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화
화천추리산장 #11
-콰르르르릉.
뇌우가 울부짖는 하늘, 그 하늘을 향해 장대를 들어올렸다.
하지만 번개는 하늘에서 빛을 뿌리기만 할 뿐, 시현을 노리고 덤벼들지는 않았다.
“봤죠?”
시현은 다리를 보강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신체능력이 뛰어나서 좀 불안정해도 괜찮다.
아니 사실 농수로 폭이 그다지 넓지 않으니 시현이라면 그냥 다리도 없이 뛰어넘을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건너기 불편할 테니까… 그가 농수로에 차량들을 처박아 만든 다리 위에 상판을 설치하고 있었다.
다행히 이 시골 펜션에는 쓰다 남은 자재들이 여기저기 남겨져 있어서 다리를 보강할 재료는 매우 많았다.
“그런데….”
시현은 다리를 준비하면서 돌아보았다.
아직 남아있는 한 사람, 시현과 계약하지 않고 오히려 했던 계약을 파기한 김춘석과 시현의 눈이 마주쳤다.
“여전히 계약은 안할 셈인가 보군요. 김용한 씨를 제거한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까?”
“…그래.”
“펜션 주인은 별다른 죄가 없는 데도요?”
“…….”
“게다가 김용한 씨가 겪을 고통은 곧 당신이 겪게 될 고통입니다. 둘이 같이 무한의 지옥 속에서 고문당하게 되겠지요. 그동안 당신을 괴롭혔던 또 다른 한 명, 박동호 씨는 살아서 나가겠네요.”
“아니 젠장! 잠깐? 당신, 날 잡아먹으라고 시위하는 거야 뭐야?!”
박동호가 따지고 들자 시현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하고자 하는 저의 노력이지요. 이해해주시길 바랍니다. 시현 탐정사무소가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하긴 하지만 그 고객만족은 또한 휴머니즘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도리 안에 고객님의 만족과 감동 또한 있지 않겠습니까?”
“…….”
“은근 슬쩍 고객감동도 끼워 넣네요. 이제 고객만족이 아니라 고객감동까지 가려고요?”
파고라에 가서 투표함에 쪽지를 넣고 온 류하리가 시현의 행태에 기막혀했다.
“하하하. 뭐 감동하면 곧 만족 아니겠습니까?”
시현은 고객감동을 욕심내고 있는 게 사실이라는 듯 그리 말했다.
“아 젠장… 알겠어. 처음부터 난 둘 다 골로 보내달라고 했는데 한 놈만 골로 보냈으면 그놈이 계약위반이지.”
“그렇지요?”
“그래서. 당신과 계약하면 날 안전하게 풀어주나?”
“물론이지요.”
“그렇다면….”
김춘석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사춘기 소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평생을 이 녀석들에게 눌려 지내왔다.
본인들은 악의가 없었다고 말하고 그게 사실이겠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잔인한 청소년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고는 있었어. 법적으로는 제재할 방법이 없다는 걸.’
이렇게나 미워하는데 그 미움이 합리적이란 평가를 못 듣는다.
그래서 그는 설령 자신도 함께 파멸한다 하더라도 원한을 갚고 싶었다.
하지만 이 탐정이 개입함으로서 그의 목표는 실패했다.
그렇다면 자신이라도 건져야 하나?
“어쩔 수 없군. 계약하지.”
“네 수명 3년 되겠습니다.”
“3년? 왜?”
“아무래도 한 명에게 5년은 너무 과한 것 같긴 하니까요.”
“아니 내 말은 다른 놈들은 1년인데 왜 나만?”
“고객님 같은 경우는 어쨌건 이미 저쪽이랑 맺은 계약을 깨야 하니까요. 공임이 많이 들어가서 어쩔 수 없습니다. 뭐 연금 3년 덜 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앞으로 연금 보험 상품 같은 거 들라고 하면 거절하세요. 보험사 좋은 일 시켜줄 공산이 크니까요.”
능수능란한 시현의 말에 다들 할 말을 잃었다.
그 사이 다리가 다 만들어졌다.
“그럼 가볼까요?”
* * *
시현과 그 일행은 무사히 다리를 건넜다.
“으아…. 사, 살았다!”
