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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31-78화 (78/269)

제78화

Kingdom of Choi #4

원래 그들이 따로 흥신소나 탐정을 최형준에게 붙여준 것은 도청이나 감청,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를 덮어씌울 희생양으로 고른 것이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들이 고른 탐정이 강남경찰서장도 들이받은 놈일 줄이야.

영사 대신 다른 이가 대답했다.

“그게 추천이 많아서요.”

“추천이 많다고 그런 놈을 뽑았어? 멍청아. 이번 놈은 우리 일 짬처리 시킬 놈 뽑는 거라고 했잖아.”

“그런 의미에서도 추천이 많았습니다.”

“…….”

즉, 탐정업계에서도 조지고 싶으면 이놈을 조져 달라. 하고 추천을 해왔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시현은 탐정업계에서도 질투와 시기를 한 몸에 사고 있으며 사람들 모두 내심 시현이 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럼 그만큼 잘난 놈이라는 거군. 아니, 어린놈인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최중무 사장은 영사를 노려보았다.

“영사, 넌 이놈이 어떤 놈인지 잘 알고 있었다며? 네가 왜 안 말렸지?”

“저는 그 인선에는 아무런 감독 권한도 없었습니다. 비서 분께서 하신 겁니다.”

“…….”

최중무 사장은 비서라는 이야기가 나오자 입을 다물었다.

비서가 잘못했다면 추궁하지 않겠다는 의향이 엿보였다.

머리에 흉터가 있는 중절모 남자, 영사는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럼 어떻게 할까요? 외람되오나 제가 한 말씀 드리자면 지금은 손을 떼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상당히 후하게 평가하는군? 그 탐정 놈이 그렇게 귀찮나?”

“그 녀석 손대면 반드시 손해 보니까요.”

“하지만 이런 기회가 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 내 손을 더럽혀 가며 일군 이 사업을 그따위 멍청한 조카 놈들에게 맡기는 건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그러니 조카들에게서 기업을 빼앗는 것은 애국이며, 대의를 위해서는 혈육의 정 정도는 쉽게 끊어야 한다.

그것이 최중무 사장의 신념이었다.

이 신념에 의하면 그는 혈육의 정을 절절하게 느끼지만 애국충정의 마음으로 어쩔 수 없이 조카들을 몰아내는 사람이지 결코 사리사욕 때문에 골육상쟁을 일으키는 소인배가 아니다.

본인부터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으니 최중무 사장은 비통함에 눈시울마저 붉히며 말했다.

“어떤 피해를 보더라도 감수해야 한다. 그대로 진행하게.”

“네, 알겠습니다.”

영사는 미소를 지으며 최중무 사장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 * *

“자, 이쪽이야.”

최설아는 자신의 대형 밴 차량으로 안내했다.

그 근처에는 그녀의 경호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윽?”

경호원을 본 최형준은 기겁했다.

“괜찮아. 이 경호원들은 내가 월급주고 내가 뽑은 이들이니까. 누구처럼 멍청하게 붙여준다고 다 데리고 다니지 않았거든?”

“미안하네, 그거.”

“그래. 넌 미안해해야지. 멍청한 동생아. 어떻게 숙부가 태워준다고 비행기를 확 타서 이 누나 등에 칼을 꽂으려고 해?”

“내가 숙부에게 이용당하긴 했지만 이용당하지 않더라도 딱히 누나 등에 칼 꽂는 데는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겠는걸?”

“지금 내 도움을 받으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최설아는 그리 말하고 차량에 올라타 리무진 시트에 등을 기댔다.

“그래서 탐정. 네가 말한 대로 일단 차를 끌고 왔어. 그런데 나는 아직 너랑 계약하지 않았어. 이런 상황에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건 좀 잘못이라고 보는데? 내가 널 믿을 근거가 없잖아?”

그녀는 그리 말하고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

시현이 협박하면서 스테인리스 스틸 카드를 댔던 부위에 반창고가 붙어 있었다.

