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데드맨31-114화 (114/269)

제114화

하베스터 #3

‘하지만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고 말야. 이런 게 다 시현과 그가 사랑하는 사람의 목숨에 관련된 일이겠지. 음. 관련된 일 맞나?’

류하리는 혼란스러웠다.

‘정신 차려. 류하리. 이 남자가 자기 일을 감추지 않고 이야기 한 건 내가 자신을 동정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야. 경찰인 내가 이 남자를 동정해버리면 어떻게 해?’

류하리는 스스로에게 다짐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더욱 시현의 상황이 신경 쓰였다.

그리고 대체 시현이 사랑한다는 그 사람은 도대체 누굴까?

부모나 가족이겠지?

류하리가 그렇게 혼란스러워 하는 와중에도 시현은 계속 설명을 했다.

“이렇게 평소에 열심히 양아치들을 조사하면 그들이 나중에 다 훌륭한 정보망이 되는 거지요. 평소에 열심히 묘목을 심어두고 돌아보면 민둥산이 푸른 산 되어있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시현은 그렇게 말하며 뿌듯해했다.

남들이 보면 정말 뭐 나무라도 심고 온 줄 알겠다.

“그럼 이제 두 번째 유형을 찾아볼까요?”

“두 번째 유형이요?”

“두 번째는 그냥 노숙자나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날품팔이로 전락해서 잠적한 사람들입니다. 계좌 없이 현금을 거래하는 쪽에 많이 있을 거예요. 보통 당일 현금 지급하는 일자리에 많이들 가있을 겁니다.”

“인력 사무소에 나갈 거란 말이지요?”

“네. 그리고 인력사무소 사람들은 네트워크가 있지요.”

시현은 단톡방을 하나 보여주었다.

서울 지역 곳곳의 인력사무소 실장들, 그리고 경기권 곳곳의 인력사무소 실장들로 해서 지역마다 단톡방이 만들어져 있었다.

거기에 시현이 메시지를 올린다.

‘사람 찾아요. 한 명당 20만원 보상금.’

그리고 인적사항과 사진을 올려버린다.

“와 이런 게 있군요.”

“사람 찾는 일 하는데 있어서는 필수죠.”

“이런 데는 어떻게 가입하셨나요?”

“저도 인력사무소를 하나 운영하고 있거든요.”

“네?”

“업체를 하나 인수해서 쓰고 있습니다. 직원들을 통해서 고용하고 있어서 제가 출근하는 건 아니지만요.”

“……”

류하리는 시현의 말에 당황했다.

그러니까 이 인력사무소 네트워크에 가입하기 위해 자신이 인력사무소를 인수했단 말인가?

무시무시한 행동력이다.

“하지만 한 명당 20만원의 보상금이라니… 노숙자나 날품팔이로 전락한 사람이라면 채권을 상환할 능력이 없을 텐데 그렇게 돈을 들일 가치가 있나요? 당신이라면 이렇게 사람을 찾으러 다니는 것보다는 잘하는 불륜 조사나 계속 하는 게 더 이득일 것 같은데요?”

분명히 채권에 적혀있는 금액은 그보다 더 클 것이겠지만… 이미 날품팔이 신세가 된 사람에게서는 20만원 뽑기도 힘들 것이다.

3일 정도의 일당을 전부 빼앗아야 맞춰질 금액인데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에게 3일치 일당을 빼앗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뭐 회수할 수단이 있습니다만 그래서 이 금액을 책정한 건 아니고 애초에 제가 이 채권회수 일을 하는 건 수입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닙니다.”

“그럼요?”

“쉽게 인생 막장…, 아니,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아무래도 저 혼자서 다양한 고객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주고자 한다면 역시 다양하고 많은 인력이 필요하니까요.”

“…….”

“지금 보시다시피 이렇게 함으로서 인맥도 많이 쌓고 있잖아요? 타자기의 악마가 준 데드맨의 능력 말고도 사람을 찾는 인맥의 힘을 키울 필요가 있지요.”

“그렇군요.”

“그럼 다음으로 가볼까요?”

“네.”

과연 류하리는 이번엔 어떤 끔찍한 꼴을 보게 될지 궁금해져서 시현을 따르기로 했다.

* * *

시현은 노숙자 급식소와 관련 봉사단체, 그리고 푸드 뱅크에도 사람을 찾는다는 소식을 돌렸다.

