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09화 (109/269)

제109화

데드맨 인 원더랜드 #5

그 어떤 막장드라마도 극인 이상 극으로서의 핍진성을 확립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핍진성따위 확립할 필요 없다.

하고 싶은 대로 마구 질러도 말이 되는 게 현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은 마을 안에서는 꽤나 파란만장한 일이 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관계자가 하나 둘이 아니야. 분위기 보니까 거의 마을 사람 전부가 다 관련된 것 같아.’

그런 류하리의 의문을 확인이라도 하듯 시현이 마을의 아주머니들을 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생각해보세요. 불륜상대의 배우자가 따지러 왔다면 그 사람과 말다툼을 벌였을 겁니다. 그러다가 배수로까지 나오고 그녀도 따라 나왔는데 그때 홧김에 밀쳐서 죽였다? 그럼 그사이에 집의 현관문을 잠가 놓을 여유가 있을까요?”

“어, 없겠지요.”

“그렇죠? 누군가가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문을 잠가놓는다는 행위는 상대를 상당히 신뢰해야만 나올 수 있는 행동입니다. 왜냐면 문을 잠그는 동안 사람은 완전히 등을 노출하기 때문이지요.”

갑자기 등 뒤에서 목을 졸라 죽일 수도 있으니… 월성 댁을 찾아온 사람은 친밀한 관계일 것이다. 그게 시현의 의견이었다.

그러자 동네 아줌마들이 일제히 안심한다.

“……”

‘대체 얼마나 관여되어 있는 거야?’

류하리는 이 좁은 세계의 끔찍한 모습에 기겁했다.

한편 정성봉은 시현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와 탐정이다. 진짜 탐정이네. 무슨 탐정 소설에서 나온 것 같은 본격파 탐정이다.’

상황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추리하는 것을 보니 비록 자신의 마을에서 일어난 불상사지만 가슴이 떨리고 흥분되는 기분이었다.

“자 그럼 과연 범인은 누굴까요? 사실 소거법으로 계산해보면 답은 이미 나왔는데….”

시현이 그렇게 말할 때 경찰차가 도착했다.

* * *

해가 석양으로 뉘엿뉘엿 기울어 갈 무렵.

경찰차 한대에 딱 한 명의 경찰이 엉기적엉기적 차에서 기어 나왔다.

“아이고 허리야. 나죽네.”

“…….”

가슴의 명찰엔 김윤식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어깨 견장을 보면 계급은 경장.

그런데 혼자서 살인사건으로 보이는 시체 발견에 오다니….

“맙소사. 피해자는 월성 무당 댁인가. 원 참… 응? 아가씨는 뭐야?”

김윤식 경장은 류하리를 보며 의아해했다.

“아 저는… 탐정입니다.”

“탐정?”

“네. 이런 사람입니다.”

시현이 류하리를 대신해 튀어나와서 명함을 내밀었다.

“서울에서 온 탐정이라고? 아니 서울에선 웬 일로?”

“하하. 고객님의 의향 상 발설하긴 힘든 일입니다. 다만 그 뭐냐. 고객님의 자식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조사해달라는 그런 이야기라고 해두죠.”

“…엥? 그래서 누군데?”

“비밀입니다.”

“……”

경찰은 시현을 미심쩍다는 듯 노려보았다.

“당신들이 범인인 거 아냐?”

“음? 범인인거 아니냐니? 이게 살인사건이라고 신고했던가요? 분명히 시체가 발견되었다고 신고했을 텐데?”

시현이 그렇게 말하자 김윤식 경찰이 흠칫 놀랐다.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이상하다.

“뭐, 뭐야? 왜들 날 그렇게 봐?”

“………”

류하리는 시현의 말을 듣고 어이없어했다.

'아니 내 기억에는 분명히 살인 같다고 했어.'

사실 경찰에게 신고할 때 정성봉 학생에게 미리 말해둬서 그런지 정성봉은 살인사건 같다고 마을 이장에게 보고했었다.

마을 이장도 그렇게 옮겼는데 전화로 신고 된지 시간이 좀 지났다고 시현은 천연덕스럽게 신고 때 살인사건 언급 없이 시체만 발견되었다고 우긴 것이다.

그런데 경찰이나 마을 사람들이 넘어갔다.

'뻔뻔하네. 하지만 먹혔어.'

류하리는 시현의 능청맞음에 걸려서 정신을 못 차리는 경찰을 보며 혀를 내둘렀다.

