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00화 (100/269)

제100화

화천추리산장 #7

“꺄아악!”

“미, 미쳤어! 제, 제발! 꿈이라면 좀 깨라!”

여대생들이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치다 넘어졌다.

모두가 보고 있는데 그 앞에서 사라져 버리다니?

이게 만약 트릭으로 속여 넘기는 마술쇼라면 섬광이나 폭죽, 연기 같은 것으로 눈속임을 했겠지만 지금 이건 어떤 트릭도 눈속임도 없다.

모두 주목하고 있는데 보란 듯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아, 이런. 하지 말라니까 해버리는 군요. 정말.”

다들 겁을 집어먹고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데 정작 시현은 태연자약했다.

“다, 당신이야?”

대학생, 박동호의 목소리가 떨렸다.

“당신이지!? 당신이 저지른 짓이니까 그렇게 태연한 거잖아? 제, 제발. 원하는 게 뭐야? 응?”

시현이 워낙 태연해보이니 다들 그가 범인이라고 생각하는지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큭. 크크크큭.”

보고 있던 또 다른 대학생 김춘석이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 꼴좋다. 아주 좋아!”

“……”

아직 남아있는 이들이 김춘석을 노려보았다.

설령 그가 사라진 대학생과 원한이 있다 하더라도 이 상황을 기뻐하고 남아있는 이들을 조롱하는 것이 곱게 보일 리 없다.

“고객님.”

“고객은 무슨…. 됐어. 다 때려치워!”

“네?”

“이봐 탐정! 계약은 해지다! 너랑 계약 안 해!”

“해지 말입니까?”

“그래. 내 수명을 내놓으라고? 웃기지 마! 내가 왜 이딴 쓰레기들 구하자고 수명을 내놔야 하는데?! 난 이 녀석들이 죽으면 오히려 좋다고! 당신은 이런 쓰레기 새끼들을 구할 거야?”

“제가 구하려는 건 이들이 아니라 고객님입니다. 이들을 해치면 같은 방식으로 고객님 또한….”

“고객 좋아하네! 웃기지 마! 이 새끼들이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알아?!”

“………”

류하리가 대신 물어보았다.

“그러고 보니 궁금했어요. 동년배 같아 보이는데 왜 당신은 이들에게 끌려 다니는 거죠?”

그러자 김춘석이 눈을 빛냈다.

말하고 싶어서 미치겠는데 마침 물어봐 준 것이다.

그것도 류하리처럼 미인이.

만재된 댐의 수문이 열린 것처럼 김춘석에게서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 * *

“큭… 저희 어머니가 이놈들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해서 그래요!”

시현에겐 반감이 있어서 반말을 하던 김춘석이지만 류하리에게는 공손하다.

“가사도우미라고요?”

“네! 본래 저희 아버지는 이놈들 아버지랑 동향사람으로, 어린 시절에 같이 상경해서 같은 직장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나서 우리 어머니는 이놈들 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면서 홀몸으로 날 키워주셨다고요! 그래서 전 학창시절부터 이 녀석들이 뭐해라 하면 머슴처럼 죽어지냈습니다! 행여나 이놈들이 우리 어머니에게 해코지 할까봐 가슴 졸이면서!”

“………”

“이 녀석들은 우리 어머니가 자신들의 집에서 가사도우미를 한다고 해서 나를 업신여겼다고요! 그런데 우리 아버지가 왜 죽었는지 알아요?! 이 새끼들 아버지가 우리 아버지의 직장상사였는데 자기들 술 마셨다고 아버지를 운전기사처럼 부려먹다가 사고 난 거라고요! 근무시간외에 사적으로 부려먹어서!”

“아니 그건 우리 잘못은 아니지.”

대학생, 박동호가 변명했다.

“닥쳐! 너희들이 지금까지 날 얼마나 무시하고 얕잡아봤는데… 네놈들이 뭔 일 있을 때마다 어머니를 자르겠다. 어머니에게 뭐 말하겠다. 그렇게 어머니를 가지고 협박했잖아!”

“그런 거야 당연히 농담이지!”

“뭐?! 농담?!”

“그래! 코찔찔이 애가 뭘 할 수 있다고!”

박동호는 자신들의 행위가 단순한 장난이라고 주장했다.

