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96화 (96/269)

제96화

화천추리산장 #3

“아, 산지라서 국지성 호우가 좀 내립니다.”

“산사태 나고 무너지는 거 아닌가요?”

산을 끼고 있으니 산사태의 위험이 있지 않은가? 류하리가 그 점을 물어보았지만 산장 주인 정성봉은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다.

“하하하, 그런 염려는 하지 마세요. 이 산장과 펜션 위치는 산사태를 철저히 방제하도록 설계되어 있으니까요. 토사와 물이 빠져나가도록 방수로가 충분히 만들어져 있고 여기 토대도 100미터짜리 호텔을 지어도 끄떡없도록 20미터짜리 파일을 박아두었으니까요.”

“20미터 파일이요?”

“네. 원래 전 정권 때 이 근처에 대규모 개발 사업이 예정되어 있다고 해서 부동산 투자 회사들이 호텔 수요가 있을 줄 알고 아직 고층건물 허가가 나기 전에 우선 가건물로 펜션단지를 지어놓고…….”

한창 부동산 개발업자로서의 자신을 어필하던 정성봉은 그제야 자신이 급발진 했음을 깨닫고 헛기침을 했다.

“자자. 게임에 관계없는 내용으로 너무 떠들었지요? 여러분들의 몰입을 깰 뻔했군요. 부동산 투자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나중에 저와 따로 이야기하도록 하고 게임 설명으로 돌아가겠습니다.”

그는 뱀파이어 카드를 들어보였다.

“보시다시피 이건 양면카드입니다. 평소에는 인간이지만 진마, 뱀파이어 로드에게 물리면 뱀파이어가 되지요. 뱀파이어들은 진마가 승리할 경우 함께 승리하며 1회 발동 액션이 있습니다.”

“1회 발동액션?”

“네, 보통 헌터나 신부, 뱀파이어는 자신들의 액션을 파고라에 모여서 회의 할 때 사용할 수 있는데 뱀파이어들은 자신들이 원할 때 락다운을 발동할 수 있습니다.”

“락다운이라고요?”

“네. 여러분의 숙소들은 방탈출 게임이 가능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별도로 드리는 이 무전기를 통해서 여러분은 게임마스터인 저와 통화가 가능한데 락다운을 필요로 하시면 락다운을 선언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제가 그 요구가 들어온 산장의 문을 잠그고, 안에서 방탈출 게임을 해서 나와야 하지요.”

“호오? 그런 기능이?”

“네. 이걸 이용해서 뱀파이어 분들은 자신과 같은 방에 있는 사람이 파고라 투표에 참가 못 하게 할 수 있겠지요?”

“그럼 자신이 뱀파이어라고 알려주는 꼴 아닌가요?”

“한 방에 두 명씩 들어가기 때문에 둘 중 하나가 뱀파이어겠지요. 둘 다 뱀파이어인데 속이기 위해서 쓸 수도 있겠구요. 그럼 적어도 헌터 측에선 둘 중 하나는 뱀파이어가 아닐 거라고 생각할 테니까요.”

“아하.”

“이렇게 방탈출 게임과 조합해서 게임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게 저희 테마 펜션의 장점이지요. 하하하.”

펜션 주인 정성봉은 자신 있게 말하고 있었다. 정말 자랑스러운 모양이었다.

-쏴아아아아!

창밖에서 비가 너무나 거칠게 쏟아지고 있는데도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없다.

그만큼 이곳 건축물에 대해서 자신만만한 것일까?

“자, 그럼.”

그는 역할카드들을 봉투에 담아서 섞었다.

“여러분들은 이 카드를 골라서 역할을 받고 뱀파이어, 혹은 인간의 편이 되어서 게임을 이끌어나가셔야 합니다.”

“그런데 9명인데 특수카드가 세 장 뿐이지 않나요?”

“그래서 시민들 중 한 분은 뱀파이어입니다. 이건 카드로 지목하는 게 아니라 나중에 제가 알려드리지요. 자, 그럼 카드를 골라보시지요.”

사람들이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차례차례 나아가 카드를 골랐다.

류하리도 카드가 담긴 봉투를 하나 골랐는데 슬쩍 열어보니 안에는 신부의 카드가 들어 있었다.

류하리는 쓴웃음을 짓고 시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시현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

“음, 왜요? 뭐 이상한 거 집었나요?”

“아니요.”

“그럼요?”

