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13화 (113/269)

제113화

하베스터 #2

류하리는 경찰 본연의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

여성전용 피트니스의 탈의실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고 그 영상을 팔아서 수익을 올린 이가 적발되었다.

문제는 영상의 판매대금은 비트 코인, 영상을 거래하는 건 텔레그램을 사용해서 경찰들의 자료가 미비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류하리는 직접 영상을 보고 카메라를 누가 설치하고 회수했는지 영상의 시간대를 조사해서 회원들 목록과 대조하는 작업을 해야 했다.

“으아! 짜증나! 대체 왜 이런 변태들이 끊이질 않는 거야? 차라리 정식 포르노면 몰라! 이런….”

류하리는 영상을 빨리 감기로 넘기며 등장하는 사람들의 시간대를 확인해보고 출석 명부와 대조했다.

출석명부는 자동으로 회원카드로 대조해서 나오게 되어있어서 범인은 금방 특정이 되었다.

‘하지만 보고는 좀 늦췄다 해야지. 너무 빨리 끝내면 쉬운 일인지 안단 말이지?’

류하리는 그런 생각을 하다 반성했다.

‘아, 내가 시현 그 사람에게 많이 물들었구나.’

탐정인 시현은 일을 너무너무 빠르고 쉽게 해결할 경우 고용주 측이 오히려 돈 주기를 아까워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적당히 뜸을 들이곤 했는데 류하리도 어느새 그런 버릇이 들어서 상사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뭐 그런데 어차피 여자들 알몸영상을 검사하면서 프라이버시 침해를 안 할 한 사람은 여성 경찰인 나고, 내가 또 이런 건 번개같이 체크하니까. 내 가치를 높이 평가 받는 건 나쁠 게 없지. 그러고 보니 이사람 뭐하지?’

류하리는 궁금해져서 시현에게 문자를 넣어보았다.

그러자 시현의 답장이 왔다.

[채권 회수합니다.]

[음? 채권회수? 어떻게 하나요 그건?]

[흥미 있으십니까?]

[네. 여기 일 끝내고 그쪽으로 가도 될까요?]

[사무실이 아니라 밖에 나와 있습니다. 문래역 쪽으로 오시면 픽업 가겠습니다.]

시현의 답장을 본 류하리는 얼른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 * *

문래역 출구에 도착한 류하리에게 차량 한 대가 와서 문을 열었다.

커다란 밴 차량에 시현이 누가 봐도 불량해 보이는 양아치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머리를 쓸어 올리고 금목걸이를 치렁치렁 걸고 있는 그 모습에 류하리는 실소했다.

“뭐에요 그건?”

“채권 회수용 코스튬이죠.”

“효과 있어요?”

“뭐 나름 대로는요.”

“그래서 이건가요?”

류하리는 조수석에 앉아서 채권들을 살펴보았다.

“신용정보회사에서도 포기한 것들이군요?”

“네. 신용정보회사에서도 자취를 감춰서 찾기 힘든 사람들입니다.”

“…당신이 사람 찾는 데 특화되었다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이거에도 통용되나요?”

시현의 능력은 일단 육안으로 한 번 사람을 보면 그를 쉽게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초면이라면? 그 경우에도 찾을 수 있는가?

“뭐 어쨌건 명색이 탐정이니까요. 탐정의 주요 업무가 실종된 사람 찾기, 돈 받아 오기 등이 있는데 그걸 못해서야, 어디 가서 수완 좋은 탐정이라고 자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떻게 찾나요?”

“그건 지금부터 보여드리지요. 우 선 이 타깃 특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특성이요?”

“네. 보통 사람들은 통장을 막으면 대부분 항복합니다. 신용불량자가 되면 취업도 잘 안되고 통장이 막히면 캐시리스 시대인 요즘에 살아가기 힘드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복하지 않는 이들이 있는데… 보통 세 부류로 나눕니다.”

“세 부류라면?”

“우선 제일 위에 있는 놈들은 대포 통장과 타인 명의 등을 이용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놈들입니다. 그런 놈들은 자기계좌가 묶여도 남의 계좌를 쓰기 때문에 크게 불편함을 못 느끼는 녀석들이죠.”

“음… 남의 계좌를 쓴다고요?”

