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83화 (83/269)

제83화

Kingdom of Choi #9

“그렇게 하지.”

[알겠어. 연락해 보겠습니다, 그럼.]

전화가 끊어졌다.

“잠깐. 지금 경찰에게 허위신고를 넣어서 시간을 벌겠다는 거예요?”

듣고 있던 류하리가 깜짝 놀랐다.

“네. 참 못됐죠? 장난전화로 바쁜 경찰들의 업무를 더더욱 가중시키다니. 푼돈만 쥐어주면 무슨 짓이든 다 한다니까요. 그러니까 채무자가 되지.”

“…….”

‘네놈이 시킨 거잖아.’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류하리는 말문이 막혔다.

* * *

“자자, 그래! 서로의 몸에 술을 부어서 서로서로 마시라고! 최대한 섹시하게!”

최설아는 평소와 다름없이 호스트 바에서 진상을 부리며 즐기고 있었다.

별다른 예약 없이 갑자기 즉흥적으로 찾아왔기 때문에 그녀의 전담 요원이 없어서 호스트들은 당황했고 더 고생했으며 그런 모습이 최설아를 더더욱 기쁘게 했다.

잘생긴 남자들을 돈으로 굴복시켜 수치스러운 짓을 시키면서 자신의 우위를 체감한다.

한때 아이돌 가수를 쫓아다니다가 상처를 입은 그녀 나름의 회복방법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바지지지직!

갑자기 실내의 전기가 나갔다.

그리고 비상등이 대신 켜졌다.

“아, 이거 뭐야? 한참 재미있을 판인데.”

“죄, 죄송합니다. 정전인 것 같습니다.”

매니저는 그렇게 말하면서 분노한 최설아를 달랬다.

이미 얼큰하게 취한 최설아가 딸꾹, 하고 딸꾹질을 했다.

“흥이 깨지는군. 아, 그럼 얘들 데리고 우리 호텔로 가는 건 어떨까? 호텔에서 놀면 그 귀찮은 탐정 놈이 말하는 것도 어기지 않고 할 수 있잖아?”

“저…… 아무리 그래도 저희 업장 밖으로는 좀…….”

매니저는 호스트를 호텔로 출장 보내는 것에 대해서 난색을 표했다.

2차를 가는 호스트가 없지 않다. 아니, 원칙적으로는 금지했어도 2차 영업을 통해서 고객을 계속 끌어오는 게 호스트들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재벌가의 상속녀에게 함부로 호스트를 붙이는 건 위험하다.

하물며 한영그룹이 아닌가.

한영그룹은 회장도, 회장의 형제들도 혹독한 군사정권 시절부터 잔뼈가 굵어온 호걸들이다.

전국구 깡패들도 한영그룹에게 밉보이면 쥐도 새도 모르게 변사체가 된다.

그런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아무리 돈이 벌린다 해도 최설아에게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부탁이니 2차나 출장 서비스는 부디 저희 업장과 관계없이 어떻게 몰래몰래 해 주시길…….”

하지 말라고도 안 한다.

제발 엮이게 하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애원하는 게 매니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데 그때였다.

-쿵!

갑자기 건물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 뭐야?”

“뭐야? 당신?!”

입구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최설아의 경호팀이 갑자기 난입한 괴한을 막아선 것이었다.

그런데…….

-퍽!

그 괴한은 둔탁한 망치를 휘둘렀다.

경호팀장이 화들짝 놀라 머리를 피했지만 팔이 걸렸다.

“컥?!”

단번에 팔이 부러졌다.

“이런 미친!”

“돌았나!”

다른 경호원들이 즉시 나서서 발로 괴한을 걷어찼지만 찬 순간 반응이 이상하다.

돌덩이를 걷어찬 느낌이다.

괴한이 오히려 경호원의 다리를 붙잡았다.

-우득!

“아악!”

잘 단련된 경호원이 어린 아이처럼 비명을 지른다.

괴한은 그대로 경호원을 질질 끌더니 붕 휘둘러 다른 경호원에게 집어던졌다.

-쿠당탕!

경호원들끼리 충돌해 나뒹굴었다.

“크윽. 마, 말도 안 돼. 나는 살려 주기로…….”

경호팀장은 부러진 팔을 잡고 일어나 뒤로 도망쳤지만 그의 뒤로 괴한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퍼억!

경호팀장의 몸이 뒤로 쓰러지며 사방팔방에 피를 뿌렸다.

“꺄아아악!”

