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11화 (111/269)

제111화

데드맨 인 원더랜드 #7

시현과 류하리를 에워싸던 안개는 걷히고 어느새 그들의 앞에는 저 멀리… 화천 추리 테마 펜션이 보이고 있었다.

시현이 농수로에 처박았던 차들은 다시 원상복귀가 되어 있고 농수로 또한 멀쩡하다.

펜션에도 아무런 문제는 없어 보인다.

“돌아왔군요. 우리들의 시간으로.”

“…차도 다 멀쩡하군요.”

“네. 다행입니다. 뭐 돈이야 별 문제가 아니지만 물건이 아깝잖아요. 멀쩡한 것들을 부수는 게.”

“……”

류하리는 궁금해졌다.

대체 시현이 어떤 걸 짊어지고, 어떻게 살았는지 류하리로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왜 그 무거운 짐의 일부를 류하리에게는 말해주었는가?

“대체 왜, 그걸 제게 말하신 건가요? 그냥 계속 쭉 비밀로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제가 좀 징징거린다고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까진 없었잖아요?”

“아니요. 류 경위님은 어려운 사람을 절대로 그냥 보고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이십니다.”

“네?”

“그래서 제가 누구보다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걸 이해시키고자 한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에게 당하는 사람들에게 동정심을 느껴서 절 후려 패실 것 같아서. 하하하.”

“알겠어요. 휴우. 그런 사연이 있다면 당신에게 뭐라고 할 수가 없네요.”

류하리는 시현의 뒤를 따르다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과거가 바뀌는 건가요?”

“바뀔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요.”

“네? 뭐에요? 그건? 바뀌거나 안 바뀌거나 그게 제멋대로인가요?”

“그동안 쭉 봐왔는데 저것들에게도 원칙이 있습니다.”

“원칙이요?”

“네. 기본적으로 저것들은, 인간성에 열광하는 존재들이에요. 그들에게 인간은 최고의 오락거리지요.”

“하긴 그러니까 개입하고 그러는 거겠지요.”

“네. 그렇지만 저들은 또 자신들의 개입이 곧 인간을 파멸시킨다는 것도 잘 알고 있지요. 어린 아이들이 곤충 관찰일기를 쓰면서 살짝 몇 번 건드리기만 해도 곤충이 멍들고 죽어가는 것처럼 말이지요.”

“…….”

“그래서 인간에게 개입하는데 있어서 조건을 다양하게 세우고 자신들의 존재가 보편적인 인간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정하는 겁니다. 저것들에게 인류란 모두가 함께 갖고 노는 일종의 공유지 같은 느낌이지요. 여기에 어떤 놈이 너무 과하게 손을 대놔서 공유지가 훼손되면 저들은 그걸 다시 원상복구 시킵니다. 하지만 만약…. 이정도 변화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하면 바꿔진 버전을 유지하는 거지요.”

“맙소사.”

류하리는 그 말을 듣고 기겁했다.

즉 저놈들은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세계를 바꾸는 것도 너무나 쉽게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지간한 신화속의 신들보다도 더 강력한 힘이 아닌가?

달리 말하자면 시현은 그 정도로 강력한 존재를 상대로 스스로 31일의 시간제한을 걸고 그 제약의 힘으로 싸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악마가 계약자를 구해주지 못해서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저들의 구속에서 해방될 때까지.

이 얼마나 절망적인 싸움인가?

‘용케도 제정신을 유지하는 구나. 아니 그래서 제정신이 아닌 건가?’

류하리는 시현의 무시무시한 정신력에 감탄하다가 흠칫 놀랐다.

“잠깐만요. 그러면 경우에 따라서는 한류 탐정인지 뭔지 그 프로 그냥 계속 속행해서 찍을 수도 있겠군요?”

“아.”

시현도 거기에 생각이 미치고 혀를 찼다.

“부디 그러지 않기를 빌어야 겠군요.”

* * *

펜션에는 대학생들이 바비큐 파티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김춘석은 숯불에 바비큐를 구우면서 친구들을 불렀다.

“야. 숯 좀 더 가져와.”

“그래.”

“이 쓰레기 같은 놈들아. 너희들이 여자 친구랑 놀러 오는데 왜 날 불러?”

“그야 면허가 너밖에 없잖아.”

“알겠으니까 여자 친구들에게 좀 친구들 있으면 소개해달라고 해.”