원래부터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는지 직접 찾아갈 필요도 없이 톡으로 보내는 걸로 대부분의 일처리가 끝나버렸다.

“놀랍군요.”

류하리는 시현의 발이 넓은 것에 경악했다.

인력사무소 네트워크에도 놀랐지만 이런 데에도 인맥이 다 있다니?

“기부를 좀 하면 됩니다. 기부하면서 자원봉사자들이나 관련 행정복지부서에도 얼굴을 비쳐두면 편리하지요.”

“제보가 꽤 들어오는 군요.”

류하리는 각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제보들을 보며 당황했다.

고작 하루 만에 이 많은 사람들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이 남자. 너무 유능한데. 말도 안 돼.’

탐정 일은 한국에서 합법화된 지 얼마 안 되는 업종이다.

하물며 시현은 탐정학과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다른 탐정에게 배운 것 같지도 않을 텐데 일처리가 너무나 노련하다.

대체 이 남자, 어디서 이런 재주들을 익혔을까?

“그럼 이제 세 번째 타입만 남겠군요.”

“세 번째 타입은 뭔가요?”

“…죽거나 사라진 사람들이죠.”

“죽거나 사라져요?”

“네. 뭐 감옥 같은데 들어간 사람도 있고 아니면 정말 고독사 한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는 채권의 회수가 불가능하죠.”

“도박을 위해 강원도나 마카오로 날아간 사람들은 없나요?”

류하리는 시현이 말한 세가지 유형중에 도박빚을 진 이들이 나오지 않는 것에 의아해했다.

“그런 사람들은 애초에 여기 신용정보회사의 불량 채권으로 오지 않습니다. 그보다 전 단계에서 사채업자들에게 걸러지지.”

“그래요?”

“네. 조직폭력배나 돈 받기 전문인 탐정, 흥신소들에게 마카오나 강원도 가서 도박할 만한 사람의 채권들은 꽤 인기가 있어요. 받아내는 수단이 좀 거칠어야 하기 때문에 합법적인 신용정보회사에서는 다루는 데 한계가 있거든요. 채권의 금액은 크고 받아내면 이득도 많으니 인기가 높을 수 밖에요.”

“합법….”

류하리는 시현이 하는 행위를 합법이라고 쳐야 하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제가 잡고 있는 이 세가지 유형 안에서도 도박 빚을 진 사람들이 많답니다. 사설 토토나 사다리라는 건 아시죠?”

“사다리요?”

“네. 토토는 아무래도 스포츠 게임을 좀 이해해야 재미를 붙이니까. 사다리 타기 게임처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게임으로 도박을 하는 사설업자들이 있어요.”

그런데 그때… 시현의 차 안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아 이런.”

시현이 투덜거리며 차로 다가갔다.

“벌써 계약자를 구했나보군요.”

“네?”

“요새 달아 달래서 달았더니만.”

시현이 차에 넣은 휴대폰으로 화상 전화를 받았다.

그러자 테이블 위에 놓인 타자기의 모습이 보였다.

-타다닥. 타닥….

타자기가 혼자서 글자를 치기 시작한다.

[계약자 원형재.]

계약자의 인적정보였다.

* * *

“원 세상에. 억울한 사람도 많기도 하지. 이렇게 열심히 일을 처리하는데도 계약자는 끝도 없네.”

시현은 투덜거리면서 차를 몰았다.

경기도 남양주에 위치한 인력사무소에 도착해 들어가니 그곳 벤치에는 때에 찌든 옷을 그대로 입고 드러 누워있는 남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계약자 원형재였다.

“뭐야? 딱 보니까 돈 받으러 온 놈이구만?”

원형재는 킥킥 웃으며 품을 뒤적였다.

일당으로 받은 꾸깃꾸깃한 돈을 좀 세던 그는 돈 대신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그런데 어쩌나? 너에게 줄 돈은 없고 줄 거라곤 이거 밖에 없는데?”

그러자 인력사무소의 여직원이 당황스러워했다.

“저 시현씨. 저사람 아주 진상이에요. 농장일 시켰는데 개판으로 치고 일당 안 주면 고소한다고 해서 분위기도 다 흐렸다지 뭐에요?”

여직원이 그렇게 말하자 원형재는 낄낄 웃으며 반대쪽 손으로도 중지를 세워 손가락 욕을 퍼부었다.