“히익!”

룸 안에서 웅크려 있던 최설아는 룸의 유리창에 피가 튀는 걸 보며 비명을 질렀다.

“피, 피가 이렇게 많이?! 뭐, 뭐야 이거?!”

최설아는 얼른 휴대폰을 꺼내서 시현의 전화번호를 찍었다.

그러나 손이 덜덜 떨려서 휴대폰이 밑에 떨어졌다.

당황한 그녀가 휴대폰을 간신히 주웠을 때는 그녀의 경호원의 비명이 복도에 가득했다.

“으으으으!”

“아아악.”

체육대학 출신의 경호원들을 어린아이 손목 비틀듯 제압하면서 괴한이 다가온다.

바로 그때 그녀가 떨어뜨린 핸드폰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시현탐정사무소의 우수한 고객서비스가 필요하신 모양이로군요.]

자신만만한 시현의 목소리였다.

[지금 문을 여세요.]

“뭐? 하, 하지만…….”

[저를 믿으시고…….]

“아, 몰라!”

최설아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문을 열었다.

-크르르?

최설아가 문을 열자 괴한이 문을 발견했다.

아마도 최설아가 어디 있는지 모르고 닥치는 대로 가장 가까운 문부터 차례차례 열고 안에 있던 사람들을 공격하려다가 최설아가 튀어나온 것 같았다.

‘꺄악. 망했잖아! 이 미친 탐정 놈! 날 죽이려고 그러나!’

최설아가 내심 시현에 대한 원망을 쏟아 부을 때였다.

“잘했습니다.”

갑자기 새하얀 분말이 괴한의 등 뒤로 쏟아졌다.

시현이 소화기를 들고 호스트 클럽에 들어와 괴한을 향해 뿌려버린 것이다.

“자, 뒷문으로!”

시현은 그리 말하고 소화기를 괴한에게 듬뿍 뿌린 후, 개조된 공기권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퓨퓨퓩!

곰도 재운다는 트랭퀼라이저, 신경안정제를 세 발 정도 연거푸 발사하자 괴한이 연사당하고 쓰러졌다.

“무, 무슨 짓을 하는 거예요!”

보고 있던 류하리가 기겁했다.

신경안정제는 필요이상으로 쏘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한다.

영화 등에서는 사람을 마취총으로 쉽게 쓰러뜨리지만 현실적으로 마취의는 가장 의료사고와 가까이에 있는 존재, 사람마다 체중과 체격이 다른데 마취를 함부로 했다가는 사망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하물며 곰도 쓰러뜨린다는 걸 사람에게 쏴버렸으니…….

하지만 시현은 그런 류하리에게 최설아를 가리켰다.

“그녀를 데리고 대피하세요. 한 놈만 있을 리 없으니까.”

“네? 하지만 사이다패스는 한 놈…….”

“저놈은 사이다패스가 아니잖아요. 틀림없이 여럿 있습니다!”

시현은 그렇게 단언하고 자신의 공기권총을 손에서 빙글 돌려서 류하리에게 건네주었다.

“예?”

“가세요, 얼른!”

“당신은……?”

“트랭퀼라이저를 회수해야죠. 경찰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으니.”

“…….”

‘나도 경찰인데.’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류하리는 일단 시키는 대로 바닥에 쓰러져 있던 최설아를 부축해 뒷문 쪽으로 향했다.

* * *

류하리와 최설아는 뒷문으로 피신했다. 하지만 뒷문에는 음료수 박스가 잔뜩 쌓여 있었다.

“아니, 진짜 이놈들 소방법을 뭘로 보고.”

류하리가 짜증을 내며 음료수 박스를 밀어보니 다행스럽게도 금방 밀린다. 박스가 잔뜩 쌓여있지만 그 밑에는 캐스터가 달린 카트가 있어서 카트로 쉽게 밀 수 있게 되어 있는 것이었다.

“여기로 가요! 따라와요!”

“아, 응.”

최설아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류하리를 따라왔다.

그런데 막 뒷문으로 나오자 그곳에는 야구배트를 들고 있는 건달 같은 놈들이 대기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어허허. 어딜 가시나?”

“최설아 아가씨?! 여기서 기다리셔야지!?”

“윽!”

최설아는 노골적으로 위협을 가하는 폭력배들을 보며 당황했다.

“아니, 이런…….”

류하리는 어이없어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CCTV가 분명히 있는데…… 죽어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골목 전체에 전기가 꺼져있다.