“네. 보통 보이스 피싱이나 중고거래 사기에 대포 통장을 쓰는 놈들이 많은데 사기에 쓰지 않고 자기네들이 쓰는 건 멍청한 짓이지요. 대포통장의 가치가 한 구좌 당 20만 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는 데 이놈들은 그 20만 원짜리로 그 이상 벌어야만 이득이거든요. 그런데 자신들이 개인용도로 쓰고 있다는 건….”

“사기를 주도하는 쪽은 아니고 대포 통장을 모으는 모집책이겠군요.”

류하리는 그 점을 지목했다.

사기를 치기 위해 대포 통장을 모아오라는 놈은 상당히 많은 돈을 만지고 있을 터, 고작 사채 빚이나 몇몇 푼돈 때문에 신용이 정지되고 그걸 우회하기 위해 대포통장을 낭비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푼돈이 궁할 때야 술값, 유흥비, 밥값에 연연하지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되면 집과 차에 관심이 가기 마련인데 집이나 차는 신용이 회복되어 있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그러니 사기를 주도하는 놈이라면 자신의 신용 또한 관리해야 한다.

결국 사적인 용도로 대포 통장을 쓰는 놈은 사기 조직에서 하부층, 모집책 같은 놈들임에 분명하다.

“네 맞습니다. 똑똑하시군요.”

“경찰이라니까요. 제게 있어서 이건 당연히 알아야 하는 일이라고요. 오히려 제가 당신을 칭찬해야지요.”

“하하하. 칭찬해주실 건가요?”

“…됐어요. 그래서 그건 어떻게 잡으실 건데요?”

“당연히 함정 수사죠.”

“설마 대포 통장을 팔겠다고 접근하는 거예요?”

“아니요. 이 녀석들은 대포 통장을 모집하는 놈들입니다. 스팸 메일로 사람들에게 통장과 블로그를 사겠다고 접근해서 돈은 안주고 개인정보만 빼내는 놈들이죠.”

“아. 그런 놈들이군요.”

“네. 그런 놈들은 제가 계좌를 팔겠다고 해도 직접 만나지 않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서 잡으려는 거예요?”

“반대로 제가 대포 통장을 사는 쪽이 되면 됩니다. 아니면 스팸 메일 프로그램을 판다거나, 스팸 메일을 뿌려 대서 얻어낸 개인 정보를 사겠다는 쪽도 괜찮지요. 돈을 이쪽에서 주기 때문에 만나는 때와 장소를 지정할 수 있습니다”

“흠 그렇게 주도권을 잡는 군요. 그런데….”

류하리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런 백주대낮에 거래를 해요?”

“네. 굳이 수상하게 밤에 할 필요 없잖습니까? 아 마침 입질이 왔군요. 그럼 잠시.”

시현은 차를 근처에 마트에 주차시키고 마트 주차장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 * *

류하리가 사이드 미러로 뒤를 보고 있자니….

한눈에 보아도 불량해 보이는 살집 있고 문신 있는 청년들이 시현을 에워싸는 게 보였다.

그들은 시현이 혼자라는 걸 보고 비열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돈을 가져온 상대가 혼자라는 사실에 나쁜 생각이 든 건지 아니면 원래부터 제대로 거래할 생각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들은 시현의 퇴로를 차단하고 그를 에워쌌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야말로 절체절명인 상황, 아무리 상대가 살만 찌운 놈들이라 해도 남 때리는 걸 우습게 아는 폭력집단, 그것도 한 명이 아닌 여러 명이니 위험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상대 쪽이 위험하겠지.

류하리는 사이드 미러로 그 모습을 보다가 시현과 그들이 거울의 사각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깜짝 놀라서 차 문을 열었다.

“끄아아아….”

“으으으윽!”

“아이고!”

시현이 양손에 한 명씩 잡아서 끌고 오는 게 보였다.

‘원 참, 전광석화네. 잠깐 한눈 뗀 사이에… 게다가 이번엔 맞아주면서 시작하지도 않잖아?’

류하리는 기겁하면서 시현에게 물어보았다.

“죽인 건 아니죠?”

“제가 이 일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닌데요. 차 트렁크 여세요.”

시현의 요청에 류하리가 트렁크를 열었다.