그때 산장의 주인, 정성봉 씨가 헛기침을 했다.

“사이가 좋은 건 알겠지만 게임 이 진행 중이니 너무 사적인 대화는 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아, 저기 그런 게 아니라…….”

“에이. 아가씨, 너무 하네.”

“우우. 치팅 금지!”

대학생들이 야유를 보냈다.

‘아니, 저놈들이, 대놓고 치팅하자고 내게 번호 까라고 하던 놈들 아냐?’

류하리는 자신에게 야유를 보내는 대학생들의 행패에 화가 났지만 일단 입을 다물었다.

그때 이번엔 시현이 손을 들었다.

“잠깐만요.”

“네?”

“턴이 진행될수록 뱀파이어가 계속 늘어나서 초반만 바로 지나도 헌터에게 불리해지는 게임인 것 같습니다. 이건?”

“그래서 산장 근처 산책로나 여러분들의 방갈로에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보물이요?”

“네. 아티팩트 카드가 곳곳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걸 찾으면 진마는 한 턴에 2회 공격이 가능해지고. 신부는 한 턴에 두 명을 보호 가능해지고, 헌터는 한 턴에 두 명을 조사할 수 있게 되며, 소모할 경우 뱀파이어를 시민으로 되돌릴 수도 있습니다.”

“아. 산장의 보물찾기와도 결합한 게임이군요.”

“네. 이렇게 여러 가지 변수가 있으니 헌터 측에게 마냥 불리하지 많은 않습니다. 보물을 먼저 선점한다면 충분히 헌터 측에도 승산이 있지 않겠습니까?”

산장주인은 공평한 게임인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보물의 효용에서 보더라도 차이가 명확하다.

진마가 한 턴 당 2회 공격을 하는 것과 신부가 한 턴 당 2회 방어를 하는 건 질적인 차이가 있다.

우선 신부의 방어는 만약 그쪽으로 진마가 공격을 감행해 오지 않더라도 소모되는 것이다.

반면 진마의 공격은 방어당해서 막혀봐야 본전, 성공하면 아군의 수를 늘리거나 적을 배제하는 강력한 카드다.

그러나 이런 게임은 뱀파이어 측, 공격 측에 압도적인 이익이 있어야 재미가 있는 법이다.

“흐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자, 그럼…… 매번 2시간 간격으로 모이겠습니다. 그동안은 근처 산책…… 은 무리일 것 같고.”

갑자기 호우가 쏟아지고 있어서 다들 파고라 밑에 피신해 있는 상태였다.

“아, 우산이랑 우비는 제가 가져오겠습니다. 그럼 잠시…….”

정성봉은 그 말을 남기고 일행들 모두에게 작은 공용 무전기를 하나씩 건네주고 우산을 가져오기 위해 관리동으로 향했다.

* * *

“아, 이거 비가 이렇게 많이 오면 촬영이 잘 안되는데.”

촬영감독 배준수는 그리 말하고 카메라 앞에 라이트를 켜보았다. 그러자 카메라에 빗방울이 너무 선명하게 보인다.

“이거 참, 원래 조수님께 큰 부담 안 지우려고 했는데 조수님이 조명을 들고 다니면서 쫓아와야겠어요.”

“조수님이면 저 말인가요?”

류하리가 자신을 가리켰다.

“네.”

“그렇군요.”

“뭐 다행히 요새는 장비들이 다들 작고 가벼워졌으니까.”

그때 유정미가 대학생들에게 다가갔다.

“실례해요. 저는 이런 사람인데요.”

유정미는 방송국의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잠깐 가볍게 인터뷰 좀 해도 될까요? 거창한 게 아니라 잠깐이면 돼요.”

“아, 네. 하하, 물론이죠.”

“여러분들은 친구인가요?”

“네. 저희 셋은 같은 고등학교 출신 친구죠. 대학도 같이 진학했어요.”

남자들은 그렇게 말하며 어깨동무를 하는 시늉을 했는데 운전을 했던 사람은 주눅이 들어서 그대로 끌려왔다.

“사이가 정말 좋으시군요. 그럼 같이 온 여성분들은?”

“저희 여자친구예요. 대학 입학하고 사귄.”

“그렇군요. 두 분인데 그럼…….”

“이 녀석이 솔로죠. 이 녀석 모태솔로예요.”

