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6화
Kingdom of Choi #2
“프로는 공짜로 일하지 않는 법인데…… 이거 참 난감하게 되었군요.”
시현은 최형준에게 물어보았다.
“그래서 어쩌시겠습니까? 계약하시겠습니까? 대가는 수명 3년으로 하지요.”
“수명 3년?”
듣고 있던 경호원들이 피식 웃었다.
“미쳤나, 이놈?”
“뭐야, 이거.”
“도련님. 보셨습니까? 저놈 저거 제정신이 아닙니다.”
“…….”
최형준은 기세등등한 경호원들을 보며 당황했다.
눈치 없고 속 편하던 그였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경호원들이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저들은 최형준의 불법행위의 증거를 관리하겠다고, 최형준을 위해서 시현을 잡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말은 겉치레일 뿐, 저들의 진심은 시현을 잡아서 불법행위를 증언시키겠다. 최형준에게 고삐를 채우겠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상황이다.
“자, 그래서 어쩌시겠습니까? 계약하시겠습니까? 아니시라면 전 그냥 이만 퇴근하겠습니다만.”
그러자 경호원들이 피식 실소를 터뜨렸다.
“퇴근하겠다고?”
“퇴근? 그게 네 마음대로 될 것 같으냐?”
보고 있던 최형준도 기겁했다.
‘이 사람 미쳤나? 아니, 하지만 수명을 달라고 했지? 뭐야, 그 계약조건은? 가족 병원비 내 달라든가, 계약금, 방세 및 보증금 좀 내 달라는 놈은 많이 봤어도 수명을 내놓으라는 놈은 처음 보는데.’
최형준은 주위의 눈치를 살폈다.
한영시큐리티의 직원들, 그중에서도 VIP 경호원들은 모두들 무도 경험자, 특수부대 출신들로 설사 상대가 올림픽 선수 급의 사람이래도 혼자서, 그것도 맨손으로는 당해낼 수가 없다.
‘어, 어쩌지. 여기서 저놈이랑 계약하겠다고 하면 경호원들이 나를 가만 놔두지 않을 테고……. 그렇다고 저놈을 그냥 보내주거나 경호원들이 해치게 하면, 아니, 경호원들이 해치는 시점에서 나도 말려들어가는 거잖아? 아, 아니, 이미 말려들어갔나?’
최형준은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전 고객님으로 남기로 결정하신 모양이군요.”
시현은 유리창 쪽으로 다가갔다.
선릉공원 인근의 옛 주택을 개조해서 사무실로 만든 이 건물은 3층 건물, 사무실은 2층에 있어서 창밖으로 뛰어내릴 높이는 된다.
그러나 유리창이 쉽게 열리지 않는 시스템 창호로 되어 있었다.
환기는 되어도 사람이 뛰어내릴 만큼 열리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서 아르곤 가스가 주입되어 있는 이 유리창은 매우 강력해서 사람의 힘으로 파손할 수도 없다.
그런데 시현은 마치 창문으로 뛰어내릴 것처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경호원들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시현에게 다가선다.
‘멍청한 놈, 그게 사람 손으로 부서질 것 같냐?’
‘어디 해봐라. 등신아.’
다들 시현을 다 잡은 고기라 여기는 바로 그때였다.
* * *
“계약하지!”
최형준이 그렇게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그 순간 시현이 미소를 지었다.
“탁월하신 선택이십니다. 자세한 계약서는 추후 작성하되, 지금부터 고객님은 시현탐정사무소의 동종 업계 최고수준의 고객서비스를 누리실 수 있습니다.”
시현의 눈이 일순 금색으로 빛났다.
집중해서 보지 않으면 알아차릴 수 없는 찰나의 반짝임이었다.
“뭐야, 이 새끼. 미쳤나?”
보고 있던 경호원들이 시현에게 달려들었다.
“원래는 선공을 양보하지만…….”
시현은 손가락을 까드드득, 소리 나게 풀며 움켜쥐었다.
“이번엔 그럴 필요가 없지요.”
처음에 덤벼든 경호원이 삼단봉을 휘둘렀다.
그러나 시현은 삼단봉을 무시하고 팔을 뻗어왔다.
‘멍청한 놈. 팔 부러진다!’
경호원이 그리 생각했지만…….
-텅!
삼단봉이 튕겨나가고 경호원의 손이 저렸다.
시현은 단번에 경호원의 머리를 붙잡아버렸다.
