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6화
데드맨 인 원더랜드 #2
명색이 경찰인데 절대로 절도 같은 짓을 할 수는 없다.
하물며 이 구멍가게. 별로 넉넉해보이지도 않는데….
“마시는 게 좋을 텐데요? 저 자전거를 타고 간 정성봉 씨를 쫓아가야 하거든요.”
“…….”
시골길이고 정성봉이 타고간 자전거가 그렇게 속도가 잘 날만한 것이 아니긴 하지만 걸어서 그걸 쫓으려면 또 한참을 걸어야 한다.
그래도 류하리는 말없이 먼저 걷기 시작했다.
“Country road~ take me home….”
시현이 노래를 부르며 코트에서 빵을 꺼내서 포장을 뜯었다.
“뭐에요? 그건.”
“아 배고플 때가 될 것 같아서. 좀 드시겠어요? 탄수화물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됐어요. 사탕이나 주세요.”
“여기요.”
시현은 빵을 쪼개서 류하리의 손에 들려주었다.
“네?”
사탕 달라는 데 왜 빵을 줘? 그것도 장물을… 하지만 류하리 입장에선 일단 자기 손을 탔는데 다시 돌려주기도 애매하다.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고.
“좀 폭신폭신한 사탕이지요?”
“으 젠장.”
“먹고 컨디션 유지하시지요? 앞으로 더 힘들 텐데?”
“알겠어요!”
류하리도 결국 시현이 넘겨준 빵을 먹어버렸다.
“흑흑… 망했어. 난 경찰 실격이야.”
* * *
“어….”
교복차림의 고등학생, 정성봉의 손에서 비닐봉지가 떨어졌다.
얼음과 사이다가 비닐봉지에서 쏟아져 콘크리트 포장 도로 위를 굴렀다.
바짝 메말라 있는 길가의 배수로에 여자의 팔이 드러나 있었다.
“히익! 시, 시체?!”
놀란 정성봉은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배수로 근처로 가보려다 멈칫했다.
수사물 같은 걸 많이 보아온 그는 현장을 얼마나 보전하는 지가 중요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함부로 접근했다가 내 지문이나 흔적이 남으면 날 범인으로 지목할지 몰라!’
그런 걱정이 앞섰다.
* * *
1996년, 아직 대중들의 대부분은 휴대폰 대신 삐삐라 불리던 호출기를 들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시티폰이라 불리던 도시지역에서, 송신만 가능한 전화기와 호출기인 삐삐를 이용하면 당시 상당한 통화료를 지불하면서 어떻게든 요새처럼 전화통화가 가능했다.
그러나 시골의 고등학생이던 정성봉은 시티폰은 커녕 삐삐조차 없었다.
있다 해도 아마 서비스 지역이 아니었으리라.
“어, 어쩌지?! 겨, 경찰. 경찰을 불러야 하나?”
정성봉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까운 곳에 경찰 신고할 곳이…. 마침 근처에 집이 있었기에 그는 근처 집으로 향했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아 이 시간이면 밭일 나갔거나 아니면 칠순 잔치지!”
애초에 정성봉에게 사이다와 얼음을 가져오라고 한 곳이 바로 그 칠순 잔치 자리였다.
정성봉이 머리를 뜯으며 괴로워할 그때였다.
“아! 시, 시체가 배수로에 있네요.”
“네. 흠. 조사해볼까요?”
“예? 조사요? 아니 그, 그야 그렇지만 경찰이 아니잖아요? 당신은? 지금 괜히 현장 건드렸다가 경찰이랑 나중에 문제 생기지 않아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젊은 남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정성봉이 뒤돌아보니 가게에 찾아왔던 두 남녀다.
둘 다 근사한 외모를 가지고 있어서 인상이 무척이나 강렬했다.
“아 다, 당신들은….”
“흠 실례.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
시현은 명함을 한 장 꺼내서 정성봉에게 건네주었다.
“시현 탐정사무소? 탐정이라고요?”
“네.”
시현이라 말한 청년은 그리 말하고 미소를 지었다.
“고객만족을 최우선으로 하는 불륜조사의 프로페셔널, 시현 탐정사무소입니다. 고객님이 만족 못 하시더라도 강제로 만족하게 만들어드립니다.”
“…….”
