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12화 (112/269)

제112화

하베스터 #1

시현 탐정 사무실….

-타다다닥.

타자기가 혼자서 종이를 때려대고 있었다.

[그녀에게 말해버렸군요. 다는 아니지만.]

“뭐 경찰이니까. 어느 정도 양해를 구하려면 이쪽 사정도 이야기해야지. 그녀는 내가 다른 이들에게 너무 야박하게 구는 걸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테니까.”

시현은 그리 말하고 ‘데드맨 만능 교섭기’에 기름칠을 했다.

“그래서 새 계약자는 구하고 있나?”

[…기다려보십시오. 세상에 억울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많으니까.]

“뭐 잘 해보라고. 설마 이 정도에 허망하게 웩 하고 토해내진 않겠지? 토해내면 나야 고맙지.”

타자기의 악마가 계약자를 구하지 못하면 시현은 해방된다. 이때 계약자는 그 매개체인 타자기로부터 반경 50km 이내에 존재해야 한다.

왜냐면 북한 같은데서 계약자를 구해놓고 거기서 만나라고 하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다.

즉 현재 타자기가 위치한 마포구를 중심으로 서울의 북서쪽에서 계약자를 구해야한다.

매달 최소 한 명씩, 시현이 빨리 처리하면 더욱 더 빨리 계약자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이 계약자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확실히 생명을 기꺼이 걸 수 있을 만큼 억울한 사정이 있는 사람.

다급하고 아쉬워서 계약에 응할 사람들만이 계약자로서 적합성을 갖는다.

서울 마포구 반경 50km 내에서 그런 사람들을 매 달 한 명 이상씩 공급하는 건 시공을 초월하는 악마라 해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타자기의 악마도 호구는 아니다.

타자기의 악마는 반경 50km이상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들도 계약자로서 적합하다 하면 그들이 시현을 찾아오게 만들어서 계약을 성사시킨다.

그게 아니면 시현을 이동시켜서 계약자를 만나게 한다.

하지만 악마가 그런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정도로… 시현이 타자기의 악마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승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이 있기에 시현은 오늘도 데드맨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아 그러고 보니 슬슬 2분기 결산이군. 간만에 그럼 인원 충원을 하러 가볼까?”

시현은 그리 생각하고 류하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한동안 사무실을 비울 테니까 사무실로 바로 오지 말고 연락 있으면 메시지나 전화를 하라는 연락이었다.

“그럼 다녀올 테니까 계약자 좀 열심히 구해봐.”

[다녀오시지요.]

타자기의 악마는 그렇게 글씨를 쳐냈지만 시현은 읽지도 않고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 * *

시현이 한창 사무실을 잠그고 계단을 내려갈 때….

웬 여성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서울중앙경찰의 성신아 경위였다.

시현은 그녀를 알아보았지만 일부러 모르는 체 했다.

그때 그녀가 먼저 시현에게 말을 걸어왔다.

“응? 아 혹시 당신이 그 탐정인가요?”

“네 시현 탐정사무소의 소장 시현입니다. 실례지만 무슨 일이신지?”

“서울중앙의 성신아 경위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신분증을 들이밀었다.

“최근 당신 사무실에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여성이 있지요?”

“아 네.”

류하리는 보고서에 자신을 인턴으로 기재한 모양이었다.

“그녀는 사실 마포경찰서 정보과 소속 류하리 경위랍니다.”

“…….”

시현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성신아는 분명히 류하리가 종종 말하던, 짜증나게 하는 동기임에 틀림없다.

원래는 류하리와 친한 사이였지만 언제부터인가 갑자기 사이가 틀어져서 지금은 철천지원수인양 구는 사이라고 했다.

즉 지금 성신아는 류하리의 일을 방해하겠다는 일념 하나 때문에 류하리의 정체를 시현에게 고자질한 것이다.

“별로 놀라질 않는 군요?”

“아니요. 너무 놀라운 말이라서 좀. 그 젊은 나이에 경위면 간부후보생이나 경찰대학 출신일 텐데 왜 굳이 저희 사무실에 인턴으로?”

