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90화 (90/269)

제90화

탐정 25시 #3

탐정사무소의 문이 벌컥 열렸다.

“이 여자가 왜 전화를 안 받아!?”

의처증에 시달리는 남자가 사무실로 달려온 것이다.

아마도 미행 중에 여자에게 전화해 보고 전화를 받지 않자 이상하게 여겨서 돌아온 것 같았다.

“하아. 이런.”

시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슨 일이야!”

“그게 말이지요. 당신의 아내는 불법입국 브로커 집단의 일원이었습니다.”

“……뭐?”

“그러니까 범죄자라고요. 범죄자. 그래서 경찰과 인터폴이 데려갔습니다.”

“?! 어…….”

남자는 당황했다.

그는 분명히 아내를 의심하고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아니라는 증거를 아무리 눈앞에 들이밀어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확신.

하지만 시현은 반대로 너의 말이 맞다고 긍정해버렸다.

“잠깐! 그렇다고 멋대로 그 여자를 보내면 어떻게 해?!”

“경찰이 와서 데려갔는데 어쩌겠습니까?”

“아, 아냐. 내가 원한 건…….”

의처증, 의부증에 시달리는 자 대부분은 자신의 의심, 그 진실을 가리고 싶어 하는 게 아니다.

의심을 바탕으로 상대는 부도덕하고 나는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으며 그걸 빌미로 내가 상대에게 가하는 모든 행위를 정당화하고 싶은 것이다.

상대를 지배하고 짜증나면 나는 대로, 화가 나면 나는 대로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아 행패를 부리고 싶지 자신의 눈앞에서 상대를 치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

노예는 계속 끌고 다녀야 의미가 있다.

정서적 노예로 계속 끌고 다니며 자신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싶은 것이지 이렇게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너 이 자식! 무슨 짓을 한 거야?”

“제가 묻고 싶군요. 미행도중에 포기하고 그냥 오다니 저희의 계약을 잊지 않으셨겠지요? 설마 이렇게 빨리 엉망진창으로 일을 못 할 줄은 몰랐습니다.”

“웃기지 마! 이 자식아!”

남자는 달려들어서 시현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네네…….”

시현은 첫 방은 피하지도 않고 그대로 맞았다.

“억?”

그러나 때린 남자가 당황했다.

“죄송합니다. 보통은 첫발 맞고 그럴싸하게 쓰러져 드리는데…… 여긴 제 사무실이라 그렇게 와장창 쓰러지면 집기가 부서질 것 같아서요. 괜찮습니다. 당신의 주먹도 그렇게 물주먹은 아니에요. 보통 사람이라면 꽤 위험했겠네요.”

“이, 이 자식이!”

남자는 시현을 때리다 다친 오른 손을 감싸다가 왼손으로 시현을 다시 공격했다.

하지만 그 순간, 시현이 쓱 피하고 남자를 붙잡아 책상 위에 처박았다.

“컥!?”

“죄송하지만 당신은 더 이상 시현탐정사무소의 고객이 아닙니다. 고객이 아니신 분에게 서비스 해 드릴 필요는 없지요. 절 쳤으니 폭행 현행범이네요.”

“이, 이거 놔! 이 자식! 너도 한 패지! 그 계집을 빼돌린 거야! 그렇지! 어디야?! 어디다 빼돌렸어!”

남자는 팔이 꺾여 짓눌린 상태에서도 시현을 원망하며 난동을 부렸다.

“이거 참. 이런 정신상태의 의처증환자라니…….”

류하리는 남자가 난동을 부리는 걸 보며 질려했다.

“뭐, 탐정 일을 하면 흔히 보는 유형입니다. 불륜 조사는 필연적으로 피해망상증에 가까운 의처증, 의부증 환자를 만날 수밖에 없지요.”

시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류하리에게 부탁했다.

“그래서 말인데 경찰을 불러주시겠어요?”

“아…… 네.”

* * *

의처증 남자를 보내고 시현은 도어락의 비밀 번호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괜찮겠어요?”

“매번 열쇠공을 불러서 따버리느니 그냥 맘껏 들어오시죠. 어차피…….”

“네?”

“아뇨. 어차피 경찰이신데 뭐 가져갈 것도 없겠죠. 게다가 제 조수잖아요, 당신은?”

