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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맨31-84화 (84/269)

제84화

Kingdom of Choi #10

그녀가 항상 사탕을 달고 다닌 것은 저혈당 쇼크를 일으키는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생긴 버릇이었다.

‘그래. 사탕을 들고 다니던 건 원래 내 버릇이었어. 원래 내 버릇. 그런데 왜?’

류하리는 시현이 사탕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서 의아하게 여겼다.

그도 당뇨병을 앓는 지인이 있는 것일까?

어쨌거나 류하리는 아버지가 뭔가 안 좋은 일을 한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뼈저리게 느끼며 자라왔다.

그런 그녀에게…… 아버지에게 꼬이는 흑사회의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무섭고 두려운 이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영사였다.

어딘지 남과 다른, 좀 더 거대한 범죄자.

그런 이들에게 엮이기 싫어서, 그들로부터 자신의 영혼을 구하고 싶어서 그녀는 경찰의 길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 * *

“역시 훌륭하시군요. 그걸 사람에게 쏘면 죽을지도 모르는데 사고사 당하느니 사고사 시키겠다. 아주 바람직한 자세입니다. 하지만 경찰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군요.”

영사는 밖에서 류하리가 외친 말을 그대로 듣고 있었던 것 같았다.

‘여기 주차장에 있으면 들릴 리가 없는 거리인데?’

그때 영사가 류하리에게 권했다.

“자, 류하리 아가씨. 당신은 이번 일에 관여할 필요가 없는 사람입니다. 물러나시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겁니다.”

“제가…… 그렇게 못 할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지요?”

“하하하. 여전하시군요.”

영사는 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쳤다.

주차장 차량 사이에 숨어 있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많기도 하군요.”

“이쪽도 불경기라서, 돈 나오는 곳이 있으면 몸을 아끼지 않는 젊은이들이 넘쳐나지요. 저도 좋은 시절을 보낸 486세대로서 2030 혈기 넘치는 젊은이들이 처한 현실에 가슴 아프답니다.”

“…….”

“이렇게라도 일자리를 마련해 줘야지 뭐 어쩌겠습니까? 그러니 류하리 아가씨. 그 흉흉한 물건 내려놓으시죠.”

“웃기지 마세요!”

류하리는 영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총이 픽, 하고 공기만 배출했다.

“트랭퀼라이저는 탄이 커서 그렇게 많이 장전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닐 겁니다.”

그와 동시에 폭력배들이 류하리와 최설아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때, 주차장 입구로 차량 한 대가 뛰어 들어왔다.

시현이었다.

그는 폭력배들을 칠 기세로 차를 몰아서 류하리와 최설아의 옆으로 차를 돌려댔다.

“타세요!”

“늦었잖아요!”

류하리는 일단 최설아부터 태우고 자신도 올라타려 했다. 그런데 그때 폭력배가 그녀의 바지를 붙잡았다.

“어딜 가!”

“윽!”

류하리는 급한 대로 회수했던 트랭퀼라이저를 품에서 뽑아서 다트처럼 던져 폭력배의 팔에 꽂았다.

“으악!”

폭력배는 순식간에 팔이 저려오는 느낌에 기겁하며 손을 놓았다.

“갑니다!”

시현이 차를 달리게 하자 주차장 입구에 한 그림자가 와서 섰다.

영사였다.

“……후후.”

영사는 차가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데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차를 몸으로 막으려는 듯 했다.

“어?! 저, 저거!?”

최설아가 기겁했지만 시현은 발을 오히려 액셀러레이터에 대고 강하게 밟았다.

-부아아아앙!

엔진이 굉음을 내면서 그대로 달려 차량이 영사를 덮쳤다.

“미쳤어요?!”

류하리가 비명을 빽 질렀지만…….

차는 아무런 충돌음 없이 그냥 지나쳤다.

사람을 치면 아무리 차라도 뭔가 충격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충격도 없이 매끈하게 지나가버렸다.

시현은 주차장 출구로 차를 몰아 로켓처럼 튀어나갔다.

-끼이익!

시현은 주차장 입구 밖의 벽에 들이 박지 않도록 차를 드리프트로 틀며 거리로 나왔다.

“흐음.”

검은 그림자가 넘실거리며 주차장의 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모자가 떨어진 영사였다.

“아무리 상대가 나라고 해도 그렇게 주저 없이 액셀을 밟아버리다니 좀 섭섭하구나. 시현.”

영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바닥에 떨어진 중절모를 집어 들었다.

중절모가 차의 바퀴에 깔려 납작해진 걸 펴서 다시 머리에 쓴 그의 눈이 기이한 붉은 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 * *

“후우!”

