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화
화천추리산장 #5
“당신부터 지켜야겠어요. 헌터인 당신을 잃는 게 우리들 입장에서는 최악 아닌가요?”
“아니요. 이 게임에서는 헌터보다는 신부가 더 중요합니다. 보호하는 쪽이 사라지면 걷잡을 수 없이 뱀파이어 쪽에게 유리하게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 대학생은 보호하지 않아도 되나요?”
“그건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네?”
“뱀파이어 측 입장에서 저 대학생은 꽤나 손쉬운 상대입니다. 언제든지 투표로 제거당할 수 있는 인물인데 굳이 그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여서 뱀파이어로 만들어봤자 다음 턴에서 배제 당하면 한 턴 헛헛되이 낭비하는 게 되지요. 아마도 첫 번째 공격에선 저 아니면 류 경위님을 공격할 겁니다. 그러니 일단 첫 턴엔 류 경위님을 지키세요. 단…….”
“단?”
“제가 블러핑을 좀 치고 난 다음에 말이지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다시 모두들에게 돌아갔다.
* * *
모두들 불안해하고 있었다.
이미 이런 초자연적인 일을 여러 차례 겪어본 류하리도 불안해하고 있으니 처음 겪어보는 이들은 당연히 너무나 끔찍한 공포에 혼비백산하였으리라.
이런 때 필요한 것은 당당하고 흔들림 없는 사람, 다른 이들이 미혹에 휩싸일 때 확고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바로 시현이었다.
시현은 당당한 태도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걸음걸이에서부터 차있는 확신, 그 담대한 태도는 움직이는 것만으로 주위사람들의 이목을 확 끌었다.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을 느낀 시현이 잠시 뜸을 들이다 말문을 열었다.
“여러분. 이 게임은 목숨을 건 게임입니다. 아니, 목숨 그 이상을 건 게임이지요.”
“네?”
“뱀파이어 측이나 인간 측 어느 한 쪽이 승리하면 다른 한 쪽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
“혹독한 대가라면?”
“뭐 가장 가벼우면 죽는 거고, 무거우면 죽는 것 이상의 고통이 되겠지요.”
“?!”
“에?”
다들 당황했다.
죽는 게 가장 가벼운 거라니?
보통은 죽는 게 가장 무거운 페널티 아닌가?
그러나 시현은 진지한 태도, 한 치의 의심 없이 확고부동한 어조로 말하고 있었다.
마치 죽음보다 더한 고통 따위는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듯이.
“두려울 걸로 압니다. 그래도 안심하시길. 제게는 이 게임을 근본적으로 해방시킬 방법이 있으니 여러분들은 절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다만 현재 우리는 적의 손아귀 안에 있으니 게임 자체는 진행해야겠지요.”
“……어?”
“일단 신부 카드를 뽑으신 분은 저를 지켜주시고 진마 카드를 뽑으신 분은 공격하지 않는다는 선택을 해 보세요. 그걸로 게임의 진행을 늦출 수 있을 겁니다.”
시현이 그렇게 말한 순간 갑자기 무전기에서 산장주인 정성봉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매 라운드 반드시 공격을 해야 합니다.]
일행들은 모두들 충격을 받았다.
무전기를 켜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야기를 했는데 저 무전기 너머의 존재는 이쪽의 이야기를 듣고 원할 때 개입해서 자신이 할 말을 한다.
“아, 그렇습니까?”
정작 시현은 태연했다.
게임 마스터의 갑작스러운 개입에도 그는 태연하게 빈정거렸다.
“초반에 설명할 때 안 하고 나중에 설명하다니 마스터링이 좀 허접하군요.”
[…….]
게임 마스터도 할 말이 없는지 잠자코 시현의 비난을 듣고 있었다.
“말 나온 김에 더 물어보지요. 시민은 양면카드가 있는데 신부와 헌터는 양면카드가 아니더군요. 진마에게 공격받으면 어떻게 됩니까?”
[죽습니다.]
“죽어서 게임에서 배제됩니까?”
[예.]
“되살릴 방법도 없고?”
[네.]
“인간 측에게 압도적으로 불리한 룰이군요, 그건. 알겠습니다.”
