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화
탐정 25시 #1
서&정 탐정서비스는 탐정업계 굴지의 기업이다.
회사의 이름은 본래 부부였던 서광현, 정소라, 두 사람의 이름을 딴 것이지만 정작 두 사람은 사업이 궤도에 올랐을 때 이혼했다.
그 후 두 사람은 철저히 동업자 관계로 돌아가 사업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 * *
서&정 탐정사무실, 그곳에서는 지금 또 날카로운 여성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아니, 뭐야!? 또 시현, 그 인간에게 호구잡혔어!?”
정소라는 안경을 고쳐 쓰고 서광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겉보기로는 20대 후반쯤의 커리어 우먼으로 보인다.
단아한 정장차림에 고집 있어 보이는 눈빛에 오른쪽 광대 위에 눈물점이 있는 미녀. 그녀가 바로 서&정 탐정사무실의 정소라 실장이었다.
“호구라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냥 이야기 좀 했을 뿐이야.”
“우리 합병을 거부한 녀석이랑 정보 거래를 하지 마! 녀석이랑 대등하게 거래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특장점이 없어지는 거니까!”
“아니, 그래도 그게.”
“규모와 명성, 지명도가 있는데 그 녀석이랑 대등한 관계에서 교섭하면 안 돼! 어서 빨리 우리 산하에 들어오라고 해야지!”
“하지만 그놈 도움 없으면 불륜 일들 끝도 없이 늘어지는데…….”
“아, 그래. 불륜! 불륜하니까 생각나네. 이 불륜남아!”
“아니, 왜 일 이야기하다가 거기서 사적인 이야기로 점프하는 거야?”
“평생 들들 볶을 거야. 이 쓰레기야! 길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봐라. 내가 생불이지! 진짜 이 사업에 들어간 돈과 노력만 아니었어도…….”
정소라가 분노하고 있을 때, 그녀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즉시 표정을 업무용으로 바꾸고 전화를 받았다.
“예. 정소라 실장입니다. 예. 그간 격조하셨는지요. 어머? 그래요? 취재요? 흠…… 네, 응해야지요. 네. 방문은 언제?”
그녀는 통화를 마치고 한숨을 내쉬었다.
“무, 무슨 일이야?”
“방송 작가 한 명이 우리 사무소랑 탐정들 전반적인 생활상을 취재하고 싶대.”
“어떤 방송작가? 아는 사람이야?”
“아니. 정확히는 아는 사람의 조카. 아직 어린 애야.”
“귀찮으니까 거절하면 안 돼?”
“그런데 그 아는 사람이 유PD야. 유석정 PD 알지? 내가 나가는 방송의 PD말야.”
정소라는 케이블TV 방송국의 교양 예능 프로에 패널로 출연중이다.
미모의 여성탐정으로 인기가 드높아 팬 층까지 형성되었을 정도다.
“귀찮긴 하지만 거절할 입장이 아니야. 그리고 혹시 알아? 이걸 계기로 또 방송 하나라도 더 잡힐지? 내가 방송에 나간 덕분에 얼마나 득보는지 알지?”
서&정 탐정사무소는 의뢰를 맡아서 다시 재하청 주는 방식으로 사업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모델은 높은 지명도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것, 그런데 요즘 세상에 이런 지명도를 그냥 광고만으로 얻을 수는 없다.
정소라가 TV쇼의 고정 패널로 출연한다는 것, 그리고 그녀가 모델로 다시 TV광고를 내보냄으로서 압도적인 동반상승작용을 일으키는 것이다.
“잘해야겠네…….”
“그래. 귀찮은 일이긴 하지만 남에게 줄 순 없지. 다른 놈이 기어오르지 못하게 밟아 둬야 해.”
정소라는 그리 말하고 이글거리는 분노로 서광현을 노려보았다.
“알겠지? 똑바로 잘해!”
* * *
방송작가 유정미는 KBS 예능국 PD인 유석정의 조카다.
그녀는 추리소설, 아니, 정확히는 추리 만화에 심취해 있던 차, 자신의 숙부인 유석정이 TV방송에도 나오는 여류탐정 정소라와 아는 사이라는 걸 듣고 그 인맥을 이용해 취재를 부탁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유정미라고 해요. 삼촌은 일이 바쁘셔서 안 왔습니다.”