“으아! 저, 저거 뭐야?! 이거 대체 뭐냐고!?”

“……뭐긴요. 레반테스 호텔에 처박혀 있으라고 했는데 들어 처먹지 않고 튀어나온 사람 때문에 이게 뭔 꼴입니까? 당신 덕분에 당신 경호원들 전부 폐인 되게 생겼어요.”

시현은 대놓고 최설아를 비난했다.

‘어길 거 알고 시킨 거면서…….’

류하리는 시현이 최설아를 들들 볶는 걸 보며 내심 실소했다.

하지만 시현이 원한 것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최설아가 시현의 말을 어겼다 혼쭐이 나는 걸 겪어서 이후 시현의 말을 잘 듣게 되는 것, 기선제압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기선제압을 하려고 이렇게 위험한 짓을 했어?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잖아?’

류하리가 잘 싸워줘서 망정이지 보통 여경 한 명에게 마취총 한 자루 줬다고 저 많은 폭력배들을 상대로 살아남길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다.

믿어주는 건 고마운데 이번 일은 정말 시현의 조수로서 월급 받아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으흑……. 흑…….”

오늘 하루, 평생 경험해 보지 못할 목숨의 위기를 겪은 최설아는 이제야 감정이 몰려오는지 울먹였다.

“숙부가 날 치우고 싶어 하는 건 알았지만 정말, 정말 암살을 하려고 했단 말야? 이건…… 말도 안 돼.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일단 호텔로 돌아가지요. 동생분이 혼자 있으니까 위험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제 지시에 절대적으로 따라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알겠어.”

시현은 얌전해진 최설아를 데리고 레반테스 호텔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들이 레반테스 호텔로 돌아간 바로 그때…….

* * *

“저, 죄송합니다만 손님.”

호텔 로비의 매니저가 정중히 시현과 최설아를 불렀다.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경찰들이 찾아와서 조사를 하고 갔습니다만…….”

“민원? 무슨 민원인가요?”

“그게…… 저, 마약파티가 벌어지고 있다는 민원입니다.”

“…….”

최설아가 레반테스 호텔에서 마약파티를 벌이고 있다는 민원이 들어와서 경찰들이 그 첩보를 확인하기 위해 조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약이라도 발견했답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퇴실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왜요?”

“그 후 검찰에서, 사이다패스 청원 페이지의 라우터가 이곳 객실로 잡혔다는 민원이 들어와서…….”

“…….”

즉, 조직적으로 누군가가 최설아를 노리고 이곳저곳에서 민원을 넣고 있다.

그런 표적이 되었으니 호텔에서는 부득불 서비스를 거부하겠다는 뜻이었다.

“당 호텔에서는 수사기관과 관련된 손님들의 경우 책임여하를 막론하고 서비스를 거부할 권한이 있습니다. 물론 숙박비는 전액 환불해드리겠습니다. 즐거운 휴식을 망쳐드려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모쪼록 다음에 더 조용한 기회에 이용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매니저는 호텔 숙박 계약 시 작성되었던 빽빽한 고객약관 중 한쪽에 형광펜으로 줄을 그으며 양해를 부탁했다.

“이건…….”

“보기 좋게 당했군요. 뭐 예상했습니다만.”

레반테스 호텔은 윤 회장의 영업장. 윤 회장이 암흑가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이만저만이 아니기에 그의 영업장에 직접 노골적인 공격을 하진 않겠지만 윤 회장 역시 시현을 곱게 보고 있진 않을 것이다.

과거 시현이 강남경찰서장을 공격하면서 덩달아 윤 회장의 얼굴에도 먹칠을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얼굴에 먹칠을 한 녀석을 그래도 돈 받았다고 손님이라고 지켜준 것을 보면 오히려 윤 회장이 꽤 양식이 있고 체면을 지킬 줄 아는 인물이라고 칭찬해야 할 것이다.

허나 억지로 체면을 지키고 있긴 하지만 얌체 같은 시현의 태도에 화가 나는 것도 사실. 그러던 차에 이렇게 공들여서 시현 일당을 내쫓을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다니 윤 회장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일 것이다.

“어, 어떻게 해?! 이거.”

최설아는 호텔에서 퇴실요청을 받자 울상을 지었다.

지금까지 그녀는 숙부의 힘을 간접적으로, 무용담으로만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폭력배들과 암살자, 그리고 해괴한 능력을 지닌 초능력자들까지 고용해서 자신을 죽이려 들자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숙부에 비하면 무력한 애송이라고.

실제로 그녀가 독자적으로 자기사람을 뽑아서 키웠다고 생각한 경호팀은 첫 습격 때 이미 싹 쓸려나갔다.

“일단 동생분하고 합류하죠.”

