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99화 (99/269)

제99화

화천추리산장 #6

설령 과반수를 넘기지 않더라도 도중에 시현이나 류하리가 당했다면 힘의 형세는 뱀파이어에게 많이 기울게 되고, 그게 아니더라도 진마가 습격한 사람은 뱀파이어가 되어 뱀파이어에게 포섭되므로 인간 측에게 한없이 불리한 룰이다.

술자리 여흥의 게임이라면 사건을 주도하는 뱀파이어들에게 좀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어도 웃어넘기겠지만 정말 목숨이, 혹은 목숨보다 더 중한 것이 걸려있다면 이것은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생사여탈의 싸움이다.

“그럼 이제 어쩌죠?”

일단 사람들을 셜록 산장으로 안내한 류하리는 시현을 불러내서 조용히 귓속말로 물어보았다.

“게임 라운드를 진행시키면 안 됩니다. 투표로 사람을 배제하는 게… 아마 산장 주인처럼 되는 걸 거예요.”

“아 맙소사.”

“게다가 진마 카드를 쥔 사람은 설사 다른 사람 모두를 희생시키더라도 자신이 일단 게임에서 이겨서 안전을 확보하고 싶어 하는 성향인 것 같습니다. 류 경위님과 제가 좀 튀었으니 저나 류 경위님 둘 중 하나에 공격이 들어오던가 아니면 일반 시민들을 차례차례 뱀파이어로 바꿔서 숫자를 늘려가지고 게임을 자기 쪽으로 끌어나가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 성격, 마치 누구를 염두에 둔 것 같군요.”

류하리는 유정미를 떠올리며 쓴 웃음을 지었다.

“아마도요. 하지만 아닐 수도 있지요. 어찌되었건 이 게임은 오래 진행하면 할수록 주최자의 농간에 빠져들게 되어 있습니다. 플레이 하는 것만으로도 주최자에게 유리하고 길게 가면 뱀파이어가 이기는 그런 게임이죠.”

“그럼 이거 굉장히 불공평하잖아요?”

그렇지 않아도 뱀파이어 측에게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는 게임인데 류하리나 시현은 게임에서 배제되는 것도 막아야 한다.

그냥 이기는 것도 어려운 데 반드시 자신을 지키면서 승리해야 하다니?

“괜찮습니다. 제게 다 생각이 있으니까.”

시현은 무표정하게 호언장담했다.

“당신은 참 믿음직스럽지만 또한 의심스럽단 말이죠.”

류하리는 시현이 태연하게 블러핑을 저지르는 걸 보아왔기 때문에… 지금 시현이 진심으로 자신있어하는 건지 아니면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블러핑을 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었다.

“뭐 게임 자체를 파괴할 방법이 있습니다만 그 전에 최대한 계약을 우려내야겠지요. 5년 한 명 받는 걸론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요.”

“….”

대체 얼마나 수명을 뽑아내려고 그러는 걸까?

류하리는 새삼 시현의 집념이 집요해지는 걸 보며 경악했다.

* * *

시현과 류하리가 셜록 산장에 짐을 옮겨주었다.

사람들은 시현과 류하리를 보며 불평을 토로했다.

“일단 한데 모이라고 해서 모였는데….”

“여긴 너무 좁아요!”

“화장실도 하나 밖에 없고!”

다들 별채 하나에 다 모여 있는 게 불편한 듯 했다.

당연하다.

시현과 류하리를 빼고도 일곱 명, 하지만 이 별채는 두 명에서 네 명까지의 인원이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지자. 불편하다고 해서 여러분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할 수는 없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류하리가 그들의 불만을 억눌렀다.

류하리가 경찰이라서 그런지 다들 일단 류하리의 말은 잘 들었다.

“그런데 탐정 조수인줄 알았는데 경찰아가씨인줄은 몰랐군. 아니 의심한다기보다는… 혹시 경찰수첩 좀 자세히 보여줄 수 있나? 아까 전에 대충 봐서.”

촬영감독 배준수가 류하리에게 신분증을 자세히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아마도 류하리가 진짜 경찰인지 아닌지 의심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불안한데 시현과 류하리가 적극적으로 상황을 풀어나가는 건 좋다.