“당신이 경찰들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고 해서 벼르고 있으니까요. 잠입수사중인 거지요.”

“흐음. 그럼 왜 그걸 제게 말씀해주시는 겁니까?”

“…그야 저는 당신의 팬이니까요. 호호호. 아니 뭐 경찰 높으신 분들이 잘못하면 좀 잘리고 옷 벗고 그래야 저희도 승진하지. 안 그래요?”

성신아는 그렇게 말했다가 시현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한 걸 보고 정색했다.

‘속물적인 반응은 별로 안 좋아하네. 그럼 방향선회!’

“그렇다기 보다는 음 순수하게 사회정의 실현에도 뜻이 있지요. 그래서 당신이 그 불여우 같은 것에게 걸려서 큰일 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

“네. 그렇군요.”

시현은 실소했다.

성신아가 말하는 걸 요약해 보자면 사회 정의를 위해서 같은 경찰이지만 알려주지 않을 수 없다. 뭐 그런 소리인 것 같은데 굳이 류하리를 지목할 때 ‘불여우’라는 비하적인 표현을 쓰다니….

누가 보더라도 류하리에게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러는 거 아닌가.

“감사합니다. 사실 그렇지 않아도 좀 수상하다고 여기고 있었지요.”

“그렇지요?”

“성신아 경위님은 참으로 고결하시군요. 경찰인데도 경찰의 그릇된 점을 바로잡으려 하시다니.”

“…아, 아뇨. 그렇게까지는.”

성신아는 자신을 비행기 태워주는 시현의 말에 경계했다.

류하리가 경찰이라는 걸 알려주었는데도 크게 놀라는 기색 없이 오히려 그녀에게 관심을 보이는 게 이상하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연락처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연락처요?”

“네. 류하리 경위가 잠입수사를 하고 있다고 해서 바로 내친다면 오히려 화를 부르게 될 테니까… 몰래몰래 잘 구슬려가면서 다루어야 할 텐데 그걸 위해서는 성신아 경위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음… 그건 좀 곤란한데요.”

성신아는 류하리의 일을 방해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지 괜히 자신까지 말려들고 싶진 않았다.

‘네놈이 나중에 경찰에 조져질 때 네 전화기에 내 연락처가 들어있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전화번호는 절대 안 돼!’

성신아가 그런 의도를 가지고 말했지만 그러자 시현이 노골적으로 실망한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그렇습니까. 으음. 아쉽군요.”

“아 네.”

“뭐 혹시 제가 경찰에 조사받을 때 제 휴대폰에 연락처가 있으면 곤란해서라던가 그런 건 아니겠지요?”

“…….”

시현은 정곡을 찔러왔다.

성신아는 잠깐 말문이 막혔지만 손 사레를 쳤다.

“아,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아무리 경찰이 막장이래도 그런 걸로는….”

“그럼 연락처를 주시겠습니까?”

“…으음.”

성신아는 마지못해서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성신아 경위님. 그럼 종종 자주 연락드리도록 하지요. 혹시 식사는 뭐 못하시는 거 있는 지요?”

“네?”

“좋아하는 음식이나 필요하신 선물 같은 것도 좋습니다.”

“아, 고, 곤란한데요.”

성신아는 자신을 매수하려는 기미를 보이는 시현에게 당황했다.

공직자인 그녀가 조사대상인 시현에게 연락처를 건네준 것은 물론 금품이나 향응을 수수 받으면 어떻게 될까?

큰일 난다.

그런데 시현은 갑자기 자신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성신아에게 건네주는 게 아닌가?

“이, 이건?”

“일단 받으시지요. 제 작은 성의입니다.”

“…….”

성신아가 손을 펴보니 그녀의 손바닥 안에 젤리 캔디 봉투가 있었다.

“…어?”

성신아는 자신의 손바닥에 들려진 젤리 캔디를 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정도면 공무원의 직업윤리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괜찮겠지요?”

“당신도 사탕을 남들에게 자주 주나 보군요?”

“네. 자주 가져가기도 하고요. 그런데 당신도?”

“류하리랑 좀 닮았네요.”

시현은 쓴 웃음을 지었다.

