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87화 (87/269)

제87화

Kingdom of Choi #13

“실제로 솔루션은 성공했습니다.”

시현은 금색으로 빛나는 자신의 눈을 손으로 가리켰다.

“수명이 늘어났어요?”

“네.”

시현의 눈, 사람의 수명을 보고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눈이 최설아와 최형준의 수명이 늘어나는 걸 확인한 것이다.

“그럼 일단 고객님들을 회수하고 자리를 피해볼까요?”

시현은 자신의 사장이 묻지마 폭행을 당해서 흥분해 있는 한영시큐리티 직원들에게 다가갔다.

그들은 최설아와 최형준을 구속하고 난처해하고 있었다.

‘어쩌지?’

‘보통 놈 같으면 반 죽을 때까지 패고 경찰에 넘길 텐데…….’

‘회장님 아들딸이잖아.’

‘그렇다고 그냥 풀어주면 나중에 사장님께 충성심이 부족하다고 쪼인트 까이는 거 아냐?’

그들은 난처해하고 있었다.

폭도를 제압했는데 폭도의 신분이 높다. 그렇다고 그냥 풀어주자니 그렇고 뭔가 핑계거리가 필요하다.

그때 시현이 나타났다.

“류 경위님. 시작하시죠.”

“아, 젠장.”

류하리가 경찰수첩을 꺼냈다.

“사정청취를 하게 그들을 넘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마포경찰서 정보과 류하리 경위입니다.”

“……마포?”

“그 먼 곳에서 왜?”

“아, 그냥 저 기자님이랑 친분 있어서 어쩌다 온 거예요.”

류하리가 장기정 기자를 가리키며 핑계를 댔다.

“으음.”

“뭐 어쩔 수 없죠?”

그렇지 않아도 최설아와 최형준을 처치곤란해하고 있던 경비회사 직원들은 류하리에게 둘의 신병을 넘겨주었다.

“그럼 가실까요?”

시현이 그들을 부축했다.

* * *

남양주 인근 마트의 푸드코트, 시현은 아이스커피를 입에 물고 의자에 앉았다.

“자,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사건은 해결되었습니다.”

“정말? 그걸로?”

“숙부가 오히려 우릴 더 죽이려 들지 않을까?”

최설아와 최형준은 반신반의, 아니, 믿음보다 의심이 더 많았다.

시현이 때려보라고 했을 때 따른 건 그들이 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숙부가 자신들을 진짜로 죽이려 했다는 것에 대한 미움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심하고 있는 이들에게 시현이 설명해 주었다.

“최중무 사장은 신중한 사람입니다. 자신에게 의심의 화살이 꽂힐 때는 경거망동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숙부에게 이득이니까 그런 식이면 원래부터 우리에게 손대선 안 됐지 않아?”

“그런데 당신들 숙부 숙모가 하나 둘이 아니잖아요? 그런 의혹으로는 분산이 되고, 다들 쟁쟁한 사람들이니까 경찰 조사가 힘들 수밖에 없지요. 하지만 최중무 사장 혼자에게만 알력이 집중되면 어떻게 될까요?”

류하리가 대신 대답했다.

“재벌 일가 여럿을 조사하는 건 힘들겠지만 갈라치기를 해서 수사 하는 건 뭐 할 만하겠죠.”

“그렇죠? 그리고 그런 상황이 예측되면 최중무 사장은 함부로 움직일 타입이 아닙니다. 이 상황에서는 조카를 살해할 경우 아무리 신기한 수단을 써서 자신에게 혐의가 안 오게 처리한다 해도 경찰 조사망에 오른다는 걸 이해하고 있습니다. 조카들과 자신이 사이가 극도로 나쁘다. 청부살인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인상을 주게 된다면 포기할 가능성이 높지요.”

“그럼 처음부터 그냥 그렇게 했으면…….”

최설아는 자신의 경호팀장이 크게 다친 것 때문에 마음이 아픈지 여전히 구시렁거렸다.

“최설아 씨나 최형준 씨나 이제 공식적으론 숙부도 두들겨 패는 막장패륜인간쓰레기가 되는데 처음부터 그냥 이렇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어젯밤 같은 경험을 좀 해 봐야 손이 나가지요.”

“아, 그거 말야. 이제 우리 평판은 최악이 되었잖아! 이거 어쩔 거야?”

“…….”

“…….”

모두가 최설아를 바라보았다.

시현이 헛기침 했다.

“사실 고객님 같은 경우는 이 사건 이전에도 평판이 이미…….”

“뭐야? 내가 그렇게 평판이 나빠?”