“아, 혼자 오셨나요?”
“예. 왜요? 삼촌이랑 같이 왔으면 좋았을까요? 하지만 삼촌은 좀 바쁘셔서요. 아, 그래도 괜찮아요. 제게 잘해 주시면 제가 또 좋게 말씀드릴 테니까요. 무슨 뜻인지 아시죠?”
‘쳇. 거들먹거리는 꼴이 호가호위가 따로 없네. 네 삼촌이야 예능국 고참PD지만 너는 이제 막 입봉한 새끼작가 아니야? 네 삼촌 없으면 너에겐 별 볼일 없는데?’
정소라는 그 말을 듣고 약간 실망했다.
하지만 유정미를 잘못 대접하면 유석정 PD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짓이 되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오히려 잘 대접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취재 방향을 잡고 있나요?”
“우선…… 남성 탐정은 없나요? 좀 젊고 잘생긴?”
“네?”
정소라는 상당히 돌직구를 던져오는 유정미의 말에 깜짝 놀랐다.
“조사해 보니까 보통 대부분의 탐정들은 전직 경찰, 형사들이 하는 거라 다들 나이가 좀 있으시고 그러더라고요. 아니면 건달이거나.”
“……아, 네.”
“하지만 정소라 씨는 미녀 탐정이시니까 혹시 근처에 괜찮은 사람들 없나요? 뭔가 능력도 있고 그림도 되는 그런 사람?”
정소라는 그 말을 듣고 내심 혀를 찼다.
‘아니, 이거 대가리에 뇌수대신 꽃밭이 피었나?’
서&정 탐정서비스는 전직 경찰보다는 탐정학과를 나온 학생들을 주로 채용한다.
어차피 이 회사의 직원은 직접 뛰기보다는 하청을 주는 쪽,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일을 분석해서 어떤 건 법률에 저촉되고 어떤 부분은 저촉되지 않는가? 그리고 이 사건을 해결하는데 얼마의 비용이 들며, 그렇다면 어느 정도를 청구해야 하는가?
그걸 판단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기존의 흥신소를 운영하던 이들, 전직 경찰이나 건달들은 자신들의 인맥과 발로 뛰는 정보력을 이용해 사건을 해결하지만 서&정 탐정사무소는 그런 이들에게 하청을 주어 일을 해결하는 것이다.
‘얼굴이 괜찮은 녀석들은 직원 중에 몇 있지만 그걸 이 애가 바랄 것 같지는 않은데? 게다가 거들먹거리는 게…….’
정소라는 필드를 뛰지 않는 타입이지만 방송프로그램에서는 마치 필드를 직접 뛰는 사람인양 허세를 부렸다.
시청자들이나 PD나 모두들 그걸 원하고 있기도 하고.
그런데 서&정 탐정사무소가 필드를 직접 뛰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면 가뜩이나 철딱서니 없어 보이는 이 어린 방송작가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어른의 사정을 이해하고 말이 통하는 그런 타입이면 모르겠는데 이건 딱 봐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 같은데? 까다롭다. 대놓고 잘생긴 젊은 남자를 원하다니?’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에도 정소라의 머릿속에는 생각하기 싫은 한 탐정의 모습이 스멀스멀 떠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사업 구상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지만…… 이 탐정업계에서 개인적인 능력으로는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독보적인 인물. 바로 시현이었다.
* * *
시현탐정사무소에 찾아온 류하리는 텅 빈 사무실을 보고 한숨을 내쉬곤 시현에게 톡을 날렸다.
[어디서 뭐하고 있어요?]
[일하고 있지요.]
[어디서 무슨 일?]
[늘 있는 불륜조사입니다. 사무실에 함부로 들어가지 마세요. 타자기랑 만나지 말고.]
[네. 알겠어요.]
류하리는 그렇게 말하고 시현의 도어락을 살펴보았다.
패스워드는 바뀌어 있어서 더 이상 그녀가 알던 대로 열리지 않는다.
“으흠…… 그렇단 말이지.”
잠시 후, 열쇠공이 도착했다.
“……열어달라고요? 여긴 사무실 같은데 아가씨가 무슨 권한으로?”
“마포경찰서 정보과 류하리 경위입니다.”
“아…….”
