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화
Kingdom of Choi #7
강남 레반테스 호텔.
그 보안실에서는 보안직원들이 CCTV영상 등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보안팀장이 흠칫 놀랐다.
“야. 잠깐만. 프론트 카메라 돌려봐.”
“네.”
카메라가 회전한다.
“저기 저놈.”
“……어?”
“이 자식이 미쳤나! 여기가 어디라고…….”
보안 팀장은 즉시 삼단봉과 브라스 너클을 챙기고 부하들을 불렀다.
* * *
그리고 잠시 후, 엘리베이터 앞에 우락부락한 보안요원들이 집결했다.
“어…….”
“흐음.”
엘리베이터 로비에는 시현과 류하리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야. 내가 고객만족의 첨단을 달리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호텔리어들의 서비스 정신은 당해내질 못하겠군요.”
시현이 빈정거렸다.
“너, 이 자식! 여기가 어디라고 다시 돌아와?”
보안요원 중 한 명이 팔을 어루만지며 시현을 노려보았다.
시현에게 팔이 부러졌던 요원인 것 같다.
슬프게도 상대는 시현을 기억하지만 시현은 상대를 기억하지 못했다.
이게 맞은 놈은 기억해도 때린 놈은 기억 못 한다는 이야기인가?
“여기가 어디죠?”
시현은 천연덕스럽게 류하리에게 물어보았다.
“어? 음. 호텔이지요?”
류하리가 그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는군요. 여러분.”
“이 자식이!”
그러나 그때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손님들이 내려섰다.
인파가 몰려들자 보안요원들은 흠칫 할 수밖에 없었다.
시간은 대낮, 강남 한복판에 위치한 이 호텔을 오가는 인파는 많다.
“자자,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가면서 이야기 할까요? 저는 어디 도망가는 거 아닙니다. 손님이라고요, 손님.”
시현은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가 카드키를 대고 18층의 버튼을 눌렀다.
보안요원들이 뒤따라 들어왔다.
엘리베이터는 고급지게 몇 차례 리뉴얼 되었지만 그래도 크기 자체는 변함이 없어서 좁았다.
도저히 싸울 만한 곳이 아니다.
그 안에서 보안팀장은 살짝 손만 내밀면 바로 시현의 목을 조를 수 있는 위치에서 시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 이 자식, 그 난리를 쳐놓고 잘도 돌아왔구나.”
“전 지금 이 호텔의 손님입니다. 그것도 꽤 유망한 VIP의 일행이지요. 저에게 손대고 싶으면 대시라고 하겠습니다만, 그 전에 윤 회장님에게 상의해 보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
“으으.”
보안요원들은 당당한 시현의 태도에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데 그때 보안팀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 네. 전화 받았습니다. 예. 예…….”
보안팀장은 표정을 구겼다.
시현이 방금 사용한 카드키는 한영그룹 후계자인 최설아의 이름으로 발급된 카드로 이 호텔 로열 스위트룸의 카드키다.
즉, 시현은 최설아라는 VVIP의 일원이니 아무리 몇 달 전, 이 호텔의 보안직원들의 팔다리를 부러뜨리고 두들겨 팬 장본인이라 해도 손님으로 대하라는 게 상부의 지시였다.
-띵.
목적층에 도착하자 경쾌한 차임벨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그러나 시현은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을 누른 채, 나가지 않고 보안요원들을 돌아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답은 나와 있는 것 같은데?”
“……하아.”
보안팀장은 긴 한숨을 내쉬더니 차렷하고 시현에게 인사했다.
“즐거운 숙박되시길 바랍니다. 고객님.”
“아. 훌륭하군요.”
시현은 감탄하면서 엘리베이터를 나갔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의 문이 다시 닫히려는 순간, 시현이 불현듯 생각났는지 엘리베이터 문틈으로 손을 넣어 엘리베이터를 세웠다.
“무, 무슨 일이신지?”
“아니. 팁이라도 드릴까 하고.”
시현은 지폐 몇 장을 접어서 보안팀장의 윗주머니에 찔러주었다.