류하리와 시현, 모두 인간 쪽에 배치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게임마스터가 노골적으로 뱀파이어 쪽을 편애한다는 느낌이 좀 들었다.
아마도 여기서 뱀파이어 쪽이 이기면 인간 쪽인 시현과 류하리에게 뭔가 불이익이 가지 않을까?
그 외에도 게임이 난해하고 진행방식이 요상하다 보니 물어야 할 게 많았다.
“투표나 명령은 어떻게 전달합니까?”
[파고라에 종 밑에 상자가 하나 있을 겁니다. 여기에 글씨로 적어서 넣어주세요.]
“시민들이나 뱀파이어들은 특수 액션이 없는데 어떻게 합니까?”
[그들도 뭔가 적어서 종이에 내주시면 됩니다.]
“누가 썼는지 알아볼 방법이 있으신가요?”
[그건 걱정하지 마시길. 여러분들의 선택을 곡해하진 않을 겁니다.]
“곡해하진 않는다? 곡해 말고 다른 농간은 부릴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리는데요? 만약 다른 일 하다가 투표 시간에 늦어서 참석하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투표권을 상실하고 그 턴을 넘어갑니다.]
“흐음? 만약 지금 전부 다 합심해서 명령에 액션을 아무도 취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제가 임의로 진마의 액션을 대신하겠습니다.]
“헌터나 신부의 액션을 대신하는 게 아니라?”
[진마의 액션이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흐름을 만들기 때문이지요.]
“만약 락다운에, 그러니까 방탈출 게임에서 진마가 갇혀버리면요? 그때도 당신이 진마를 대신해서 액션을 결정합니까?”
[그때는 진마의 액션이 없습니다.]
“그건 다행이군요.”
즉, 진마가 자신을 시민으로 위장하기 위해 일부러 락다운에 스스로 갇히는 짓을 하기 애매해진다.
아예 못 할 것은 아니지만 애매해진다고 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흠. 만약 여기서 진마가 사람들을 해치는 이런 게임이 하기 싫다고 스스로 게임을 포기하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 어떻게 됩니까?”
[그 경우 진마를 플레이한 플레이어의 몰수패가 됩니다. 물론 죽는 것보다 더한 끔찍한 고통을 겪게 되겠지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역할 카드를 남에게 공개한 사람들은 몰수패를 각오하시길.]
즉, 카드를 보여줘선 안 된다.
남에게 자신이 무엇인지 말로 말할 수밖에 없으며 그게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아무런 증거 없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해야 한다.
“그러니까 진마 카드를 뽑은 사람은 자신을 위해서는 무조건 뱀파이어 측이 승리하는 게 이득이다? 그럼 시민이다가 뱀파이어가 된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진마측이 승리할 경우…….”
[목숨을 건져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자 대학생들이 기겁했다.
“모, 목숨을 건져서 돌아갈 수 있다고?”
“그렇게 말하면 패한 측은 목숨을 건져서 돌아갈 수 없다는 소리잖아?”
“으아, 뭐야!”
대학생들의 아우성을 뒤로하고 시현이 물어보았다.
“헌터 측에 붙어서 시민으로 승리했을 경우는?”
[그때도 역시 목숨을 건져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게임 외적으로는 시민이 이득이군요. 크게 생각할 것 없이 흐름에 따라가면 되니?”
[……1분 남았습니다. 이제 슬슬 결정하시지요.]
시현의 질문 때문인지 시간이 잘 갔다.
시현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만약 진마, 뱀파이어 로드 카드를 가지신 분이 이 게임을 원활하게 수습하고 싶다면 절 공격하십시오. 그럼 방어에 걸릴 거고 우린 협력해서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다른 사람을 공격하시고…… 그리 되면 우리가 본격적으로 이 게임을 정말 플레이해야 한다는 뜻이 되겠지요.”
시현은 자신을 공격하라고 도발하고 종이를 꺼내서 액션을 작성해서 상자에 넣었다.
시현이 상자를 모두에게 돌리자 류하리와 다른 이들도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상자에 종이를 넣었다.
“이렇게 게임 1라운드가 시작이군요.”
