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10화 (110/269)

제110화

데드맨 인 원더랜드 #6

그런 시현의 압박 때문일까?

김윤식 경장은 결국 말문을 열고 말았다.

“그, 그래! 내가 죽였어. 아, 아니… 죽이려고 한 게 아니야! 나는 그냥 남편과 싸웠다니까 더 다치게 하면 그걸 핑계로 이혼하고 내게 오지 않을까 하고….”

“아.”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 말을 듣고 혀를 찼다.

“그러니까 당신은 그녀를 죽이려고 한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남편과 갈라서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 그래! 남편이 속 시원하게 때려주면 그걸 빌미로 위자료 받고 이혼할 수 있겠는데 저 고자새끼가 절대로 이혼 안 해준다고 버틴다지 뭐야!”

“뭐 고자새끼?! 이 후레자식이 지금 말 다했어!?”

“하! 웃기시네. 나만 한 줄 아냐? 문턱 넘을 힘 있는 놈들은 누구라도! 영감탱이들이라도 다 했을 걸? 오늘 칠순 잔치 한 영감탱이도 네 마누라랑 굴렀을 거다!”

“닥쳐!”

이 씨가 경찰에게 달려들려고 하지 류하리가 그를 제지했다.

“하여튼 난 죽이려는 마음은 없었어! 단지…. 좀 더 부상을 입히려고 했는데 등허리로 툭 밀었던 게 그만….”

그러니까 김윤식은 월성 무당 댁을 죽이려고 한 게 아니라 남편과 그녀를 갈라서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 * *

월성 무당 댁은 이 첩첩산중의 산골에서는 보기 힘든 젊고 예쁜 30대 초반의 여성으로 본인 또한 자신에 대한 남들의 갈망을 즐기는 성격이었다.

그런 그녀의 남편은 성적으로 원활하지 못한 50대 후반의 이 씨.

그녀는 이 씨를 놀리기라도 하듯 마을 사람들에게 추파를 던졌고 그 때문에 마을 아주머니들에게는 불여우 대접을 받으며 경원시 되었다.

원래라면 어떻게든 실력행사에 나섰겠지만 신기가 있는 무당이라는 소리에 사람들이 미신을 두려워하면서 함부로 대하지 못하고 그저 마을 행사에서 무시하는 게 고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 씨는 월성 무당 댁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또한 집착하고 있어서 그녀가 대놓고 불륜을 저질러도 절대로 이혼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점이 그녀의 불륜 상대들을 불타오르게 했다.

김윤식 경장은 그녀에게 이혼하고 자신과 살자고 하는 많은 불륜 상대 중 한 명이었고 그 또한 남편 이 씨와 마찬가지로 그녀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불륜 상대에게 으레 해주는 말에 혹해서, 그녀에게 약간 더 부상을 입히면 가정법원에서 강제로 이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 나름대로는 살짝 부상을 입히려고 손으로 밀지 않고 등으로 그냥 가볍게 툭 치듯 민 것인데 운 나쁘게 배수로로 떨어지면서 그녀가 죽어버린 것이다.

* * *

“죽일 마음은 없었어! 진짜야….”

“흐음….”

시현은 그 말을 듣고 궁리했다.

‘아 이게 참… 애매하구나.’

원래대로라면 이 경찰은 피해자의 남편인 이 씨에게 죄를 덮어씌우고 자신은 빠져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시현과 류하리가 개입한 시점에서 그는 그저 과실치사로 사람을 죽인 것에 불과하다.

물론 시체를 방치하고 사건을 은폐하려 한 죄를 짓긴 했지만 그 정도야 자기 보호를 위한 긴급 대피행동의 범주 안에 든다.

그가 저지르지 않은, 앞으로 저질렀을 지도 모르는 죄로 처벌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다.

지은 죄로만 처벌해야지.

그리고 그건 경찰과 사법의 영역이었다.

“경찰에 신고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저희가 데려갈까요?”

“어….”

류하리는 시현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물어보며 자신에게 손짓하는 걸 보았다.

‘굿 캅 배드 캅 전략인가.’

즉 류하리보고 좋은 경찰 역할을 하라 이거다.

류하리는 즉시 시현의 애드리브에 응했다.