“적어도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성격이신 건 분명한 것 같군요. 고객님의 경우는 평판이 나빠지는 건 그다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냥 새로운 캐릭터가 더 붙었다, 그렇게 보시면 되고요.”

“…….”

“뭐 마약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습니까?”

“내가 문제네.”

최형준은 울상을 지었다.

그때 류하리가 물어보았다.

“그런데 그러다 자칫 소중한 고객님이 감방에 갈 수도 있잖아요?”

“대한민국 검경이 혈육들끼리 손찌검했다고 감방에 처넣진 않죠. 혈육들끼리는 다양한 형사 사건이 면책되는 게 관습법 아닙니까. 하물며 재벌가의 일입니다.”

“…….”

“물론 어젯밤의 고생은 그런 의미만 있는 건 아닙니다. 적어도 암살 시도를 했을 때 한 번은 실패해야 최중무 사장도 암살이 그리 쉽지 않다, 낭패한 일을 보게 되는데 비해서 기대 성공률이 낮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겠지요. 만약 암살 시도 실패라는 경험 없이 바로 조카들에게 두들겨 맞았으면 오히려 더 화가 나서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반드시 죽이려고 했을 겁니다. 자기가 먼저 암살시도를 했으니까 그다음에 조카들에게 몰매를 맞아도 본인 스스로도 아, 그럴 수 있지. 내가 먼저 잘못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할 거란 말이죠.”

최중무는 어쨌건 조카들에게 감정적으로 부채를 느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조카들에게 두들겨 맞았을 때 화내지 않았다.

만약 조카들이 먼저 그를 두들겨 팼었다면 역으로 이런 망나니들에게 한영그룹을 넘겨줄 수 없다고 오히려 사명감에 불타 일을 더 크게 만들 가능성이 있었다.

“그래서 어젯밤의 암살시도를 좌절시키는 게 가장 힘들고 중요한 일이라고 한 거군요?”

“네. 그게 성공한 시점에서 사건은 끝난 거나 다름없습니다. 하지만 정산은 나중에 받도록 하지요. 일단 오늘 밤 편히 쉬시고 나서 별일이 없으면 생각 좀 하시고 느긋하게 정산해 주시면 됩니다.”

“아. 그 정산 말이지? 그거…….”

“수명 3년이라.”

최설아는 혀를 찼다.

“막상 주려니까 아까워지는데? 3년이면 대체 얼마나 놀 수 있는 거야? 그리고 대체 어떻게 주는 거지?”

“그건 별로 의문을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굉장히 단출한 절차니까요.”

시현이 그렇게 말하자 커피를 마시던 최형준이 류하리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그것보다 궁금한 질문인데 둘은 무슨 사이야?”

“네?”

“흐음. 고객님? 무슨 의미에서 하시는 질문이신지?”

“아니, 이, 류 경위님. 분명히 우리 형님이랑 사귄다고 했었는데 당신이랑 너무 붙어 있잖아. 경찰이 붙어 있는 것도 이상하고…….”

“아, 저기 그게 말이죠.”

류하리가 변명할 말을 찾아 애쓸 때였다.

갑자기 문자가 날아왔다.

깜짝 놀란 류하리가 확인해 보니 성신아가 차량 조수석에서 셀카모드로 사진을 찍었고 최형림이 운전하면서 같이 찍힌 사진이었다.

“……뭐야?”

류하리가 양손으로 부리나케 톡을 날렸다.

‘뭐하자는 거야?’

‘아, 지금 선배님이랑 드라이브 중이야.’

‘드라이브? 일하는 거겠지. 뭔가 새로운 일이라도 있어? 사이다패스 사건이야?’

‘정확히는 사이다패스와 똑같은 방식으로 살인한 사건이야. 아직 사이다패스의 사건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조사해 봐야지. 여수에서 벌어진 일이라 나는 간만에 선배님이랑 여수 밤바다도 보고 느긋하게 있다 올라갈 거야.’

‘그, 그래. 응원한다.’

류하리는 그렇게 톡을 날리고 그걸 최형준과 최설아에게 보여주었다.

“보아하니…… 사이다패스를 흉내 내는 그 살인범들의 소행이 여수에서 벌어졌던 모양이군요. 이것까지 표면에 드러나서 가시화 되면 당신들의 숙부도 더더욱 빨리 포기하지 않겠어요? 뭐, 이걸로 안전해졌다고 확신하기엔 부족하겠지만…….”

“아니, 잠깐.”

“저 여자는 또 누구야?”

“…….”

최형림이 다른 여자와 긴밀하게(?) 지내는 사진을 본 최형준은 머리를 긁적였다.

“어, 음…… 뭐지?”

