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화천추리산장 #9
시현은 그런 김춘석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 정말 다행입니다. 계약을 해지해서. 시현 탐정사무소와 계약한 계약자 분이 이런 곳에서 폭력으로 부상을 입었다면 고객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 저희 탐정 사무소의 명예가 실추될 뻔 했군요. 계약이 해지된 후의 일이니 여러분들의 폭력사건은 여러분들 끼리 해결하시지요.”
“…….”
계약 해지되고, 다른 이들도 아무도 계약에 응하지 않은 게 마음에 걸리는지 시현이 빈정거렸다.
“잠깐. 전 고객 아니에요? 위험한 곳에 절 방치해두고 뭔 소리를 하는 거예요?”
유정미가 그렇게 말했지만 시현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뭐 무사하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방송촬영에 응한 것만으로 고객님에 대한 서비스는 끝났다고 생각합니다만.”
“아니….”
그때 무전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잠시 후 20분 뒤 투표가 시작됩니다. 모두 파고라에 모여주세요.]
사라진 대학생 김용한의 목소리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 * *
모두들 침을 꿀꺽 삼켰다.
서로서로 미워서 싸움질을 할 때는 시간가는 줄 몰랐는데 어느덧 제 2 라운드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게다가 원래 무전기에선 펜션 주인의 목소리가 들렸었는데 이제는 김용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아마 마지막으로 사라진 사람의 목소리를 들려주나 봅니다. 센스가 좀 있군요. 게임 마스터.”
이 스산한 상황에서도 시현은 태연자약했다.
“….아.”
“맙소사.”
여대생들은 질려서 시현을 바라보았다.
“저. 아, 알겠어요. 살려주세요. 수명 1년이면 되지요?”
안경을 쓴 여대생이 시현에게 다가와 수명 계약을 제안했다.
“자, 잠깐! 하은아! 그러지 마! 미쳤어?”
숏컷 머리칼의 여학생이 그녀를 말렸다.
“네. 뭐 충분히 생각하고 결정지으시길.”
시현은 자신과의 계약을 훼방 놓는 숏컷의 여대생을 보고도 화내지 않고 보물카드를 들어보였다.
“흠. 락다운으로 진마를 가두어 두면 2라운드는 그냥 넘길 수 있었을 텐데. 방이 작아서 방탈출 기믹도 그리 많은 시간을 잡아먹진 못했나 보군요. 자, 그럼 그전에 보물 카드를 좀 쓸까요? 어디 카드 설명을 봅시다. 제가 읽어드리죠.”
시현은 카드 설명을 읽기 시작했다.
“시민/뱀파이어를 시민으로 되돌릴 수도 있고, 헌터가 가지면 한 턴에 두 명씩 조사가능. 신부가 가지면 한 턴에 두 명씩 보호 가능. 진마가 가지면 한 턴에 두 명씩 공격 가능.”
시현이 보물 카드의 효과를 설명해주고 쓴 웃음을 지었다.
“능력이 너무 다양한 카드군요. 뭐 이 게임의 설계상 방탈출 게임의 보상이니 허접하면 안 되겠습니다만… 진마가 한 턴에 두 명 공격하는 건 오버파워 같아 보이는 군요.”
“으….”
“그럼 저는 이걸 한 장 써서 뱀파이어에서 시민이 되겠습니다.”
“아 젠장! 역시!”
시현의 말을 들은 숏컷 여대생이 분개했다.
“용한이 말이 맞았잖아! 당신 뱀파이어라고!”
방송작가 유정미도 실소했다.
“잠깐? 그럼 우리를 락다운으로 가둔 게….”
“접니다.”
시현이 그렇게 말하자 다들 어이가 없어서 혀를 내둘렀다.
너무나 뻔뻔하다.
“와아! 진짜! 어이가 없어서!”
“당신 우릴 엿 먹인 거야?”
모두들 분개하지만 시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아니죠. 저는 모두를 안심시킨 겁니다.”
“뭐?”
“여러분들이 아무것도 못하고 혼란스러울 때 제일 먼저 나서서 상황을 정리하고 방향을 잡은 게 누굽니까? 접니다. 그런데 제가 뱀파이어라면 여러분들이 얼마나 불안해졌겠습니까?”
“아니 게임이니까 헌터나 뱀파이어나 결국 상대를 무찌르고 이겨야 하는 건데.”