“후후. 여기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네, 군대 가기 전에 좀 추억을 만들려고 했는데 산도 바다도 가면 그냥 술만 마시고 끝이잖아요? 그래서 뭐 테마가 좀 있는 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 있나 하다 보니 오게 되었어요. 가격도 다른 펜션보다 더 비싼 것도 아니고.”

“혹시 역할 카드는 뭘 뽑았는지 보여주실 수 있나요?”

“에이. 천만에요. 그건 좀 곤란하죠.”

유정미는 능숙하게 인터뷰를 진행했고 배준수는 그걸 찍었으며 시현과 류하리는 뒤에서 조명을 들고 화면이 잘 나오도록 보조해 주었다.

“이렇게 하면 되나요?”

“네, 잘해 주셨어요.”

유정미는 인터뷰에 넉살좋게 응해 준 대학생들에게 고마워하며 배준수와 함께 카메라를 확인해 보았다.

그 틈에 류하리는 조명을 내려놓고 시현에게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그가 일을 저지를 것 같죠?”

다른 대학생들에게 주눅 들어 있는 모태솔로라는 대학생이 수상하다.

추리고 뭐고 필요 없이 바로 동기가 보이지 않는가?

“확실히 그래 보이긴 하는군요. 하지만 누가 계약자인지 모르는 데 섣부른 행동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일단 상황을 좀 더 지켜보죠.”

“아, 알겠어요. 하지만 일단 상부에 보고는 해 둬야겠군요. 당신에게 방송국 사람이 접촉해서 뭔가 찍으려 한다는 것 정도는 보고해도 되겠지요?”

류하리가 그렇게 말하며 전화기를 든 바로 그때였다.

* * *

-콰아앙!

갑자기 굉음이 울려 퍼졌다.

낙뢰가 바로 펜션 관리동에 떨어진 것이다.

그리고…….

-퍼어엉!

운 나쁘게도 통신안테나에 전기스파크가 튀었다.

“아!”

“꺄아아악!”

“으악!”

사람들이 모두 다 비명을 질렀다.

펜션의 전기가 일제히 나가면서 불이 꺼졌다.

통신 안테나를 낙뢰가 강타하면서 중계기도 고장 났는지 전화기도 통화 이탈이 떠버렸다.

류하리는 자신이 전화를 걸려고 하자 일어난 참사에 망연자실해졌다.

‘나 때문인가?’

마치 류하리의 전화를 막으려고 미지의 존재가 바로 지금, 낙뢰를 떨군 것 같았다.

“으으으…….”

“주인아저씨는?!”

“어, 어떻게 된 거야?”

다들 겁에 질려있을 때였다.

-지지직!

모두의 무전기가 일제히 작동하기 시작했다.

펜션 주인, 박성봉의 목소리가 무전기 너머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자, 여러분…… 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하아?”

모두의 입에서 입김이 엉겨 붙기 시작했다.

“추, 추워?”

“뭐야? 갑자기!”

비가 오고 있긴 하지만 갑자기 엄청나게 추워졌다.

그들이 추워하건 말건 무전기 너머에서 박성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지요. 우선 첫 번째 밤입니다. 자, 20분간 상의한 후, 진마는 공격할 상대를 선택해 주시고, 헌터는 확인할 상대를, 신부는 보호할 상대를 선택해 주세요. 저는 따로 시민이 아니라 뱀파이어인 분을 몰래 알려드리겠습니다.]

“어이. 아저씨. 지금 게임 따위 할 때가 아니잖아!?”

대학생들이 기겁했다.

“번개로 중계기가 망가졌어요! 통화권 이탈이라고요!”

“얼른 나가야겠어! 젠장!”

대학생들은 비바람이 들이치건 말건 파고라를 떠나려 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콰앙!

그들이 보는 앞에서 농수로에서 폭음과 함께 물기둥이 일어났다.

“뭐, 뭐야?”

-콰드드드…….

그리고 불어난 물살을 이기지 못하고 다리가 떠내려가기 시작했다.

-콰앙!

물속에서 다시금 물기둥이 치솟아 오른다.

“아마도 지뢰나 불발탄 같은 게 유실되어서 떠내려 오다가 수중에서 폭발한 모양입니다.”

시현이 그렇게 말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 화천은 군부대도 많은 곳이니까요.”

“아니, 잠깐만. 다리가 끊겼잖아!”

“어, 어떻게 하죠?”

대학생들도, 심지어 방송작가인 유정미도 겁에 질렸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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