“오히려 이거 진단서 떼서 널 폭력행위로 고소할 수도 있어. 자, 날 납득시켜 봐!”

최설아는 시현을 협박하며 강하게 나왔다.

그러나 시현은 그런 최설아의 협박에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애초에 부른다고 나오지 않았겠지.’

사실 자신의 현재 상황에 답답함을 느끼고 있는 건 최설아가 더 급했다.

그녀가 호스트바에서 진탕 놀아제낀 것은 성취와의 연애에서 상심한 것도 있지만 자신에게 전혀 애정을 주지 않는 가족, 친척들과 고지식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여성으로 태어나 가지는 한계에 삶의 목적을 잃고 방황하고 있었던 것도 있다.

물론 사회초년생 1년 연봉을 하룻밤에 탕진하면서 노는 사람의 내적 갈등이나 고통은 참 밖에서 보면 우스워 보이지만, 본인은 본인 나름대로 고통 받고 괴로워서 그러는 것이다.

재벌집 자식은 재벌집 자식대로 고충이 있는 법.

그렇기에 시현의 낚시에 걸려 여기까지 오고 만 것이다.

“원하는 게 뭐야? 돈이야? 얼마나 원하는데?”

“돈이 아닙니다.”

“뭐? 그럼 뭐야? 뭘 원하는데? 설마, 뭐, 내 몸이라도 원하는 거야?”

“풉.”

듣고 있던 최형준이 웃음을 터뜨렸다.

“누나는 여전히 웃기는걸. 누님 지갑에 돈다발이 꽂혀있으니까 호스트들이 굽신거리는 거지…….”

“닥쳐라. 응? 클럽에 가면 내가 부잣집 딸이라고 말 안 해도 다들 얼마나 들이대는 줄 알아?”

“……클럽이니까 그렇지. 자기가 인기 있다는 근거가 그거면 스스로 생각해도 좀 비참하지 않아?”

최형준과 최설아가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시현이 그 싸움을 말리며 말했다.

“뭐 큰 의미로는 몸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수명을 원합니다. 3년 정도.”

최설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이놈이 지금 뭐라고 한 거지?

“수명? 진심이야? 어떻게 그걸 받아가겠다고? 설마 뭐, 내 콩팥이나 그런 거 떼 가는 거야?”

“딱히 수술이나 몸에 해를 끼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수명이라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다, 그만큼 절실하다, 그러시면 계약에 응하시면 됩니다.”

“흠. 뭔가 너무 대충 대충인데. 착수금이나 진행비용은?”

“들어간 경비는 일정부분 청구하겠습니다만 착수금은 필요 없고, 만약 일이 실패한다면 보수도 필요 없습니다.”

“성공보수제도란 말이지?”

“예. 계약이 완수된 시점에서 제 서비스가 수명을 줄 만하다 싶으면 그저 ‘정산’이라고 말씀만 해 주시면 됩니다. 수명을 잃게 되더라도 지금 건강상태가 변화하는 일은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최설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더 이상하잖아? 혹시 너 미친놈 아냐?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이야기 많이 듣지요. 하지만 제가 미친놈이라면 더 좋은 것 아닙니까? 저는 이미 강남경찰서장을 경질시키는 짓도 저질렀습니다. 그 말인즉, 실무 능력은 상당하다는 거지요.”

“…….”

“사실입니다.”

경호원들이 최설아에게 시현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시켜주었다.

“만약 제가 미친놈이라면 제 능력과 서비스, 그 모든 것을 고객님은 무상으로 누리시게 되는 겁니다. 제가 미친놈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해도 수명을 바쳐도 아깝지 않을 만한 서비스를 제공할 것을 약속드리지요.”

“아, 듣다 보니 내가 미칠 것 같군.”

“그래서 계약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이대로 저희를 여기 내려주시고 왔던 길로 돌아가시겠습니까?”

“……하지.”

최설아는 시현과의 계약을 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시현의 전화를 받고 길을 나설 때부터 그녀는 계약을 하기로 마음먹었었다.