“그리고 이렇게 뱀파이어를 없애버리는 게 확실히 게임을 쉽게 이길 수 있는 길 아닙니까?”
“큭….”
“당신 때문에 용한이가….”
“아니죠. 저는 카드를 보여주지 말라고 했습니다만. 그 분이 스스로 선택하신 거지요.”
시현이 뻔뻔스럽게 말하는 게 너무나도 얄밉다.
그렇지만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아니 법의 집행자인 경찰, 류하리조차 지금은 시현의 편이고 주먹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시현이 강하니 다들 입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여, 역시 탐정이군요.”
방송작가 유정미는 시현의 수완에 혀를 찼다.
“보물은 어떻게 찾았어요?”
“우선 역할 카드가 단순히 그림을 그린 종이가 아니라 확실히 제대로 인쇄된 카드입니다. 그렇다는 건 보물역시 종이 카드일 확률이 높지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인쇄기를 생각해보면 타당한 결론입니다. 이런 카드 인쇄는 보통 전지 한 장 앞뒤로 한 번에 여러 장의 카드를 인쇄합니다. 그렇게 전지에 인쇄해서 만든 다음에 그걸 잘라서 다듬으면 우리가 보는 카드가 되지요. 그런데 전지 한 장에 올리기엔 이 게임 카드는 종류가 많지 않아요. 그렇다고 어디 팔아먹을 만큼 많이, 다양하게 쓰이는 카드는 아니지요?”
“네.”
“전지 한 장으로 캐릭터 카드 다 찍고 보물 카드도 다 찍고 싶어지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카드 제작에 돈이 들어갔을 텐데?”
“아 네.”
“그래서 저는 보물은 카드의 형태일 것이다. 그리고 산장 주인이 비가와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시점에서 보물찾기는 여러분들이 어린 시절 유치원 소풍 같은 데서 찾던 보물찾기가 아니라는 걸 알았을 겁니다. 저는 비가와도 젖지 않을 확실한 곳에 카드가 숨겨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여기 방들에는 다들 방탈출 기믹이 들어있다고 했었지요.”
“네.”
“방탈출의 마지막에 카드가 한 장 나왔을 겁니다. 여기에도 보물카드가 있었을 테니까요.”
시현이 그렇게 말했지만 다들 눈만 껌뻑였다.
“네?”
“보물카드요?”
그들은 셜록의 방에 있는 벽걸이 사슴장식과 셜록의 상징인 장식용 담배파이프 걸이 대를 살펴보았다.
방탈출 기믹에서 마지막 근처에 작동시켰던 장치 두 개를 확인해 본 것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보물 카드는 없었다.
“흠. 이런, 진마 카드를 가진 사람은 꽤 영악하군요.”
“네? 무슨 소리예요?”
“진마 카드를 뽑은 사람은 방탈출 게임을 하던 도중 보물 카드를 얻었고 그걸 써서 자신의 공격능력을 강화했습니다.”
“엑?”
“이제부터 진마는 1턴에 2명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게 되었을 겁니다. 물론 아직 보물카드가 있으니 신부와 헌터의 능력을 강화해서 따라잡으면 되겠지만 이 게임은 밸런스가 안 좋아요.”
“안 좋다면?”
“진마가 한 턴에 2번씩 공격하니 두 번만 공격에 성공하면 뱀파이어측이 생존자 과반수를 과점하게 됩니다. 게다가 이제부터 한 라운드에 한 명씩 줄어들게 되니까 2라운드 후면 무조건 게임이 끝난다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이쪽도 신부가 한 번에 두 명씩 보호하고 헌터도 한 번에 두 명씩 조사할 수 있으니까….”
“아니 헌터는 사라졌잖아?”
다들 시현을 바라보았다.
헌터인 김용한을 자극해서 게임에서 배제시킨 것 때문일까?
시현은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보고도 묵묵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명중하면 대박인 진마의 공격에 비해서 신부나 헌터의 특수능력은 부실하죠.”
공격하는 진마보다 그걸 방어해야 하는 신부가 훨씬 어려운 플레이를 해야 한다.
진마에겐 선택지가 많다.
자신을 제외한 8명, 아니 헌터가 배제되었으니 이제 7명 중에서 신부가 방어하기로 고른 둘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을 골라내면 무조건 성공인 것이다.