“그럼 우리 여자 친구들에게 잘 보여라. 너 또 성질난다고 폭력 휘두르지 말고.”

“안 그랬어. 왜 너희들은 날 폭력적이라고 생각하냐?”

“넌 임마 기분 더러우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더라도 상대를 조질 녀석이야.”

“내가 그런 적 있어?”

“없지만 우리 꿈에서 그러더라고.”

“아니 이 자식들 어이가 없네. 너희들 꿈에서 일어난 일을 왜 나에게 덮어씌우는 데? 그리고 사내놈들이 왜 같은 꿈을 꿔? 너희들이 뭐 유비 관우 장비냐?”

시현과 류하리는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주눅들어있지 않군요. 어떻게 된 걸까요?”

“뭐 인간관계라는 건 상호 존중에서 나오는 거지요. 비록 없던 일이 되었지만 기시감 정도로는 남아있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꿈이나 기시감으로 ‘이 녀석 화나게 하면 큰일 나겠구나’라는 인식이 주어진다면 상호 존중이 되고 사이도 개선이 되겠지요.”

“악마에게 영혼을 팔고 사람을 해치려 했는데 이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끝나다니. 다행이긴 한데… 괜찮은가요?”

“결과적으로 게임마스터가 그에게 해준 건 없으니까요. 타인을 증오해서 악마에게 영혼을 팔긴 했지만 그래서 그 악마가 타인에게 뭔가 그럴싸한 걸 해준 건 없지 않습니까?”

“영혼을 건졌군요. 그런데 그럼 당신과 한 계약은 어떻게 되는 거죠? 보아하니 당사자들에겐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설마 계약이 무효화 되나요?”

“흠… 뭐 그렇진 않지요. 제 서비스로 이들이 확실히 구제받았으니까요.”

“정작 당사자들은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 같은데요.”

“이런 경우는 강제로 징수합니다.”

“그런 게 가능한가요?”

“고객만족 앙케이트를 돌리지 못하는 건 아쉽지만 아시잖습니까? 받아야 할 걸 받지 않으면 그동안 시현 탐정사무소를 이용해 준 다른 고객들에게 예의가 아니라는 걸? 결코 제가 수명을 빼앗는 데 혈안이 되어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고객만족을 위해서 눈물을 머금고, 징수할 건 징수하지요.”

“본인들이 모르는 채로 수명을 빼앗기는 건 좋을 것 같지 않은데요?”

“수명을 빼앗겼다고 전전긍긍하며 남은 생을 사는 것보다 모르는 게 더 낫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건 고객만족을 위한 행위지요.”

시현은 그리 말하고 눈을 금색으로 빛냈다.

“징수했습니다.”

“아….”

그때 대학생들이 자신들에게 다가온 시현과 류하리를 발견했다.

“어, 안녕하세요! 두 분 놀러 오셨나봐요?”

“괜찮으면 같이 하시겠어요?”

“아뇨 괜찮습니다. 저희는 곧 가봐야 할 것 같아서요.”

시현과 류하리는 자신들에게 권유하는 대학생들의 제안을 사양하고펜션 관리동 쪽으로 향했다.

* * *

펜션 관리동에서는 방송작가 유정미와 촬영감독 배준수가 펜션 주인이자 추리 소설작가인 정성봉의 인터뷰를 따고 있었다.

‘원래 한류탐정이라는 이상한 기획 때문에 온 거 아닌가? 아니 뭐 그 방송 나오면 나도 경을 치니까 안했으면 좋겠지만….’

류하리는 방송 콘셉트가 바뀌어 있는 걸 보며 약간 아쉬워했다.

시현이 부끄러워하는 걸 보고 싶었는데.

펜션의 주인이자 추리소설가인 정성봉에게서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인터뷰의 태도를 보아하니 꽤 유명 작가가 된 모양이다.

“뱀파이어 나이트 2부나 쓰라고 사람들이 요구했을 것 같은데 어째서 갑자기 이런 정통파 탐정이 나오는 추리 소설을 쓰게 되셨나요?”

“아 그게 말이죠. 흠…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어린 시절에 전 진짜로 탐정이 나오는 살인 사건에 휘말린 적이 있었어요.”

“네? 그게 사실인가요?”

“네. 그런데 그때 그 탐정이 어찌나 거칠고 더럽고 치사하던지. 그래서 제가 원하는 이상의 탐정을 그려보자고 하고 소설을 쓰게 된 것 같아요. 정통파 탐정 소설 말이지요.”

