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화
Kingdom of Choi #1
“젠장!”
최형준은 자신의 사무실을 뒤집어엎으며 분개하고 있었다.
“날 갖고 놀아! 시팔! 사생아 새끼가!”
평소 형님, 형님 하면서 최형림을 우대하던 그였지만 이번 일에는 아무래도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이 농락당하고 이용당했다는 생각을 참을 수 없다.
“괜찮으십니까, 도련님?”
경호원들의 팀장이 최형준을 바라보았다.
“뭐가?!”
“아니, 손이…….”
최형준이 손을 살펴보니 난동을 부리다 어디 긁혔는지 긁혀서 피가 나고 있었다.
“괜찮아! 그것보다 이 사생아 놈을 어쩌지?”
“그냥 당하고 있을 수는 없지요.”
“그렇지?!”
“그렇지만 상대는 검사입니다. 이쪽에서는 손쓸 수단이…….”
“뭐 불법적인 수단으로는 없겠지. 하지만 합법적인 수단으로는 있을 거 아냐? 형님, 아니, 그 자식은 집안에서는 비 맞은 개꼴이니까 집 밖에서 미카엘이랑 붙어먹고 있지? 미카엘 그 새끼, 위험한 놈이야. 물론 놀 때는 좋은 놈이지만…… 틀림없이 불법적인 짓을 저지를 거라고. 그러니까 조사 좀 해 봐.”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때 다른 경호원들이 다가왔다.
“저, 탐정이 찾아왔습니다.”
“탐정……? 아, 그래. 젠장. 진정해야지. 들어오라고 해.”
최형준은 숨을 고르고 탐정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 * *
“흐음?”
시현은 난장판이 되어 있는 사무실 안을 살펴보고 혀를 찼다.
“괜찮으십니까? 뭔가 전위예술이라도 펼치신 모양이로군요. 손에 피가 묻어 있는데요?”
“아, 별거 아냐. 살짝 긁힌 것뿐이야. 그래서 조사는 어떻지?”
“일단 무난하게 끝났습니다.”
“무난하게 끝났다고?”
“예. 마약을 하는 것도 아니고 사치를 하긴 하지만 딱히 회사 돈을 횡령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뭐, 호스트바를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고 있으니 중매결혼을 하는 데는 하자가 좀 있겠지만요.”
“그것뿐이야? 분명히 그것보다 더한 일들이 있을 텐데?”
최형준은 의아해하고 있었다. 마치 ‘들었던 것과 다르다.’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역시…… 누군가에게 조종당하고 있군.’
최형준은 해외 유학에서 바로 돌아온 몸. 즉, 국내에 본인 스스로의 기반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누나의 사업체를 빼앗으려고 뛰어들었다면 응당 그의 뒤에 수상한 배후가 있으리라.
“도청한 거랑 감청한 거, 보고서 해서 보내줘.”
“예. 음, 그런데…….”
“그런데?”
“개인적으로 평가해 보면 최설아 씨는 꽤 생각이 깊은 편입니다. 그녀가 호스트바에 들락거리는 건 물론 성취와의 연애에서 상처를 입은 것도 있지만 아마 본인 스스로 배수진을 치려는 심정도 좀 있을 겁니다. 고리타분한 집안의 웃어른들이 여자라고 자신을 정략결혼으로 치우려 할까 봐 일부러 정략결혼에 하자가 생길 행위를 반복하는 거지요.”
아무리 재벌가 상속녀래도 호스트바를 들락거리면 정략결혼 소재로서의 격이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시현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그것이 아니다.
‘진심은…… 당신의 누나, 최설아는 그룹의 경영권을 장악하겠다는 위치가 아니라 언제 정략결혼으로 치워질지 모르는 파리 목숨이고, 그래서 본인이 스스로 배수진을 치고 있어야 할 만큼 위태로운 처지라는 거지. 더해서, 그녀가 느끼는 한계는 당신의 한계이기도 하고.’
그룹의 중추는 최설아, 최형림, 최형준의 세대가 아니라 한영그룹 회장과 그 형제 세대가 쥐고 있다.