다들 미증유의 상황에서 누군가가 방향성을 제시하고 끌고 나가는 건 좋으니까.

하지만 둘의 팀이 너무 공고하고 또 시현이 수명을 요구하는 것이 이상하다.

“수명을 요구하는 당신은 대체 뭔지… 그것도 의심스럽네. 아무래도 이 판에서 이득을 보는 건 당신 같잖아요?”

여대생 한 명은 또 대놓고 시현을 지목하고 의심했다.

짧은 머리에 신경질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이었다.

여대생 최설, 대학생, 박동호의 여자 친구였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자 안경 쓴 여학생 김하은이 용기를 내서 말했다.

“그래요. 게다가 용한이가 말했어요. 당신이 게임에서 그거라던데요. 그거.”

“그거?”

“뱀파이어요!”

“네?”

류하리가 그 말을 듣고 코웃음 쳤다.

시현이 뱀파이어라고?

시현도 쓴 웃음을 지었다.

“용한… 이라면 김용한 씨로군요?”

시현은 대학생을 바라보았다.

“네! 제가 헌터입니다. 전 당신을 게임에서 지목했고 무전기가 당신을 뱀파이어라고 알려줬어요!”

“다들 들었나요? 무전기에서 목소리를?”

시현이 모두를 돌아보며 물어보았다.

그러자 다들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우리는 듣지는 못했어요.”

“엑?! 못 들었다고? 난 분명히 또렷하게 들었는데?”

김용한은 그 말을 듣고 겁에 질렸다.

‘이 게임의 룰상…. 헌터의 특수능력을 사용했을 때 상대가 인간인지 뱀파이어인지 알려주는 걸 모두의 앞에서 게임마스터가 말할 수는 없지. 그 정보를 알아낸 사람이 타인을 설득해서 동조를 얻는 것 까지가 게임의 일부니까. 하지만 여기 사람들이 이렇게 모여 있는데도 한 개인에게만 들리게 말을 걸 수 있다고?’

류하리는 그런 의문을 품었지만… 게임 마스터가 보여준 능력을 생각해보면 그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저 대학생이 헌터라고?

‘그러고 보니 시현이 헌터라면 그는 누구를 조사했지?’

류하리가 그런 의문을 품었을 때였다.

* * *

“그런데 제가 뱀파이어라고요?”

시현은 어께를 으쓱해보였다.

“뭐 이건 마피아 게임의 변형이니까. 이런 게임을 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자기가 뭔지 허풍떨고 조작하는 건 흔히 있는 일입니다. 그렇죠?”

“아니 잠깐만! 내가 거짓말 한다는 거야? 지금!?”

대학생 김용한이 주먹을 불끈 쥐고 일어났다.

마피아 게임을 변형해서 만든 이런 게임에서 거짓말과 허세는 게임 내적으로 용인되어있다.

아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게임 자체가 성립하질 않는다.

이런 게임에서 ‘너 거짓말하고 있지?’ 라고 떠보는 것에 발끈해서 폭력행위까지 번지는 건 옳지 못한 반응이다.

그렇지만 목숨이 걸려있을지도 모르는 심각한 상황이다 보니 이 대학생은 매우 흥분해서 지금이라도 달려들 기세다.

그때 시현이 착 하고 손에서 카드를 한 장 꺼냈다.

“어?”

모두의 이목이 시현의 손에 집중되었다.

시현의 손에 들린 카드는 직업카드나 그런 게 아니라 시현이 평소에 들고 다니는 트럼프 카드였다.

“자자 진정하시고. 재밌는 걸 보여드리죠.”

시현은 마치 능숙한 마술사가 무대의 시선을 전부 자신에게 끌어오듯, 간단히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주의를 환기시킨 뒤 과장된 손짓으로 대학생들의 가방을 하나 집어 들었다.

대학생들이 가져온 가방에는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장식품용 카라비너가 하나 있었다.

시현은 그걸 떼어서 마술사가 마술도구를 관객들에게 보여주듯 모두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여기서 폭력사태를 일으키는 것은 매우 안 좋은 선택이 될 겁니다. 우선 류하리 경위님이 보고 있는데다가….”

“헹. 여경 따위를 누가 무서워한다고….”

“…….”