“그런가요? 그럼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사무실 비우시고요?”

“뭐 소장이라고 말하지만 저희 탐정 사무소는 실무자가 저밖에 없으니까요. 누군가는 필드를 뛰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걸어가던 시현이 생각난 듯 뒤돌아섰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무단으로 제 사무실에 침입하시면 안 됩니다.”

“네? 설마요. 경찰인 제가 그런 일을 하겠어요?”

성신아는 자신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시현에게 약간 화가 났다.

‘아무리 경찰에게 밉보였다고 해도 그렇지 내가 그렇게 막장 경찰로 보이나? 그런 짓을 할 리가… 응? 왜 표정이 저래? 마치 경찰들이 무단으로 뚫고 들어온 것처럼?’

성신아는 시현의 표정을 보고 의아함을 느꼈다.

* * *

KR신용정보, 정대식 팀장은 불량 채권들을 모으고 있었다.

대부분의 채권자들은 신용정보회사에 넘겨지면 결국은 돈을 토해내고 만다.

신용정보회사에 찍혀서 신용불량자가 되면 은행 계좌도 압류당하고 다른 계좌도 만들기 힘들어진다.

현대 사회, 그것도 한국처럼 캐시리스가 보편화된 사회에서 은행 계좌를 묶이는 건 치명적인 타격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을 갚지 않는 불량 채권자들이 나타난다.

이들은 아예 실종되었거나 노숙자로 전락했거나 그게 아니면 감방에 들어갔다던가 해서 뭔가 정상적인 경제활동의 영위가 불가능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채권을 분기별로 모으는데 그 양이 상당하다.

“이야. 정 팀장. 대단한데? 이번에도 그렇게 많이 챙긴 거야? 거의 소각직전인 채권들을?”

다른 신용정보사들에서도 불량 채권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불량 채권들은 가지고 있어봤자 오히려 관리에만 심력이 더 많이 소모되기에 다들 꺼려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정대식은 그걸 모아들고 있었다.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헤헤.”

“아 들었어. 들었어. 그 탐정이지?”

“네.”

“거의 폐지 가격에 넘기고 있는데 흠. 무슨 수를 쓰는지 몰라도 이 채권자들에게 정말 돈을 받을 수 있다면 그 친구는 참 땅 짚고 헤엄치듯 돈을 벌고 있겠구먼. 엄청난데? 아직 젊은 나이라면서?”

“…….”

“무슨 재주로 어떻게 이 불량 채권들을 가져가는지 모르겠지만 한 번 그 노하우를 배워보고 싶은데. 혹시 다리 좀 놔줄 수 있나?”

그러니까 상대방의 업무상 비밀을 알아내서 어떻게 불량 채권으로 돈을 버는지 그 비밀을 알고 싶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누가 자기네 영업 비밀을 순순히 알려주겠는가?

그걸 알면 다 따라 해서 순식간에 레드 오션이 될 만한 영업 비밀을?

“아마, 돈이 되어서 이걸 하고 있는 건 아닐 겁니다. 하하.”

“음? 그럼 돈 말고 뭣 때문에?”

“그, 글쎄요. 저도 잘 모르죠. 알 수 도 없고 알고 싶지도 않고.”

“?”

“아주 위험한 녀석이거든요.”

“위험하다고? 뭐 폭력배인가?”

“아뇨. 폭력배면 차라리 낫죠. 폭력배보다 훨씬 더 위험한 놈입니다.”

정대식이 그렇게 말할 때였다.

갑자기 그의 몸에 진동이 울렸다.

화들짝 놀란 그가 휴대폰을 들어보니… 시현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지금 어디? 영등포인가? 곧 갈게.’

“히익!”

정대식은 소름 돋아서 휴대폰을 떨어뜨릴 뻔했다가 겨우겨우 주웠다.

‘아니 대체 내 위치는 어떻게 아는 거야? 뭐 추적 장치가 붙었나? 옷이랑 핸드폰이랑 다 바꿨는데도… 혹시 내 몸에 칩이라도 박았나?’

정대식은 공포심에 몸을 떨었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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