“앞으로 한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
보안팀장은 자신을 농락하는 시현의 행동에 기가 막혔지만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참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시현이 엘리베이터를 보내주자 엘리베이터가 다시 내려가며 안에서 난동을 피우는 소리가 들렸다.
“으아아! 개자식! 뭐 저런 놈이 다 있어!”
“……그런데 팀장님. 얼마 주던가요?”
“닥쳐, 이까짓 돈…… 돈이…… 음 20만원?”
“적지는 않네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다행 아닙니까. 전번에 저놈에게 맞아서 저 이빨 나갔는데…… 솔직히 다시 상대하고 싶지 않았는데 잘됐네요.”
그런 소리가 엘리베이터 통로를 통해서 점차 멀어져 갔다.
“저런. 엘리베이터 안에선 소란을 피우면 안 된다는 건 요새 애들도 다 알 텐데?”
그걸 보고 있던 류하리가 식은땀을 흘렸다.
“참 성격이 좋으시군요. 당신.”
“그렇죠? 한국은 팁을 안 줘도 되는 문화인데 팁을 주다니.”
“아니,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아니, 말을 말죠. 그래서 왜 여기로 온 거예요?”
“픽서가 영사라면 레반테스 호텔에 기거하고 있는 사람을 습격하는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윤 회장의 업장에서 사람을 죽이는 건 피하고 싶을 거예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스위트룸의 문을 열었다.
안에는 최설아와 최형준, 그리고 최설아의 경호원들이 있었다.
“저게…… 그 탐정입니까? 아가씨?”
경호팀장은 어째 전직 호스트로 보이는 체격이 큰 잘생긴 남자였다.
최설아가 호스트바를 다니며 그중 경호학과나 체대를 다니던 호스트들을 섭외해 자신의 경호팀을 꾸린 게 지금 최설아의 경호팀이다.
말하자면 사설 호스트부대…… 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아, 왔어? 탐정? 그런데 그 여자는 뭐야?”
최설아가 류하리를 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어?”
최형준은 류하리를 알아보고 깜짝 놀랐다.
“어? 그, 류하리 양?”
“아, 안녕하세요.”
“어째서 여기에?”
“그, 글쎄요?”
류하리는 어떻게 변명해야 하나 싶어서 시현을 돌아보았다.
시현이 대답했다.
“그녀는 제 조수입니다.”
“조수? 하지만 그녀는 경찰이 아닙니까?”
“뭐 투 잡이 그리 이상한 시대는 아니지요.”
“아니, 그렇지만 공무원이 아르바이트 하면 불법이잖아? 그리고 그녀도 집안이 꽤 넉넉할 텐데 돈이 궁해서도 아닐 테고 게다가 형님이랑 사귀는 사이 아닌가?”
“아, 저기 그, 그게 말이죠?”
류하리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머리를 긁적였다.
“사귀는 사이라…… 하하하.”
시현이 웃음을 터뜨리다가 정색했다.
“그래서 제 조수의 개인 사생활에 뭐 문제라도?”
“경찰이잖아.”
“어쨌건 경찰을 데리고 있으면 좋지 않습니까? 위급한 상황에 지원도 요청할 수 있고.”
“그럴 거면 애초에 경찰에게 보호를 요청했지. 이상한 탐정 놈이 아니라! 암살당할 거라는 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경찰을 불러?”
최설아는 그렇게 투덜거리며 기지개를 폈다.
“그래서. 여긴 안전하다 이거야?”
“네.”
시현은 최설아의 머리 위 숫자를 살펴보았다.
과연 수명이 정상화되어 있다.
레반테스 호텔 안에서는 살해의도가 사라진다.
그렇게 봐도 무방하리라.
‘술을 많이 해서 그런지 자연수명은 얼마 안 남았군.’
시현은 최설아의 건강이 그리 좋지 않다는 걸 확인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이곳에서라면 안전합니다.”
“하지만 평생 이러고 있을 수는 없잖아?”
“어차피 최설아 씨의 회사는 당신이 출근하지 않아도 잘 돌아갈 텐데요.”
“…….”
사실 그렇다. 최설아가 호스트바를 달리며 술로 몸을 적시고 다음날 결근하더라도 사업체는 전혀 이상 없이 돌아간다.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져있기 때문이다.