‘CCTV가 죽어 있어? 이 무슨 일이지? 정전이 되더라도 보조전원이 있어서 한동안은 작동될 텐데?’

그러나 이것은 과거 은평크루사건 때와 비슷하다.

아무래도 이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놈들은 CCTV를 무력화시키는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자자, 거기 아가씨도 손에 든 그 장난감 내려놓고…….”

그들은 류하리가 권총 같은 걸 손에 들고 있는 걸 보면서 넘기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무슨 어린아이 손에 들린 사탕 빼앗으려는 듯 만만히 보는 태도였다.

류하리는 공기권총을 그들에게 겨누고 자신의 경찰수첩을 열었다.

“마포 경찰서 정보과 류하리 경위다! 너희들, 무기 들고 밤에 돌아다니면서 말 거는 것만으로도 협박죄가 성립되는 거 알고 있어?”

“……풉.”

“크크크. 여경 주제에 지금 이 상황에서 그깟 알량한 계급장이 통용될 것 같아?”

“생긴 것도 예쁘장하니 재밌을 것 같은데?”

폭력배들은 류하리의 으름장이나 그녀가 내민 경찰수첩을 우습게 보고 다가왔다.

그런데 그때…….

-퓻!

류하리가 발사한 트랭퀼라이저가 선두에 선 폭력배의 가슴에 꽂혔다.

“어?”

폭력배는 자신의 가슴에 박힌 아주 작은 다트를 보면서 의아해하다 뒤로 풀썩 쓰러졌다.

“…….”

“아, 이거 곰도 쓰러뜨리는 거라는데 사람에게 쏘면 죽을 수도 있지…….”

발사한 류하리가 그렇게 말하자 폭력배들이 기겁했다.

“이, 이거 미친 년 아냐?!”

“야! 이러다 죽으면 어쩌려고!?”

“미안하지만 나는 너희 같은 놈들에게 사고사 당하느니 너희 같은 놈들을 사고사 시키는 쪽을 택하겠다. 진득하게 시말서 좀 쓰면 되겠네.”

“…….”

“이, 이 썅년이!”

야구배트를 든 놈이 류하리에게 달려들었지만 류하리는 거침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억?!”

-퓨퓨퓩!

폭력배들이 다트를 맞고 그대로 풀썩 쓰러져버렸다.

“와아.”

보고 있던 최설아가 감탄했다.

“너 세구나. 잘못하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아무런 망설임 없이…….”

“아아…… 망했다.”

그러나 정작 류하리는 울상이 되었다.

“…….”

“왜 상대가 쎈 척하고 나오면 들이받아버리는지 모르겠네요. 큰일이다, 큰일이야. 죽지만 마라.”

류하리는 쓰러진 이들에게 다가가 트랭퀼라이저를 잽싸게 뽑으며 그들의 코 밑에 손을 가져가서 숨을 쉬는지 확인해 보았다.

다행히 맥도 정상적으로 뛰고 숨도 고르다.

‘곰도 재우는 거라고 해서 걱정했는데 죽지는 않으려나? 아, 몰라. 죽으면 뭐 경찰복 벗어야지. 그래도 정당방위는 인정되겠지?’

류하리가 그렇게 망설이며 주차장 쪽으로 향할 때였다.

-번쩍!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차량 중 세 대가 동시에 헤드라이트를 밝혔다.

정전으로 불이 꺼져 어두워진 도시에 익숙해진 류하리는 순간적인 눈부심에 참지 못하고 손을 들어 눈을 가렸다.

하지만 그런 한편으로는 공기권총을 상대에게 겨누는 걸 잊지 않았다.

“누구냐!?”

“이런, 이런, 류하리 아가씨 아니십니까?”

“……여, 영사 아저씨?”

류하리는 상대를 알아보고 기겁했다.

* * *

류하리는 어린 시절부터 뭐하나 부족한 것 없이 유복한 삶을 살아왔다.

다만…… 그녀는 아버지에게 불만이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누가 보더라도 위험한 사람들을 주위에 거느리고 있었다.

군사정권 시절부터 SH그룹의 뒤를 봐주며 성장한 한강건재의 류장천 사장은 건달, 폭력배, 그 외 위험하고 수상한 이들을 자주 집안에 들였으며 아내 외에도 많은 외도 상대를 두고 있었다.

그래서 류하리는 쇠약해진 어머니 대신 당뇨병이 있는 외할머니의 손에서 키워졌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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