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화
Kingdom of Choi #5
“나는 아직 숙부가 날 죽이겠다고 하는 건 믿을 수가 없어. 물론 우리 세대에게 상속시키면 형림이도 상속을 받으니까 그게 싫어서 죽이려 한다는 건…… 납득이 가. 하지만 정말 죽이려면 진작에 죽였겠지?!”
그러자 시현이 물어보았다.
“하나 물어보지요. 재벌가 자식이 죽으면 누구를 먼저 수사할 것 같습니까?”
“그야…….”
“당신들이 경호원을 대동하고 사는데 평범한 강도 살인 등으로 위장하고 죽일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아무리 삼엄한 경비를 하고 있어도 사람을 죽여 대는 놈이 하나 있지요?”
“사이다패스?”
부장검사를 비롯해 다양한 사회 고위층을 거리낌 없이 죽여 대는 신비의 살인마, 사이다패스의 존재는 이미 최설아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하지만 설마 그 이름이 지금 여기서 나올 줄은, 그것도 자신의 입에서 나올 줄은 몰랐다.
“사이다패스를 모방해서 우릴 죽일 거라고?”
“예.”
시현은 담담하게 최설아의 질문에 대답했다.
“잠깐. 그럼 왜 숙부님은 나는…….”
최형준은 그렇게 물어보았다.
“나는 누님의 사업체를 빼앗으라고 이것저것 지원해 주셨는데? 게다가 유력한 집안이랑 맞선도 보게 하고.”
“그건 아마도 처음에는 죽일 생각이 없이 정말로 그냥 자기 사람들 좀 심어두는 것에 만족했었을 겁니다. 최설아 씨는 경호원을 자기 입김이 닿는 사람으로 교체하는 정도로 최중무 사장을 경계하니까 당신을 더 쉬운 수단으로 보았겠지요. 그러나 아마도 차후에…… 죽일 수단이 생긴 겁니다.”
“그런? 너무 엉성하잖아? 그거?”
“뭐가 엉성합니까?”
“아니, 계획 살인쯤 되면 뭔가…….”
“제가 지금까지 탐정을 하면서 겪은 살인들 상당수는 우발적인 살인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은 살인들의 계획 역시 대부분이 임기응변이었고요.”
시현이 그렇게 말하자 묘한 설득력이 느껴졌다.
탐정 소설에선 살인사건이 흔하지만 사실 살인을 경험한 탐정이라는 건 흔하지 않은 인물이다.
탐정들을 먹여 살리는 주요 업무는 불륜조사다.
그런데 시현이 자신은 살인사건을 많이 경험해 봤다고 주장하니…… 탐정으로서 추천까지 받은 인물이 그리 말하니 설득력이 생길 수밖에.
“완전범죄를 노리는 은폐 살인이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리허설이 불가능해요. 한국처럼 보는 눈이 많은 곳에선 어딜 가나 사람들이 그득그득한데 어떻게 살인을 연습합니까? 설령 인적 드문 새벽 시간에라도 리허설을 할 수 없지요.”
“리, 리허설?”
“네. 요즘 세상에는 휴대폰과 CCTV, 심지어 차량들마다 다 달고 있는 블랙박스도 있지요. 이런 환경에서 계획을 너무 빡빡하게 잡으면 융통성이 없어서 실패하게 되니까 적당히 임기응변이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경찰력을, 수사력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일단 이 사람이 피해자를 죽일 만한 서사가 성립된다, 하면 증거가 없어도 의심하고 일단 의심해서 조사를 하기 시작하면 설령 진범이 아니래도 온갖 범법 행위들이 싹 들통 나게 됩니다. 한국은 주민번호도 있고 지문도 날인되고 휴대폰 방문기록도 다 열람할 수 있는 나라니까요.”
즉, 정상적으로 완전 범죄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계획살인을 할 정도로 가해자와 피해자가 인연이 깊다면 경찰에 의해 밝혀질 확률은 100%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죽여도 안 걸리겠다. 그리고 확실히 죽일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긴 겁니다. 이미 최형준 씨를 이용해서 밑 작업을 하던 중에 말이지요.”
“…….”
“그게 사이다패스식 살인이라고?”
