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94화 (94/269)

제94화

화천추리산장 #1

류하리는 시현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고 그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역할은 시현을 감시하는 일이다.

그런데 시현이 방송에 나간다면?

류하리에게 관리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무슨 생각이에요? 방송프로에 나간다고요? 메이저 데뷔라도 하게요? 그 뭐냐? 예능프로에 나오는 탐정처럼 유명세 얻으려고요?”

시현이 일반적인 탐정이라면 방송을 탈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일단 방송을 타서 유명세를 얻으면 의뢰가 줄기차게 들어올 테니까.

하지만 시현은 이미 일이라면 차고 넘치게 많이 들어오는데다가…… 그는 기이한 일들을 처리하는 자다.

타자기의 악마와 계약해서 저지르는 일은 가급적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싶지 않을 텐데?

본인이 방송에 나가서 유명인이 되면 어쩌자는 건가?

“나가진 않을 겁니다.”

“촬영한다면서요?”

“애초에 이런 의뢰를 그냥은 안 받아들였을 겁니다. 하지만…….”

시현은 타자기 쪽을 가리켰다.

“……아.”

류하리는 타자기의 악마가 시켰다는 걸 깨닫고 놀랐다.

‘타자기의 악마가 이 계약을 주선했다고? 그럼 뭔가 수명을 거래할 만한 계약이 일어날 거라는 소리잖아?’

지금까지 곁에서 본 정도긴 하지만 류하리도 타자기의 악마가 제시하는 계약이 어떤 것인지 대충 경향 파악이 끝났다.

타자기의 악마가 개입하는 계약이라면 필연적으로 예삿일이 아니게 된다.

“방송되지 못할 만한 일이 될 겁니다. 타자기의 악마도 제가 방송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건 원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 그건 다행이네요. 아니, 큰일이라고 해야 하나?”

찍어둔 프로그램을 방송하지 못할 만큼의 일이 벌어진다면…… 십중팔구 살인이나 강력 범죄일 것이다.

경찰된 입장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걸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저도 따라가겠어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까.”

“하지만 1박2일, 혹은 그 이상의 여정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엄연히 맞선 상대도 있는 류 경위님이 외간남자와 1박2일의 여행을 간다면 그것 또한 몹쓸 일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류 경위님은 오늘은 그만 돌아가시지요.”

“맞선 상대…… 아.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런 핑계로 절 떨구려고 하지 마시죠.”

“후후,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미혼 남녀가 펜션 여행을 떠난다니? 불필요한 오해를 살 수도 있는데요?”

“그런 식으로 절 떠보지 마시죠.”

그런데 그때였다.

“그래서 말인데 이 조수분도 같이 가는 건가요?”

유정미가 시현과 류하리에게 다가와서 물어본 것이었다.

둘이 자리를 피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으면 자신을 배제하려고 하는 걸 알고 있을 텐데도 무작정 걸어 들어온 것이다.

“…….”

“남녀가 유별하니 저 혼자…….”

“아니, 같이 가겠어요.”

“아, 그래요? 뭐 좋아요. 좋아. 이쪽도 스태프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무슨 소리입니까?”

“네. 촬영 보조 스태프 한 명이 몸이 안 좋다고 빠져서요. 조수 씨가 도와주셔야 할 것 같네요.”

“……네?”

류하리는 너무나 당당히 자신을 부려먹겠다는 유정미의 말과 태도에 놀랐다.

“의뢰비를 이미 받아서…….”

그리고 류하리는 시현의 조수라고 되어 있다.

즉, 유정미는 류하리에게도 갑질을 할 수 있는 위치가 된 것이다.

* * *

그리고 지금 류하리는 자갈들을 깔아 만든 펜션의 주차장에서 촬영장비가 담긴 케이스를 내리고 있었다.

“아으! 진짜!”

류하리는 따라오겠다는 말을 섣불리 내뱉은 자신을 원망했다.

방송 스태프는 촬영기사 한 명, 작가이자 PD인 유정미, 이 둘이 끝이다.

디지털 촬영장비들이 좋아져서 다들 경량화되고 가벼워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건 촬영이라 해야 할 일이 많다.

