아 있었다.

“아, 저기 왔군요. 하리야. 여기야 여기!”

“아, 네. 안녕하세요.”

“자, 어서 오렴. 아, 이쪽은 한영건설그룹의 자제분인 최형준이라고 하셔.”

“네?”

“아, 저, 처음 뵙겠습니다. 최형준이라고 합니다.”

최형준은 그리 말하고 명함을 내밀었다.

“아, 네.”

류하리는 명함을 받아들고 당황했다.

“자, 그럼 젊은 사람들끼리 이야기 하도록 하고 저희는 빠질까요?”

“그래요, 언니.”

류하리의 고모와 어머니가 짝짜꿍이 되어서 자리를 비켜주려고 했다.

하지만 류하리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저기. 죄송합니다만 잠시 양해 좀 부탁드릴게요.”

류하리는 일단 최형준에게 양해를 구하고 고모를 돌아보았다.

“고모님? 이게 어찌된 일이지요? 저는 중요한 일이 있으니 나와 보라고만 들었는데요. 어머니도 나온다고 하셔서…….”

이런 자리인 줄 몰랐다.

류하리가 그렇게 따지자 고모가 히죽히죽 웃었다.

“물론 중요한 일이지, 하리야. 원래 사람 인연이라는 게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 아니겠니?”

“네?”

류하리는 당황해서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어, 엄마, 아니, 어머님은 알고 계셨나요?”

“아니, 하리야. 너도 슬슬 혼기가 차지 않았니. 네가 죽을 위기를 넘긴 적이 몇 번 있어서 사는 게 그냥 덤으로 사는 거다, 하고 네 마음대로 살라고 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인륜지대사는 생각해 둬야 할 때가 아니니?”

류하리의 어머니도 은근히 고모에게 동조했다.

“위험한 경찰일은 그만두고 슬슬 가정을 꾸려야 하지 않겠니? 네 오빠는 벌써 가정도 꾸렸고 조카가 학교도 다니는 나이인데 말이지.”

“맞아맞아.”

어머니와 고모의 협공에 류하리는 당황했다.

기가 드센 고모와 기가 약한 엄마, 둘의 성격은 다르지만 둘 다 한 가지, 류하리가 경찰 따윈 그만두고 어서 빨리 결혼하기를 원한다는 점에서는 의견이 일치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저, 저기. 죄송합니다. 이런 자리인 줄 몰랐어요. 큰 실례를 저질렀습니다.”

류하리는 최형준에게도 사과했다.

설마 맞선을 보러 나와서 상대가 맞선인 줄도 몰랐다고 하면, 이건 최형준에게도 실례가 아닌가.

“아, 네. 괜찮습니다. 저도 그냥 맞선이라기보다는 그, 같은 교회 다니시는 분이 나와 보라고 하셔서 나온 것뿐이라서요. 너무 그렇게 부담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최형준은 부드럽게 그렇게 말했다.

“뭐 오늘 하루 공치면 되지요. 하하하.”

“…….”

류하리는 너스레를 떠는 최형준을 보며 가시방석에 오른 기분을 느꼈다.

‘아오, 진짜!’

* * *

류하리는 경찰 임용 전, 갑자기 몸이 망가져 원인불명의 가사상태에 빠졌다가 회복된 적이 있었다.

사실 그게 처음이 아니었다.

그녀는 학창시절에도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다.

원래 운동선수를 할 정도로 건강하던 류하리가 갑자기 상태가 나빠졌지만 그녀의 어머니 역시 건강이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다들 어머니 닮아서 그러려니 하고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류하리의 부친은 류하리는 제발 몸만 성하게 살아달라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마음대로 살라며 족쇄를 풀어준 상태였다.

어차피 가업은 오빠가 잇기로 결정되어 있었고 류하리 하나쯤은 풀어줘도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그러나 최근 류하리가 꽤 멀쩡해 보이고, 건강도 회복된 걸로 보이자 생각이 달라진 것이다.

‘어, 애가 꽤 괜찮아진 것 같은데?’

‘그런데 이 애가 풀어줬더니만 너무 막 사는 것 같네?’

‘어서 빨리 결혼시켜서 정상적으로 가정을 꾸리고 살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죽다 살아났을 때는 제발 원하는 대로 살아도 좋으니까, 어떻게 살아도 덤으로 사는 거니까 몸만 건강하라고 바라고 있었지만 일단 몸이 건강해 보이면 생각이 바뀌는 법.

그렇게 생각이 바뀌어서 이렇게 맞선 자리로 불러낸 것이었다.

‘아, 젠장.’

그리고 무엇보다 류하리가 이들의 생각을 잘 알기에 거절하기가 힘들었다.

‘어쩔 수 없나. 이대로 그냥 내빼면 엄마나 고모님이야 그렇다 쳐도 이분에겐 너무 실례가 되는데. 일단 이 자리는 받아들이고 난 다음에 좋게좋게 말하는 수밖에 없나. 다행히 어머님이랑 고모님보다는 이 남자가 더 말이 잘 통하겠지?’

