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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31-82화 (82/269)

제82화

Kingdom of Choi #8

“하지만 그렇게 되면 사이다패스 본인이 성명문을 내거나 할 텐데? 자신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겠는가?”

최중무가 물어보자 영사가 피식 웃었다.

“그것도 확인해 봤습니다.”

“확인해 봤다?”

“이미 사이다패스의 이름으로 여럿을 덩달아 처치했습니다. 하지만 사이다패스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더군요.”

“뭐?”

최중무 사장은 순간 영사를 보며 흠칫 놀랐다.

건설업 판을 굴러다니며 잔뼈가 굵은 최중무 사장이지만 이미 청부살인을 끝냈다는 영사의 말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자신의 앞에서 살갑게 입 안의 혀처럼 굴지만 법을 초월하고 사람의 목숨을 파리처럼 여기는 범법자, 암흑가의 인물이라는 걸 새삼스럽게 느꼈다.

하지만 최중무 사장은 자신의 목표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런 위험한 칼이라도 자루를 자신이 쥐고 휘둘러야지, 칼이 무서워서 도망가버리면 그저 평범한 소인배. 그런 놈이 어떻게 국가의 초석인 이런 대기업을 경영하겠는가?

그게 최중무 사장의 사명감이었다.

어떤 의미론 더러운 짓을 하는 것조차 사나이다움으로 뒤덮고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이지만…… 그가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는 게 문제다.

“사이다패스를 그렇게 쫓고 있는데도 사이다패스를 흉내 낸 살인을 밝히지 않는다고?”

“경찰 입장에서도 문제인 게 사이다패스의 성명문은 곧 선동문입니다. 그런 걸 곧이곧대로 경찰이 공표하리라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그리고 선동문이 없으면 없는 대로,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한 수작이 아닐까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사이다패스 본인이 알게 될 것 아닌가? 그럼 반박문 같은 걸 낼 테지.”

“사이다패스가 반박문을 내면서 자신을 증명하려면 또 살인을 해야 합니다. 경찰이 그걸 알고 있는데 굳이 가짜 사이다패스의 흉내 사건을 공공연하게 언론에 밝혀서 사이다패스와 가짜 사이다패스가 서로서로 살인 경쟁을 벌이게 불을 붙이진 않겠지요.”

“음.”

“이런 이유로, 사이다패스의 살인 수법을 흉내 낼 수 있으면 경찰의 의식이 사장님에게서 멀어지게 된다, 이겁니다.”

그렇다. 최중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만약 최설아나 최형준, 최형림이 갑자기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면 최중무는 최우선 조사대상이 된다.

아무런 증거가 없어도 저들을 죽였을 때 가장 이득을 보는 인물이며 죽일 수 있는 행동력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흐음. 그럼 오늘 밤에라도 처리할 수 있나? 비록 조카의 목숨을 취하는 것은 마음이 아프나 나라를 위해서는 사사로운 정을 버려야 하지. 건설업은 국가지대계(國家之大計)인데 저런 철딱서니 없는 조카들에게 맡길 순 없으니.”

최중무는 진심으로 조카들의 목숨을 아깝게 여기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보다 애국심이 더 크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망상과 아집으로 그는 조카들을 죽이고 그룹의 승계권을 유지하려는 자신의 추악한 의도를 미화시켰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무슨 문제?”

“헥사곤의 윤 회장님 영업장으로 피신했습니다.”

“윤 회장네?”

“네. 거기서 일을 벌이기엔 좀 곤란합니다. 역시…… 시현답군요.”

“그 탐정?”

“예. 이놈이 한 일일 겁니다. 레반테스 호텔로 피신시킨 건.”

“잘 아는 사이인가 보군?”

“네. 녀석의 수법 몇 가지는 제가 가르쳤거든요.”

“그래서. 사이다패스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놈을 데리고 있으면서도 윤 회장 호텔이라서 공격을 못하겠다는 건가?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자네도 윤 회장이 무섭나?”

“…….”

영사는 미소를 지으며 최중무를 돌아보았다.

“무섭냐고요? 아니, 그 이상이지요.”

“?”

최중무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깜짝 놀랐다.

건달들은 허세로 먹고 산다.