“물론 출장비 지급해드립니다. 흔적 없이 말끔하게 따주세요.”
경찰 경비로 올릴 수 없는 지출이지만 이 정도 지출은 류하리의 사비로 충분했다.
“아, 알겠습니다. 그렇다면야 뭐.”
열쇠공은 출장비를 지급하겠다는 류하리의 말에 그제야 공구를 꺼내서 도어락을 분리했다.
“좋았어.”
류하리는 멋대로 문을 열어버렸다.
‘불법이긴 하지만 놀랍게도 전혀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군. 어차피 시현, 그 사람도 수단 방법 안 가리잖아?’
류하리는 그리 생각하며 다시 도어락을 단 열쇠공에게 출장비를 지급하고 사무실 안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전화가 왔다.
시현이었다.
“네?”
[……별짓을 다 하는군요. 카메라 있어요. 안에. 모션 센서도 있고. 그걸 돈까지 써가면서 뚫고 들어와야겠습니까?]
“아, 죄송해요. 그런데 그냥 비번을 안 바꾸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괜히 열쇠공 비용만 더 들었잖아요.”
[적반하장도…….]
시현은 어이없어했지만 왠지 강하게 나오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도어락 비번은 원래대로 되돌리지요.]
“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열쇠공을 부를 것 같으니 말입니다. 물론 열쇠공 아저씨는 수입이 생겨서 좋겠지만 문에서 도어락을 그렇게 자주 뗐다 붙였다 하면 문이나 도어락에 손상이 가거든요.]
“현명한 선택이군요.”
류하리는 그리 말하고 타자기에 다가가 보았다.
하지만 타자기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봐.”
류하리는 살며시 다리를 들어 발로 테이블 위에 있는 타자기를 건드려보았다.
그래도 반응이 없다.
“으음.”
그때 사무실에 갑자기 발걸음이 들려온다.
류하리가 깜짝 놀라서 돌아섰을 때 벨소리가 울렸다.
“실례합니다. 안에 있소?”
그러나 류하리가 미리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열려있네?”
그렇게 들어온 이들은 한눈에 보아도 세월의 풍파가 느껴지는 중년 남자와 그의 손에 이끌려 온 젊은 여자였다.
여자는 얼굴에 멍이 들어 있고 겁에 잔뜩 질려 있었다.
“아가씨는?”
“아, 저는…… 여기 조수입니다.”
류하리는 엉겁결에 그렇게 말했다.
시현이 그녀를 항상 조수라고 부르니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고로 양심의 가책 전혀 없음. 음, 이런 기분이구나. 그 남자가 맨날 거짓말은 안했다. 이러면서 뻐기는 게.’
류하리는 왠지 자신이 시현이 된 것 같아서 으쓱거리고 일부러 시현처럼 마치 뭔가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여유로운 미소까지 지어보이는 것이었다.
“조수? 소장님은 그럼?”
갑자기 밀고 들어온 사무실에 있는 묘령의 아가씨가 탐정 조수라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다. 아무래도 류하리의 이 천연덕스러움이 먹혀들어간 것 같았다.
“소장님이야 항상 바쁘시죠. 일이 워낙 많아야죠.”
“그렇군. 전화도 항상 통화중인 경우가 많더라고.”
“그러신가요? 무슨 일로 찾아오셨지요?”
“아니, 다름이 아니라 아내의 불륜 때문에 그래요.”
“네, 불륜…… 그렇군요.”
시현탐정사무소가 불륜조사로 유명하다는 건 류하리도 이미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불륜조사 하러 왔다면서 함께 데려온 여자는 뭐야? 딸이라기엔 너무 큰데?’
“음, 실례지만 옆에 있는 여성분은?”
“내 아내요.”
“……네?”
“내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고 있으니 증거를 잡아 주쇼. 감시도 하고 미행도 해 주고.”
“……?”
류하리는 경쟁률 높은 경찰대학을 수석으로 입학한 재원이다.
학창시절에 공부도 잘했고 어디 가서 머리가 떨어진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가 하는 말을 이해하는 데 엄청난 이해력을 필요로 했다.
‘하이데거보다도 더 이해하기 힘들게 말하네?’
류하리는 어질어질함을 느끼며 다시금 물어보았다.
“그러니까 지금 당신의 아내를 조사해달라고 데려오신 건가요?”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