최설아가 운영하는 하우징 업체는 일감 밀어주기로 땅 짚고 헤엄치기로 돈을 벌고 있긴 하지만……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승계할 만한 사업은 아니다.
시현은 그걸 직접 말하지 않고 은유로 전달해 주었다.
왜냐면 지금 최형준의 옆에 붙어 있는 경호원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 * *
최형준은 UCLA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샌프란시스코의 아트스쿨을 수료한 후 최근에 귀국했다.
머리가 나쁜 인물은 아니다.
IQ로만 보자면 수재의 영역에 들어간다.
다만 공부하는 머리와, 정치하고 사람을 파악하고 감춰진 진의를 밝히는 머리는 별개의 것이다.
긴 유학생활을 하고 돌아온 최형준은 그룹 내에 자기 인맥이 없으며 경호원들도 자신의 사람이 아니다.
이곳의 경호원들은 한영시큐리티 소속, 즉, 최형준의 숙부가 운영하는 회사 중 하나에서 뽑아온 인물들이다.
최형준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 시현은 은유해서 말해 주었는데…….
“뭐, 누나가 정략결혼에 하자가 있다고 해도 결혼 상대쯤은 못 구할 리 없지. 내가 경영권을 장악하면 누나는 알아서 배려할 테니까 신경 끄고 보고서나 보내줘. 아, 영상이랑 도청자료도 원본으로 보내주고.”
“보고서는 보내뒀으니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다만 영상이나 도청에 대한 자료는 안 받으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최형준은 시현에게도 노골적인 적개심을 드러냈다.
최형준 입장에서 시현은 최형림과 가까운 사이, 최형림과의 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달은 지금 시현도 믿을 수 없는 놈이 된다.
그런데 시현이 파일 원본을 넘기는 걸 거부하니 의심이 확신이 되려 하고 있었다.
‘아, 진짜. 옆에 놈들 못 믿겠는데 돌려 말하면 못 알아듣네, 이 자식이. 최설아가 앞으로 4일 안에 살해당하면 최설아를 감청하던 당신이 누명을 쓰기 좋잖아. 머저리 같으니라고.’
시현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고객 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그가 최형준에게 욕설을 퍼부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 * *
-삐삐삑…….
시현의 핸드폰이 알람을 울리기 시작했다.
“뭐야, 이 소리는?”
“아, 예. 계약기간이 끝났다는 알림이군요.”
시현은 선금을 받고 최설아에 대한 조사를 의뢰받았다.
그 선금분의 계약이 방금 막 종료된 것이었다.
“정확히는 보고서를 작성한 시점에서 계약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만 평소보다 비용을 후하게 받았으니까요. 어쨌건 여기서 계약이 종료되었군요. ‘전 고객’님.”
시현에게 있어서 ‘고객’과 ‘전 고객’은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시현탐정사무소의 고객만족 서비스, 그것에 시현이 얼마나 집착하는지 알고 있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최형준은 애석하게도 시현탐정사무소의 헌신적인 고객서비스를 체감 못 하고 있었다.
“그럼 원칙에 조금 어긋나지만 약간 서비스를 할까요?”
시현은 무표정하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뭘 하려고?”
“과거에는 감춰진 카메라를 찾는 데 쓰이는 방법이 렌즈의 반사광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카메라 감지 어플은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켠 상태로 빛이 반사되는 지점들을 찾아서 기록하게 되어 있지요. 아주 간단한 어플리케이션입니다. 뭐, 촬영하는 쪽에서도 그걸 막기 위해서 요즘엔 비반사 렌즈를 사용하는 것 같은데…….”
시현은 스마트폰의 카메라 감지 어플리케이션을 작동시켜서 사무실 주위 카메라가 감춰져 있을 법한 곳을 뒤져보았다.
“뭐하는 거야? 내 방에 카메라가 숨겨져 있다고?”
“네. 흐음. 여기 있군요.”
시현은 벽의 기둥에서 카메라와 도청장치 등을 찾아냈다.
“어?”
“아무래도 일이 고객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것 같군요.”
“뭐야, 이건? 왜 이게 여기에 있어?”
최형준은 의아해하며 시현을 바라보았다.
“설명을 원하십니까?”
시현이 그렇게 물어보았다.
