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97화 (97/269)

제97화

화천추리산장 #4

저 상태라면 이제 적어도 그들이 들어왔던 길로 돌아나갈 수는 없게 되었다.

유실지뢰와 불발탄이 넘실거리는 격류를 건너는 건 불가능하다.

“어, 어디…… 그래도 촬영은 해 둘까요?”

배준수는 촬영을 하기 위해 농수로 쪽으로 접근했다.

“조심하세요! 위험하니까!”

류하리는 지뢰나 불발탄이 터질지도 모른다는데도 겁 없이 농수로로 접근하는 배준수를 뒤따라갔다.

비바람이 어찌나 강한지 피부에 와 닿는 빗줄기가 채찍처럼 아프다.

“꺅…….”

류하리가 아파서 비명을 지르는 그때 다시 수로에서 폭탄이 터지며 물기둥이 치솟았다.

“으악!”

촬영감독 배준수도 겁에 질려서 뒤로 물러났다.

“원 세상에.”

“큰일 났네요. 이거 산에도 지뢰나 불발탄이 있을 것 같은데요?”

류하리는 펜션의 뒤쪽 산을 살펴보았다.

산에서 쏟아져 내리는 빗물을 따라 농수로가 넘쳐나는 거고 거기에 지뢰나 불발탄 등이 섞여있는 거니까 산 역시 위험할 것이다.

아니, 지뢰나 불발탄이 없어도 비가 오는 산은 위험하다.

즉, 그들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일단 주인아저씨를 찾아보죠!”

류하리는 조명을 들고 관리동 쪽으로 다가갔다.

* * *

“실례합니다!”

류하리는 관리동을 살펴보고 문을 만져보았다.

문에는 전자식 도어락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겉면에 서리가 맺혀 있었다.

“뭐, 뭐야 이거……. 안에 계세요?”

류하리는 벨도 눌러보고 문도 두들겨 보았지만 반응이 없다.

그리고 대신 무전기에서 계속해서 정성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의하시고 15분 뒤 액션을 진행하겠습니다. 첫 밤이니까 처형은 없습니다. 그럼.]

“…….”

류하리는 관리동의 창문을 살펴보았다.

역시 안에서 잠겨있지만…….

“실례!”

류하리는 플래시라이트를 이용해 창문의 유리창을 깨버리고 안의 잠금장치를 푼 뒤 창문으로 침입했다.

“힉! 아가씨! 무슨 짓 하는 거야?!”

배준수가 놀라서 외쳤지만 류하리는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하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안에 계세요?”

그녀는 플래시라이트를 켜고 안을 비추면서 살펴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다.

있는 거라곤……. 벽 한편에 잔뜩 쌓여있는 뱀파이어 나이트 소설 증정본이었다.

책장에 가득히 쌓여있고 펜션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파는지 가격표까지 붙어 있었다.

‘아마 출판사 재고를 떠안았는지 정상적인 증정본보다 훨씬 많군. 뭐 펜션을 경영할 정도니까 돈이 궁한 건 아니겠지. 아마 취미 삼아서 하는 장사가 아닐까.’

류하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의아해했다.

‘이 방송을 불러들인 건 이 사람이 제작비를 댄 거였지? 시현의 의뢰비가 최하 500에서 시작하니까 제작비와 커미션 비용 등이 적지 않았을 거야. 그걸 댈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돈 문제 때문에 자살하거나 무슨 악마와 계약했을 것 같지는 않아. 그런데 어찌된 거지?’

관리동 안은 텅텅 비어 있다.

류하리가 안에서 도어락을 열어보니 열린다.

밖에서는 얼음이 얼어붙어 있을 정도로 차가웠는데 안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

[10분 남았습니다. 의견은 좀 정리가 되셨나요?]

무전기가 시간을 재촉하고 있었다.

류하리는 우산을 집어 들고 배준수와 함께 파고라로 돌아왔다.

* * *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주인아저씨는 찾았어요?”

대학생들은 우산을 들고 오는 류하리를 보며 맞이했다.

다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하지만 류하리가 배준수와 함께 우산만 들고 오는 걸 보며 당황해하는 게 보였다.

“아니, 없어졌어요.”

“네? 그게 말이 돼요? 지금도 무전기 너머에서는 지금도 이야기 하고 있잖아요?”

