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92화 (92/269)

제92화

탐정 25시 #5

집음기로 녹음을 해 본 결과 집주인인 대학교수는 안에 잘 있고 안에 있는 또 다른 누군가와 한창 정사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 그거 참. 엄청 기대했는데…….”

유정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치정이 얽힌 살인사건 같은 걸 기대했었는데 멀쩡히 살아 있다니! 그냥 불륜인 거죠? 이거?”

“그러니까 기대하지 말라고 했잖습니까.”

추리소설처럼 트릭까지 준비한 철저한 계획살인은 그리 흔치 않다.

“그런데 그거 불법 아닌가요?”

그녀는 시현의 손에 들려있는 집음기를 가리켰다.

“이거 말입니까? 물론 제게는 불법이지요. 하지만 의뢰자 분에게는 합법입니다. 여기가 그들 부부의 사유지이니 그녀 역시 이곳의 주인이기 때문이지요.”

“그렇군요.”

“무슨 의미인지 아시겠습니까?”

본래대로라면 시현은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에 고객에게 빈정거림을 하지 않는다.

탐정 또한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고객의 선악을 도외시하고 업무상 획득한 고객의 비밀, 프라이버시를 최대한 지켜주는 게 직업윤리인 것이다.

그러나 이 유정미와의 관계는 이상하다.

시현에게 직접적으로 비용을 대고 의뢰한 이는 정소라 실장.

그리고 유정미는 정소라 실장의 의뢰의 목적물이다.

의뢰의 대상이지 의뢰인이 아니다.

‘그 말인즉, 이 여자에게도 의뢰를 받아서 수명을 뽑아낼 수 있다는 뜻이지. 하지만…….’

수명을 뽑고 싶다는 욕망과 그녀를 고객으로 두고 싶지 않다는 욕망, 두 가지가 교차하고 있었다.

시현은 탐정질을 하면서 오랜 세월 동안 인간막장들을 보아왔다.

그 중에는 끔찍한 범죄자, 혐오스러운 악당 수준을 넘어서서 아예 악귀, 나찰,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이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적어도 짜증나게 하는 점에서는 유정미만 한 인물이 없었다.

‘류하리도 짜증나게 하는 재주가 좀 있긴 하지만 이쪽 방면에서는 상대가 안 되는군.’

시현은 새삼스럽게 류하리의 깔끔함에 감탄하며 자신의 빈정거림의 대답을 기다렸다.

“에…… 아, 뭐라고 하셨죠?”

뭔가 생각하는 듯하던 유정미는 딴 생각으로 흘러버렸다.

“…….”

* * *

그렇게 불륜 사건 하나를 처리하는 동안 유정미는 계속 ‘심심하다.’, ‘지루하다.’, ‘별로다.’,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다.’ 하면서 불만을 쏟아내고 있었다.

일하는데 자꾸 옆에서 김빠지는 소리를 하는 것 자체가 무례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인간이 무례해서 그런 것일까?

시현은 정소라 실장에게 이 대가를 톡톡히 받아내야겠다고 다짐, 또 다짐하며 묵묵히 작업을 계속 했다.

“으음. 하여튼 당신은 꽤 외모가 그럴싸해요. 젊고 잘생겼고…… 거기에 저 같은 미모의 조수도 있고. 캐릭터가 괜찮죠.”

“미모의 조수?”

“그런데 사건이 없잖아요!? 이게 문제야. 캐릭터는 잡혔는데 사건이 없어!”

“평화로운 게 좋은 거죠.”

“임팩트가 없잖아요! 아, 그렇지. 그게 있었지!”

“???”

“그게 있었어! 그럼 전 준비하러 가 볼 테니 오늘은 여기까지요!”

유정미는 그 말을 남기고 휘리릭 멋대로 가버렸다.

“일단 가 주니 다행이긴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시현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전화기를 들었다.

* * *

“미안해. 미안. 정말 미안해. 자기.”

사당역 인근 라운지 카페에서 만난 정소라 실장은 손이 발이 되게 빌고 있었다.

“…….”

언제나 자기네 산하에 들어오라고 압력을 행사하던 정소라 실장이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시현에게 미안해하는 걸 보면 뭐 보람이 없진 않다.