류하리가 최대한 이 상황을 어떻게 무마할까 고민할 때였다.

류하리의 휴대폰에 전화가 걸려왔다.

“어?”

류하리는 전화번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최형림이었다.

“잠시만요.”

류하리가 전화를 받았다.

“네. 선배님?”

[류하리 경위님. 곤란하실 줄로 압니다.]

“……아, 선배님?”

[괜찮다면 잠깐 제가 그쪽으로 가도 될까요? 말을 맞추도록 하지요.]

“어. 네.”

류하리는 당황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잠시 후, 최형림이 카페로 다가오는 게 아닌가?

“아. 형님?”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류 경위님. 그리고 동생…….”

“어? 이 분은?”

“그 최형림 선배님이셔요. 전에 말씀드렸죠? 저희 경찰대학 선배인데 이제는 검찰로 가신…… 그리고 아마 이분이랑 형제 관계, 맞지요?”

“네. 그런데 류 경위님. 설마 제 친동생과 맞선을 보시는 겁니까? 이거 참. 의외로군요. 적어도 제게 이야기는 해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최형림은 그리 말하면서 노골적으로 시기와 질투의 시선을 보냈다.

마치 여자친구가 자기 몰래 맞선을 보는 장면을 발견한 사람 같다.

‘와…… 대, 대단하다.’

류하리는 최형림의 시선처리에 감탄했고.

‘어머어머.’

‘이거 사귀는 사람이 있었구나.’

‘게다가 저 사람이랑 형제라고? 그럼 우린 형이랑 사귀는데 동생을 데리고 맞선 보자고 한 거야?’

‘뭐, 형이면 역시 한영건설그룹 후계자겠지? 게다가 검사라니…….’

‘아무래도 망나니 머리 한 동생보다는 깔끔하고 말쑥한 형이 낫지.’

류하리의 어머니와 고모는 최형림에게 푹 빠졌다.

사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보기엔 자칭 디자이너라고 드레드 헤어를 하고 다니는 최형준보다는 최형림에게 더 호감이 가는 게 당연했다.

게다가 검사 아닌가.

“아, 저, 그게, 저희가 그냥 꾸민 일이에요.”

“하리는 몰랐어요. 그냥 저희가 불러내서 그랬는데 오호호호. 아니, 이 애가 그런 건 이야기를 안 해 주지 뭐예요.”

어머니와 고모는 즉시 변명을 시작했다.

“아니, 잠깐.”

졸지에 줄 끊어진 연 신세가 된 최형준은 당황했다.

“형님이랑 알고 있었다고?”

“그래. 나도 경찰대학을 다녔으니까.”

“……아, 음. 어…….”

“미안하군, 동생아. 그 자리에서 이야기 하지 않아서.”

“아, 아니, 뭐. 그냥, 와…… 아. 저, 저는 그럼 일어나 보지요.”

최형준은 갑작스런 이 상황에 당황해서 일어났다.

‘아니, 그럼 형이랑 이 여자는 이미 사귀는 사이였다고? 그런데 비밀로 해서 날 이 꼴로 만든 거야? 아, 아니, 뭐 애초에 따지고 보면 맞선인 줄 모르는 채로 불러낸 게 잘못이긴 한가? 하지만 그건 쟤 고모님이 저지른 짓이잖아. 아니, 쟤라고 하면 안 되나. 형수님? 아, 젠장. 뭐야, 이거. 완전 기분 잡치는데?’

최형준은 황망하고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랐다.

* * *

결국 맞선자리는 완전히 끝났다.

당황한 최형준은 자리를 떠났고 류하리의 어머니와 고모도 비록 상황이 곤란하게 되었지만 최형림이 잘 수습하겠다고 하는 말을 믿고 자리를 떠났다.

이제 자리에 남은 건 류하리와 최형림 뿐이었다.

“이거 참 큰 사고였군요. 류 경위님. 주제 넘는 짓을 해서 죄송합니다. 사죄드리지요.”

“아뇨, 덕분에 살았으니까요. 그런데 어떻게 여긴 줄 아셨어요?”

“후후. 동생에게 이야기 들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일부러 오신 거예요? 덕분에 어머니랑 고모님은 저랑 선배님이 사귄다고 오해하는 것 같은데요.”

“저는 괜찮습니다.”

“네?”

“그 오해를 적어도 한동안은 유지시켜도 됩니다.”

“아니, 그래도 번거로우실 텐데.”

“괜찮습니다. 저희 집안 일에 말려들게 했으니까요. 저야말로 류 경위님께 죄송할 따름이지요. 그리고…….”

최형림은 카페 의자 팔걸이에 기대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재밌지 않습니까? 이런 것도?”

“아하하하. 너무 실례라서 그렇지요. 하지만, 네. 그렇네요.”

류하리는 최형림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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