그 육체노동에 류하리를 끌고 온 것이다.

“저도 돕도록 하죠.”

“아니, 안 돼요. 당신은 인트로 찍어야죠!”

“인트로?”

“예. 캐릭터는…… 한류 탐정으로 하죠.”

“윽…….”

시현은 그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처음 듣는 건 아니다.

애초에 출발할 때부터 그런 콘셉트로 마치 아이돌 무대의상 같은 옷을 입혀놓을 때부터 들었다.

그렇지만 들을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몸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방송이 안 될 만한 일이 터지는 거 맞겠지?’

시현도 순간 불안해졌다.

타자기의 악마가 이 의뢰를 받으라고 했을 때부터 절대로 방영될 리 없는 그런 일이겠구나 싶었지만 만약 타자기의 악마가 틀렸다면?

지금까지 타자기의 악마가 보여주었던 경향은 사실 속임수였고 이 한 번에 시현을 엿 먹이려고 쭈욱 포석을 깔아둔 것이라면 어떨까?

‘그럴 리는 없겠지.’

시현은 타자기의 악마가 그럴 리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불안하다. 한류 탐정 같은 이름으로 방송이라도 타면 정소라 실장이나 기타 지인들, 업무상 알게 된 지인들이 얼마나 그걸로 놀려댈 것인가.

“하, 한류 탐정. 웃기지 마요 좀. 웃다 허리 나가겠네.”

방송장비 케이스를 들고 옮기던 류하리가 실소를 터뜨렸다.

“자, 여기가 바로 우리의 무대가 될 펜션이랍니다.”

“……음. 그런데.”

류하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산등성에 위치한 펜션 단지는 꽤 크다.

원래 복합 리조트라도 만들려다가 말았는지 꽤 넓게 공사된 곳에 독채 방갈로들이 몇 개씩 있고 그 방갈로들 밖을 나무 울타리들이 자연스럽게 막아주어 바깥에서의 시선을 차단하고 있었다.

“분위기가 있네요. 게다가 진입로 보셨어요?”

“네. 농수로 위에 차 한 대 겨우 지날 콘크리트 다리가 있었죠.”

시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유일한 진입로가 다리 하나인 산장이다.

만약 저 다리가 끊긴다면 …… 물론 평상시라면 그냥 농수로로 내려가서 건너면 된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국지성 호우 등으로 다리가 끊긴다면 농수로는 이미 사람이 건널 수 없는 격류로 변할 것이다.

즉, 폭우가 오면 고립될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통신은…….”

시현이 휴대폰을 꺼내서 확인해 보았다.

펜션 쪽에 무선 중계기가 있어서 그쪽으로는 전파가 잡히지만 그 외 부분들은 음영지역인 것 같다.

즉…… 무선 중계기가 한 대만 부서져도 통신이 끊길 수 있다.

“…….”

류하리가 침을 꿀꺽 삼켰다.

“아, 이거 어여쁜 아가씨에게 죄송하네. 원래 이런 거 여자에게 시키고 그러지 않는데 사람 손이 부족해서.”

촬영기사는 ‘배준수’. 꽤 유명한 단독 여행프로그램 ‘세계일주탐방’이라는 걸 찍어서 꽤 짭짤한 재미를 보았다고 한다.

본 방영 당시는 그렇게 인기 프로가 아니었지만 지역 방송, 케이블 방송 등에 계속 재송출 되면서 방송료를 톡톡히 받는다고 하는데 아내와 이혼하고 자식들 양육비 대느라 다 나간다고 해서 이번에 새 프로그램을 발굴하고자 여기에 왔다고 한다.

“일단 그 장비 열어줘요.”

“이건?”

“촬영용 드론이에요. 하하. 자, 그럼 날려볼까요.”

배준수는 촬영용 드론을 날려서 펜션 전경을 상공에서 촬영하기 시작했다.

류하리가 어깨너머로 드론 조작 장면을 보니 험준한 산지, 우거진 녹림 사이에 펼쳐진 산장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예상한 대로 농수로 끊기면 완전 고립되는 지형이네. 이건 그거지?’