“아하하. 그렇죠.”

그런데 그때 시현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음…… 서&정의 정소라 실장님이군요. 무슨 일이지? 보통 제게 일을 줄 때는 실무 팀에서 처리하는 데.”

시현이 전화를 받았다.

“네, 전화 받았습니다, 실장님. 오래간만이군요. 요새 한창 바쁘실 텐데 무슨 일로?”

[자기? 내가 없는 사이에 우리 멍청이 사장을 뜯어먹었더군?]

“뜯어먹었다니요?”

[구슬려서 정보를 얻어냈잖아? 아냐?]

“쌍방 합의하에 대화를 나눈 기억은 있군요.”

[그게 그거지. 이 멍청이는 자기가 하는 일에 자각이 전혀 없으니까. 탐정으로서는 금치산자 같은 거지.]

“전 남편에 대한 불만이라면 저 말고 다른 사람에게 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서 무슨 일이신지요?”

[빚을 갚아줘야겠어.]

“알다시피 저는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고객이 아니라면…….”

[물론 돈을 내지.]

“돈을 낸다고요?”

[그래. 서&정 탐정사무소는 언제나 제대로 보수를 지급하잖아?]

“하청이라 수수료가 떼이긴 하지요. 그래서? 무슨 일입니까?”

[그게 말이지…….]

* * *

의뢰 내용을 들은 시현의 표정이 구겨졌다.

“절대 싫은데요?”

[지금 이 애 때문에 우리 업무가 제대로 안 굴러갈 지경이야. 본인이 영 만족을 못 해. 하지만 자기라면 이 애를 만족시킬 수 있겠지.]

“아, 지금 바쁘거든요. 마침 사무실에 일이 있어서, 다음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계좌에 금액 넣을 거야. 자기네는 고객만족이 최우선이라면서?]

“돈이야 환불하면 그만이죠.”

[직접 찾아갈 거야! 데려갈 거라고!]

“아, 네, 네…… 아마 저는 부재중일 겁니다.”

[진짜 그럴 거야? 알겠어. 알겠어.]

정소라 실장은 자신의 회사 구석,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 숨어들어갔다.

[도와줘. 이번에 도와주면 은혜를 입은 걸로 알고 다음에 꼭 갚을게.]

“……갑자기 약하게 나오시네요?”

[아까 전엔 다른 직원들이나 사람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정소라는 내가 시현에게 이렇게 큰소리 빵빵 칠 수 있다. 나 이렇게 센 사람이다. 그걸 직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허세를 부렸던 것이다.

“흐음. 서&정의 정소라 실장님에게 은혜를 입힌다, 라…….”

[괜찮지?]

“별로 제게 이득이 될 것 같지는 않네요.”

[아, 진짜…….]

“하지만 정소라 실장님이 배은망덕한 인간인지 아닌지 확인할 기회는 되겠군요.”

[아, 알겠어. 고마워. 역시 비상시엔 시현탐정사무소밖에 없다니까. 그럼 잘 부탁해. 오늘은 시간이 좀 늦었고 내일 오전 중에 찾아 갈게. 괜찮지? 사무실로 가? 아니면 필드워크야?]

“사무실에 있을 예정입니다.”

[그래? 그럼 사무실로 갈게.]

정소라 실장은 그리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런이런. 정말 제멋대로인 분이시라니까.”

“누구예요?”

“원청업체요. 서&정 탐정사무소의 정소라 실장입니다.”

“아, 그 아침방송에 나오는…….”

“아세요?”

“네. 남편의 불륜 징후! 같은 걸로 유명한 사람이에요.”

“풋. 그건 정말 걸작이군요.”

서광현이 바람을 피워 이혼한 사이인데 정작 자신은 아침 방송프로그램에 나와서 남편의 불륜징후를 경고하는 탐정이라니…… 시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내키지 않는 일 같은데 할 거예요?”

“네. 잘라내야 할 사람인지 안고 가야 할 사람인지 판단할 기회가 되겠지요.”

“…….”

류하리는 그런 시현의 말을 듣고 약간 두려움을 느꼈다.

그러니까 시현은 인간을 시험해 보고 잘라낼 사람인지 안고 가야 할 사람인지 테스트해 본다는 소리인데……. 이런 사람에게 잘라낼 사람으로 규정되면 정말 무섭다.