‘그러나 그건 평소에 진상이던 사람이 남들 하는 것 반만큼만 해도 예쁘게 보이는 것과 같다. 제대로 된 균형감각으로 평가하자면 입으로 사과하는 것뿐, 아, 아니, 그건 아닌가?’

시현은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제게 지불한 보수, 그거 유정미 씨가 지불한 보수에서 자른 겁니까?”

“아니.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예능국 PD 조카님이자 방송작가인데…… 취재비라고 쥐콩만큼 줬어. 자기에게 준 건 내가 사비를 턴 거야.”

“그렇군요. 사비라고 하시지만 영수증엔 서&정 탐정사무소 법인으로 되어 있는데요?”

“세금 혜택을 위해서 어쩔 수 없지. 그게 불만이야? 다들 하는 짓이잖아? 게다가 우리 법인의 문제가 맞으니까. 법인이 업무 방해가 들어와서 그걸 탐정인 자기를 고용해서 해결했다, 그럼 법인 비용으로 지출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지?”

‘사비를 털어서 지출했다고 했잖습니까. 그 차이가 있지요.’

시현은 그리 생각했지만 말을 꺼내진 않았다.

“그래서 경험해 보니까 어때?”

“엉망진창이더군요. 본인 스스로 탐정 소설 같은 탐정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현실을 잘 알고 있다고 하면서 자신의 취향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들이대는데…… 참기 힘들었습니다.”

“자기 입에서 참기 힘들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면 대단하네. 시현탐정사무소는 고객만족이 최우선 아니었어?”

“정확히 말하면 그녀는 고객이 아니죠. 고객은…….”

시현은 정소라 실장을 가리켰다.

“엄밀히 말해서 그녀는 고객이 맡긴 짐 덩어리에 가깝죠.”

“후후후. 그러니까 내가 고객이다? 그럼 내 만족을 위해서 우리 산하에 들어오지 않을래? 이사 대우를 약속하고 우수한 스태프도 붙여줄게. 인센티브도 건당 30%, 혼자서 일하면서 독식하는 건 좋지만 그럼 시간 내에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얼마 안 되잖아. 보다 많은 일을 싹 처리하고 인센티브 받아가는 게 더 많이 버는 길 아닐까?”

“사양하겠습니다.”

타자기의 악마와 계약한 시현 입장에서는 그녀가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정소라 실장은 자신의 호의를 매번 걷어차는 시현에게 악감정을 느끼고 있었지만…… 이번 일로 악감정도 많이 해소된 모양이었다.

“끄응. 고집쟁이 같으니.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지.”

“놀랍군요.”

“왜?”

“아니, 유정미 사건 하나 때문에 정 실장님이 그렇게 성질을 죽일 줄 몰랐습니다.”

“사건이 하나가 아니니까 그렇지.”

“하나가 아니라고요?”

“또 갈 거야. 그 애. 당신을 고용하는 조건을 우리에게 물어보고 갔는걸?”

“아, 그건 좀 많이 싫군요.”

시현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전화가 왔다.

유정미에게서였다.

“맙소사. 말한다고 바로 연락이 오는군요.”

시현은 전화기에 찍힌 번호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 * *

시현탐정사무소 입구에는 유정미가 진을 치고 있다가 시현이 오자 일어났다.

“아니, 대체 사무실을 이렇게 비워두고 살면 어떻게 해요? 많이 기다렸잖아요!”

“보통 그래서 전화를 받습니다만.”

시현은 그리 말하고 문을 열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십니까?”

“아, 그게 말이죠. 이런 데 참가하면 어떨까 해서요.”

유정미는 시현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웹페이지가 열려 있었다.

“이건?”

유정미가 시현에게 보여주는 웹페이지는 '추리작가 정성봉과 함께 하는 추리캠프' 라고 되어 있었다.

“…….”

“여기에 가요!”

“네?”

시현은 순발력이 뛰어나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순간 그의 뇌는 이 여자의 말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 잠시 마비상태가 되었다.

사람의 말만으로 정신이 몽롱해지다니.

‘그러니까 추리작가의 여행 패키지 상품 같은 것에 지금 현역 탐정인 날 보고 같이 가자고?’

시현이 의아해할 때 유정미가 으스댔다.

“물론 그냥은 아니에요. 사람들이 말하길 당신 요율이 한주에 500만원이라고 하던데 이 캠프는 1박2일인데도 500의 취재료를 책정했어요! 어때요?”