류하리도 타자기의 악마가 지닌 취향을 알고 있기에 앞으로 벌어질 일을 예측할 수 있었다.

‘절대 그런 일이 생기지 못하게 막아야지. 아, 하지만 그럼 저 남자가 한류 탐정이라고 방송 타는 거 아니야? 으음…… 경찰로서의 직업윤리냐, 직장생활에서의 집단윤리냐.’

류하리가 번민하고 있을 때 유정미는 신이 나서 마이크를 세팅했다.

“자, 그럼 인트로부터 시작해볼까요!”

* * *

한국에서 추리소설이란 장르는 철저한 마이너다.

즉, 돈이 되지 않는다.

추리소설 작가 ‘정성봉’도 그래서 인세수입으로 돈을 버는 게 아니었다.

그는 본래 건축학 전공으로 작은 빌라개발 사업을 반복해서 돈을 벌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매우 싼 값으로 지어진 지 4년차 되는 화천 어느 산골짜기의 펜션단지를 구입할 수 있었다.

이 펜션 단지는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산등성에 있고 진입로도 그리 좋지 않아서 오래된 농수로 위 콘크리트 다리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교통이 불편하고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그런 환경이다. 경관이 좋지 않냐면 그건 아니지만 경관만으로 굳이 이런 오지에 돈 내고 올 만한 곳도 아니라서 이전의 펜션사업자는 건설비도 못 뽑고 망했다.

여기서 정성봉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추리소설을 테마로 한 테마 펜션.

방탈출 카페 비슷하게 추리를 테마로 하면 멀리서 매니악한 손님들을 끌어올 수 있지 않을까?

정성봉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 정성봉의 추리 펜션은 지역 방송사의 방송을 탄 이후 연일 예약에 호조를 이루었다.

하지만 정성봉은 더 많은 걸 원했다.

지역 방송, 그러니까 강원도 내 방송으로 홍보되어 봤자 펜션에 놀러 올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강원도 사람들이 강원도 펜션에 갈 리가 없지 않은가? 다른 방송에 재송출 되거나 인터넷에서 스틸 샷으로 돌아다니면서 입소문이 좀 퍼지긴 했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전국 방송국에 나가고 싶다.

그런데 그때 그런 정성봉에게 한 제안이 왔다.

드라마 방송작가 한 명이 작은 독립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싶으니 취재비를 지원해 달라.

그런 제안이었다.

처음엔 사기 같은 거 아닌가 하고 경계했지만 상대가 유명 방송국 PD의 조카이며 분명히 입봉한 작가임을 확인했다.

게다가 촬영기사는 ‘배준수’. ‘세계일주탐방’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만약 이번 프로가 ‘세계일주탐방’처럼 주구장창 재송출을 반복하는 프로그램이 된다면?

정성봉의 테마 펜션은 진짜 황금알을 낳는 오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한류 탐정?’

펜션 입구에서부터 인트로를 찍으며 오는 이들의 단어가 거슬렸다.

‘탐정을 데려왔다고? 그게 저 애송이야?’

추리소설가인 정성봉 입장에서는 사실 탐정이란 존재가 얼마나 실속이 없는지는 오히려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알고 지내는 탐정은 결국 조직폭력배의 돈세탁 창구라던가 불명예스러운 일로 옷을 벗은 전직경찰이 인맥을 이용해 돈을 버는 장사, 사실상 흥신소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았다.

‘이놈은 뭐 외모가 좀 매끈하구만. 뭔가 연예기획사에서 키워주는 놈인가? 그렇지만 탐정이라니…… 그런 놈도 연예기획사에서 키울 가치가 있나? 원 참. 얼굴만 믿고 너무 까불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정성봉은 저기 다가오는 잘생긴 청년, ‘한류 탐정’에 대한 까닭 없는 적개심이 피어오르는 걸 느꼈다.

하지만 여성 작가인 윤정미와 짐을 들고 촬영기사를 따라다니는 스태프, 류하리를 보니 마음이 누그러졌다.

‘아가씨들은 미인이구만. 이거 오늘은 꽤 재밌는 체험이 되겠어.’

숙박을 무료로 제공하고 선불로 지불한 제작비가 좀 아프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가 되는 것이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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