“예.”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좋아. 어차피 성공보수지? 난 일단 당신을 믿을지 말지 모르겠어. 그래도 계약은 했으니까 날 위해서 그 잘난 고객서비스인지 뭔지를 다해보라고! 아니면 뭐, 다시 그 호스트 차림을 하고 오든지 말야.”
최설아는 자신의 목숨이 위협당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말 시현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인지, 그게 아니면 담력이 강해서인지 호언장담을 하며 웃고 있었다.
* * *
다음날,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빗줄기가 내리고 있는 거리에 한영시큐리티의 순찰차가 노란 경광등을 깜빡거리며 시현탐정사무소가 위치한 골목 앞을 지난다.
근처에 다른 곳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아침부터 차근차근 성실하게 순찰을 도는 모습에는 사심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런 보안업체의 순찰차는 같은 곳을 아무리 맴돌아도 경찰이나 다른 이들의 의심을 사지 않는다.
노란 경광등이 달려있긴 하지만 사이렌을 울리는 것도 아니고, 그저 조용히 빗줄기 속을 오가며 시현의 사무실을 감시한다.
“하지만 느슨한 감시로군. 하긴 그렇겠지. 저들은 고작 월급쟁이일 뿐일 텐데…….”
그들의 감시를 피해 빗줄기 속에서 한 인영이 움직였다.
시현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문을 열었다.
“흠. 좋아. 아무도 없군. 내 사무실을 좀도둑처럼 드나들어야 하다니.”
-타다다닥.
시현이 사무실에 들어서자 타자기가 타닥거리며 그를 맞이했다.
‘훌륭한 악마가 되겠군요. 한 명당 3년이나 받아 내다니 평소보다 많이 부르지 않았습니까? 분명히…… 별다른 이유 없이 수명을 너무 과하게 부르는 것을 금지하고 있었을 겁니다.’
타자기의 악마는 시현이 가급적 많이, 오래오래 고통 받기를 원한다.
한 방에 남의 수명을 와장창 뜯어내어 재미 보는 걸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저 최씨 남매에게 각각 3년씩 뜯어낼 수 있었던 것은 시현의 마음속에서 이게 정당하다는 인식이 너무나 강렬했고 악마도 내심 긍정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왜 그게 가능했는가?
악마는 그 점을 물어보았다.
“세상은 불공평하지. 재벌가 자식들은 그 불공평한 세상의 이익을 누리는 자들이고, 그렇다면 내가 삶의 저울추를 좀 맞춰준다 해서 나쁠 거 없잖아? 사실은 3년 이상도 부르고 싶었지만 그 경우는…….”
‘가성비 면에서 동종 업계 1위라고 자랑할 수 없게 되겠지요.’
“아니, 가성비 면에서 그래도 동종 업계 1위이지 않을까? 나보다 더 싸게 이런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이들이 있나?”
시현은 그리 말하고 금고를 열었다. 금고 안에는 서류와 돈들, 심지어 금괴가 들어 있었는데 그 안쪽의 문을 열자 숨겨진 공간이 나왔다.
겉으로 보기보다 훨씬 속이 깊은 금고에 시현은 총과 총탄을 넣어두었다.
“몸수색 당할 일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이건 치워두고 가는 게 좋겠군.”
‘수명을 담보로 일부 장비는 좀 맡아드릴 수도 있습니다.’
“아니. 아껴야지.”
시현은 그렇게 대답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재벌을 상대로 무슨 수를 쓰실 겁니까? 정말 이걸 쉽게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까? 상당히 어려운 일 같은데?’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이건 굉장히 쉬운 일이야.”
‘쉽다고요?’
“그래. 결론적으론 쉬워. 하지만 그 과정은 좀 힘들 수도 있겠군. 어디나 그렇지만 너무 과정이 쉬워버리면 사람들이 종종 생각이 바뀌거든. 화장실 급할 때랑 나오고 난 뒤의 생각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야.”
배관을 수리하거나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 일이 너무 쉬워 보이면 사람들이 지불하길 꺼려한다.
사기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어쩐지 아쉬운 것이다.