자신에게 잠입해 목에 칼날을 들이댄 인물을 믿는다는 게 이상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재벌가의 일원으로 자라서 자신의 돈이나 상속권을 노리고 접근해오는 이들만 대한 그녀로서는 시현 같은 인물은 참으로 특이한 존재였다.

적어도 그는 그녀에게 돈을 요구하지 않는다.

돈으로 바꾸기 위한 신뢰나 애정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적어도 그런 점에서는 믿을 만한 녀석이겠지.’

그동안 그런 놈들에게 시달려 온 최설아 입장에서 시현의 담백한 태도는 마음에 들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최설아 씨도 동종 업계 최고의 가성비, 고객만족도를 자랑하는 시현탐정사무소의 고객이 되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스스로 그렇게 칭찬하면 쪽팔리지도 않나?”

“사실을 말하는 것뿐인걸요.”

시현은 뻔뻔스럽게 그렇게 말했다.

* * *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지?”

“우선 계약의 범위를 정하도록 하지요.”

“계약의 범위?”

“어느 정도 선에서 계약을 완수하고 수명을 넘겨받을까, 그걸 정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아무리 시현탐정사무소가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한다지만 평생 한두 고객 분만 모실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런 우수한 고객서비스를 더 널리, 많은 분들께 전파해서 행복을 나누는 것이 제 사명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와.”

“뭐야, 이 자신감.”

시현의 뻔뻔스러운 자화자찬에 둘 다 질렸다.

“저기, 내가 이런 말 하긴 그렇지만 숙부님 무서운 사람이야. 중동에서 코 옆으로 로켓포가 날아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고 하고, 전국구 깡패들이라는 놈들도 숙부님 앞에서는 설설 긴다고. 원래 건설업이라는 게 요새야 양복입고 다니지만 옛날엔 완전 상마초들이나 하는 짓이었거든.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최형준은 자신의 숙부의 두려움을 열심히 설명했다. 너무 열심히 설명해서 과장이 섞이지 않았나 싶지만 한영건설그룹에서 최중무의 무용담은 귀에 못이 박히게 듣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시현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최중무 사장의 위협에서 고객님들을 안전하게 해드리면 어떻습니까?”

“어?”

“그게 가능하긴 해?”

최설아와 최형준이 의아해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숙부님이 포기할 것 같지는 않은데?”

“갑자기 우리 아버지가 뭔가 부성애에 눈을 떠서 우리들을 지켜주려고 할 것 같지도 않고.”

“설마 숙부님을 죽여버리는 건 아니겠지?”

“숙부님이 죽는다고 딱히 양심에 거리낌이 있거나 하는 건 아닌데…….”

“숙부님을 죽이는 것 자체가 힘든데다가 설령 정말 했다 치더라도 그러다 걸리면 우리가 살인 교사로 잡혀 들어가는 거잖아?”

그런 그들의 의문에 시현은 미소로 화답했다.

“안심하시길, 시현탐정사무소는 절대로 살인을 하지 않습니다. 살인을 하지 않고도 가능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시현탐정사무소가 동종 업계 최고의 서비스라고 자부하는 이유지요.”

“…….”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과연 이놈이 말하는 동종 업계란 무엇일까. 탐정업? 흥신소들?’

‘뭔가 그 외의 이상한 것들을 두고 이야기 하는 것 같은데?’

어쨌거나 최중무를 죽이지도 않고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면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정말 수명을 3년 치 빼앗을 수 있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재벌가, 그중에서도 최중무처럼 건설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을 상대하라면 조직폭력배들조차 발을 빼는 게 현실이다.

제정신 박힌 놈이라면 감히 맞설 수 없는 적에게 맞서주는 놈이라면 광인이라 해도 환영해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잠깐만. 지금 네가 말하는 건 어디까지나 숙부가 우릴 정말 죽이려 한다고 할 때 의미가 있는 거 아냐?”

최설아가 그 부분에 딴지를 걸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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