그런데 영사가 이렇게 솔직하게 무섭다고 말할 줄은 몰랐다.

그만큼 윤 회장이 대단하단 말인가?

“그 아드님이…… 아, 아닙니다. 그래서 말인데 어떻게 영업장 밖으로 빼낼 방법은 없을까요?”

“그런 것까지 내가 해 줘야 하나?”

“부끄럽습니다만, 그만큼 ‘회장님’의 능력을 존경하기 때문입니다.”

“……흠. 알겠네. 언젠가 쓰려고 묻어둔 패가 있긴 한데 슬슬 꺼내야 될 때로군.”

최중무는 그리 말하고 휴대폰을 들어서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 * *

“아, 질렸다!”

시현의 예측대로 최설아는 호텔 생활도 버티지 못했다.

밤이면 밤마다 클럽이나 호스트바에서 진탕 놀던 최설아였다.

이제 와서 호텔 방에 처박혀 있으라니 말이 안 되는 요구다.

게다가 그녀는 최형준처럼 부하들에게 위협당한 적도 없으니 숙부의 위협이 피부로 와 닿지 않았다.

그냥 ‘최형준이 숙부에게 조종당해서 자신에게 잠깐 위협이 되었다가 혼쭐이 났다. 그러면 나도 위험하겠구나.’ 그렇게 간접적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것이지 본인이 정말 살해위협을 느껴서 움직인 게 아니다.

당연히 해이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녀의 경호원도 문제였다.

“그러면 잠시 나가 보시겠습니까?”

최설아가 독자적으로 뽑아서 만든 이 경호팀은 본래 호스트바에서 아르바이트 하던 체대생들이다.

급여를 잘 주는 재벌 상속녀인 최설아에게 충성하면 기분 좋을 때마다 이리저리 후하게 보상을 해 주는데 그런 자신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보스에게 더 긴밀하게 접근하는 시현의 존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자식. 우리 아가씨에게 너무 나대는 거 아냐?’

‘그런데 외모가 그놈이 좀 아가씨 취향이긴 해.’

‘큰일 나지. 안 될 일이지. 이제 와서 여기 일자리 빼앗기고 일반적인 경호 업체로 가는 건 말도 안 돼. 다른 경호원 회사 등으로 들어가면 어디 재벌2세 경호같이 꿀 빠는 일을 맡겠어?’

‘그런데 그 자식 하는 말도 황당하기 이를 데 없잖아? 뭐 수명을 받겠다느니 반드시 암살이 벌어질 거라느니……. 음모론자인가? 대한민국에서 무슨 암살이야? 그것도 친족끼리?’

지금의 경호팀은 시현의 말과 그 위기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최설아가 지루하고 심심하고 음울해지면 그들이 힘들다.

최설아 본인이 원하는 대로 진탕 놀게 만들면 반대로 그들이 편해지니 그들 입장에서 최설아가 놀겠다는 걸 말릴 이유가 없었다.

“갑시다!”

“저희들이 있는데 설마 암살 같은 거 일어나겠습니까? 총이라도 쏘지 않는 한?”

“그렇지?”

최설아는 자신의 경호원들의 동의를 얻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음?”

한동안 불륜조사로 시간을 보내던 시현이 뭔가를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그는 강남 쪽으로 시선을 집중하고 품에서 작은 조준경을 꺼내어 확인까지 했다.

“좋아. 이제 움직이기 시작하는군요. 하지만 넉넉하게 2주 잡고 있었는데 설마 이틀 만에 못 참고 움직일 줄이야. 정말 참을성이 없군요.”

“당신이 바라던 대로 움직였는데도 또 한편으론 당신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어서 기분이 나쁘신가 보군요? 하하. 마치 못된 선생 같네요.”

류하리는 시현의 태도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럼 전 저쪽으로 가봐야겠군요. 이번 일의 가장 난관이라고 할 수 있는 일입니다만…… 류 경위님은 퇴근 안 하십니까?”

“예. 한동안 당신 보고서 작성을 게을리 했잖아요? 어차피 이대로 퇴근해도 딱히 할 일도 없고 중간 중간에 낮잠을 자서 기력도 충분해요.”

“…….”

“왜요?”

“후우. 아뇨. 따라오시죠, 그럼.”