마을 사람들 모두 이미 시현의 선동에 넘어가 있었기 때문에 월성 무당 댁의 불륜 상대인 남성을 의심하고 있었다.

거기에 이런 떡밥을 투척해서 월척을 낚아 버렸으니….

'하지만 어쩔 거지? 지금 여기선 우리가 경찰도 아니고 그저 이방인일 뿐인데. 게다가 민증도 제시할 수 없어.'

물론 그녀는 민증이 있다. 문제는 1996년 이후 출생이라서 그렇지.

지금 그런 신분증을 내놓으면 어떻게 생각할 까?

'그러고 보니 민증이 플라스틱 카드로 바뀐 게 언제지? 그전에는 비닐 카드였잖아?'

즉 지금 그녀가 가지고 있는 주민등록증과 이 시대 사람들의 주민등록증은 재질부터 다르다.

경찰이 주민등록증 제시를 요구하면 그것만으로도 끝장이다.

주민등록 제도가 있는 대한민국이라서 겪는 고충이라고 해야 할까.

과연 경찰 김윤식 경장은 분위기 환기를 위해서인지 시현과 류하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신들, 하여튼 민증 좀 봅시다.”

역시…민증 요청이 나왔다.

* * *

경찰이 오기 전, 시현은 제일 유력 용의자인 피해자의 남편, 이 씨를 겁박하면서 오히려 그의 혐의를 벗겨내고 피해자의 불륜 상대들로 혐의를 옮겼다.

사람들은 시현의 추리, 말 빨에 흥미를 느껴 빨려 들어서 어느새 시현이 말하는 대로 혐의가 불륜 상대에 있을 거라고 여겼다.

집의 문이 잠겨있는 것, 시체가 착지 흔 없이 배수로에 떨어진 것, 의복의 상태, 방어흔의 양으로 시현은 피해자가 가해자와 굉장히 긴밀한 관계였으며 적대적이지 않은 우호적인 관계였음을 추리해냈다.

여기까진 좋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그래서 범인을 어떻게 확정짓고 이 수사의 방향을 원래와 다르게 뒤집느냐는 것이다.

그들은 이방인, 미래에서 온 이방인이라 법정에 증인으로 설 수도 없다.

게다가 만약 경찰이 범인이라면… 확고부동한 증거가 없으면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다.

'일단… 확실히 소거법상으론 이 경찰이 수상해.'

류하리도 시현의 추리가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추리소설의 범인 같으면 마을회관에 있었다는 알리바이를 유지하면서 도보로 왕복 16분, 질주로 왕복 8분이 걸리는 거리를 허겁지겁 오가며 살인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집요한 계획살인일 때 가능한 일, 집요한 계획살인의 살해 수단이 고작 배수로로 밀치는 거라니 말도 안 된다.

우발적인 살인이라면 마을 회관에서 달려 나오는 건 말도 안 되고 칠순 잔치에 참석하지 않은 이들 중에서 범인이 있다는 건데….

칠순 잔치에 참석하지 않은 사람들 대부분은 농협이나 우체국, 기타 이 근처에 직장을 가진 이들이며 이들 중 상당수는 내근직이다.

갑자기 직장을 내팽개치고 달려와서 여자를 만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경찰인 이 김윤식 경장을 제외하면 말이지.

결국 소거법으로 생각하면 김윤식 경장 밖에 없다.

'문제는 경찰인 이 남자를 어떻게 잡아넣느냐는 건데… 와 이거 진짜 문제가 심각하구나. 추리는 다 끝난 거나 다름없는데….'

범인이 누군지는 알아냈는데 범인을 체포하는 데 문제가 있다.

정황증거가 김윤식 경장을 가리키고 있는 것뿐이지… 확실한 물증이 없다.

이쪽은 확실한 물증도 못 잡았는데 상대는 민증을 요구하니 과거에서의 탐정 행동도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때 시현이 류하리에게 괜찮다고 눈짓하는 게 아닌가?

‘응? 대체 뭐하려는 거지?’

류하리는 시현이 무슨 짓을 하나 싶어서 지켜보았다.

설마 아무리 준비성이 철저한 시현이래도 과거용 주민등록증 같은 것도 가지고 다닐 리는 없을 텐데?

그때 시현이 품에서 꺼낸 것은 모든 이들을 놀라게 할 만한 것이었다.

* * *

“신분증 말이지요? 그렇지 않아도 보여드릴게 있었지요.”

“응?”

시현은 신분증대신 '만능 교섭기'를 꺼냈다.

그러니까 권총 말이다.

“어?”

-탕!