-콰직!
아르곤을 주입한 시스템 창호의 두터운 유리창이 폭발하듯 깨지며 유리 파편이 밖으로 쏟아졌다.
“아니?!”
보고 있던 경호원들이 기겁했다.
시현이 경호원의 머리를 잡더니 한손으로 휙 잡아당겨 시스템 창을 향해 내던진 것이다.
인간의 힘이 아니다.
“흠!”
시현은 빙글 몸을 돌리며 또 다른 경호원을 붙잡고 그도 역시 창호로 던졌다.
-와장창!
시스템 창호가 구겨지며 다시 파편이 사방팔방으로 쏟아져 내렸다.
“어?”
“뭐…… 야 이놈?!”
그 순간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시현이 품에서 트럼프 카드를 뽑아 던진 것이었다.
스테인리스 스틸 스프링 강 위에 카드를 인쇄한 강철 카드지만 한 장의 무게는 얼마 되지 않아 투척물로서의 위력은 사실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다.
그렇지만…….
-팅!
카드가 삼단봉에 격중한 순간 경호원의 손이 풀리며 삼단봉이 날아가버렸다.
카드가 삼단봉에 박힌 채로 지면에 떨어지고…….
경호원의 손이 부르르 떨린다.
장갑 위로 피가 뚝뚝 떨어질 정도다.
“윽…….”
남은 경호원들이 기겁할 때였다.
“그럼 고객님은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무래도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게 낫겠지요?”
시현이 그리 말하며 최형준을 붙잡고 있는 경호원을 바라보았다.
“우, 웃기지 마라. 내가…….”
그때 시현이 또 카드를 꺼내들었다.
경호원들은 이미 그 카드의 위력을 알고 있기에 섣불리 나설 수 없었다.
다만 경호팀장은 생각이 달랐다.
“야! 겁먹지 말고 맞아! 경호원은 맞는 것도 일이다!”
“……네!”
경호원들은 맞는 것도 일이다.
저 스틸 카드를 맞아서 어디 피라도 흐르게 되면 흉기에 의한 상해죄가 성립한다.
“후후.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까?”
시현은 카드를 날렸다.
시현이 날린 카드는 벽에 노출되어 있는 전선에 명중했다.
이 인테리어 사무실은 전등 스위치가 벽에 매설되지 않고 밖에 플라스틱 관 사이에 끼워진 채로 노출되어 있었는데 그 전선에 명중한 것이었다.
사무실의 전등이 일제히 꺼지고 어둠이 찾아왔다.
“윽?!”
“억?!”
“젠장!”
“야! 플래시 켜!”
경호원들이 스마트폰이나 휴대용 플래시를 이용해 불을 켰지만…….
그들이 불을 밝혔을 때는 이미 최형준과 시현의 모습이 사라진 뒤였다.
* * *
시현은 사무실 주차장에 주차된 자신의 차에 타고 옆자리에 최형준을 태웠다.
“자, 그럼…….”
시현은 주차장을 나서면서 출발하기 전 다른 경호원들의 차량을 향해 총을 겨눴다.
“어?”
최형준은 시현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권총을 꺼내는 걸 보며 당황했다. M1911A2.
아마도 전 세계에 가장 많이 풀렸을 흔하디흔한 콜트 권총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전혀 흔한 물건이 아니다.
“무슨…….”
“귀 막으시죠.”
-탕!
시현이 방아쇠를 당기자 주차되어 있던 차의 타이어가 호쾌하게 터지고 탄피가 시현의 차 안으로 튀어 조수석에 있던 최형준에게 튀었다.
“앗, 뜨거!”
“그럼.”
시현은 시원하게 차를 몰고 밖으로 튀어나갔다.
“으아…… 뭐야. 왜 실총을 가지고 있어 당신?!”
“아, 장난감입니다. 장난감.”
“장난감이라고? 무슨 장난감이 차 타이어를 터트리는데?”
“깨진 유리병이나 녹슨 못?”
“……어떤 미친놈이 그걸 장난감이라고 갖고 놀아?”
“자자, 진정하시고. 드시겠습니까?”
시현은 차를 몰면서 사탕을 꺼내서 최형준에게 건네주었다.
“이, 이제 어쩔 거야?”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도록 하지요.”
“그러니까 안전한 곳 어디?”
“그전에 고객님. 휴대폰을 꺼주시겠습니까?”
“뭐? 왜?”