“으하하하 어쩔거냐? 엉? 너희들이 날 어쩔 거냐고!”

“음….”

시현이 류하리를 돌아보고 미소를 지었다.

“류하리 조수. 잠시 저쪽 산을 봐주겠어요?”

“산이요?”

“네 근사하지 않나요?”

“……”

근사하긴 개뿔, 산 능선에 죄 아파트가 쫙 들어서서 산을 가리고 있다.

류하리가 그걸 보고 뭐라고 하려는 사이 갑자기 으아악 하고 비명소리가 들렸다.

“…….”

“뭘 한 거에요? 그 잠깐 사이에?”

류하리가 놀라서 살펴보니 원형재가 전기에 감전당해 비실거리고 있었다.

“스턴 건?”

“데드맨 만능 맛사지기입니다.”

“……”

“EMS 운동기구라고도 할 수 있지요.”

“아 네.”

류하리는 작은 막대 같은 걸 발견했다.

보아하니 안에 커다란 캐퍼시터를 넣어서 전하를 충전시킨 뒤 그걸 던져서 사람에게 맞추면 감전되는 것 같았다.

컴퓨터용 파워나 옛날 TV의 음극선관 용 컨덴서는 전선을 뽑은 뒤에도 상당히 많은 양의 전하를 저장할 수 있어서 그거에 감전되면 사람이 죽기도 한다.

이건 그 정도까지 큰 컨덴서는 아니지만 그래도 스턴건 정도의 충격을 발생시키기엔 충분한 크기의 컨덴서 같았다.

컨덴서 다트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데드맨 만능 맛사지기?”

류하리는 일부러 파멸적인 센스의 이름을 붙이는 시현에게 질려버렸다.

* * *

원형재는 원래 성실한 회사원이었다.

하지만 리만브라더스에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 이후 회사에서 잘리고 그 후 자영업을 하며 이래저래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며 먹고 살던 도중….

아는 사람의 말을 믿고 한 가게를 인수했다.

하지만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 1억을 주고 인수한 가게는 사실 권리금 없는 깡통 가게였고 그 사실을 알아챘을 때는 이미 도저히 살릴 수 없을 정도로 영업이 망가진 상태였다.

이에 그는 가게를 알선하고 권리금을 사기 친 아는 사람을 고소했지만… 그때 이미 사기꾼은 모든 재산을 아내에게 넘기고 위장이혼을 한 뒤였다.

* * *

“헉?!”

원형재가 깨어났을 때 그는 비닐 필름으로 덮여진 차 안에 묶여있었다.

“뭐? 뭐야 너희들은?!”

“새 옷을 줄테니까 샤워하고 갈아입으십시오.”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그리 말하고 차의 문을 열었다.

차 밖에는 비닐하우스가 있고 그 앞에는 수도꼭지와 비누가 마련되어 있었다.

“뭐? 임마?! 너희는 뭐냐? 돈받으러 온 놈 아냐?”

“원형재씨. 저희는 물론 당신의 채권을 인수한 사람입니다. 약 2천만원정도 되는 군요.”

“하하. 2천만원짜리 채권인가? 얼마에 샀나 그거?”

“뭐 이쪽은 50만원에 샀습니다만.”

“크하하하. 50만원? 택도 없어. 너희들 망했다. 이놈들아. 난 절대 일 안할 거야! 더 이상 네놈들은 나에게서 한 푼도 못 가져가!”

“…….”

“열심히 일하고 악착같이 일했는데 사기나 당하고 말야! 이 나라가 내게 해준 게 뭐가 있어!? 어!?”

“나라가 뭔가 해준 게 없다. 그건 참 공감이 가는 군요.”

“그래? 그렇지?”

“그래서 국법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원형재씨를 원형이 안남을 정도로 다듬어볼까 합니다. 안심하세요. 원형재씨에게 들어간 채권은 충분히 뽑을 수 있으니까.”

“뭐?”

원형재는 시현의 엄포에 당황했다.

협박을 당하는 거야 어제 오늘 있는 일이 아니지만 시현의 말은 좀 성격이 다르다.

너에게 들어간 채권은 충분히 뽑을 수 있다.

그렇게 자신하다니? 저 자신감의 근거가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알게 되면 알게 된 것을 후회할 것 같았다.

데드맨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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