갑자기 불어난 농수로, 불발탄과 유실 지뢰가 터지며 울부짖던 곳 위에 걸쳐진 위태위태한 줄다리를 다들 무사히 건넌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농수로 폭은 그렇게 넓지 않았다.
“끄응. 그 차 렌터카였는데. 그렇게 처박아 버리면 어쩌지? 아, 아파. 어, 얼굴이 붓는다.”
김춘석에게 두들겨 맞아 얼굴이 붓기 시작한 대학생, 박동호가 울상을 짓자 그의 여자 친구가 그를 말렸다.
“마, 말하지 마. 아플 텐데.”
“응. 그, 그래.”
“그보다 이제 진짜 풀려난 거야? 하지만 용한이는? 그럼 용한이는 어떻게 되는 거야?”
대학생들이 그런 의문을 품었을 때였다.
갑자기 자욱한 안개가 그들에게 밀려왔다.
우유처럼 진하고 농밀한 안개가 그들을 감싸자 모두들 발을 멈춰 섰다.
촬영용 조명을 들고 있던 류하리가 조명을 켜고 다른 이들도 플래시와 핸드폰을 켜서 빛을 비추기 시작했다.
잠시 후 갑자기 비바람이 다시 거세지며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앞에 길이 보인다.
“아 젠장.”
류하리는 플래시를 앞에 비춰보고 혀를 찼다.
“…오 맙소사.”
촬영감독 배준수도 무용지물이 되다시피 한 카메라를 그래도 돌리며 경악했다.
그들의 눈앞에 익숙한 건물, 익숙한 산이 보였다.
“이게 뭐야!”
그들의 눈앞에 있는 건물은 놀랍게도… 화천 추리 테마 산장이었다.
그것도 좌우가 반전된 채로!
* * *
눈앞에 있는 화천 추리 테마 산장은 현실에서 보았던 것과 정확하게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 농수로를 건너지 않았고, 이 산장과 산, 그 모든 것이 좌우 반전이 되어 있으니….
그들은 자신들이 여전히 게임마스터의 손아귀에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아직… 안 끝났다. 데드맨.]
무전기 너머로 게임 마스터의 말이 들려왔다.
펜션 주인인 정성봉도… 도중에 카드를 보였다가 실종당한 김용한도 아니다.
게임마스터 본인의 목소리인 것 같다.
성별도 알아들을 수 없는 기괴하고 스산한 목소리는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의 소름을 돋게 하는 무시무시한 것이었지만 시현은 코웃음 쳤다.
“아직 안 끝났다고요? 상당히 추하군요.”
[너는 게임을 끝내지 않았어!]
“그럼 내가 가서 당신의 그 조잡한 게임을 마무리 지었어야 했습니까? 괜히 의미도 없이 한 명 더 희생시키면서? 웃기지 마세요. 애초에 이건 당신만 이득보고 우리들은 얻는 게 없는 쓰레기 게임입니다. 밸런스도 엉망이고 얻을 것도 없는 게임에 오래 앉아있으라는 것 자체가 당신의 조악한 연출력, 게임 마스터링의 허접함을 드러내는 거지요.”
시현이 비웃자 무전기 너머에서 갑자기 대학생 김용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아아아. 여, 여긴 어디야? 사, 살려줘! 동호야! 설아!]
“!!!!”
“요, 용한이니!?”
“용한 오빠!”
[으아아악!]
김용한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히이이이익!]
이번엔 펜션의 주인, 정성봉의 목소리가 들렸다.
[너, 너무 오래 갇혀있었어! 여긴 주위가 온통 감옥, 쇠창살… 오 맙소사. 끝없는 강철의 감옥들이…. 그 안에 무수한 인간들이 머리에 모니터를…. 나도 모니터. 아악?! 나, 나도?!]
펜션의 주인 정성봉은 미친 사람처럼 떠들다가 짐승처럼 괴성을 질렀다.
[어때? 데드맨. 이래도 네가 이겼다고 생각하나?]
게임마스터의 스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에 담겨있는 집요한 광기와 증오라니?!
모두들 질겁해서 시현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 * *
“응. 내가 이겼지.”
시현은 그렇게 대답하고 주머니에서 사탕을 꺼내서 입에 넣었다.
“………”
[…….]
“어?”
모두의 시선이 시현에게 집중되었다.