류하리가 째려보는데도 스스로 헌터라고 주장한 대학생, 김용한은 으스대며 권투 자세를 취했다.

하지만 그때 시현이 카라비너를 손에 넣고 주먹을 움켜쥐고 힘을 주었다.

그리고 손을 펼치자 시현의 손안에서 카라비너가 꾸깃꾸깃 구겨져 있는 게 아닌가?

“…….”

전문 산악용 카라비너라기보다는 가벼운 알루미늄 합금 카라비너였으니 그 내구력은 부실하다.

그렇긴 해도 사람이 손안에 넣고 주먹을 꽉 쥔다고 구겨질 물건은 절대 아니다.

“어?”

“…….”

시현이 그 카라비너를 모두에게 보여준 뒤 살짝 토스했다.

그리고….

-쉭!

바람 가르는 소리와 함께 트럼프 카드가 날아가 펜션 벽에 박혔다.

-또그르르르….

구겨진 카라비너가 깔끔하게 쇠톱으로 자른 것처럼 잘려서 바닥을 굴렀다.

시현이 던진 트럼프 카드는 펜션 벽에 박혀서 꼬리를 파르르 떨고 있었다.

“억?”

“뭐, 뭐야? 이거?”

“보시다시피 간단한 여흥입니다. 재밌지요?”

시현의 손에 어느새 또 다른 트럼프 카드가 나타났다.

시현이 두 장의 트럼프 카드를 서로 충돌시키자 칼날끼리 부딪히는 쇳소리가 난다.

“………”

“이 사람이랑 싸우는 건 안하는 게 좋을 거예요. 강남경찰서장을 옷 벗게 만든 미치광이 탐정이니까.”

류하리가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아하. 그래서?”

방송작가 유정미는 그 말을 듣고 왜 류하리가 시현의 조수인지 눈치 챘다.

‘음. 안 좋은데. 경찰의 치부를 내 입으로 밝혔군.’

시현이 얼마나 위험한 놈인지 설명하기 위해서는 좀 더 다른 예를 들었어야 하지 않았나?

류하리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달리 설명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류하리는 시현이 건달이나 양아치들, 덩치 큰 이들을 어린애처럼 갖고 노는 걸 많이 봐왔다.

하지만 어디서 누굴 때려눕혔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뭐 워낙 흔한 타입의 무용담이라 약발이 듣지 않는다.

17대1로 싸웠네 어쩠네 하고 되도 않는 허세를 떠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반면 권력자나 경찰도 아랑곳하지 않고 들이받는다는 건 성질이 다른 무용담이 된다.

그렇게 말하면 눈앞에서 보인 카라비너를 휘어버리는 괴력과 스테인리스 스틸 트럼프 카드를 가지고 다니는 위험성, 거기에 권력자도 두려워하지 않는 통제 불가능한 이미지가 합쳐져서 시현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확실히 사람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는 것이다.

“으음….”

대학생 김용한은 시현에게 대들려다가 침을 꿀꺽 삼키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대신 다른 대학생이 일어났다.

대학생 박동호, 그는 자신들이 짐꾼으로 부려먹던 계약자, 김춘석을 가리켰다.

“어쨌거나 다음 투표에서 어떻게 되는지 보기 위해서도 이 자식 처형하자고요! 2 라운드에서는 누군가 처형해야 하잖아?”

“쓸데없는 짓입니다. 그는 시민입니다.”

“아니 어째서?! 어째서 그렇게 단언하지요?”

“왜냐면 제가 헌터니까요.”

“……”

“아니! 내가 헌터라니까!”

대학생, 김용한이 빽 소리를 질렀다.

“으아! 카드 보여줄까! 으….”

“그런 짓 하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아니 뭐 그런 짓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고 싶다면 해도 말리지 않겠지만.”

“…….”

누가 봐도 초자연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임에서 자신의 캐릭터 카드를 까 보이는 짓은 할 수 없었다.

그런 짓을 했다가 찾아올 공포가 컸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학생 김용한의 표정이 이상했다.

“어….”

“그게.”

김용한은 벌써 카드를 꺼내서 일행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그러자….

* * *

“어?”

모두들 눈을 의심했다.

그들의 눈앞에서 대학생 김용한의 모습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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