'당장 아까 전에 그 남자도 고객이 아니라고 여겨지니까 보란 듯이 뒤통수를 쳐버리잖아?'

류하리는 불현듯 자신은 과연 시현에게 어떤 사람인지 그게 궁금해졌다.

'하지만 물어본다고 대답해 줄 것 같지는 않은데?'

* * *

다음날 오전, 시현은 탐정사무소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에는 뇌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번개가 번쩍이며 세상을 섬광으로 물들였다.

“과연 이런 날씨에도 찾아오실지 모르겠군요.”

시현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와. 엄청 쏟아지네요.”

안경을 쓴 젊은 여성 한 명이 대뜸 시현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우산을 탈탈 털고 사무실 안을 둘러보았다.

“음, 좀 허름하네요. 하지만 이런 게 또 정취가 있죠.”

“후후후. 이거 참.”

“아, 안녕하세요. 전 유정미라고 해요. 연락은 들으셨죠?”

“네. 정소라 실장님에게 연락은 들었습니다. 하지만 같이 오실 것 같았는데 혼자 오셨나요?”

“후후. 정통파 탐정이라면서 그런 것도 추리하지 못했나요?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굳이 서&정 사무실을 들리지 않고 바로 와버렸지 뭐예요.”

‘그건 아무래도 추리의 영역이 아닌데. 핫 리딩을 하더라도 어느 정도 사전 지식과 관심이 있어야 하지.’

시현은 황당한 걸 요구하는 방송작가, 유정미를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왜 정소라가 저자세로 나오면서까지 부탁했는지 알겠다.

“처음 딱 본 순간 절 알아보지 못한 것에서 일단 감점을 드리겠어요. 하지만 후우?”

그녀는 손가락으로 프레임을 만들어 시현을 살펴보았다.

“당신 좋네요. 그림이 괜찮은걸? 이야. 혹시 방송 나올 생각 없어요?”

“없습니다.”

“네? 진짜요? 아니, 방송 나오면 이런 허름한 데에 사무실 내는 게 아니라 더 좋고 크고 멋진 곳에 갈 수 있을 거예요. 서&정은 서초구에 있는데…….”

“외람되오나 이 건물도 자가라서 딱히 옮길 생각은…….”

“아. 이 건물이 전부 당신 거예요? 대단하네요. 알부자군요? 탐정 일이 그렇게 잘 벌리나요? 혹시 뭐 불법적인 일을 하는 건 아니죠?”

“들켰군요. 실은 여기 지하에서 대마초를 재배해서 팔고 있습니다.”

“어? 아하. 오호라, 웃기겠다고 한 거면 유머센스는 그리 안 좋군요.”

순간 당황하던 유정미는 시현에게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질 했다.

“웃기겠다고 한 게 아니라면?”

“아, 그럼…… 빈정거린 건가요? 그럴 리 없겠죠. 다들 절 좋아하니까.”

“…….”

시현은 왜 정소라가 애원하듯 굴었는지 절실히 이해했다.

이런 여자가 서&정 탐정사무소를 들쑤셨다면 그쪽의 업무에 지대한 방해가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업무방해로 고소할 수도 없다.

유정미는 유력 방송 프로듀서의 조카니까.

“그래서. 절 보면 뭔가 추리의 영감이 떠오르시나요?”

“실례지만 빅토리아 시대의 탐정이 아니라서 이성의 몸을 그렇게 샅샅이 뜯어보는 짓은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콜드리딩도 별로 기대하실 게 못 됩니다. 제게 콜드리딩을 기대하신다면 비닐 백 안에 들어가신 상태로 뵙도록 하지요.”

비닐 백, 그러니까 시체를 담는 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시현은 네가 내 눈앞에 시체로 나타나지 않는 한, 너 개인에게 관심 가질 일 없다는 뜻에서 한 말이었지만 유정미는 시현의 말을 듣고 감명 받은 듯했다.

“이야. 그거 머, 멋지네요. 저 이거 대사 써먹어도 될까요? 역시 생긴 남자가 빈정거리니까 그림이 되네. 멋있어. 독설형 캐릭터도 좋죠.”

“…….”

벌써부터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데드맨3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