“엉.”
“……그런데 말입니다.”
시현이 자신의 시계를 가리켰다.
“아까 전에 말씀드린 대로 이제 계약기간이 종료되었습니다. 이 다음부터는 새로이 계약을 맺어야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현탐정사무소는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만, 계약하지 않으면 고객이 아니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야? 돈 달라는 거야? 돈이 더 필요해서 그러는 거냐고.”
“음. 글쎄요.”
시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계약이 워낙 특수한 경우라서 돈 말고 다른 걸 받고 싶군요.”
“뭐?”
돈 말고 다른 것을 요구하려 하자 최형준은 시현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이봐. 아무리 내가 부잣집 철부지 자식으로 자랐다고 해도 한 가지 알고 있는 게 있어. 돈 말고 다른 걸 달라는 놈들이야말로 가장 돈에 환장한 놈이라는 거지.”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역시 한영건설그룹 회장님의 자제분다우신 혜안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상식적이신 분인데 왜 숙부님의 제안이나 도움은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이셨습니까?”
“…….”
“아. 제가 말실수를 했군요. 계약도 하지 않았는데 고객님께나 드릴 법한 정보나 힌트를 드리다니…….”
시현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 * *
“도련님.”
최형준의 경호원들이 다가왔다.
“저 놈 잡겠습니다.”
“뭐? 왜? 아니, 재수 없긴 하지만 잡아서 뭐하게?”
“아닙니다. 저놈 지금 자기가 도청장치를 심어두고 꺼내는 척하면서 쇼하고 있는 겁니다.”
“?”
최형준은 경호원들의 말을 듣고 의아함을 느꼈다.
‘경호원들이 말하는 게 어째…… 묻으려는 것 같다?’
설령 경호원들이 말하는 대로 시현이 자신의 손으로 카메라들을 감추었다가 끄집어 낸 것이라고 해도 경호원들은 일단 이 카메라를 누가 어떻게 설치했는지 확인하고 조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시현이 수작을 부리는 거라고 이 상황에서 단정 짓다니?
“아니, 됐어. 저 놈이랑 따로 이야기 해 봐야겠어. 모두 물러나.”
최형준이 그렇게 말했지만……
경호원들은 누구도 물러나지 않았다.
“물러나라니까?”
“죄송합니다. 도련님.”
“저희는 도련님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뭐?”
최형준은 자신의 명령을 노골적으로 거부하는 경호원들에게 당황했다.
“야, 뭐하냐? 도련님 모시지 않고! 안전한 곳으로 모셔!”
“예!”
경호원들 중, 덩치 큰 친구가 대뜸 최형준을 뒤에서 붙잡았다.
“뭐, 뭐야! 이 자식들! 이거 안 놔?!”
최형준이 발버둥 쳤지만 경호원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최형준을 너무나 손쉽게 끌어내고 있었다.
“흐음.”
시현은 자신을 포위하고 접근중인 경호원들을 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오해가 있으신 것 같은데.”
“오해?”
“무슨 오해?”
“계약은 종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공짜로 일을 하진 않지요. 시현탐정사무소는 고객만족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고 있습니다만 고객은 계약해야 고객이지요?”
“그러니까 이제 도련님과 계약을 안했으니 무슨 일이 생기건 상관없다. 넌 빠지겠다 이거냐?”
“바로 그 말입니다. 굳이 돈 안 되는 일, 계약도 안 한 전 고객님을 위해 제가 일할 필요가 없지요. 자신의 기술을 팔고 사는 프로일수록 자기 기술을 헐값에 팔아선 안 되는 법 아니겠습니까?”
“…….”
“흐음.”
“어쩌죠?”
경호원들은 경호팀장의 눈치를 살폈다.
“말장난이야. 어차피 그냥 보내줄 수 있는 놈이 아니다. 게다가 저놈, 최설아 아가씨를 불법으로 도청, 감시했잖아? 도련님의 명령으로! 즉, 녀석은 도련님의 범죄행위의 증인이기도 해.”
“아.”
경호팀장의 말을 들은 경호원들은 시현을 그냥 보내줄 생각이 없어 졌는지 다시금 긴장의 끈을 조이기 시작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