시현은 자신의 차로 가더니 트렁크에서 슈트케이스를 하나 꺼냈다.

“이건?”

-철컥.

시현이 슈트케이스를 열자 안에는 공기권총이 있었다.

“……어?”

“왜요?”

“아뇨. 어릴 때 쓰던 기종이랑 비슷해서.”

“중고로 구매한 공기권총을 개조한 겁니다. 트랭퀼라이저를 쓸 수 있지요.”

“……안정제요?”

“네. 곰용이라서 사람에게 맞으면 위험하겠지만 지금 상대할 놈은 이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시현은 공기권총을 들어 보이고 류하리에게 내밀었다.

“쏘시겠습니까?”

“제가요? 잠깐만요. 그러다가 죽으면…….”

“물론 류 경위님 책임이 되는 거지요.”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공기권총을 거두려했지만 류하리가 시현을 제지했다.

“왜요?”

“아니, 이 권총…… 제 거 맞네요? 어릴 때 제가 쓰던 게 맞아요.”

“그렇습니까?”

“중고로 판 기억이 없는데…….”

“제가 훔친 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정당한 경로로 입수했지요.”

“곰에게 쓸 신경 안정제는 정당한 경로로 입수하지 못할 텐데요?”

“대한민국 법이 현실을 좀 못 따라오는 경향이 있지요. 하지만 곧 개정될 겁니다.”

“아니, 무슨 근거로…….”

류하리는 뻔뻔하게 말하는 시현을 보며 당황했다.

“여하튼 이건 제가 쓰겠습니다. 하지만 만약 류 경위님이 쓰게 될 경우…… 트랭퀼라이저는 훈련용 팰릿보다 세 배는 더 무겁기 때문에 그걸 감안해서 쏘셔야 합니다.”

“제가 쏠 것을 염두에 두고 계시는군요?”

“이번 일이 제일 난관이니까요. 혹시 모를 일에 대비는 해 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갈까요?”

시현은 차의 트렁크를 닫고 운전석으로 향했다.

* * *

“그런데 호텔에서 빠져나왔다고 바로 암살자가 붙은 게 아니면 어쩌죠? 그냥 놀러나갔다 무사히 들어갈 수도 있잖아요?”

“그럴 리 없습니다. 왜냐면 최설아 씨의 경호팀장이 적과 내통하고 있거든요.”

“네?”

“최설아 씨의 경호팀장은 호스트 아르바이트를 하던 경호학과 출신 체대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최중무 사장의 한영시큐리티에는 경호학과 출신 선배들이 드글드글하지요. 체대의 빡센 선후배 관계는 아시죠? 매수하기 쉬운 라인이 엄청 많다, 그렇게 보시면 됩니다.”

“그럼 반대로 위험한 거 아니에요? 상대는 바로 준비하고 있을 텐데 우리는 이렇게 차가 막혀서 갇혀 있으니…….”

“그건 또 방법이 있지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전화를 걸자 잠깐 신호음이 간 후 신경쇠약적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 무슨 일이에요. 이 미치신 분아. 근무시간 중에 전화는 가급적 안 하기로 했잖아?]

“오, 지금시간도 근무 중이야? 바쁘네?”

[요새 불경기라서, 그럴수록 일이 많아지는 게 우리 같은 사람이라구요. 그래서 무슨 일이에요?]

“채무자들 중에 말 잘 듣는 사람 이 하나 필요한데. 바로 당장.”

[뭐? 무슨 일 시키려고요?]

“아니, 그냥 여기 사이다패스 목격했다고 경찰에 신고만 해 주면 돼. 그럼 그 녀석에게 30만, 당신에게도 30만. 어때?”

[너무 싸잖습니까? 미치신 분아. 당신이 돈을 갈퀴로 긁고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전화 한 통에 30만이면 눈이 벌게져서 일할 놈들 천지일 텐데? 당신도 그냥 중개만 해 주고 받는 돈이잖아?”

[……그 채무자들은 10만원만 줘도 눈이 벌게질 테니까 채무자에게 10만원 주고 저에게 45만 주면 어떻습니까?]

“…….”

“벼룩의 간을 내먹네.”

듣고 있던 류하리가 한마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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