“그게 말입니다.”

시현이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보였다.

“무전기에서 말하는 걸 녹음해 봤습니다.”

시현이 녹음 파일을 재생하자 그르렁거리는 끔찍한 짐승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게 방금 전, 10분 남았다고 알리던 목소리였습니다.”

“네?”

“실제로는 다른 소리를 다들 펜션 주인의 목소리로 듣고 있다는 거지요.”

“……?”

“어?”

“마, 말도 안 돼.”

대학생들이 엄습해 오는 추위에 떨었다.

“잠깐만. 그거 뭐 괴담이야? 어이 형씨. 장난이 지나친데?”

“장난이 아닙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고 자신의 명함을 꺼냈다.

“실례지만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아, 그, 그래. 한류 탐정?”

“그냥 탐정입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고 모두를 돌아보았다.

“여기 모이신 분들 중에는 사실 지금 돌아가는 일이 뭔가 마음에 짚이시는 분이 있을 겁니다. 아마도 누군가가 계약을 하자고 해서 별 생각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을 겁니다. 계약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세요.”

“어?! 설마? 그거?”

구박받던 대학생이 흠칫 놀랐다.

“이런 젠장! 네놈 짓이냐?!”

“이 새끼가 진짜!”

다른 남성 대학생 둘이 구박받던 대학생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다.

“너 이 새끼! 무슨 짓 한 거야?! 당장 불어!”

“아니, 그, 그게.”

“젠장! 죽고 싶냐!”

흥분한 대학생 남성 한 명이 주먹을 휘두르려 했지만 그때였다.

-퍽!

시현이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그저 대충 차는 듯한 발차기를 날렸다.

그런데 그 일격에 대학생이 붕 떠떠서 비에 젖은 풀밭 위로 데굴데굴 굴렀다.

“컥!”

“앞으로 여기서 폭력은 금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말하는 동안, 아니, 제 눈 안에서 폭력을 행사하지 마시지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무전기를 잡았다.

“다들 녹음준비하세요.”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무전기 너머의 존재에게 말을 걸었다.

“게임마스터. 1라운드 투표 시간을 연기해 줄 수 있습니까?”

[무리입니다. 6분 남았습니다.]

모두들 녹음한 음성을 다시 재생시켜보니 과연…….

그르렁거리는 짐승의 소리가 들렸다.

지옥의 괴물이 울부짖는 것 같은 끔찍한 소리였다.

방금 전엔 분명 산장 주인의 목소리처럼 들렸는데 녹음했다가 재생해 보니 이런 소리라니?!

“히익!?”

“뭐, 뭐야! 이거!?”

“꺄아악!”

여대생들은 머리를 감싸 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 어떻게든 도망치면…….”

“저 격류를 넘겠다고요? 안돼요. 불발탄들이 터지고 있는 강을 건너겠다니.”

류하리가 그녀들을 말렸다.

“으으.”

시현이 그런 류하리에게 눈짓을 주었다.

“아, 네. 어쩔 수 없군요.”

류하리는 경찰 신분증을 꺼냈다.

“서울 마포경찰서 정보과 류하리 경위입니다. 일단 여러분들 제 통제에 따라주세요.”

“응?”

“어?”

류하리를 그저 탐정 조수라고 생각했던 유정미와 배준수가 놀랐다.

“탐정 조수 아니었어요?”

“그게 사정이 좀 있어서.”

“서로 알고 있는 잠입수사입니다.”

시현이 간략하게 한마디로 설명해 주었다.

“아…….”

“뭔가 사정이 있나 보구만.”

“네. 하하하.”

시현이 경찰에게 밉보여서 경찰이 직접 잠입수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철저히 감춰져야 할 경찰의 치부다.

특히나 언론, 방송계 사람들에게는 더더욱 알려져선 안 될 약점인데 눈앞의 이 인간들이 바로 방송계 사람들이 아닌가.

‘젠장. 큰일 나겠는걸.’

류하리는 상황이 좋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래도 대학생들은 류하리가 경찰이라는 걸 밝히자 다들 안정을 찾았다.

“으아. 경찰 누님.”

“이게 뭐예요? 뭐?”

“저, 저놈이 범인이에요! 저놈 얼른 잡아요!”

대학생들은 다들 모태솔로 대학생을 지목했다.