“그러니까 그 돈으로 절 고용해서 여기 캠프에 가시겠다?”

“네!”

“허나 거절하겠습니다.”

“왜요?”

“일단 모든 업무를 그 돈으로 받고 일하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시현탐정사무소는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합니다만…….”

“합니다만?”

“그렇기 때문에 거절해야겠군요.”

굳이 공들여 가며 널 만족시키고 싶지 않다. 널 고객으로 받지 않는 지금만이 살 기회다.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거절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타다다다닥.

타자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

“어? 무슨 소리죠?”

“낡은 기계식 전보기입니다. 가끔 오작동을 일으키죠.”

시현은 그리 말하고 타자기에 가서 종이를 살펴보았다.

‘응하세요. 계약 상대와 만날 계기가 될 테니.’

타자기의 악마가 유정미의 저 황당한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자식. 재밌어 보이나 보군.’

유정미는 시현의 입장에선 피하고 싶은 상대다.

그러나 시현과 계약한 타자기의 악마에게 유정미의 제안은 꽤나 매력적인 듯했다.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도…….

“아, 으으으으으. 끄으으윽. 네, 좋습니다. 이 의뢰 받아들이도록 하지요.”

시현은 정말 싫어서 몸서리를 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의뢰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 * *

류하리가 시현을 전담하는 역할을 맡고 있긴 하지만 시현을 관리하는 데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대신 그녀는 정보 경찰로서의 업무를 충실히 해내면서 경찰 내에서의 자신의 입지를 지켰다.

경찰들 사이에서는 류하리가 여성이면서도 필드워크를 주저하지 않고 때로는 정말 위험한 잠입수사 같은 것도 별다른 거부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아니, 이런 데에서도 꼴받게 하네.”

그리고 그런 점이 바로 성신아를 짜증나게 했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확 부각되어야 하는데…….”

필드워크를 마다하지 않는 열혈 여성 경찰, 그런 점에서는 성신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사이다패스 전담반이 되면서 스스로 필드워크와 멀어지고 말았다.

물론 전국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이다패스 살인사건, 혹은 그 살인사건으로 의심되는 유사 사건들을 조사하느라 바쁘게 뛰고 있지만 일반 경찰들 사이에서는 중앙에서 내려온 간부예정자의 스펙 쌓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일선 경찰서에서 좀 평판 좋아지는 거랑 이렇게 큰일을 하며 전국적으로 노는 것과는 다르긴 하지만…….”

제일 처음 임관과 동시에 쓰러져 병가로 푹 쉬었던 류하리의 평판이 회복되어 가니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겠다.

류하리는 집이 유복하다. 경찰에서 성공하고 말고와 상관없이 그냥 쭉 평생 먹고 살 걱정 없는 처지가 아닌가?

그 반면 성신아는 그렇지 못하며 사실 지금 부모가 친부모도 아니다.

양부모님이 잘 대해 주고 있긴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성신아는 더더욱 성공해서 자신의 동생들도 부양하고 양부모님께도 은혜를 갚고 싶다.

그런 류하리에게 경찰에서의 성취에서 밀린다는 건 성신아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모욕이었다.

‘게다가…… 아, 아무래도 넌 용서가 안 돼.’

그때 성신아에게 누군가가 커피를 내밀었다.

느끼한 모습의 박공헌 경감이었다.

경찰의 언론보도 대응팀에 있으면서 사이다패스 전담팀에도 많은 조언을 하는 인물이라 성신아가 싫어도 그녀와 안면을 트고 있었다.

“아이고, 성신아 씨. 오늘도 그냥 삽화네 삽화야. 정말…… 자자, 커피 마셔.”

“아, 네. 감사합니다.”

어지간하면 거절하고 싶지만 생활이 빠듯한 성신아로서는 커피 값을 아낄 수 있는 찬스였다.

‘뭐 이상한 거 타진 않았겠지? 이 남자, 나에게 관심 가지는 거 되게 부담스러운데?’

나이도 10살 이상 많은 남자가 너무 노골적으로 호의를 드러내는 게 거북하다.

하지만 상사고 관련부서가 아주 겹치지 않는 것도 아니니 앞으로의 직장생활을 위해서 너무 날을 세울 수도 없다.

그런데…….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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