시현은 하늘에 총을 한 발 쏘아서 이게 장난감 총이 아님을 보여주고 경찰의 목에 권총을 겨눴다.

“켁!? 지금 무슨 짓 하는 거예요?”

류하리는 경찰에게 총을 겨누는 시현을 보며 까무러칠 뻔 했다.

이제 기어이 이런 짓까지 벌이나!?

그런데….

“'나와라! 데드맨 만능 추리도구~!' 입니다.”

“풉.”

시현의 말에 실소가 나와서 김이 빠졌다.

‘썰렁한 개근데 웃겨서 빈정 상해’

류하리는 빈정이 상해서 시현에게 따지고 들었다.

“아까 전엔 만능 교섭기라면서요?”

“워낙 다용도 멀티툴이라서요.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요.”

시현은 그리 말하며 방금 총탄을 발사해서 뜨끈해진 총열을 경찰의 목에 쑤셔 박았다.

“으아아악. 뭐, 뭐하는 거야 당신들!?”

“자자. 움직이지 마시지요. 잘못 움직이면 '데드맨 만능 구멍뚫기'가 당신의 몸에 구멍을 뚫을 지도 모르니까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경찰의 허리띠를 풀고 등짝의 옷을 들어보였다.

과연 등짝 쪽에 손톱에 긁힌 흔적이 있었다.

옷 위로 긁혀서 피부가 찢어지진 않았지만 누군가가 옷 위로 손톱으로 할퀸 흔적이다.

“이 상처는 뭡니까?”

“으….”

“말 해봐요. 어서? 아니면 총알 맛을 보고 시작할까요?”

“이거는 그냥 긁힌 거야!”

“간격이 사람 손가락 간격인 것 같은데요? 사진기 가져와요 사진기.”

시현은 그리 말하고 경찰 수갑을 빼앗아 그걸로 오히려 김윤식 경장을 묶어버렸다.

“자 여러분. 사진기 있습니까?”

“지, 집에.”

피해자의 남편, 이 씨가 자신의 집을 가리켰지만 또 다른 사람이 손을 들었다.

“아 이미 가지고 왔어요.”

칠순 잔치 때 쓰기 위해서인지 한 사람이 낡은 미놀타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필름은 있군요. 흠, 좋아요.”

시현은 카메라를 받아서 경찰 김윤식 경장의 몸에 있는 긁힌 상처와 피해자의 시체를 찍어서 증거를 남겼다.

“……”

마을사람들은 시현이 ‘데드맨 만능 교섭기’를 꺼낸 시점 이후로 다들 잠잠해졌다.

“저, 저기 당신들 대체 뭡니까?”

마을 이장이 책임지고 물어보았는데 태도가 공손하기 그지없다.

만능 교섭기의 위력이 아주 절륜하다.

“아 저기, 그게….”

류하리가 변명에 궁해서 어버버 하는데 시현은 과연 입만 벌리면 거짓말이 술술 나오는지 잽싸게 말을 꺼냈다.

“월성 댁은… 저희 고객님의 잃어버린 딸일지도 모르는 분이었습니다.”

“네?!”

“엑?!”

모두들 놀라워했지 의심하지 않는다.

월성 무당 댁의 나이를 생각해보면 그녀의 어린 시절은 영유아 납치나 실종이 흔하던 때다.

높으신 분이 잃어버린 친자를 찾고 싶어 하고 그게 월성 무당 댁이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이렇게 허망하게 돌아가셨다면 어쨌건 진범을 잡아서 데려가야 고객만족에 좋지 않겠습니까? 고객님께서 손수 고문하실 수 있게?”

“히익?!”

김윤식 경장은 고문이라는 말에 기겁했다.

생각해보면 어떤 미친놈들이 경찰에게 총을 겨누나?

그가 보기에 시현과 류하리는 이미 답이 없는 완전 미친놈이다.

“내, 내가 안 죽였어!”

“그럼 등의 상처는 뭡니까? 아 참고로 지금 몰라서 물어보는 게 아니라 저는 이미 당신이 범인이라고 확신하고 있어요. 지금 물어보는 건 얼마나 개 떡 같은 변명을 하나 들어보려고 하는 겁니다.”

네가 뭐라고 변명해도 상관없다.

나는 너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시현은 지금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류하리는 시현이 경찰을 협박하는 걸 보며 기겁했다.

‘이래도 되나?’

그녀의 안의 윤리가, 그리고 게임마스터가 말하지 않고 있는 이 게임의 행방이 걱정되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데드맨3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