밴 차량이라 트렁크가 중형 엘리베이터 한 칸은 될법한 공간이었는데 거기에는 이미 비닐 필름들이 붙여져 있었다.

“자 그럼….”

시현은 그들을 트렁크 안에 던져 넣었다.

어째 분위기가 이상하다.

비닐 필름이 붙여져 있는 차량에 던져지자 그들도 흠칫 놀랐다.

“자 이러면 피가 튀어도 안심이지?”

“뭐?! 뭐야?! 이거!”

“이, 미친 새끼. 우리가 누군지 알고!?”

“너 대현이 형 알아?! 대현이 형?!”

“거참. 양아치 애들이 왜 엄한 족보를 읊지? 그렇지 않아도 너희 가족관계랑 호구조사는 곧 시행할 예정이니까 기다리고 있어.”

시현은 또 뒤로 가서 다른 곳에 쓰러져 있던 이도 질질 끌고 와 차량으로 던져 넣었다.

“아니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보다 못한 류하리가 물어보자 시현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아 과학자들이 철새의 생태를 조사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제 태그를 박고 그들을 다시 야생으로 풀어주는 거지요.”

“…….”

“시베리아의 혹독한 기후를 피해 남하한 철새들을 대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됩니다. 이런 양아치들은 거리의 생태계를 측정하는 데 아주 유용한 도구거든요.”

“…….”

“그 전에 이친구들 계좌도 확인해야 겠군요. 다행히 이런 친구들은 다들 최신형 스마트 폰을 쓰고 지문으로 다 해결된단 말이죠.”

“…….”

“으윽. 너 이 자식, 아! 아아아!”

“손가락 골절이 아프고 괴롭긴 하지만 또 금방 낫는답니다.”

시현은 그들의 손가락을 몇 개 부러뜨리고 그걸로 휴대폰을 잠금 해제시키고 계좌를 살펴보았다.

“음 너희들은 아니네. 아 혹시 이런 사람들 찾고 있는데 알고 있냐?”

“으으윽… 미, 미친 새끼.”

그들은 시현의 말에 욕설로 화답했지만 시현이 그들의 휴대폰 갤러리와 연락처를 뒤적이기 시작하자 표정이 달라졌다.

“음 야 양친 부모 다 계시고 거기에 넌 결혼도 했구나? 아내에 딸도 있네? 화목하구나?”

“자, 잠깐만.”

“으아….”

“아까 전에 쓸데없는 족보를 읊던데 이쪽 족보는 별로 노출하고 싶지 않은가보지?”

“…….”

“어휴.”

류하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대로라면 경찰인 그녀가 이 꼴을 보고 말려야겠지만 신기하게도 전혀 말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악마와 싸운다고 들었기 때문에? 음….’

확실히 시현이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무모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걸 들은 후, 류하리는 어지간한 범죄는 눈감아 줄 마음이 생겼다.

특히 이런 범죄자들을 대상으로라면 야 뭐.

시현이 말한 대로 철새 생태 조사와 비슷한 거 아닌가?

* * *

“자 그럼. 철새들아. 앞으로 마음껏 살아가렴.”

시현은 폭력배들의 호구조사를 끝마치고 정말 그들을 풀어주었다.

“…….”

류하리는 말문이 막혔다.

“결국 찾던 놈은 못 찾았네요?”

“뭐 당장은 그렇지요. 지금 풀어준 철새들은 아직 얼떨떨할 겁니다. 하지만 며칠 뒤, 자신들이 어디 있더라도 제가 다 찾아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매우 순종적이고 협력적이 된답니다.”

“와.”

류하리는 시현의 말을 듣고 감탄했다.

사람을 두들겨 패고 협박하면서 양심의 가책이라고는 병아리 깃털 무게만큼도 느껴지지 않는 발언이다.

아니 뭐 맞은 놈들이 맞을 만하긴 했지만 지금 이건 시현이 의도적으로 접근한 거 아닌가?

상대가 먼저 폭력을 휘둘러서 제대로 값을 안 치르고 돈을 빼앗으려고 하긴 했지만 그럴 걸 알고 혼자 나가서 반격한 것을 보니 참… 경찰로서의 사명감에 속이 쓰리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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