“그럼 언제까지 여기 호텔에 있어야 하는 거지?”
“2주 정도 입니다.”
“뭐? 2주씩이나?”
“네. 그때까진 절대로, 여기 호텔을 벗어나선 안 됩니다. 그럼 저는 이만…….”
시현은 그 말만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니, 잠깐! 그게 전부야?”
“2주만 진득하니 참으시면 제가 밖에서 처리해 두겠습니다. 그럼 추후 연락드리겠습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고 객실을 나섰다.
* * *
시현의 발걸음이 매우 빠르다.
류하리는 종종걸음으로 뒤쫓으면서 시현을 불러 세웠다.
“저기 잠깐만요. 같이 가요.”
“아, 네. 죄송합니다. 마음이 좀 급해서.”
“아니, 뭔가 기분 나쁜 일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아닙니다. 그저…… 음. 마음이 급해졌다고 해 두지요.”
“그나저나 정말 2주 안에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나요? 상대는 쟁쟁한 재벌을 일군 강성 기업인이잖아요? 일단 마음먹으면 그렇게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은데? 게다가 이들이 과연 2주나 계속 호텔 안에 머물러 있을 수 있을까요?”
“사실 어기라고 건 제한입니다.”
“네?”
“최형준 씨는 숙부가 붙여준 경호원들이 자신의 명령을 어기고 자신도 위협하는 걸 경험해 봐서 비교적 말을 잘 들을 겁니다. 겁에 질려 있으면 말을 잘 듣지요. 반면 최설아 씨는 거시적으로는 숙부가 자신을 위협한다는 걸 알지만 아직 피부에 와 닿게 위협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즉, 최설아 그 사람이 지침을 어길 것이다?”
“네. 2주를 못 버티고 이 호텔 밖으로 튀어나갈 겁니다.”
“그럼 왜?”
“원래 이 문제는 마음만 먹으면 더 빨리 처리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걸 위해서는 당사자들, 저 최설아와 최형준 고객님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지요. 그 긴밀한 협력을 얻어내고 나중에 보수를 지불할 때 제 서비스가 보수에 합당하다, 가성비가 끝내준다, 그렇게 여길 수 있도록 일부러 뜸을 좀 들이는 겁니다.”
“…….”
이미 피로 피를 씻어내는 궁정암투극이 벌어지고 있는 이 거대한 재벌가의 왕국.
그 궁정암투를 시현은 시시하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다른 놈이 그렇게 말하면 허세겠지만 류하리는 시현이 얼마나 기발하고 괴팍한 방법으로 사건을 처리해왔는지 몸소 보았기 때문에…… 제발 최씨 일가에 너무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빌었다.
* * *
금천구 인근의 철공소.
그곳에 마네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콰직!
마네킹의 머리가 망치에 맞고 날아간다.
영사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자신의 뺨 옆으로 스쳐지나가는 마네킹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부서진 마네킹 머리의 죽어 있는 눈동자와 영사의 시선이 엇갈린다.
“……훌륭하군.”
영사의 뒤쪽에서 최중무 사장이 걸어오며 박수를 쳤다.
“인간 같지 않은 힘이야. 이런 게 가능하니까 사이다패스가 안 잡히고 있는 거군?!”
산산이 부서진 마네킹과 터진 샌드백들을 보며 최중무 사장은 감탄했다.
그 부서진 잔해들 속에서 한 인영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사이다패스라는 놈은 둔탁한 둔기를 인간의 역량 이상의 힘으로 휘둘러서 살해한다고 합니다.”
영사가 사이다패스에 의한 살해현장 사진 한 장을 꺼내며 설명했다.
경찰들은 사이다패스가 벌인 살인사건이 모방범들에게 이용되지 않도록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지만 충분한 돈과 인맥이 있으면 그 정도의 정보는 얼마든지 들어온다.
“마찬가지로 인간 이상의 힘으로 휘둘러진 동일한 둔기에 의한 살인이라면, 경찰이나 검찰은 사이다패스를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대중들도 재벌집 자식이 사이다패스에게 살해당했다고 하면 그 서사를 납득하기 쉽겠지요.”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