자기가 낸 대가만큼 상대가 괴로워하고 힘들어해야 정당한 보상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려고? 흠, 기대되는군요. 아, 가기 전에 종이 좀 바꿔주시지요.’
“……싫은데? 어차피 나 말고 말할 상대도 없잖아? 다녀와서 바꿔주지.”
시현은 종이를 바꿔달라는 타자기의 요청을 무시했다.
그런데 시현이 막 나가려던 찰나였다.
“……!”
시현은 잠시 흠칫 놀랐다.
문 밖에 류하리가 오고 있는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 젠장. 이 아가씨가.’
시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정확한 타이밍에 나가려고 하다 그만 류하리와 문에서 충돌했다.
물론 일부러였다.
‘나는 류하리를 더 이상 감시하지 않는다.’
그런 인상을 주기 위해서 일부러 그녀의 위치를 알면서도 모르는 체 충돌한 것이다.
“꺅!”
“윽! 아, 괜찮으십니까. 류 경위님?”
“아, 네.”
“이제 완전 제 사무실을 흡사 자기 집처럼 드나드시는군요.”
“아니, 뭐 조수잖아요. 조수. 게다가 아시죠? 저 아직 당신 감시해야 하는 거?”
“그런 걸 당당하게 말씀하시다니.”
류하리는 여성 경찰간부이면서 현장에 직접 뜀으로서 임관 초기의 불명예를 많이 씻어냈다.
이제는 오히려 평판이 좋은 축에 든다.
그렇지만 경찰 상부의 명을 받아서 시현을 조사&감시하는 건 지금도 여전하다.
“그래서 요즘은 어떤 일을 하시나요? 어디 가세요?”
“제가 그런 것까지 말해야 합니까?”
“그럼 따라가도 될까요?”
“네?”
“요 며칠 사무실을 비우고 잘 안 들어 오셔서 보고서에 쓸 게 없어서 그래요. 소설로 채우는 것도 한계가 있어서…….”
“보고서 작성은 필요하시면 제가 얼마든지 도와드립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저도 필드에 뛰어야죠.”
“필드에 뛰시면 방해만 되는데…… 제가 방해를 받습니다.”
“원래 그러라고 상부에서 절 붙여둔 걸요.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시는 게 어때요?”
“후우. 어쩔 수 없군요.”
시현은 한숨을 내쉬고 류하리에게 손짓했다.
“따라오시죠.”
“네!”
류하리는 신나서 시현을 쫓아왔다.
* * *
서&정 탐정서비스.
이 회사는 탐정업계의 굴지의 1등 업체, 그야말로 얼굴이라고 할 수 있었다.
탐정업으로 무려 TV광고를 할 뿐만 아니라 TV쇼에서 탐정에 대한 상담을 할 때 상담역으로 이 회사 스텝이 나올 정도로 유명한 회사였다.
하지만 그 실체는 재하청 업체.
탐정업이 합법화되자마자 TV광고와 각종 홍보 등으로 사람들의 의뢰를 쓸어 모아 의뢰를 독점한 후 다른 곳에 재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성장한 업체인 것이다.
탐정 일을 잘해서라기보다는 의뢰를 독식함으로서 자연스럽게 업계의 탑이 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한 업체다.
이 서&정 탐정서비스의 사장인 서광현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창밖을 보고 있었다.
창밖에는 부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때 문이 열리는 게 창문에 비쳤다. 비서가 당황해서 들어오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이지?”
“실례합니다, 사장님. 시현탐정사무소에서 찾아왔습니다.”
“뭐? 젠장. 그 귀신같은 놈! 나 없다고 해!”
“저, 그게…….”
그때 비서 뒤로 시현과 웬 여성이 걸어 들어왔다.
“안녕하십니까. 서 사장님.”
“윽? 너 이 자식. 왜 허락도 없이 사무실에 들어와? 너 그거 무단 침입이야.”
무단침입이라는 말을 듣자 여성이 흠칫 놀란다.
“들었지요. 조수 씨. 조수 씨는 잠시 밖에 있으세요.”
“네.”
여성은 꾸벅 인사하고 밖에 머무른다. 하지만 사장실 문 밖이라서 안에서 하는 소리는 다 들리게 생겼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