“괴롭히는 놈들이 늘 하는 소리 아냐? 장난이라는 건? 하여튼 남들 괴롭히는 족속이란.”

듣고 있던 유정미가 투덜거렸다.

류하리는 그런 유정미를 보고 내심 혀를 찼다.

‘당신도 남들 꽤 괴롭히겠더구먼. 사돈 남말하고 있네.’

어쨌건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냈던 남자 대학생들은 이제 가식을 벗어던지고 가슴 속에 있던 진솔한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런 식이면 나도 코찔찔이 애였어! 엄마 혼자서 나 때문에 일하는 데 그 전까지 친구였던 놈들이 노비 대하듯 하는 데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아? 그런데 네놈들은 오히려 그걸 이용해서 계속 날 부려먹었잖아!”

“아니 어이가 없네. 이 새끼야. 우리가 같이 놀아주면서 장난친 걸 가지고 그게 뭐 엄청난 원한이라고 정말 우릴 죽이려고 여기로 불러들였어!? 이 새끼 너 지금 이거 살인이야! 알아?! 이 살인자 새끼야!”

“그래! 내가 살인자 하지 뭐! 평생 너희들 노비 따까리로 사는 거 지긋지긋하니 잘됐다! 이 자식아!”

“잘돼? 지금 이 상황이 웃음이 나와? 이 새끼야. 우리가 뭐 집안에 일이 얼마나 많아서 너희 엄마 고용 한 줄 알아? 다 그 나름대로 응? 너희 집안 걱정해서 우리 아버지가 고용해준 거라고!”

“바로 그런 생각 자체가 너희들이 날 우습게 본다는 거야! 그렇게 베풀어 준다고 생각하니까 날 만만하게 보고 아랫것으로 보고 막대하잖아!”

“시발 베풀어준 게 사실이지!”

“하, 하하하하. 아주 본색 나오네? 이 새끼.”

“본색 나온 건 네놈이지! 이 자식아. 띨빡해도 그래도 사람은 착한 줄 알았는데 우릴 죽이려고 들어? 그러고도 웃음이 나와?”

“왜 안 웃기냐? 웃기지. 얼마든지 웃어주마!”

“개새끼! 넌 내손으로 죽여주마!”

두 대학생이 서로 싸우려 하자 시현이 가볍게 그들을 가로막았다.

“자자, 여기까지 하고….”

“뭘 여기까지… 아아아악!”

“끄아악!”

시현이 가볍게 둘의 팔을 붙잡았을 뿐인데 둘 다 꼼짝도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현이 손을 놔주자 그들은 잡혔던 곳을 비비며 기겁했다.

“사, 살점 떨어지는 줄 알았네.”

“그야….”

그들은 바닥에 떨어진 구부려진 채 두 동강난 카라비너를 보았다.

저걸 가볍게 구부러뜨리는 손에 잡혔으니 시현이 작정했으면 살가죽을 찢어버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이들을 죽이고 싶으니까 저와 계약하지 않겠다. 그런 뜻입니까?”

“그, 그래! 잘됐지! 날 죽여도 너희들은 여기서 못나가! 꼴좋다!”

“흐음.”

시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알겠습니다. 그게 당신의 의향이라면…. 뭐 구두계약이었고 딱히 크게 진행된 게 없으니 계약은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네?”

이번엔 류하리가 놀랐다.

“왜요?”

“아니 당신이 그렇게 쉽게 계약을 포기하는 건 의외라 서요. 보통 악착같이 수명을 뽑아 먹지 않나요?”

“하하하. 그럴 리가요. 저는 제 서비스를 강매하지 않습니다. 시현 탐정사무소의 서비스는 그 가치를 충분하게 알아주는 분들만을 고객으로 모시지요.”

“……….”

그 말을 들은 모두가 시현과 류하리를 바라보았다.

“그 수명 말인데.”

촬영감독 배준수가 물어보았다.

“정말 수명을 빼앗을 수가 있는 건가?”

“빼앗는다고 하면 어감이 별로 좋지 않군요. 상호간의 합의에 의한 양도라고 해두지요.”

“…그, 그런가.”

“네. 어디까지나 저희 탐정사무소의 서비스에 대한 대가로 받는 것이니까요.”