“아 그렇군요. 그래서 이 소설이….”

“네. 미녀 탐정 시리즈, 이신화와 막장 조수의 이야기지요.”

“…….”

시현과 류하리는 그런 인터뷰를 들으면서 펜션 관리동 입구에서 팔고 있는 소설 ‘미녀탐정 시리즈’가 진열되어 있기에 그걸 대충 훑어보았다.

“흐음. 탐정이 여자군요. 그리고 뻑하면 총질 칼질 해대는 폭력의존증의 미치광이 조수가 하나.”

“풉. 아마 사춘기 시절에 참 충격적인 경험 때문인 것 같지요?”

“으음. 왜 내가 조수가… 나도 나름 두뇌파인데.”

시현은 약간 억울해 하며 책을 덮었다.

“그날 가게에서 잠깐 빌렸던 빵이랑 물 값은 돌려줘야 할 것 같군요.”

그는 무인 판매함에 돈을 넣고 책을 받아갔다.

“그렇게 말하는 건 작가에게 상당히 실례인 것 같은데요? 책의 가치 때문이 아니라 선심으로 사준다니 제가 작가라면 모욕당한 기분일 거예요.”

“물론 책값보다 훨씬 많이 넣었죠. 그 부분을 말하는 겁니다.”

그때 방송작가 유정미가 시현과 류하리를 발견했다.

“아 왔어요? 당신들?”

“네.”

“어. 이 사람들은?”

정성봉은 시현과 류하리를 보며 의아해했다.

어딘가 기시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야 그렇겠지.

어린 시절 그의 앞에 나타났던 탐정 남녀가 바로 시현과 류하리 아닌가?

그러나 정성봉 입장에서는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다.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을 리는 없고, 설령 선명하게 기억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지금의 시현과 그때의 시현이 동일인물이라고 생각하긴 힘들 것이다.

“이들이 바로 그 탐정입니까?”

정성봉은 방송작가 유정미에게 물어보았다.

“네. 작가님 소설인 미녀탐정 시리즈와 비슷하지요? 원래는 탐정 소설가와 진짜 탐정의 대담이라는 기획을 세웠는데….”

“죄송하지만 저는 그런 방송은 사양하겠습니다.”

이제 계약자와 만나서 계약도 끝마친 이상 유정미에게 끌려 다닐 필요가 없다.

시현은 유정미의 방송 제안을 거절했다.

“아니 그런데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찍으시는 건 어때요?”

“뭐 여기까지 오면서 잠깐 드라이브로 기분 전환은 되었군요.”

“그렇죠? 그런 김에 기분전환을 더 해서 대담도 하고 방송분량도 찍으면….”

“이미 좋게 기분전환이 되었는데 더 기분전환을 하면 나빠지지 않겠습니까? 고로 돌아가지요.”

시현은 그렇게 거부하면서 금색으로 눈을 빛냈다.

“…흠.”

“징수했군요?”

류하리가 물어보았다.

“네. 그럼 받을 건 다 받았군요. 저희는 이제 그만 돌아갈까요? 아니면 이 펜션에서 하루 지내고 싶으십니까?”

“사양하죠. 피곤하니까 돌아가고 싶어요. 집에서 좀 씻고 제대로 된 걸 먹고 자고 싶군요.”

류하리는 그리 말하고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해보았다.

그녀의 체감 시간은 한나절 정도 지난 것 같지만 시계상으로는 펜션에 도착한지 이제 겨우 40분이 지나 있었다.

“…….”

* * *

“크윽!”

게임마스터는 치욕으로 몸을 떨고 있었다.

“흐음. 완패로군? 이건.”

미카엘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흥미 있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아니 죄송할 것까지야. 네가 이겼으면 오히려 더 놀랐을 거다. 너에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으니까 죄송해할 필요 없어.”

미카엘은 그리 말하고 의자에 앉았다.

게임마스터는 미카엘의 경호원중 하나인 작은 체구의 여성이었다.

“정말 재미있는 녀석이야. 데드맨은. 타자기 녀석, 정말 좋은 게 걸렸어. 부럽다. 젠장. 내게 아니지만 데드맨은 참 재밌는 장난감이란 말야?”

그렇게 말하던 미카엘이 손으로 턱을 괴고 웃었다.

“이번 데드맨은 부디 빨리 망가지지 않고 오래오래 갔으면 좋겠는데….”

데드맨31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