“왜요? 잡혀간 사람들은 제 고객이 아닙니다. 고객이 아닌 사람에게 무상 서비스를 하면 기껏 수명까지 내주신 고객님들께 예의가 아니잖습니까?”
“방금 전에는 막, 시현 탐정사무소는 휴머니즘에 기반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휴머니즘 안에서, 인간의 도리 안에서 고객만족이 있다. 뭐 그렇게 들은 것 같은데 그건 제 착각이었나요?”
류하리가 따지고 들었다.
“뭐 힘 다할 때까지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것도 인간적이지 않습니까? 지금 이순간도 세계 곳곳에서 아이들이 굶주리고 내전은 일어나고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것도 인간다움이 아닐까요?”
“………”
생각해보면 게임마스터의 이런 행동은 결국 시현이 승리했음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현이 승리했지만 그걸 못 참기 때문에 이미 자신이 잡아간 것들을 빌미로 시현을 다시금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고 있다.
도박에 털린 사람이 집문서 들고 와서 만회하려는 거나 다름없는 태도다.
그런데 그때였다.
-털썩.
숏컷 여대생 최설이 시현의 앞에 무릎 꿇었다.
“타, 탐정님. 제발 부탁이에요. 용한이 좀 구해주세요.”
“어, 저, 저도 부탁합니다.”
얼굴이 팅팅 부은 대학생, 박동호도 엎드렸다.
그러자 박동호의 여자친구, 김하은도 시현에게 애원하기 시작했다.
“윽… 그러지 마세요. 고객님들.”
시현은 자신에게 애원하는 대학생들을 보며 난처해했다.
“헹. 웃기고 있네.”
그걸 보고 있던 김춘석이 코웃음 쳤다.
“난 밑으로 깔아보고 그렇게 괴롭히던 놈들이 자기들 친구는 그렇게 소중한가보네?”
“너 미쳤어? 그만 좀 해!”
“그래! 용한 오빠나 우리나 당신에게 잘못하긴 했지만 그게 죽을죄는 아니잖아?”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이게 보이냐?”
김춘석은 자신의 목을 가리켰다.
그의 목에 화상 같은 흔적이 남아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안 보이는 상처지만 분명히 피부가 찢기거나 녹아든 후 재생한 흔적이다.
“이건 목을 매달았던 상처야! 네놈들 때문에 난 자살도 시도했었단 말이다!”
“……”
“어 그건….”
“박동호! 넌 내게 한 게 장난이라고 했지? 친구끼리 장난이다. 별거 아니다. 그렇게 말야. 그런데 내게 이런 상처가 있는 건 알았어?”
“자, 잘 안보여.”
“이 개새끼야! 그게 네놈들이다. 너희들 끼리 좋은 연인, 친구였는지 몰라도 내게 너희는 죽어 마땅한 놈이었어! 알아? 나는….”
그러나 그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갑자기 그들의 눈앞에서 김춘석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 으아아악! 뭐, 뭐야?! 이건!]
김춘석의 목소리가 무전기에서 대신 들리기 시작했다.
“………”
시현이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어때 데드맨. 이래도? 이래도 거부할 테냐?]
“아 젠장.”
시현은 얼굴을 덮은 손을 쓱 쓸어내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빌어먹을 타자기 놈. 도움이 하나도 안 되네.”
시현은 타자기를 욕하고 대학생들을 돌아보았다.
“자 고객님들 주목.”
“네?”
“어?”
“아무래도 저는 이놈과 2차전을 해야 할 것 같군요.”
“2차전이요?”
“네. 김용한 씨와 펜션 주인인 정성봉 씨, 그리고 방금 납치당한 김춘석 씨를 구해야 할 것 같은데 구하고 나면 김용한 씨에게 청구해야겠는데 그 경우 여러분들이 잘 납득시켜주셨으면 합니다.”
그러니까 김용한을 구출하고 그에게서 수명을 받아낼 건데 여러분들이 잘 설득해 달라.
시현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네?”
“구, 구할 수 있어요?”
시현에게 구해달라고 애원했던 대학생들이지만 정말 구할 수 있다고 하니까 다들 믿기지 않는 것 같았다.
“뭐… 시현 탐정사무소는 고객만족이 최우선이니까요.”
시현은 담담하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