“한영그룹 그룹웨어를 휴대폰에 깔아두고 계시지요? 그거 위치 추적 기능 있습니다.”
“뭐? 진짜?”
최형준은 그 말에 기겁하면서 휴대폰을 즉시 껐다.
“잘 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글로브 박스를 열어보시죠.”
“어. 응?”
최형준이 시현의 차 글로브 박스를 열자 안에서 스마트폰들이 우글우글 굴러 나왔다.
“그중 하나 쓰시지요. 앞으로 그걸로 연락하도록 하겠습니다.”
“으으…… 괜찮은 거야? 이거? 큰일 났네. 숙부님이 적이라면…….”
“‘숙부님들’이 적이지요.”
시현의 대답이 최형준을 더더욱 질리게 했다.
* * *
“그래서 안전한 곳은 어디로? 당신 사무실은 아니지? 당신 사무실은 이미 당신을 채용할 때 알고 있었어.”
최형준이 그렇게 물어보자 시현이 차의 핸들을 돌렸다.
“염려마시길. 현재로선 가장 안전한 곳으로 가고 있으니까요.”
“그래? 여긴 어딘데?”
“공덕동입니다. 번화가지요. 근처에 서부지검이 있고.”
“그래. 그리고?”
시현은 오피스텔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엘리베이터를 통해 올라가 어느 현관문 앞에 섰다.
그리고 벨을 눌렀다.
“계십니까?”
“…….”
“계신 거 알고 있습니다.”
“…….”
문이 열리고 칫솔을 입에 물고 있는 최형림이 등장했다.
그는 완전 질린 표정으로 시현과 최형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혀, 형님?”
“…….”
“현재로선 가장 안전한 장소지요. 실례하겠습니다.”
“이봐.”
최형림이 뭐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시현은 최형준을 앞세워 안에 들어왔다.
“아직 대답하지 않았는데. 주거침입죄가…….”
“형제 간에 주거침입죄는 성립되지 않지요.”
“…….”
“아, 첫 방문인데 변변치 않지만 선물입니다.”
시현은 사탕 봉지를 최형림에게 건네주었다.
“…….”
“그거 그냥 차 안에 굴러다니던 거잖아…….”
최형준이 그렇게 말했지만 시현이 영업용 미소를 지어보였다.
최형림은 그걸 받았다.
* * *
최형준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낱낱이 실토했다.
유학을 끝마치고 다녀왔지만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은 최형준은 본래 한영건설에 입사해 대부분의 재벌 자제들이 그러하듯 초고속 승진으로 그룹의 중추에 설 것을 기대했다.
성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어도 어쨌건 전공은 건축과이고 샌프란시스코의 아트스쿨에서는 나름 예술가적 감각도 있다고 평가받았다.
자기가 직접 건물을 설계하거나 디자인하는 건 무리지만 적어도 어떤 게 괜찮은 설계고 디자인인지, 사람들은 어떻게 구하고 팀은 어떻게 꾸려야 할지는 가닥을 잡았다고 자부한다.
그런데 최형준과 최형림의 아버지, 최중선 회장은 최형준이 한영건설그룹에 입사하는 걸 거부했다.
그래서 당황하는 최형준에게 숙부, 최중무가 접근해왔다.
그는 최형준에게 사업체를 따로 만들어서 실적을 세울 것을 추천했고 그에 필요한 인맥, 인력을 제공해 주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해. 설아는 아무래도 우리 그룹을 이끌 그릇이 못 돼. 우린 널 보고 있는데…… 설아가 최근 호스트바에서 마약을 한다더라. 그래서 말인데…….’
최중무는 최형준에게 경호원들을 빌려주면서 최설아와 싸울 방법, 그리고 한강건재와의 맞선도 주선해 주었다.
“누나는 아무래도 그, 행실이 안 좋다고 소문이 나서 숙부님들이 다들 나에게 기대하고 있다고 했었는데…….”
“그랬군요. 흠, 치킨 시킬까요?”
듣고 있던 시현이 최형림에게 물어보았다.
“아니, 좀 진지하게 듣는 시늉이라도 하라고.”
“저는 이미 조사해서 알고 있던 내용이라서요.”
“하. 우리 가문도 아닌 사람이 다 알고 있던 내용이라고? 그렇게 말하면 내가 등신 같잖아?”
“……등신 맞지.”
최형림이 그렇게 말하자 시현이 고개를 저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