최형준으로서는 류하리가 형을 두고 바람피우는 게 아니냐? 그렇게 따지고 싶었던 모양인데 입장이 난처하게 되었다.

“그럼 일단은 이 사건은 추이를 지켜보도록 하지요.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난 후, 별 탈이 없으면 그때 정산 부탁드립니다. 자, 여러분. 만족하셨습니까?”

“으음…….”

“마, 만족이라고 해야 할까. 뭔가 아직도 얼떨떨한데?”

“어쩔 수 없지요. 짧은 시간에 워낙 충격적인 일을 겪으셨을 테니까요. 안심하십시오. 시현탐정사무소는 고객님이 만족하실 때까지 최선을 다하니까요.”

시현은 그리 말하며 미소를 지었다.

* * *

최중무 사장은 공식행사를 전부 취소하고 자택에 돌아와 요양을 하고 있었다.

그때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영사인가? 들어오게.”

그러자 문 열리는 소리도 없이 영사가 최중무 사장에게 다가왔다.

최중무 사장은 소파에 누운 채로 그를 맞이했다.

“누워서 맞이하는 걸 이해하게. 음…….”

“이거 참 당돌하게 당했군요. 어쩌시겠습니까?”

“그만두지.”

“…….”

“상황이 변했어. 이제 손을 대면 내가 의심을 산다.”

“경찰은 여전히 증거를 잡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말입니까?”

“경찰은 그렇겠지. 하지만 내 형제들 모두는 내가 했다고 생각할 게 아닌가?”

최중무는 그리 말하고 혀를 찼다.

“조카 놈들을 너무 얕봤군. 제법이야.”

그렇게 말하는 최중무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

“솔직히 좀 기쁘더군. 핏덩이, 멍청이 같은 놈들도 밟으니까 꿈틀하면서 그래도 이 녀석들도 우리 핏줄이구나. 싶더라니까. 뭐 대부분은 그 애들에게 붙은 그 시현이라는 탐정 놈의 잔꾀겠지만…….”

“조카 분들도 영 못 쓸 멍청이는 아니다?”

“그래. 좀 가르치고 이끌고 보좌하면 사람 구실은 할 것 같더군. 그래서 말인데. 미안하게 됐네, 영사. 의뢰는 내가 중도에 포기한 걸로 하지. 지금까지 낸 비용은 물론 반환할 필요 없이 자네 걸세.”

“후우. 알겠습니다. 이거 시현 녀석 콧대가 더 높아지겠군요. 졸지에 제게 이긴 셈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럼 이걸로 된 건가?”

“아, 그런데 말입니다.”

“음?”

“또 다른 제 고용주께서 말씀을 나누고 싶어 하시는데요.”

“또 다른 고용주?”

최중무가 의아해 할 때였다.

-끼익.

방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걸어 들어왔다.

“어?”

“앉아 있어라.”

그는 뚜벅뚜벅 걸어와 최중무의 머리맡에 섰다.

최중무 사장의 형이자 한영그룹 최중선 회장이 들어온 것이다.

“혀, 형님?”

“쓸데없는 짓을 했더구나.”

“예?”

“내 자식들에게 한영그룹이 상속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왜냐면 나는…….”

“……?”

“죽지 않을 테니까.”

최중선 회장의 목소리엔 확신이 담겨 있었다.

* * *

다음날 최씨 남매는 숙부를 두들겨 팼음에도 무사히 습격당하는 일 없이 자택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인터넷 상에서는 웃음거리가 되었다.

재벌가의 상속자들이 갑자기 숙부를 두들겨 팼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그 행위가 패륜적이고 우스꽝스러워서 한영그룹에서 단속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문이나 사진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시현의 탐정사무소에 출근한 류하리가 커피를 타면서 경탄하고 있었다.

“결국 당신의 생각대로 되었네요. 소문만 약간 있는 것만으로 최중무 사장이 손을 떼다니. 의외인 걸요? 조카들에게 두들겨 맞으면 오히려 더 복수할 것 같았는데.”

“이제는 안전하지 않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안전하다고 확신하면 너무나 쉽게 법을 어기고 끔찍한 짓을 저지르죠.”

“마치 당신처럼요?”

류하리가 시현에게 빈정거렸다.

“그럴 리가요. 저는 제가 안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죽은 몸이나 다름없지요.”

“좀비 같은 건가요?”

“아니요, 좀비라기보다는…… 데드맨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습니다.”

“데드맨? 데드맨이라…… 그러면 어차피 산 사람들의 법률 따윈 눈에 안 들어온다, 그런 소리 아닌가요?”

류하리는 시현의 말꼬리를 잡기 시작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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