최형준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슈트케이스 하나 들고 엘리베이터 실에서 로비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누, 누나! 탐정!”

“무사하셨군요.”

“어떻게 된 거야? 이거? 경찰에 검찰에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고. 이거 우리를 이 호텔에서 내쫓으려고 수 쓰는 거지?”

“예.”

“그럼 이 호텔이 안전지대 맞구나. 으아, 어쩌지? 이 호텔 밖으로 나가면…… 어, 누나 안색이 왜 그래? 원래부터 X 같았지만 오늘은 특히 X 같은데?”

“넌 좀 닥쳐. 멍청한 놈아.”

“……보아하니 그새를 못 참고 또 클럽이나 호빠 가서 달리다 물렸구만. 으이구. 진상이다 진상이야.”

그것이 진실이기에 최설아는 더 괴로워했다.

숙부의 입김에 떠밀려서 골육상쟁을 일으키려고 했던 막냇동생에게 욕을 처먹는데 그게 진실이라서 한마디 변명도 못할 처지라니 괴롭다.

“자, 고객님. 지금 여러분들은 동종 업계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저와 계약한 덕분에 아직 살아 숨 쉴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계십니다.”

“…….”

“…….”

“하지만 제 서비스로서도 고객님들의 돌발행동을 다 케어하긴 힘드니 향후에는 제 지시에 적극 협력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현의 말은 해석하자면 앞으로 닥치고 내 말 들으라는 뜻 되겠다.

“그래서 지금은 어디로 가지? 호텔에서도 쫓겨났는데? 설마 이번에도 최형림, 걔네 집 가자는 거 아니지? 걔가 검사긴 하지만 검사라고 안전할 것 같진 않은데?”

“물론 그런 민폐를 여러 번 끼칠 만큼 제가 못돼먹지 않았습니다.”

“풉.”

듣고 있던 류하리가 실소를 터뜨렸다.

“그럼?”

“오늘 밤은 좀 더 안전한 곳에 가도록 하지요.”

시현이 그리 말하고 자신의 차 키를 손에서 빙글 돌렸다.

* * *

강남경찰서. 새벽시간…….

“…….”

“…….”

야근하고 있는 경찰들이 뜨악한 눈초리로 서로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거 그놈이지?”

“와. 미쳤나?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허, 진짜.”

그들은 민원인 대기실 벤치에 앉아서 눈가리개를 하고 기대어 자고 있는 시현을 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

그 옆에 있던 최형준이 몸을 배배 꼬았다.

“으, 딱딱해. 당신 여기 괜찮겠어? 경찰들이 자꾸 쳐다보는데?”

“그래서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좀 자 두세요.”

“아니…… 잠이 오겠냐고. 이렇게 딱딱한데.”

“여러분은 잘못된 수사 때문에 호텔에서 쫓겨나 민원을 넣으러 온 민원인입니다. 그런데 민원실이 아직 열지 않았으니까 경찰서에서 밤을 지새는 선의의 피해자지요. 마음 놓고 주무셔도 됩니다.”

“마음이 놓이겠냐고. 그 여자 경찰도 안 왔잖아?”

류하리는 시현이 강남경찰서로 가겠다고 하자 기겁하고 도망쳐버렸다.

하지만 시현은 뻔뻔하게 답했다.

“그야 공무원에게 투 잡은 불법 아닙니까. 다른 경찰들에게 보여줄 만한 게 못 되지요.”

“…….”

“왜요?”

“내가 그렇게 이런 쪽으로 빠릿하진 않지만 그건 아냐. 절대 아닌 것 같은데? 그 이유가 아니라 다른 이유인 것 같다고!”

“말이 많으시군요. 호텔에서 내리 자느라 밤엔 기력이 넘치시나 봅니다?”

“그야…… 그렇지.”

그는 자신의 누나, 최설아를 바라보았다.

최설아는 술을 마시고 암살자에게 습격당하는 경험을 해서 그런지 빠르게 곯아떨어져 잠들었다.

옷은 죄다 명품을 걸치고 있지만 벤치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니 참 몰골이 말이 아니다. 노숙자 같은 모습은 아니지만 절대로 재벌 2세로 보이지 않는다.

“숙부의 공격이 엄청났나 본데. 정말 이 상황에서 숙부를 죽이지도 않고 해결할 방법이 있는 거야?”

“있습니다. 사실 이제 어려운 부분은 상당부분 해결 봤고 남은 건 쉬운 것뿐입니다. 음…… 분수령을 넘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분수령?”

“코스의 절반 이상 돌았다 이겁니다.”

한자어에 익숙지 않은 최형준을 위해 시현은 다시금 설명을 해 주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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