시현이 혹시나 해서 상자를 다시 들어서 흔들어보았다.
안의 종이는 사라져 있었다.
“힉?”
“사라졌잖아?”
“오, 맙소사.”
대학생들은 이 게임이 절대로 장난이 아니라는 걸 다시금 확신하고 신음했다.
“누가 어떤 명령을 썼는지 글씨를 대조할 필요는 없어 보이는군요. 그럼 이제 게임 결과를 볼까요?”
과연 게임마스터가 연락을 해왔다.
모두의 무전기에서 동시에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밤이 지나갔습니다. 진마는 류하리 씨를 공격했습니다만…… 신부가 류하리 씨를 방어했습니다.]
“어?”
“뭐야? 진마 누구야? 왜 따로…….”
모두들 기겁했다.
시현은 분명히 진마 카드를 뽑은 사람에게 원활하게 플레이하려면 자신을 공격해달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게 빗나간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상대는 류하리를 공격했고 그게 정확히 막혔다는 것이다.
“개새끼! 누구야!? 너냐?! 너지!?”
대학생들은 김춘석을 윽박지르려 했다.
하지만 시현이 그들 사이를 가로 막았다.
“흠. 알겠습니다. 뭐 이해는 갑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구할 방도가 있다고 해도 믿어지지 않겠지요. 그보다는 우선 불안감을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그 자력구제의 정신, 싫어하지 않습니다.”
시현은 진마 카드를 뽑은 사람을 이해하겠다고 하면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런 게임은 초반 흐름이 상당히 중요하지요. 당신에겐 운 나쁘게도 흐름은 저희 쪽으로 흘러왔습니다.”
[그럼 두 번째 밤까지 2시간 남았습니다. 그동안 여러분들, 즐거운 휴가 되시길!]
폭우가 쏟아지고 있는 산장에서 진짜 목숨, 혹은 영혼까지 걸린 데스 게임의 1 라운드가 이렇게 피 보는 일 없이 끝났다.
* * *
“휴우. 일단은 한발 앞서나갔군요. 이제 어쩌죠?”
“어쩌긴요. 숙소 한곳에 사람을 몰아넣읍시다.”
“네?”
“딴짓 하지 못하게 감시해야지요. 다행히 류 경위님은 경찰이잖습니까?”
“아.”
류하리는 추워서 숙소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향해 다가섰다.
“다들 멈춰보세요!”
“네?!”
“모두 숙소가 여럿으로 나뉘어 있는데 일단 한곳에 모이죠!”
“네?”
“아니, 하지만 작고 좁은데.”
“여러분들이 따로 움직이면 그게 더 위험하니까요!”
“그, 그런.”
“일단 ‘셜록’ 숙소에 모두 모이도록 하지요!”
“잠깐만요. 저희 가방이랑 짐은…….”
“그건 제가 나중에 들어다 드리겠습니다. 일단은 ‘셜록’에 모이시지요.”
시현은 가방이랑 짐이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그들을 강제로 ‘셜록’으로 몰아넣었다.
방탈출 게임을 위해서인지 숙소 안에는 가구도 많고 책장도 있고 벽에는 사슴 머리도 걸려있고 여러 가지 장식으로 복잡하게 꾸며져 있었다.
그래서 크기가 좀 좁다.
“현재 인원을 살펴봅시다.”
현재 인원 구성은 다음과 같다.
시현: 헌터.
류하리: 신부.
유정미: 미정. 방송작가.
배준수: 미정, 촬영감독.
김춘석: 미정, 계약자.
박동호: 미정, 대학생1
김용한: 미정, 대학생2
최설: 미정, 여대생1
김하은: 미정, 여대생2
이중 진마가 하나, 뱀파이어 하나가 숨어 있다.
2라운드부터는 투표로 인한 처형이 시작되는데 만약 1라운드에서 공격을 막지 못했다면 뱀파이어가 하나 늘어나서 이후 투표가 어려워졌으리라.
이 게임에서 뱀파이어와 진마는 같은 패거리이기 때문에 이들이 과반수를 넘겨버리면 인간측이 역전하기란 하염없이 불가능에 가까워진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