“아니 잠깐만요. 지금 여기서 경찰을 납치해가면 여기 마을 사람들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을까요?”

“아 그렇군요. 흠.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는 없지. 게다가 생각해보니 이분이랑은 또 계약을 했었지요?”

“네. 여기서는 경찰에 넘기는 게….”

“그럼 강원도 화천이니까 춘천경찰청에 연락을 해야 겠군요. 마을 분들에게는….”

시현이 그리 말하며 일부러 총을 부주의하게 드는 척 하고 총구를 사람들에게 돌리자 다들 히익하고 놀라서 엎드렸다.

“마을 분들에게는 부디 방금 찍은 사진과 증거, 그리고 증언을 부탁드립니다. 아 제가 명함 드렸던 분들은 명함 돌려주시죠.”

“…….”

“어서.”

시현이 웃으면서 ‘데드맨 만능 교섭기’를 보여주자 다들 시현에게 명함을 돌려주었다.

학생 정성봉도 시현에게 명함을 돌려주었다.

명함을 회수한 시현은 경찰차의 무전기로 춘천 경찰서에 연락을 해서 그들을 불러들였다.

“자 그럼… 정산을 해주시겠습니까?”

시현은 피해자의 남편 이 씨에게 정산을 요구했다.

“정산?”

“네. 진범을 잡아줘서 만족했으니 정산하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하. 아내는 죽고 난 다시 노총각, 아니 그보다 더 못한 홀아비 신세가 되었는데… 만족했느냐고?”

원래대로라면 제일 먼저 누명을 쓰고 잡혀갔을 사람인데 역시 선제적으로 구제해 주니 별로 만족스럽지 않은 듯하다.

“그래도 아내분의 죽음의 비밀을 만천하에 밝히지 않았습니까? 아내분도 이정도면… 만족하실 겁니다.”

“젠장. 죽어서까지 내게서 벗어나려고 했나. 이 여자는… 알겠어, 정산하겠다.”

“예 감사합니다. 고객님께서 만족하신 것으로 알겠습니다.”

시현은 이 씨에게 수명을 정산 받고 물러났다.

마을사람들은 여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총을 휘두르는 시현이 그들의 눈앞에 있으니 당연히 다들 두려워한다.

“그럼 저희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되시길.”

시현은 그리 말하고 마을사람들을 뒤로 한 채 걸어 나오다 멈춰 섰다.

어느새 짙은 안개가 그와 류하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좋아, 잘 해결되었군요.”

“잘?”

류하리는 그 말을 듣고 실소했다.

“경찰을 총으로 협박했잖아요? 빼도 박도 못할 증거로 옭아매는 게 낫지 않았을 까요?”

“…일단 우리 환경을 생각해보세요.”

“네?”

“사실 그 여성의 손톱을 조사하는 것도 가능하고 아마 사망 전 성관계를 맺었는지를 조사하면 화간의 흔적도 있었을 겁니다. 남편이 성불구였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져서 제대로 조사했으면 결국 다 밝혀질 문제였지요. 이번 사건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진범을 찾는 추리력에 있는 게 아니라… 진범을 찾은 뒤 어떻게 하면 그가 처벌받을 만한 환경을 조성하는 가 였고…. 그건 사실 이미 해결한 겁니다.”

“이미 해결했다고요?”

“네. 류 경위님과 제가 추리를 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의심을 심어주어서 수사를 저 경찰이 마음대로 종결짓지 못하게 한 것만으로도 우리의 승리는 확정된 거였지요. 다만 그 승리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그 동안이 제게는 좀 치명적이어서 어쩔 수 없이 스킵을 한 겁니다.”

“…치명적이라고요?”

“네.”

시현은 한숨을 내쉬고 고백했다.

“저는 31일 밖에 못삽니다.”

* * *

류하리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예?!”

지금 뭐지? 시한부 선언?

류하리는 시현을 위 아래로 훑어보았다.

건강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몸이다.

그런데 31일만 살 수 있다니 무슨 소리야?

“매 순간순간 사람들에게서 수명을 양도 받으면 31일 분만 제 몫으로 챙기고… 제게 소중한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 쓰고 있지요.”

“네?!”