“……….”

“그, 사라진 용한이는….”

“어떻게 된 거에요?”

여대생들이 시현에게 질문을 던졌다.

“뭐 펜션 주인분과 비슷한 상황이 되지 않았겠습니까? 게임의 룰을 직접적으로 파괴하려 했으니 더 큰 페널티를 받았을지도 모르겠군요.”

“……….”

“그래서 말인데 그를 구조하고 여러분들의 안전을 이제부터 보장하기 위해서 안전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저와 계약해서 수명을 1년씩 제공하시는 건 어떨까요?”

시현이 이 상황에서 모두에게 계약을 제안했다.

“,,,,,,,,,”

“으음. 그, 그게.”

“당신이 정말 여기서 우릴 안전하게 할 수 있다고?”

다들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지금 같으면 오히려 당신이 범인 같아 보이는데요?”

방송작가 유정미는 시현에게 그렇게 말했다.

실제로 지금 사람들은 다들 혼비백산, 놀라고 겁에 질려 제정신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시현 혼자 태연자약하고 류하리가 그다음으로 침착하니 다들 둘의 냉철한 판단력에 기대면서 또한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저는 이런 일을 하는데 있어서 프로이기 때문입니다. 딱히… 애초에 여기 오게 된 계기는 제가 아니라 방송작가이신 당신의 선택 아닙니까?”

“뭐 그건 그렇지요.”

시현이 여기에 오게 된 건 모두를 꼬드겨서 이쪽으로 불러들인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유정미가 돈까지 줘가며 시현을 고용한 것이었다.

“그럼 수명은 어떻게 빼앗나요? 수술? 채혈?”

“아 육체적인 접촉은 전혀 없습니다. 그저 계약을 정산하겠다고 말로 하시면 됩니다. 그게 끝이에요.”

“에엑 그래요? 그런 거… 진짜인지 아닌지 모르겠네요.”

“좋지 않습니까? 만약 수명이 오가는 게 아니라면…. 여러분들은 자신이 수명을 빼앗을 수 있다고 믿는 얼간이를 마음껏 이용할 수 있는 겁니다.”

“반대로 자신이 남의 수명을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치광이랑 얽히는 게 아닐까요?”

짧은 머리의 여대생, 최설이 눈을 흘겨보았다.

“뭐 이미 얽혀버린 상황입니다. 후후.”

시현은 여대생, 최설의 비난을 능글맞게 받아넘겼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사람들에게 수명을 걷어낼 생각일까. 반감을 사면 위험할 텐데.’

류하리는 시현의 행동에 초조해졌다.

이 게임에서 투표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다.

2라운드부터 사람들은 투표로 누구 한 명을 처형할 수 있는데 시현의 말대로라면 그 처형은 매우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굳이 다른 사람들을 이렇게 뜯어먹으려고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런 짓을 하면 사람들이 미워할 텐데?

류하리는 시현의 과격한 행보에 초조해졌다.’

수명에 연연하는 건 알지만 좀 적당히 해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그녀가 생각할 때였다.

* * *

“잠깐. 그런데 그거 저도 포함인가요? 저는 당신에게 돈을 내고 고용했는데 이제 와서 비용을 더 달라고요? 그것도 수명을?”

이미 난 고객이 아니냐. 그런데 추가 징수를 할 셈이냐?

유정미가 그 부분을 짚어왔다.

“계약에서 제 업무의 내용은 어디까지였죠?”

“촬영에 협조하는 것. 아.”

“촬영에 협조하는 건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지만, 이런 영역의 문제는 비슷한 영역의 보상이 필요한 법이지요.”

“아니 그래도 전 너무 억울한데요.”

유정미 말고 대학생들도 들고 일어났다.

“수명 1년….”

“싫어요!”

“당신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장사할 셈이야? 정말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다면 뭔가 해보라고!”

그들이 그렇게 말하자 시현이 피식 미소를 지었다.

“흠. 다들 제 능력에 대해서 의심하는 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아 류 경위님. 잠깐 보실까요?”

“네? 저요?”

류하리는 시현을 따라 별 생각 없이 옥외로 나갔다.

* * *

“그래서. 왜 절 불렀나요?”

“네.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철컥.

셜록 산장의 문이 잠겼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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