갑자기 스스로를 광고하는 이 이상한 탐정을 보면서 정성봉은 어째 가슴이 울렁거리는 걸 느꼈다.
이 남자.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 과거 언제 어디서 봤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확실한 데자뷰가 느껴진다.
* * *
“자 그럼… 간단히 조사를 해볼까요?”
시현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시체 주위를 찍기 시작했다.
함부로 접근하면 증거를 훼손할 수 있으니까 최대한 주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사진부터 찍은 거이었다.
찰칵하고 사진 찍는 소리가 들리자 정성봉이 기겁했다.
때는 1996년, 당연히 스마트폰도 없고 디지털 카메라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은 시대다.
“괜찮겠어요? 스마트폰을 보여 버리면?”
류하리가 걱정했지만 시현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우리를 여기로 보낸 그 게임마스터와 같은 족속들은 이 세상을 자신들의 존재로 망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합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이렇게 화끈하게 망쳐놓고?”
“그러니까 그놈들이 보기엔 우리는 내셔널지오그라피 채널에서 나오는 개미 집단 같은 거예요. 평소엔 별 관심이 없더라도 그런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개미 하나하나를 조명하고 이름을 붙이고 그 행위를 면밀히 관찰하면 각각의 개성이 생기고 스토리가 있고 몰입도 되잖아요?”
“………”
대충 그럴 거라고 예상은 했었다.
하지만 직접 시현에게 그렇게 들으니 충격이 컸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이라는 말을 오만하다고 여기긴 하지만 부지불식중에 받아들이고 있긴 했는데 말이지….’
정말 인류보다 강력한 그런 초자연적인 존재들 입장에선 인류는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걸 너무 과하게 개입해서 개미굴 자체를 부숴버리거나 개미들에게 무제한으로 영양을 공급하거나 하면 다큐멘터리의 본질이 훼손되겠지요? 시청자들도 그런 걸 보면 자연을 훼손한다. 쓸데없는 개입이 너무 많다. 제작진이 자연에 대해서 너무 오만하다. 항의가 산더미처럼 쌓일 겁니다.”
“그런 걸 신경 쓰나 보군요.”
“네. 지금 납치되고 유린당하는 자들, 그런 자들은 뭐 저들 입장에서는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카메라 넣다가 깔려죽은 개미 정도로 밖엔 생각 안 해요.”
“…….”
시현의 비유를 통해 이해해보자면 저것들은 인간 개개인을 짓밟는 것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특별하게 조명되는 인간들, 뭔가 그들 사이에서 의미를 가지는 인간은 함부로 대할 수 없다.
그리고 그 외에도 본질적으로는 인간들에게 자신들의 개입을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만약 스마트폰을 쓰다 걸리거나 해도…. 어차피 우리가 가고 나면 이 사람들은 우릴 기억 못 하고 아스라이, 어렴풋이, 대충 느낌만 남게 될 겁니다.”
시현은 그리 말하고 사진을 찍은 뒤 정성봉에게 다가가 사진을 보여주었다.
“이 인물을 알아보시겠습니까?”
“…….”
배수로에 죽어있는 시신의 얼굴이다.
방금 찍었는데도 너무나 선명한 그 화면 속 영상에 정성봉은 전율했다.
시체의 데드마스크를 직시하는 건 굉장한 정서적 충격이다.
하물며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엄청난 피바다 속에 쓰러져 있는 끔찍한 모습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윽. 그, 그게. 월성 무당 아줌마에요.”
“월성 무당 아줌마?”
“네. 진짜 무당은 아닌데 신기가 좀 있다고 하고 신 내림 굿에서 도망쳤다는 소문도 있는 젊은 아줌마죠. 여기서 살고 있었어요.”
정성봉은 방금 전 자신이 전화를 빌리려고 했던 집을 가리켰다.
“즉 자신의 자택 앞에서, 배수로에 죽어있다. 흠. 남편 분은 있습니까?”
시현이 물어보았다.
“네. 이 씨 아저씨가 남편인데… 소문은 별로 좋지 않았어요.”
정성봉은 그리 말하다가 시현을 돌아보았다.
“어, 어쨌건 경찰에 신고해야 하지 않아요?”
“신고해야죠. 하지만 전화기를 쓰려면 이 집 잠겨있는 걸 건드려야 할 텐데 그러면 집안에 있던 증거들을 훼손할 수도 있습니다.”