그 성공률은 5/7.
반면 방어해야 하는 신부 측에서는 자신까지 포함해서 8명 중 정확하게 진마가 픽한 2명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그 성공률은 2/8. 신부 측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
“이런, 이게임 밸런스 너무 엉망이군요. 이렇게나 게임을 몰았는데도 고작 보물 카드 한 장이 진마 손에 넘어갔다고 대번에 위기라니?!”
류하리는 게임을 만든 산장주인을 원망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게요. 이렇게 밸런스가 엉망인 게임을 만드는 걸 보면 이 사람 소설도 뭐 안 봐도 뻔 하죠. 재능 없는 퇴물 소설가.”
유정미가 산장주인을 조롱했다.
“아니 뭐 그건 좀 인신공격 같은데.”
촬영감독 배준수는 유정미가 산장주인을 비웃자 당황해서 카메라에서 눈을 떼고 말했다.
“소설가가 소설을 개떡같이 쓰면 욕할 수 있는 건 독자의 권리 아닌가요?”
“방송작가가 방송을 개판을 치면 시청자도 욕할 수 있고요?”
류하리가 질문을 던졌다.
“그건 쓸데없는 오지랖이죠! 보기 싫으면 채널을 돌리면 될 것을 왜 방송작가나 PD의 인격을 멸시하나요!”
“…….”
내로남불이 이런 것인가?
다들 유정미의 뻔뻔함에 아연실색했다.
“어쨌건 우리 안에 진마가 있다는 건 확실하군요.”
“난 싸움질하고 있었으니까. 방탈출은 여자들이랑 저 아저씨가 했어!”
두들겨 맞고 있던 박동호가 그렇게 말하자 그를 두들겨 팬 김춘석이 킥 하고 웃었다.
박동호의 발언이 그의 알리바이라면 박동호와 싸웠던 김춘석 역시 알리바이가 성립하는 것이다.
“방탈출 게임을 진행한 사람들은?”
“방송작가랑 촬영감독, 그리고 여대생들….”
“그 와중에 누군가가 카드를 챙겼다면… 그 사람이 진마다!”
“오 좋아! 단 2라운드 만에 진마를 잡아낼 수 있을 지도?”
다들 흥분해서 배준수에게 다가왔다.
“아저씨! 카메라 좀 보여주세요.”
“아 알겠어요. 기다려 봐요. 일단 모두 함께 보는 게 좋겠지요?”
배준수는 자신의 카메라를 방의 TV에 연결하고 녹화된 영상을 재생했다.
그런데….
-지이익. 끼이이익.
[킬킬킬킬.]
[꺄아악!]
알지 못할 웃음소리와 비명소리, 짐승이 헐떡거리는 소리 등등이 요란한 노이즈와 함께 녹화되어 있었다.
“뭐?! 이, 이건!”
“말도 안 돼!”
다들 충격을 받았다.
충격을 받은 배준수가 빨리 감기로 재생하니 최근에 찍은 것들은 그나마 낫지만 오래된 것들은 뭔가 이상한 힘에 의해서 영상이 변질되고 있었다.
“호, 혹시?!”
배준수가 다시 영상 바를 되감았다가 재생해보니 분명히 같은 위치에서 재생했는데 두 번째 재생한 게 처음 재생한 것보다 오염이 심했다.
결국 데이터가 오염되어서 누가 진마인지는 알 수 없었다.
[15분 남았습니다.]
무전기에서는 묵묵하게 시간경과를 알려주었다.
“으아! 어 어쩌지?”
대학생들은 패닉에 빠져있었다.
지금 무전기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그들의 동료 김용한의 목소리다.
게임이 2라운드를 진행하게 되면 누군가를 투표로 처형해야 하는데 그렇게 처형된 사람은 어떻게 될까?
일반적인 마피아 게임 같으면 게임에서 빨리 빠지고 투덜거리며 바비큐 준비라도 했겠지.
하지만 이 게임에선 그럴 리가 없다.
“이제 슬슬 계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좀 드시나요?”
시현이 얄밉게도 물어보았다.
“…네.”
“끄으으응….”
“으음.”
“젠장! 알겠어! 알겠다고! 계약이건 뭐건 좋으니까 하자고!”
시현에게 가장 반항적이던 숏컷의 여대생도 계약에 응하고 말았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