류하리는 그 순간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윽….”

뭐지?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 말이다.

* * *

‘타인을 위해서 수명을 벌어야 해. 하리야. 해줄 수 있겠니?’

그녀의 귓가에 기이한 목소리가 윙윙거리며 말하고 있었다.

분명히 들어본 목소리다.

그녀가 잘 알고 있는 목소리.

도저히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 * *

“….이런. 괜찮습니까?”

시현이 류하리에게 손을 대자 갑자기 두통이 씻은 듯 사라졌다.

“아, 헉헉. 괜찮아요. 그냥. 갑자기 현기증이….”

류하리는 그렇게 말하다 기억을 더듬었다.

“아 그래. 31일 밖에 못산다고 했지요?! 그런데 어째서 31일인가요? 너무 짧지 않나요?”

“타자기의 악마와 계약할 때 약속한 게 있거든요. 만약 계약할 대상이 없어서 내 수명이 31일 이하로 떨어지면 책임지고 타자기의 악마가 2주 안에 계약자를 구해줄 것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 계약자를 더 이상 구해내지 못할 경우 타자기의 악마는 지금까지 내게서 빼앗은 모든 것을 토해내고 자신의 진명을 나에게 가르쳐 준다.”

“맙소사.”

류하리는 시현의 말을 듣고 기겁했다.

그녀가 본 바….

이 타자기의 악마나 저 게임마스터.

이런 존재들이 가지는 힘은 대체 끝이 있는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것들은 너무나 손쉽게 인간들을 유린하고, 파괴할 수 있다.

그런 무지막지한 존재들을 상대로 시현은 고작 그 계약 하나 만을 믿고 타자기의 악마와 싸움을 벌여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데드맨…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저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해 31일 동안 계속해서 의뢰를 받아 해결하는 불사의 탐정.

그게 바로 시현의 정체였다.

“그럼 당신은 그 타자기의 악마와 싸우고 있는 중이로군요.”

“네.”

“그런데 누굴 살리기 위해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하고 있는 건가요?”

류하리가 그걸 물어보았다.

그러자 시현이 쓴 웃음을 지었다.

어딘가 허탈해 보이는 미소였다.

“…비밀입니다.”

“네?”

“사실 여기까지 말씀드린 것만으로도 저로서는 굉장히 위험한 다리를 건넌 겁니다. 하지만 류 경위님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말하는 수밖에 없군요.”

“그럼….”

“네. 만약 정상적으로 이 흐름에 끌려갔다면 우리가 한 추리, 우리가 한 말 때문에 사람들은 의문을 품고 저 경찰이 대충 수사를 종결하지 못하게 했을 겁니다. 그럼 그 수사가 흐르는 걸 보고, 또 그때 마다 증언이 필요해질 때, 증인이 필요해질 때 마다 불려나가겠지요. 그리고 당연히 그때마다 주민등록증도 요구받을 겁니다.”

“아….”

“사실 주민등록증은 보여주면 그들은 자연히 우리 나이대의, 별 문제없는 신분증을 보게 될 겁니다. 다만…. 그것은 제 수명을 갉아먹는 능력이고 저는 그 능력을 가급적 쓰고 싶지 않습니다.”

“…신분증을 조작할 수 있다고요?”

“네. 지금처럼 과거로 왔을 때나 그보다 훨씬 더 과거로 갔을 때도… 말이죠. 호패나 오가작통법 같은 것으로 통제할 때도 써먹을 수 있는 능력입니다.”

“…….”

“뭐 그런 능력도 없으면 이 일은 아예 성립하지도 않으니까요. 하지만 이 ‘데드맨 만능 교섭기’ 덕분에 그 능력으로 수명을 낭비할 필요 없이 빠르게 승부를 낼 수 있어서 좋았군요. 소모는 적었고 거둔 건 많으니… 승리에 한 발짝 더 다가갔군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안개 속을 걸어 나갔다.

승리에 한 발짝 더 다가갔다.

시현은 그렇게 말했지만 과연 골인지점은 어디일까?

아니 있기나 할까?

무한한 힘을 가진 타자기의 악마를 상대로 홀로 무모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그의 뒷모습이 너무나 작아보였다.

데드맨3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