“아 그, 그럼 마을사람들에게, 마침 다들 칠순 잔치에 모여 있을 거예요!”
“칠순 잔치라면 누구의 칠순인가요?”
“김상식 할아버지요. 이곳 마을에 지주 분이시라 다들… 아 배달가야 하는데.”
정성봉은 혼란스러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사춘기 소년이 갑자기 시체를 발견하고 말았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음. 어떻게 생각해요? 조수는?”
시현은 평소 류하리를 류 경위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금은 경찰 계급으로 그녀를 불러선 안 된다.
‘그래서 조수인가… 뭐 나쁘지 않네.’
류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경찰에 알리는 게 맞겠지만 우리가 여기 와있는 건 바로 그 경찰이 제구실을 못해서겠지요?”
만약 살인사건의 진범이 정확하게 잡혀서 죗값을 치렀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다.
괜히 그들이 여기까지 와서 이런 일에 휘말릴 일도 없었겠지.
그러나 그렇게 못했기 때문에 그들이 여기에 와서 이 사건을 재조사하는 걸 게임마스터와의 2차전으로 삼게 된 것이다.
“네. 이대로 경찰에게 신고하면 경찰은 틀림없이 초동수사를 망칩니다.”
“으음. 경찰의 치부를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군요. 하지만 뭐… 이 시기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겠지요.”
류하리는 시현에게서 사진을 받아 보았다.
시현이 시체에 대해서 설명했다.
“일단 시체를 볼 때 경추 골절과 측두부 외측 찰과상이 심해요. 아마도 뭔가에 밀려서 배수로에 머리먼저 떨어지면서 목이 부러지고 측두부가 콘크리트로 된 배수로 벽면에 긁혀서 외출혈이 일어났어요. 머리를 긁혀서 피부가 찢어지면 혈액 유출이 엄청난데…. 배수로 안이 온통 피로 가득하더군요.”
“으윽….”
듣고 있던 정성봉이 기겁했다.
“즉 떨어지면서 머리로 떨어져서 목이 부러졌다. 혈액량을 볼 때 심장이 뛰고 있으면서 계속 피를 뿜어내다가… 죽었다. 그렇게 볼 수 있겠군요.”
“그렇죠.”
“그럼 이 살인은 우발적인 살인일 수 있겠네요.”
“네. 그냥 밀쳤는데 배수로로 넘어져서 운 나쁘게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렇게 보이네요.”
누군가를 배수로로 밀면서 반드시 목을 부러뜨려 죽일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즉 배수로에 떨어져 목이 부러진 게 사인이라면 의도적인 살인일 가능성은 낮다.
“자, 잠깐만요.”
그때 정성봉이 나섰다.
장래의 추리작가라서 그런지 지금의 정성봉도 이런 데 관심이 많은 듯했다.
“살인이 아니라 그냥 넘어져서 죽은 것일 수도 있지 않나요?”
“흠 과연 그럴 수도 있겠군요.”
시현은 정성봉의 지적을 듣고 웃었다.
악마가 시간까지 거슬러가며 데려온 사건이니 그런 단순한 사고사일리 없다.
그게 아니더라도….
“배수로 쪽으로 밀려서 떨어진 게 맞습니다.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 사람은 반사적으로 균형을 잡기 위해 팔과 다리를 사용합니다. 그 상태로 배수로로 떨어지면 팔로 땅을 짚으려 하거나 다리로 밟으려고 해서 팔다리가 부러지는 상태로 떨어지기 마련이지요. 그런데 지금 이건 몸통이 그대로 배수로로 떨어졌습니다.”
실족사에서는 흔히 균형을 잡으려다 사지가 부러지곤 한다.
사람이 자연스럽게 균형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리다 팔다리를 깔아서 팔다리가 먼저 부러지는 법, 그런데 그런 흔적이 없다.
“정밀 검시하면 더 확실해지겠지만 그런 것 같군요.”
류하리도 동의했다.
시신을 정밀검시하면 상처의 손상 정도를 통해서 넘어질 때의 속력을 구할 수 있는데 그걸 통해서 둔기로 때린 건지, 넘어진 건지, 밀쳐서 넘어진 것인지 판별이 가능했다.
데드맨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