“자자. 다들 진정하시고. 여러분들 이런 상황에서 괜히 막나가지 마세요. 여러분들이 지금 이 상황에서 법을 어기면 제가 다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자!”

류하리는 시현에게 턱으로 지시했다.

시현은 겁에 질린 모태솔로 대학생에게 다가갔다.

겁에 질려서 주저앉아 있는 대학생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시현도 자리에서 쪼그려 앉았다.

“그래서 무슨 계약을 누구와 했습니까?”

“아니, 그, 저 그냥 여기 오기 전에 밤새 게임을 하던 중이었어요. 누군지 모르겠는데 같이 게임하던 팀 채팅에 이것저것 불만을 털어놓았는데 상대가 그러더라고요. 자기가 아주 재미있고 스릴링하게 불만의 대상들을 제거할 기회를 주겠다고.”

“…….”

불만의 대상들이라면 물론 이 대학생의 동기들, 저 두 남자 대학생일 것이다.

“대가로 뭘 지불하셨습니까?”

“그, 글쎄요? 비몽사몽한 상태라서 잘 몰랐어요.”

“흠. 그렇군요. 그럼 만약 제가 이 사태를 해결한다면 수명 5년 정도를 제공하실 수 있겠습니까?”

“네? 뭘 제공하라고요? 장기?”

“아니, 수명 말이죠. 당신의 남은 삶 5년 치.”

“……네?”

[5분 남았습니다.]

“…….”

“농담 아닙니다.”

“아, 그, 그럼 하지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당신은 시현탐정사무소의 고객이 되신 겁니다.”

시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그리고 시현탐정사무소는 언제나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요.”

* * *

비몽사몽, 밤에 잠도 안 자고 졸다시피 하며 게임하던 중, 이상한 존재와 계약을 해버렸다는 대학생의 이름은 김춘석이다.

그런데……

‘큰일이네. 이 친구가 계약자라는게 알려졌다면…….’

이런 류의 게임은 투표가 큰 힘을 가진다.

그리고 투표는 인기를 반영하기도 하는데 김춘석이 이 사건의 원흉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사람들은 투표에서 너무나 쉽게 김춘석을 배제할 것이다.

문제는 이 배제가 어떤 방식으로 행해지느냐다.

‘이건 이제 단순한 게임이 아니야. 이기고 지는 데 목숨이 걸려있음에 틀림없어. 아니, 목숨이면 다행이지. 목숨 이상의 것이 걸려있을 수도 있잖아?’

류하리는 시현을 따로 불러들였다.

빗줄기가 거세서 조금만 떨어져도 사람들 말소리가 들리지 않는 건 좋았다.

“그래서 시현 당신은 뭔가요?”

“헌터입니다.”

“네? 진짜요? 제가 신부예요.”

“잘됐군요.”

헌터와 신부, 모두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손에 들어왔다.

이건 매우 큰 이득이었다.

“카드를 보여드릴까요?”

“그러지 마세요. 이런 게임은 블러핑이나 허세도 매우 중요하니 아마 역할 카드를 보여줄 수 없게 장치가 되어 있을 겁니다. 강력한 페널티를 부여하든가 어쩌면 룰 위반으로 배제시킬 수도 있지요.”

“아, 그, 그렇군요. 뭐 당신이 헌터라는 건 믿어 의심할 여지가 없겠지요?”

“네.”

잠입수사 하는 형사와 조사대상인 탐정 간에 이런 말 하긴 이상하지만 시현과 류하리 간에는 확실히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한 신뢰가 있었다.

역할 카드를 블러핑 할 리가 없다.

“네. 그래서 말인데 처음 턴엔 누구를 방어할까요?”

“당연히 류 경위님 자신입니다.”

“네?”

“경찰 신분인 걸 밝혔잖아요. 만약 진마 카드를 뽑은 사람이 이 혼란을 더 부추기고 싶어 한다면 류 경위님을 노릴 겁니다. 류 경위님의 신분은 공신력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당신도 노릴 수 있잖아요? 당신도…….”

“제가 좀 많이 나댔지요?”

“…….”

류하리는 경찰임을 밝혔고 시현은 이래저래 게임을 주도하며 전면에 나섰다.

지켜야 할 사람은 둘, 지킬 수단은 하나.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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